비 정기 시리즈

수성에서 목성까지

우성명헌 - 센티넬AU 2

정우성이 발톱을 꺼내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가 없는 산왕의 땅은 전례 없이 바빴다. 지구라는 새장에 가둬놓고 키우는 새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 세계 최정상의 지지가 필요했고, 그 도움 아닌 도움을 얻기 위해서 산왕은 ‘정우성’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보고서 서류를 몇백 장이고 써서 내야 했다. 산왕의 학생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개개인이 국가급 센티넬 대우를 받아야 할 그들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 앞에서 정우성이 권태감을 느낀다거나, 반인륜적인 생각을 품는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으며, 산왕의 학업 과정을 매우 즐기고 있다고 증언하는 동창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한편 정우성이 기어코 대낮에 날개를 펼쳐 들게 만든 장본인이자, 따지자면 이 모든 일에 원인 제공자인 이명헌은 개인 기숙사실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있었다. 먹칠이 지워진 정우성의 서류와 함께. 그리고 산왕의 누구도 그게 벌써부터 정우성이 싸고도는 가이드에게 주어지는 특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게 공개된 정우성과 관련된 서류는 박스 약 서른 개를 가득 채우고도 넘치는 분량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우성이 발톱을 드러낸 날 밤, 다시 들어온 기숙사 방문 앞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서류 박스들과 함께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모든 것을 숙지하라는 말을 들은 이명헌은 두께가 조금 있어도 한 손에는 다 잡혔던 서류의 먹칠이 전부 자신을 위한 배려였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일주일을 거쳐서 읽은 정우성의 서류 후기.

딱히 특별하거나 충격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적힌 모든 게 이상하고 기괴했으니까.

정우성의 서류 중 남들과 똑같은 양식을 가진 건 이름 그거 하나가 끝이었다. 그 바로 옆에 있는 나이는 <생물학적>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갔고, 키는 186이라는 숫자 옆에 추정 불가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체중 역시 마찬가지였다. 52라는 말도 안 되는 숫자 옆에는 추정 불가가 적혀 있었다. 처음 정우성을 소개받으며 받은 서류 중에 가장 많이 적힌 단어가 기록 삭제였다면 모든 게 공개된 서류 중에서 가장 많이 적힌 단어는 추정, 혹은 측정 불가능이었다.

능력 - 변화계: 모티브 추정 불가능

체력 측정 불가능, 근력 측정 불가능, 속력 측정 불가능.

그 밑에 불가능, 또 그 밑에 불가능, 또 밑에 불가능.

변화체가 있는 센티넬들은 본체인 인간형으로 한 번, 변화체로 한 번, 총 두 번의 테스트를 거친다. 그리고 변화체로는 어떤 검사도 받을 수 없었던 정우성은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센티넬, 즉 평범한 인간에게는 해선 안 될 테스트까지 인간의 몸으로 받았다. 변화 계열 센티넬은 변화체가 강한 만큼 본체에도 그 힘이 투영됐지만, 인권의 문제였다. 최동오가 표범으로 변한다고 해서 그의 급식으로 생고기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그중에 그나마 양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그의 몸에 구멍을 뚫어놓고 아홉 시간 동안 방치한 테스트였다. 위치는 배꼽 옆 복직근. 피가 멈추면 다시 찔렀다. 산왕을 믿고 자식을 맡겼을 부모가 알게 되면 그대로 눈을 뒤집고 기절할 일이었다. 정우성이 인간으로서 치른 실험과 테스트들은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죽으라고 이러나 싶었다. 인권과 인륜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근데 정우성은 그런 곳에서 다 살아남았다. 사실 살아남았다는 표현은 부적절했다. 그는 테스트에서 조금도 치열하지 않았으니. 6m 깊이의 수영장에 납을 달고 처박히면서도 정우성은 절박하지 않았다. 아홉 시간 동안 3L에 달하는 피를 흘린 정우성은 테스트가 끝나자마자 미처 못한 농구를 하러 갔다. 성인 기준 체내 약 1/3, 2L 이상의 피를 손실할 경우 과다출혈로 인한 실혈사에 이른다는 걸 생각해보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치른 테스트들이 특히 윤리와 벗어나 있는 이유였다. 학교는, 국가는, 세상은 그가 인간이라는 걸 확인받고 싶어 했다. 태양이 지면 달이 뜨는 것처럼 정우성이 피를 많이 흘리면 죽길 바랐다. 공기가 없으면 숨을 못 쉬길 바랐다. 정말로 그의 죽음을 원한다기보다는 그가 우리와 같은 존재라는 걸 확인받고 싶은 노력이었다. 그의 존재를 이해하고 싶었던 학자들은 그에게 메갈로에토스라는 학명을 붙였다. 그리스어로 거대한 독수리라는 뜻이었다. 이명헌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시체를 뜯어먹고 사는 새가 아니라 공기도 중력도 없는 우주에서도 멀쩡히 사는 새였으니까.

그렇게 모든 게 이상하고 충격적이며, 어느 지점에서는 괴기하기까지 한 서류 중에서 이명헌이 가장 이상하고, 충격적이며 괴기하다고 꼽는 건 정우성의 가이드 일치 항목이었다. 그는 각인을 위해 데려온 모든 가이드와 99%의 일치율을 보였다. 비슷한 일을 겪었던 이명헌이 그것을 기괴하다 꼽는 이유는, 정말로 국가가 그의 상대로 전 세계 모든 가이드를 검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우성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이드와 99%의 매치율을 보였다. 거기서 백 퍼센트의 일치율이 뜬 게 이명헌, 자기 자신이라는 소리였다.

