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못죽] Cliché

[청우문대] Cliché (에필로그)

너는 모르는 나의,

2열 by 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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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ché 시리즈의 짧은 에필로그입니다.

조용한 듯 무던한 네가, 다른 부원들의 말에 작게 웃는 모습에 한참을 너만 바라봤던 것 같아.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계속해서 너를 눈으로 좇은 게. 어쩌면, 너와 친해지고 싶었나 봐. 친해지고 싶은 네가, 나와 함께 매일 오전 교칙 검사를 한다는 사실이 기뻤어. 친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컸거든.

"형. 이라고 불러드려요?"

그땐 정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는데. 가만 보면, 너도 참 장난을 좋아하는 것 같아. 그치? 음, 아닌가. 아, 그거 알아? 너와 함께 아침에 시간을 보내게 된 뒤로, 좀 더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어. 아마, 좀 더 너를 일찍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아. 아침이 그렇게 상쾌하게 느껴지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

그러다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좀 더 같이 있고 싶었어. 그래서 괜히 교실까지 찾아가서 그랬잖아.

"문대. 우리 영화 볼까? 영화 보자. 나랑."

"이제 더 지나면 문대랑 못해볼 게 많을 텐데, 그게 너무 아쉬워서."

아마, 너에게 가장 솔직했던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너랑 본 영화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 아니, 사실 거짓말이야.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거든. 아, 나 영화 보러 왔었지 하고. 그래서 네 말에 그렇게 말했나 봐.

"너무 뻔하잖아요. 클리셰 범벅에. 이런 게 뭐가 좋다고.."

"그래서 좋은 건 아닐까? 원래 뻔하고 예측이 쉬운 것만큼 더 끌리는 것도 없는 법이니까."

그 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도 모른 채. 차라리 그때 그런 얘기는 하지 말 걸 그랬나 봐. 음, 아니다. 몇 번을 그때로 돌아가도 난, 아마 또 그렇게 말했을 것 같아.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예측이 안 돼서 끌리는 것보다, 뻔하고 예측이 쉬운 것에 더 쉽게, 더 강하게 끌린다고.

전에는 얼른 졸업하고 성인이 되고 싶었는데, 너를 두고 졸업한다니까 그날이 너무 싫었던 거 있지. 뭐, 그래도 사람 인연이 끊기는 건 아니니까... 하면서 애써 웃으면서 졸업했던 것 같아. 그러면서도 간간이 나누는 너와의 연락에도 아쉬워서 너를 보러 졸업한 학교에 몇 번을 간 건지... 선생님들도 그러시더라. 졸업한 놈이 이렇게까지 자주, 많이 온 건 또 처음이라고. 정말 그렇게 많이 갔었나? ...그치, 많이 가긴 했네.

너를 못 보고 돌아갔던 처음이 기억나. 그때 선도부실에 잡혀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땐 같이 졸업한 선도부원 하나도 같이 갔었을 거야, 아마? 음, 무슨 얘기를 했더라.

"그럼, 남자가 너 좋다고 하면 괜찮다고?"

아. 그런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내 대답이 아마

"...하하, 글쎄... 내가 게이가 아니라서 그런가. 당황스럽긴 할 것 같다. 그래도, 나를 좋아해 준다는 그 마음은 너무 고마울 것 같아."

그 뒤로는 또 무슨 얘기를 했더라. ...사실, 다른 건 기억이 안 나. 그때 네가 언제 올까 기다리느라 문으로 온 신경이 쏠려있었거든.

[형, 죄송해요. 저 일이 생겨서.]

결국 너는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어. 앞으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까. 보면 되니까.

하지만 그 뒤로 너를 보는 게 힘들어졌어. 연락도 잘 안 되고, 학교에 가도

"아, 형 문대 보러 오셨을 텐데 문대가 없네. 어떡하죠."

볼 수 없었거든. 그때 멀리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날 보고 있던 빨간 머리도 봤던 것 같아. 문대가 기겁했겠다 싶어서 기억해. ...음, 누구라도 기억했으려나.

그날은 정말 아쉬웠어. 몇 번을 너를 못 보고 돌아가도 괜찮았는데, 그날이 네가 졸업하기 전에 볼 수 있는 정말 마지막 날이었거든.

군대에서도 연락 몇 번 했었는데.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나중엔 없는 번호라고 알려주더라. 정말 너와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힘들었던 것 같아.

복학했을 때 정말 기뻤다? 동방에 네가 있었으니까. 사실, 너도 이 학교에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계속했거든. 볼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정말 네가 내 눈앞에 있는데, 꿈인가 싶었어. 나를 보는 네 눈빛에 반가움이 없다는 것도 모르고, 마냥 기뻤어. 정말..

너와 전처럼은 아니었지만, 얘기도 나누고 좋았어. 너는 입시 때문에 나와의 연락도 끊었던 것이라 말하는데, 그건 핑계였던 게 아닐까 싶어져서 씁쓸했지만. 내가 너한테 뭔가 큰 실수를 했던 걸까. 하지만 애써 웃으며 생각했어.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다시 너에게 가까워지면 되는 거라고.

"사귈래요?"

그때 알았어. 어떤 노력을 해도 너와 다시 가까워질 수 없다는 걸. 너도 같이 너와 마주한 사람을 보며 웃는데 정말 심장이 훅 꺼지는 기분이었다? 뭐, 이제 와서 얘기해도 늦었지. 너는, ...모를 테고. 차라리 그 사람한테 고마웠어. 그 뒤로, 좀 더 나를 편하게 대하는 네가 느껴져서.

나는 닫게 만든 너를, 그 사람이 열어줬으니까.

옛이야기에서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태양이었다. 설령, 바람이 그의 옷을 벗겼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그네의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태양은, 나그네가 스스로 행동하게 했다. 나그네의 마음이, 그 옷을 벗고 싶게 만들었다.

가을의 서늘한 바람보단, 여름의 태양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탁월했다.

너에게, 그 사람이 옳았던 것처럼.

너는 모르는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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