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창작

1학년 - 입학, 그리고 출발

아리키 모나 x 카야마 이츠키 : 월목 / 해리포터 세계관 AU / 2023.08.05 업로드

아리키 가문은 가장 흔하다는 '혼혈' 집안으로, 직계 가족들은 물론이거니와 친척들마저 하나같이 마법사였다. 그럼에도 그는 당연히 자신이 '스큅'일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제는 기억조차 흐릿한 어린 시절부터 종종 그러한 예감에 사로잡히곤 하였으니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더랬다. 거기다 나이에 맞지 않을 정도로 똑똑하기까지 하니 친구들이 밖에서 흙이나 나뭇잎을 묻히며 뛰어놀 때에도 몇 년 후 자신이 진학할 머글 학교의 목록을 만들 정도였다나.

훗날, 호그와트 입학 허가서가 여지없이 이 집 우편함에 정갈하게 꽂혔을 때 ―아리키 모나의 생일은 호그와트의 새 학기가 시작하는 9월 1일보다 이틀 늦기에, 절차에 따라 허가서는 열두 살이 되는 해에 발송되었다― 아리키 모나는 물끄러미 그 봉투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열차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고, 붉은색이었다. 군데군데 녹이 슬기는 했지만 앞면에 달린 커다란 전조등만은 그 역할을 무사하게 수행하는 듯 보였고, 활짝 열린 입구는 승강장에 가득 찬 학생들을 빠짐없이 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리키 모나는 양 갈래로 곱게 땋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갈색의 가죽 캐리어를 제 쪽으로 바짝 당겼다. 배웅을 온 부모님은 재학생인 언니보다 신입생인 모나에게 신경을 쏟았기에, 그는 수없이 쏟아지는 '주의 사항'을 미처 다 듣지도 못한 채 묵묵히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 보였다. 머글 학교에 갈 줄 알았다면서 허가서가 날아왔을 때조차 놀라거나 실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리키 모나는 그런 부류의 어린아이였다.

고학년 학생들은 아직 색이 없는 교복을 입은 꼬마들을 보며 기숙사 맞히기 내기를 하고 있었고, 모나 역시 그 대상이 되었으므로 그는 어렵지 않게 '쟤는 머리가 녹색이니까 슬리데린', '의외로 후플푸프' 등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는 자신이 어떤 기숙사에 갈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디에 가고 싶다느니, 어느 기숙사는 어떻다느니 하는 정보를 주변에서 많이 듣기는 하였으나 어차피 겨우 네 개 있는 기숙사, 어딜 가든 학교생활에 큰 지장이 없으리라 여겼으므로. 과거 볼드모트가 죽은 직후에는 슬리데린이 멸시받기도 하였다지만 인제 와서는 상관없는 일이고, 만일 그 시대에 입학했더라도 딱히 그런 이유로 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나, 이제 열차에 타라. 언니와 같은 칸에 타면 좋겠지만 학년별로 앉아야 하니 그럴 수는 없겠구나. 대신 새로운 친구들과 미리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렴. 너는 분명 잘할 거란다."

그는 입학 당사자보다 설레 보이는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낡은 열차에 올라탔다. 기숙학교 특성상 크리스마스 휴가쯤이 되어야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모나가 그 점을 서운해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아리키 부부를 섭섭하게 하였는데, 딸 둘과 모두 몇 개월간 생이별하게 생겼으니 충분히 이해할 사항이었다.

아리키 모나는 일부러 빈칸으로 자리를 잡았다. 누군가 들어와도 상관은 없었지만 이대로 혼자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판단한 탓이다. 창밖으로 수많은 어른들이 마치 자신이 동심을 찾은 것처럼 웃고, 울고 있었다. 아리키 모나는 자신이 어른이 되어도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자리가 있나요?"

상념이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검은 머리에 유순한 인상, 그러나 타오르듯 붉은 눈을 가진 고운 남학생이 서 있었다. 아리키 모나는 자신과 완전히 보색 계열에 있는 그 눈동자를 몇 초간 바라보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다른 곳은 너무 시끄러워서. 어쩐지 당신과 함께 간다면 서로 기분 좋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열한 살 답지 않은 말투, 누가 봐도 귀한 집에서 교육받고 자란 태도와 구김 없이 단정한 옷차림. 아리키 모나는 제 앞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남자아이가 부잣집 도련님이라 확신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어라, 대답도 안 해 주나요?"

"⋯응."

"나는 카야마 이츠키라고 해요. 그쪽은?"

"⋯⋯."

아리키 모나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성만을 읊었다. 그걸 용케 알아듣고 '아리키 씨'라고 부르며 싱긋 웃는 카야마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다행이네요. 친구가 없었거든요. 아리키 씨랑은 잘 맞을 것 같아요."

"이해하지 못하겠어."

"푸핫. 당신은 신기한 말투를 쓰네요."

누가 누구더러. 그는 그리 생각하고는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언니와는 인사를 마친 듯 둘째 딸이 보이는 자리로 와서는 손을 흔드는 부모님이 눈에 들어왔다. 굳이 묻지 않아도 벌써 친구를 사귄 것에 기특해하는 모양새라 이 오해를 해명하기조차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런대로 손을 흔들고 있으니 앞자리에서 '부모님과 사이가 좋은가 봐요.' 등의 말이 들렸지만, 묻는 쪽도 듣는 쪽도 딱히 대꾸를 바라지는 않았다.


"아리키 씨, 일어나요."

눈을 뜨니 앞에는 아까의 그 남자애가, 유리창에 기댄 머리에는 처음 보는 쿠션이 받쳐져 있었다. 말수가 적을지언정 예의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쿠션을 내밀며 나직하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뭘요. 입학 첫날부터 병동에 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뿐이에요. 캐리어는 짐칸에 올려놓았어요. 내려 줄게요."

"⋯당신은 친절하네. 원래 그러해?"

"아리키 씨라서 그렇다고 말해 줄까요?"

"소원하지 않아."

"아쉽네요."

아리키 모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보면 마치 제법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된 것 같지 않은가. 열차가 출발한 뒤 바로 잠에 빠져든 모나 탓에 대화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는 혹시 자신이 잠든 새 카야마 이츠키라는 남자애가 그 모습을 관찰했을까 불쾌해졌다. 무방비한 모습을 초면의 사람에게 노출하다니,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감사 인사는 해야겠지. 당신의 근접한 미래에 행복이 존재하기를 염원할게."

"네에, 고마워요."

아리키 모나는 싱긋 웃는 얼굴을 더 보지 않고 열차 밖으로 발을 디뎠다. 여기서 한 자세로 오래 잔 탓에 다리가 저려 잠시 휘청이는 것을 그 이상한 남자애가 여유롭게 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명랑한 학교생활이 시작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어쩐지 새로 산 빳빳한 교복의 첫 단추를 잘못 꿰맨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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