그 밑으로는 관심사를 가져도 빠르게 식고, 쉽게 질리며, 은근히 감정적인 정우성의 성격을 위험 요소로 지정하며 조속히 백 퍼센트로 일치하는 가이드를 찾을 것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 문장들을 떠올리다 보면 허, 하고 작은 숨이 터진다. 기도 안 차서 화낼 힘도 없었다.

정우성은 폭주 안 한다. 이명헌의 결론이었다. 전 세계 가이드를 채우고도 남는 존재가 폭주하거나 가이딩이 필요할 정도로 날뛰는 일 같은 게, 지구에서 일어날 리가 없다. 막말로 급이 안 맞았다. 발톱을 움켜쥐는 걸로 행성 하나를 박살 내는 놈이 전력으로 싸우고, 케어가 필요할 정도로 능력을 쓸 일이 뭐가 있겠냔 말이다. 만약 그가 폭주할 정도의 일이 생긴다면 그건 이미 지구가 파괴된 다음일 것이다.

볼펜 끝으로 무의미하게 책상을 두드리던 이명헌이 고개를 들었다. 책상에 붙어있는 벽에는 태양계 그림이 액자로 걸려 있었다. 정우성의 서류 박스를 받은 다음 날 학교에게 부탁한 그림이었다. 정우성은 10대가 되면서 한 번도 ‘날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의 익폭이나 크기 같은 게 어림짐작으로도 쓰여있지 않은 이유였다. 정우성조차도 본인의 정확한 크기를 몰라서.

날아본 적이 없는 새는 날개를 펴본 적도 없었다. 손에 쥐고만 있던 볼펜을 가로로 들어, 그림으로 축소된 태양계에 대고 눈대중했다. 발 하나가 지구만 했으니, 날개를 전부 편다고 했을 때 지구를 기준으로 최소 수성부터 목성까지는 될 것이다. 어쩌면 태양부터 토성까지 가능할지도. 혹시 그래서 날개를 펴지 않는 걸까. 날개를 펴면 깃이 탈까 봐? 그런 짐작의 끝에서 나오는 건 한숨이었다. 전 세계 인구가 사는 곳이 고작 크기를 가늠할 기준으로 잡히는 생명체였다.

책상 위로 손을 떨어트리면 덩달아 볼펜의 끝이 책상에 닿는다. 우습게도 너무 거대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새가 우주를 유영하는 모습만큼은 어쩐지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명헌은 막연하게도 그의 본체는 하얗고 빛나는 새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은 따지자면 새라기보다도 보기만 해도 눈이 멀 것 같은 빛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새의 형상에 가까웠다. 정우성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날개가 타거나 얼어버리는 문제를 차치하고서, 우주를 나는 새의 날갯짓은 굉장히 가볍고 부드러울 것은 분명했다. 농구 하는 정우성은 그랬다. 마음만 먹으면 이 태양계에서 벗어나는 건 일도 아니겠지. 코트에서 벗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이명헌의 시선이 태양계 그림 속 지구에서 점점 멀어진다. 명왕성이 삭제된 그림의 끝에 나오는 건 자신의 방 벽이다. 노크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똑똑똑, 세 번 정도 울린 다음에는 낮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불렀다.

“명헌아, 자?”

소리 나게 볼펜을 내려놓은 이명헌은 책상을 밀어내듯 의자를 뒤로 뺀 뒤, 망설임 없이 몸을 움직여 방문을 열었다. 센티넬이자 낯간지러운 일에 면역이 없는 고등학생 틈에서 성을 뗀 친구 이름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부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감동하는 것과 별개로 조금이라도 오그라든다 싶으면 괜히 야유하는 놈들도 그 한 명에게는 그럭저럭 유하게 굴었다.

“아직 깨어있었구나, 다행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면 그 앞에는 최동오가 서 있었다. 오늘도 고생이 많네. 자연스럽게 자신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넘긴 그가 위로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굳이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지 않아도 제 방 꼴을 아는 이명헌은 어깨만 으쓱였다. 여러모로 사람을 안으로 들이기에는 민망한 방이었다. 서류들이 바닥 곳곳에 떨어져 있는 등, 모르고 보면 정신 나간 물리학자의 방 같기도 했다.

“고생은 똑같이 하고 있지용.”

같이 제 방을 보는 대신, 그의 옷차림을 훑으면 이번에는 최동오가 멋쩍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상의는 교복 와이셔츠였는데, 밑에는 정장 바지였다. 바지 주머니를 넣은 손 쪽으로는 교복과 다른 마이가 걸쳐져 있었다.

“나야 뭐… 평소에도 한 번씩 불려 나가니까.”

최동오가 멋쩍게 말했다. 정우성이 입학하기 전까지 산왕 내 유일한 변화계이자 ‘상식 밖에 있는’ 변화계로서 그는 유독 자주 불려 나갔다. 센티넬의 감각을 모르는 일반인 교사들과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태어나서, 보편적인 기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정우성 사이에 번역 아닌 번역을 담당하는 등, 정우성의 서류에 적힌 신현철이 그의 친형 같은 느낌이었다면 최동오는 확실히 그의 센티넬 선배다웠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용?”

팔짱을 낀 채로 문틀 한쪽에 몸을 기대고 서서 물었다.

“별일 있는 건 아니고, 잘 있나 걱정돼서. 예전부터 필기 과목에 약했잖아.”

“나만 약했나. 다 같이 약했잖아용.”

“근데 네가 유독 약했어.”

장난이 가득한 말들이 오가고 가볍게 웃음이 터진다. 아무튼 잘 있으면 됐고. 한동안 얼굴 못 본 것 같아서 그냥 한 번 들러봤어. 너무 무리하지 마라. 티는 안 내도 주장 오자마자 실려 가는 거 아니냐고 다른 애들도 다 걱정해. 너 쓰러지면 교사 서른 명은 사직서 쓰고 나간다. 용건은 정말 그게 다였는지 최동오가 슬슬 말을 마무리한다.

“정우성 말인데.”

그걸 붙잡은 건 이명헌이었다. 최동오가 대답 대신 시선을 마주친다. 마저 말하라는 배려였다. 명헌은 곧바로 말을 덧붙이는 대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길어질 수밖에 없는 내용을 어떻게든 축약시키되 다른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단어를 주의하기 위함이었다.

“…밖에서 머리 좀 식힐래?”

그런 이명헌의 말보다도 먼저 이어지는 건 최동오의 배려였다. 한숨을 내쉰 명헌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레 몸을 바깥으로 빼며 문손잡이에 다시 손을 올리기를 잠깐, 금방 방 안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겉옷 하나만 챙길게용.”

“밖에 그렇게 안 추워.”

“모기 물리기 싫어용.”

안전을 위해 도시와 떨어져 있다 보니 학교 근처에는 산이 많았다. 짧은 만담이 이어지고, 이명헌이 망설임 없이 의자에 걸쳐둔 트레이닝 저지를 집어 들었다. 산왕의 또 다른 교복이었다. 순조롭게 밖으로 나가려던 이명헌의 발걸음이 멈추는 건 기숙사 창문 앞에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성인 하나는 쉽게 들어올 그 창문을 가린 블라인드 앞이었다. 이명헌은 일주일 동안 방에 구금되어있다시피 하면서도 블라인드는 한 번도 올린 적 없었다.

“왜 그래?”

“가스 불 껐나, 확인용.”

확인 잘해. 그러다 불난다.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개인 기숙사실에 가스레인지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음에도 둘 다 당연하다는 듯 능청 떨었다. 마침내 방을 나서는 이명헌의 한 손이 자연스럽게 벽에 있는 스위치를 껐다. 틱, 소리와 함께 어두워지는 동시에 방문이 닫힌다.

자연스레 앞장서는 최동오의 뒤를 따르며 문득 이명헌은 자신의 방이 거대한 서류 박스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이명헌이 개설한 최동오의 고민 상담소는 운동장 계단에서 열렸다. 그리 춥지 않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한 번씩 팔에 소름이 끼쳤다. 콘크리트용 시멘트를 부어서 쌓아놓은 듯한 계단의 돌바닥이 유독 차갑고 딱딱했다. 고개를 위로 들면 어렵지 않게 하늘의 별들이 보였다. 정우성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사흘간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발톱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용케도 달은 안 건드리네용.”

멍하니 하늘을 보던 이명헌이 말했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다. 오늘따라 움푹 팬 쪽이 꼭 누군가에게 파먹힌 것만 같았다.

“듣기로는 달까지도 손아귀에 있다고 하더라.”

상대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던 최동오가 덩달아 하늘을 보며 말했다. 주어가 불분명했는데도 누구를 말하는지 아는 것 같았다. 이어서 그가 오른손 엄지와 검지, 중지만을 펼쳐 갈고리처럼 구부렸다. 발톱 대신 손아귀라 표현한 표범은 그것을 흉내 내는데 어떤 어려움도 없었다.

최소 수성과 목성의 사이라고 생각했던 익폭이 태양부터 토성을 넘어 천왕성, 해왕성까지 가다가 멈춘다. 뭐가 됐든 널 위해 별도 달도 따다 줄 수 있다는 헛된 맹세가 그에게만큼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우주로는 어떻게 올라가는 건가용.”

“우성이 말로는 그냥 제자리 덩크 넣으려고 하듯이 뛰면 올라가 있다고 하던데… 서류에도 안 적혀있었어?”

이명헌이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아직 열지도 못한 서류 박스들이 남아 있었으나 거기에 물리적으로 설명되는 방법이 담겨 있진 않을 것 같았다. 아마 교사들이 물어도 저딴 식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짐작이면서 확신이었다.

“나중에 네가 물어보면 잘 알려줄지도. 우성이가 벌써 널 마음에 들어 한다며?”

“그거 말인데, 각인 안 하려고용.”

“…응?”

웃으면서 너스레의 연장선을 이어가던 최동오의 표정이 드라마처럼 굳는다. 걔는 가이드 필요없어용. 팔을 뒤로 뻗어 상체를 지지하고 있던 이명헌이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밤하늘을 향해 있었다. 최동오는 그게 별을 본다기보다는 하늘에 있는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이명헌이 방안에서 혼자 내린 결론을 하나둘씩 꺼냈다.

그가 폭주할 일이 있다면 지구가 멸망하는 게 더 빠르다는 것. 사실상 일치율도 제가 채운 건 1%밖에 없다는 것. 달을 주의할 조심성이 있다면 산왕의 교육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그런 말들이 이어질수록 최동오의 표정은 점점 구겨졌다. 양 뺨에 뚜렷한 선을 갖고 태어난 친구는 미간이나 다른 곳에 선이 생겨도 험악해지기는커녕 이상하게 어울렸다. 순하디순한 성격과는 맞지 않는 인상이었다.

“넌 학교가 좁다고 느껴본 적 없나용.”

“갑자기?”

“넓은 초원에서 뛰어 놀고 싶다든가.”

급기야 변화체의 능력이 본모습이라고 말하는 듯한 상대의 질문에 의아하다는 듯 상대를 바라보던 최동오가 한쪽 눈썹과 함께 턱을 살짝 들었다. 그건 변화체 센티넬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저지를 법한 무례함이었지, 저와 함께 산왕에서 자란 이명헌이 할만한 실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거 우성이 생각하고 말하는 거야?”

가까스로 한 가지 가능성을 짚어서 물으면 이명헌이 침묵으로 그것을 긍정했다. 그러고 나면 드디어 질문의 의도가 보이는 것 같았다.

“…아, 초원이나 밀림 같은 곳에서 살고 싶냐는 질문이 아니라,”

“자유롭게 능력을 써보고 싶지 않냐는 뜻이지?”

뒤늦게 최동오의 표정을 이해한 이명헌이 급히 말을 덧붙이고, 이미 이해를 끝마친 최동오가 가벼운 웃음으로 대신 말을 마무리했다. 덩달아 마음이 놓인 이명헌이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가 금방 되돌렸다. 능력 자체가 다른 생물로 변화하는 능력인 만큼, 자칫하다간 뜻을 오독하기 쉬운 질문에도 그러지 않은 건 서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래도 나 정도면 꽤 자유로운 편이지만… 우성이는 확실히 제약이 많지.”

“너무 좁아용.”

“난 그래서 우성이가 더더욱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명헌이 처음으로 최동오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이드가 있으면 내 세상이 좁은 줄도 모른대.”

논리적인 대답을 기대했던 이명헌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그 반응에 최동오가 크게 웃었다. 농담, 혹은 놀림이 먹혀들어 간 게 뿌듯한 웃음이었다. 명헌은 친구가 마음껏 웃게 내버려 뒀다. 가이드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정말 그게 전부라면 더더욱 자신이 아니어도 됐기 때문이다.

16년의 기다림 끝에 결정 난 가이드인 만큼 이명헌은 자신의 가이딩 능력을 오롯하게 쓰고 싶었다. 오직 제 기량으로만 99%의 일치율이 뜨는 센티넬과 각인을 맺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많은 사람은 센티넬과 가이드 사이에 주도권이 가이드에게 있다고 여기고는 했다. 실제로 산왕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는 듯 새롭게 가이드로서 자리 잡아 가는 이명헌은 그게 모두 헛소리라는 걸 알았다.

신께서 사랑하는 인간에게 쥐여준 주도권은 센티넬과 가이드가 녹아든 문명이 발전하면서 몇 없는 센티넬에게 넘어갔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람들이 똑똑해지면서 가이드를 대체할 게 점점 늘어가는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매치율이 낮은 가이드가 센티넬에게 살해되는 일이 없도록 가이딩을 보조하는 기구 장치, 혹은 훈련법에서 시작하던 게 점점 가이드의 필요를 잃게 했다. 당장 산왕에는 도 감독의 스포츠 교육론이 있었다. 신이 가이드를 사랑한다고 해도, 결국 사람들이 귀중하게 여기는 건 세상에 얼마 없는 센티넬이었다.

종종 센티넬은 가이드에게 집착하기 쉽다고 하지만 그것도 일치율이 높았을 때 이야기였다. 이명헌은 정우성과 자신의 사이에 뜬 숫자를 믿지 않았다. 결국 제 몫은 1%였다. 단지 ‘가이드’가 필요할 뿐이라면 굳이 자신이 아니어도 된다. 새의 날갯짓으로 넘쳐흐르는 비커가 70억 개가 넘었다. 백 퍼센트의 일치율이 나온 가이드에게 보였던 정우성의 흥미를 기억한다. 좋아하는 게 농구라서 매칭되고 싶다던 그 말. 그리고 산왕에서 쫓겨나며, 제 가치가 제 안에 없다는 걸 안 이명헌은.

“정 고민되면 우성이네 아버님을 만나 보는 건 어때?”

최동오가 입을 연 건 그때였다. 아마 명헌이 네가 만나보겠다고 하면 기꺼이 만나주실걸. 외출증 뽑기가 더럽게 어려워서 그렇지. 돌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손으로 대충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면서 말했다.

“…용?”

“아버님이 감독님을 설득해서 우성이가 산왕에 들어왔거든.”

“산왕이 아니면 걔가 어딜 가나용.”

그를 따라서 덩달아 몸을 일으킨 이명헌이 물었다. 노력을 멈추지 않는 엘리트 해남, 전통을 중시하는 대영, 완벽을 설계하는 지학. 단체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좋은 학교는 많았지만 결국 최강은 산왕이었다. 이윽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최동오가 귀신을 믿지 않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가이드가 대부분인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 다니는 학교였지만, 어떤 졸업생들은 사회로 돌아가지 못하고 기관에 남았다. 이제는 센티넬 도시 전설, 내지는 학교 괴담 정도로 남은 이야기였으나 산왕에서만큼은 농담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사라진 졸업생 대부분이 산왕의 수석 졸업생인 탓이었다. 그들이 남게 되는 기관은 한 번 들어가면 기록이 말소되고 사회에서 삭제됐다. 약 18년 동안 받아온 사회화 수업 대신 다른 것을 가르치는 그곳을 산왕의 학생들은 학교라고 부르지 않았다. 산왕의 학생들은 그곳을 이렇게 불렀다.

“군대.”

태어난 뒤로 지금까지 산왕에서 자라온 최동오가 말했다.

*

이명헌의 외출증은 그부터 두 달이 지나서 나왔다.

수학여행같이 학교에서 작정한 외부 이벤트가 아닌 이상, 사실상 외출이 불가능한 곳이라는 걸 생각하면 굉장히 빨리, 쉽게 나온 편이었다. 센티넬도 아닌 가이드였던 데다가, 이미 학교 밖에서 일 년 정도 생활한 기록이 남은 덕분이었다. 외출증의 기한이 하루 몇 시간에 불과한 정도였기도 했고.

이명헌은 외출 사유에 정광철 석 자를 정확하게 기입했다. 학교에서 정우성을 두려워하며 정광철 세 글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음에도 이명헌의 외출이 허락받을 수 있었던 건 도 감독의 지지였다. 정우성의 가이드로 낙점된 이명헌이라면 막연하게도 괜찮을 거란 학교의 안일함은 덤이었다.

정우성의 생가는 학교와 멀리 떨어진 시골에 있었다. 정씨 부자 사이에 있는 일은 마저 열어 본 서류 박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정우성의 농구 사랑이 아버지 정광철로부터 비롯됐다는 것. 그리고 아들 또한 농구를 사랑했다는 것. 그래서 그런 아들을 위해 산속 깊은 시골에다가 앞마당에 농구 코트가 있는 집을 지었다는 것. 오직 농구에 기반한 선택 덕분에 그들은 거대한 새를 16년간 숨기고 기를 수 있었다는 것.

그들의 둥지로 들어선 이명헌은 농구 코트─마당─앞에서 멈춰섰다. 학교와 멀리 떨어진 만큼 이동까지는 학교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갔지만, 정광철이 집 안으로 출입을 허락한 건 이명헌 하나였다. 코트는 딱 일반 성인만 했다. 깊은 산골이어서인지, 마당의 농구 코트는 벌써부터 지어진 지 30년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깨끗한 건 림에 달린 골망이 전부였다. 얼룩 하나 지지 않아 완전히 새것에 가까운 그것을 보던 이명헌의 시선이 저절로 대낮의 하늘을 향한다.

“이명헌 학생?”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이명헌이 급하게 몸을 돌리고 허리를 숙였다. 대청마루에 서 있던 그가 손사래 치며 웃었다. 정광철은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지긋했다. 뒤로 묶은 머리는 온통 하얗게 세고, 안경이 씌워진 얼굴에는 세월이 주름으로 새겨져 있었다. 사오십 즈음 늦게 얻은 외동아들이라던 정우성이 그의 속을 얼마나 썩였을지 얼핏 보이는 것도 같았다.

“미안합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집으로 불렀는데, 많이 낡았지요? 그래도 우성이가 돌아오면 언제든 농구 할 수 있도록 코트만큼은 항상 신경 쓰고 있습니다.”

“말씀 편하게 낮추셔도 됩니다.”

“우성이 가이드 될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비 되는 사람이 어떻게 말을 낮춥니까. 정광철이 말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집사람이 차를 준비했습니다. 이명헌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약 아흔네 배 정도로 부담스럽다는 말을 가까스로 삼킨 후, 그의 뒤를 따라갔다. 새삼스럽게도 이런 부모 밑에서 그런 자식이 나올 수도 있구나 싶었다.

산속에서 풀 내음이 곳곳에 배어있는 집 안에는 정우성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집안만 둘러보면 그들에게는 아직도 아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가 됐든 정우성이 부모에게 있어 자랑스럽고도 그리운 아들인 것은 분명했다. 3개월 동안 그를 우주 밖으로 내보낸 당사자라는 죄책감이 그제서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다. 그것까지도 애써 누르고 정광철의 뒤를 따라 걸었다.

“내 아들이 속을 많이 썩입니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방에 들어가 앉으면 곧바로 본론이 시작됐다. 미리 준비된 방석 위로 무릎 꿇고 앉은 이명헌이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아드님이랑은 농구 한 번 한 게 전부 다입니다.”

가까스로 말꼬리를 참은 이명헌이 잠시 숨을 골랐다. 아무래도 김낙수로부터 참을성의 왕자라는 타이틀을 빼앗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이겼습니까?”

그러면 정광철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자를 대고 그은 듯, 반듯하게 나 있는 쌍꺼풀이 접히는 걸 본 그 순간, 이명헌은 정우성이 별일 없이 늙으면 60대 즈음에는 이런 모습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그가 진심으로 이런 걸 묻나 싶었다. 당장 먼저 그에게 원온원을 신청했던 그때의 자기 자신조차 이길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원온원을 선택했던 건 그게 정우성이라는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기에 좋은 수였기 때문이었고.

“졌습니다. …7:10으로.”

“그 녀석을 상대로 7점이나 따냈다고요?”

그러면 정광철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가이드는 처음 상대하는 정우성이 힘 조절을 잘 못 해서, 제가 너무 시시해서 정우성의 집중력이, 아니 근데 페이크가 솔직히 좀 뻔해서, 아무튼 우연과 요행이었다는 말을 덧붙이다 보면 이게 지금 겸손인지, 진짜 정우성을 상대로 7점을 따냈다고 주장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 아들이 좋은 포인트 가드를 만났군요.”

“그래봤자 가이드입니다. 아드님 수준엔 못 맞춥니다.”

찻잔에 손을 뻗던 정광철의 미소가 부드럽게 풀어진다.

“우성이와 각인을 맺을 생각이 없다는 건 감독님을 통해 들었습니다.”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놓여있었음에도 아직까지 김이 풀풀 나는 그것으로 목을 축인 정광철이 말했다. 오늘 방문 목적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제가 맡지 않아도 아드님이 그곳에 가게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의도를 들킨 이상 더 숨길 건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명헌은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않도록 주의했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 앞에서 당신의 아들이 센티넬 특수부대로 소속되어 신분이 말소되고 평생 나라를 위해 싸우거나 실험체로 쓰이며 죽어도 죽은 줄 모르고 살게 될 거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별개로 이명헌이 확신할 수 있는 건, 두 달을 걸쳐서 완독을 끝낸 서류 속 정보 덕분이었다. 메갈로에토스에 대한 연구는 국가 공동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정우성을 두려워하면서도 이해하고 싶어 하며, 겁내면서도 경외하는 그들은 어떤 목적이든 간에 개인이 거대한 새를 독점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었다. 애초에 전 세계 학자들을 모아놓고 정우성을 검사한 시점에서 이미 나라에서 전 세계로 SOS 신호를 보낸 것과 다름없었다. 조난 신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우리는 이 새를 키울 수가 없다.

“군대에 갔어도 우성이는 잘했을 겁니다.”

그러면 정광철이 덤덤하게 말했다.

“삶의 모토가 도전인 아이거든요.”

그 목소리에는 확신이 배어 있었다.

“벽이 있으면 오히려 눈부시게 불타오르죠. 그래도 열세 살 때까지는 내가 그 아이의 벽이 되어줬는데 말입니다.”

끝에는 웃음기까지 섞였다. 신체 나이로 중학생이 되기 직전까지 정우성은 정광철을 농구로 이긴 적이 없었다. 그것 또한 이명헌은 서류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우성이를 산왕에 보냈던 건, 그 아이가 농구를 하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센티넬로 태어나 원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은 얼마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더더욱 제가 필요 없을 겁니다.”

세계에서 수준 높다고 손꼽히는 기관 중에서도 최강인 산왕이었다. 한 번 그곳에서 쫓겨났음에도, 산왕을 향한 이명헌의 자부심은 변함없었다. 정확하게는 그곳에 있는 친구들과 스승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도진우가 이끌고, 정성구, 최동오, 신현철, 김낙수가 있는 산왕은 정우성을 채우지 못할지언정 부족하지도 않다. 그들이 떠나고도 산왕에는 신현필이 남아 있었다.

지구의 일로는 폭주하지 못할 정우성에게 중요한 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에너지가 몸에 쌓이지 않도록 해소하는 일이었다. 그는 농구가 좋아서, 농구가 하고 싶어서 매칭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농구가 있는 한 정우성은 매칭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았다. 농구로 해소되는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한들, 타교의 센티넬과 정해진 종목으로 겨룰 수 있는 단체 평가가 있었다. 정우성이 우주로 날아오르고,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명헌의 생각은 변함없었다.

“그 아이에게 가이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나요?”

“제가 아니어도 된다는 겁니다.”

이명헌은 단언하면서도 이미 상대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이제 마흔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도진우가 학생들의 생각을 훤히 읽는데, 예순이 지난 정광철이 교복을 입고 앉은 제 생각을 모를 리 없었다.

“많이 무서운가요?”

주어가 불분명했기에 이명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광철의 시선도 피하지 않았다. 침묵이 이어진다. 산에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풀 내음이 나는 집은 적막할 틈이 없었다. 온갖 풀벌레 소리와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들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특별한 아이라는 건 걸음마를 떼던 날부터 알았습니다.”

그곳에 다시금 사람의 목소리가 덧씌워지는 건 정광철이 찻잔을 반 정도 비우고 나서였다.

“내 욕심으로 쥐여준 농구공으로 가르친 적도 없는 덩크를 혼자서 성공한 걸 본 날에, 있는 돈을 털어 이 집을 지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를 세계 최고의 농구 선수로 키우고 싶었거든요. 겉보기에 평범한 아이였는데도 소문은 금방 퍼졌는지 열여섯에 산왕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입대 제의였을 겁니다.”

그때까지도 표정에 다른 변화 없이 이야기를 듣던 이명헌의 미간이 살짝, 아주 살짝 찌푸려진다. 정광철이 시작한 이야기의 서두가 제가 알던 것과 비슷한 듯 묘하게 달라서였다.

“나는 걱정스러웠고, 우성이는 그럭저럭 기뻐했습니다. 도전할 곳이 생겼다고 생각한 거겠죠.”

그리고 묘하게 달라졌던 이야기는 이명헌이 완전히 모르는 것이 된다. 그 반응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모를 정광철이 내려놓았던 찻잔을 다시금 들었다. 손이 잘게 떨렸다. 자신이 아는 것과 그가 말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진실일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뻔했다.

“입학 하루 전날에, 우성이가 산책을 나갔습니다.”

이명헌은 얌전히 제가 모르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류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으며, 산왕의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이야기였다.

“우성이는 평생 숨길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때까지도 나와 내 아내는 우성이가 신체 능력이 뛰어난 줄로만 알았고, 농구 하는 데 그런 능력은 필요 없었으니까요. 단지 산왕에 가기 전에 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자신의 능력을 써보고 싶었을 뿐이었겠죠.”

정광철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문득, 이명헌은 그렇게 모르는 이야기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성이가 집에 돌아온 건 16년이 지나서였습니다.”

그리고 묘하게 낯선 이야기는 모두가 아는 헤프닝이 된다. 산왕의 첫 불명예였다.

입학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졌던 센티넬.

“아침에는 아내와 함께 우성이를 찾아다녔고, 밤에는 코트에 자라는 잡초를 뽑았습니다. 우성이가 언제 돌아와도 농구를 할 수 있도록 골망을 갈아 끼우고, 비가 오면 골대가 녹슬지 않게 천막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은 돌아오자마자 나와 내 아내의 얼굴을 보고 숨을 못 쉬더군요.”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는 듯한 목소리였는데, 표정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 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잠겨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16년이었다. 비로소 20년은 훌쩍 넘긴 듯한 코트의 진실을 깨달은 이명헌은 처음으로 정우성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숨을 고르게 쉬기가 어려웠다.

“정말 능력만 써보고 싶었는데, 그러고 나니까 명왕성이 궁금했다고. 얼마나 작길래 퇴출이 됐는지 궁금해서 그걸 보고 왔을 뿐이라고. 그게 전부였다고.”

정광철은 찻잔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에는 죽는 그 날까지 선명하게 기억날 하루가 떠올라있었다. 16년 만에 아들이 돌아온 날이었다. 아내는 아들이 언제 돌아와도 부모라는 걸 알아볼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그 날에서 머리를 기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망설임 없이 잘랐다. 자신은 그 옆에서 수염을 다듬었다. 그러면서도 매일마다 커버린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을까 괴로워했다.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16년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다른 게 없었고.

“내게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은 일이었다고. 절대 당신들을 떠나려던 게 아니었다고…….”

결국 이명헌이 찻잔으로 손을 뻗었다. 식었어도 차인 그것이 생수라도 되는 것처럼 들이켰다.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차라리 그렇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씀인가용?”

“우성이는 신이 사랑한 아이입니다.”

말꼬리를 참아야 하는 것도 잊고 물었다. 그러면, 정광철이 단언했다. 어느 종교 단체가 들으면 이단으로 몰아도 이상할 것 없는 발언이었다. 이명헌이라고 종교나 신화를 진지하게 믿는 건 아니었으나, 그의 발언은 확실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16년을 기다리지 않고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농구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신이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무엇이겠습니까.”

정말로 센티넬이 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한들, 지구에서 태어나 우주에서 살아야 할 그것이 어떻게 신의 사랑이란 말인가. 한 번이라도 자유롭기를 택하면 남들과 같은 속도로 걷지 못하는 그게 어떻게 사랑인가. 날개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울음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도 못하고. 몸만 커간 채, 모두에게 잠재적 위협으로 취급받으며, 농구 하는 데 필요하지도 않은 그 능력을 누구보다도 겁내면서 사는 그 고독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신의 규율을 어긴 짐승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저주였다.

“그저 새 한 마리일 뿐입니다.”

정광철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을 내뱉기까지 그에게는 어떤 각오도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우성이도 우리와 똑같습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고집만큼 승부욕이 강한 데다가, 가이드를 상대해본 적 없고, 조금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농구를 가장 좋아하는……. 이어지던 그의 말끝이 흐려진다. 이미 수백 번이고 되새기면서 닳고 닳은 것 같았다. 비로소 이명헌은 도진우가 자신의 외출을 허락한 이유를 깨닫는다. 그 뒤로 이어지는 침묵은 정광철도 깨지 않았다. 이명헌은 차를 전부 비운 뒤 모든 것을 말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서는 여전히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

정우성의 귀환은 그가 말했던 3개월보다도 2주 정도 앞당겨서 예측되었다. 그의 일이 진정되자마자 코앞까지 다가온 여름 단체 평가를 준비해야 했던 산왕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빠지는 것 없이 다른 센티넬들과 똑같은 강도의 체력 훈련을 마친 이명헌은 방 의자에서 늘어진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방을 어지럽히고 있던 서류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 지 오래였다.

방안에서도 자꾸만 하늘로 향하는 고개는 태양보다도 밝게 빛나는 별과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정우성이 우주로 날아오르고 일주일을 지나 그의 아버지를 만나기까지의 두 달을 넘어, 그가 세 시간 내로 산왕으로 귀환할 거라 말하는 오늘까지도 창의 블라인드를 올리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하늘을 바라보면 정우성과 시선이 마주치는 기분이었다. 저 위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이상한 확신이 있었다.

우주에서 날아야 할 새, 99%와 1%, 센티넬, 가이드, 산왕, 그리고 농구. 그간 제게 있던 일들을 단어로 요약한 이명헌이 눈을 감았다. 산왕에서 쫓겨나며 자신의 가치가 제게 없다는 걸 안 이명헌은 다시는 누군가에게 쓸모없다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학교의 이야기가 아닌, 신뢰의 문제였다.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음을 알았으나 그 끝이 자신의 무가치함으로 끝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이명헌은 정우성에게 증명을 요구했다. 산왕의 주장으로서 그가 산왕의 에이스로 걸맞은 자인지 증명을 요구했고, 버려지기 싫은 가이드로서 필요의 증명을 원했다. 그리고 16년을 건너와 자신의 후배가 된 정우성은 다시는 혼자서 날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정우성은 1%를 채운 게 고작인 가이드에게 기꺼이 능력을 보여주었다. 비록 지나치게 거대해서 한눈에 들어오진 않았지만서도.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한 이명헌이 이내 몸을 일으켰다. 다음에는 삼 개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을 열었다. 정우성의 귀환이 예정되며 학교는 모든 창을 닫을 것을 권유했다. 열대야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고, 별은 유독 밝게 빛났다. 새들은 착지할 곳을 알고 있다고 했다. 집을 완전히 떠나기 직전에 그의 어머니가 제게 남겨준 말이었다.

정우성은 능력을 선보였던 산왕 운동장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창밖으로 몸을 내밀면 운동장 교단 쪽에 모여있는 교사들이 보였다. 거기엔 신현철과 김낙수가 끼어서 몸을 풀고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불려온 것 같았다. 뒷수습은 도와주지 않겠다고 말했던 게 무색한 모습이었다. 그러니 성인 하나는 쉽게 들어올 창을 연다고 달라지거나 할 건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창을 연 이명헌은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사실은, 아무 일도 없을 게 아니라 미친 짓이었다. 우주에서부터 낙하하는 그가 받을 중력 가속도나 충격을 생각하면 여러가지로 정말 미친 짓이었다. 운동장에 김낙수나 신현철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미친 짓도 아닌 것 같았다. 새가 정말로 착지할 곳을 알고 있다면, 그는 그곳으로 오는 방법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늘을 보는 것도 포기하고서 방 안에 가만히 서 있었다. 거대한 바람이 창문을 꿰뚫고 방안을 뒤집은 건 그때였다. 휘몰아친다기보다도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다가 제 방안에서 터진 것만 같았다. 반사적으로 양팔을 뻗어 제 앞을 막았다. 차가운지 시원한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 바람의 압력이 피부 구석구석을 훑다가도 숨쉬기도 힘들만큼 짓눌렀다. 조금이라도 형체가 있는 모든 것들이 사납게 흔들렸다. 눈조차 뜨기 힘든 압박감에 가장 걱정되는 건 고막이었다. 창틀이 덜컥이는 소리라든가, 벽에 걸어둔 태양계 액자가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터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겨우 왼손을 들어 귀를 꾹 눌렀다. 얼굴을 드는 건 바람이 잦아든 다음이었다.

“형.”

그 앞에는 정우성이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위쪽 창틀을 붙잡고, 발끝만 세워 창틀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 주변으로 나름 정리해둔 방은 소용돌이가 지나간 것만 같았다. 하다못해 못으로 바닥에 고정되어있는 침대조차 자신의 베개나 이불을 잃어버리고 맨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망칠 거 아니죠.”

정우성이 물었다. 3개월 전에 처음 본 그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하늘 위에서 다 봤어요. 나 혼자 둘 거 아니죠. 드디어 하얀색 별이 아닌 어두운 동공과 눈이 마주친다. 빛이 들어오면 옅은 초록빛이 맴도는 신비한 눈이었다.

“누가 누구보고 형이래용.”

이명헌이 대답했다. 그런 다음에는 제 앞에 내려앉은 새에게 다가갔다. 3개월 전에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눈이 크게 뜨이는 것도 잠깐이었다. 자를 대고 그은 듯, 반듯하게 나 있는 쌍꺼풀이 접힌다.

“아빠가 그것까지 말했어요? 와, 그럼 나 우성이 형 소리 듣나?”

“까불지 말고 자. 내려올 때 힘 많이 빠진다면서용.”

“그건 또 누구한테 들은 거예요?”

창가에 다가서면 기다렸다는 듯 우성이 앞으로 쓰러지면서 기대왔다. 뒤에서 누군가 툭 하고 친 것만 같았다. 의도가 다분한 몸짓이었음에도, 그것을 밀어내거나 그의 힘으로 서게끔 다그치는 대신에 제게 기대도록 두었다. 정우성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샌다. 아이같이 천진난만한 그곳에는 숨길 수 없는 안도감이 배어 나왔다.

“그렇게 크게 피곤하지는 않아요. 그냥, 중력이 있는 곳까지 혼자 찾아가야 하니까 그렇지. 그건 십 분 만에 했어요. …아마도. 궤도에 들어오고 난 다음부터는 뭐……. 아 참, 우리 형 필기 과목에 약하지. 이거는 저도 다른 형한테 미리 들은 거예요. 동오 형한테요. 그러고 보니까 그때 뭐였어요? 일주일 동안 안 보이다가 동오 형이랑 같이 운동장에 나왔던 그때요. …근데 형이라고 불러도 되는 거 맞죠? 징그러워하는 거 아니죠?”

“우성.”

“네.”

“얌전히 자.”

“…….”

“일어나면 원온원 하게.”

창밖으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명헌은 들리지 않는 척했다.

“…형.”

정우성이 다시금 목소리를 냈다.

“내 가이드하는 거 맞죠.”

“…그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명헌은 손을 뻗어 자신에게 기대고 서 있는 그의 등을 감싸 안았다. 얼마 가지 않아 어깨에 기댄 그의 숨소리가 일정해지고, 몸에서 힘이 빠진다. 비행을 위해 뼈가 비어있어서인지, 엉겁결에 끌어안게 된 그는 서류에 적힌 숫자보다도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언젠가, 다시 행성계로 복귀한 명왕성을 보러 갔다 온다고 한들 정우성은 저 창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슴으로부터 맞닿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온도는 따뜻하기만 했다.

정말로 새 한 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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