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Colony

블루 콜로니. 1

ACT I

CN by BX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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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비컴휴먼 + 헤비레인> 배경

#1. 만남

마커스를 필두로 한 안드로이드 시위 이후, 근 1년이 흘렀다. 워렌 대통령은 안드로이드를 새로운 지적 생명체로 인정해 줄 것을 약속하며 상원에 이에 관한 검토를 요청했다.

그로부터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인간에겐 자신이 소유한 안드로이드를 해방할 의무를 줬으며 그들을 집 안에 두고 싶다면 정당한 값을 주고 고용해야 했다. 만일 안드로이드를 해방하지도, 이를 신고하지도 않는다면 벌금을 물고 형사 처벌을 받기도 했다. 안드로이드를 향한 이유없는 폭력 또한 강력히 금지되었으며 이들을 고의로 파손하거나 ‘살해’하면 그 정도에 따라 엄중한 처벌이 내려졌다.

그러나 한편, 시위 직전에 즉결 처분되고 해체당한 안드로이드가 무수히 많았음에도 군대서부터 정부의 수뇌부까지 모두가 그 학살 책임에서 벗어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첫 번째로 그들 전부 안드로이드에게도 인간과 같은 지적 수준이 있었음을 몰랐다고 주장했고, 두 번째론 가장 큰 책임이 있을 워렌 대통령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은 동포를 위해 목소리를 내줄 만한 안드로이드가 충분히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이에 관한 책임 여론은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사그라들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인권 단체가 기계의 권리를 대변했고 그들의 도움으로 안드로이드는 점차 사회에 자리를 잡아나갔다.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가정이 아닌 거리 밖으로 나돌아 다니게 되면서 관련된 사건과 범죄 역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에 관련한 법률이 체계화 되려면 몇 년이나 소요될지 아무도 몰랐기에, 정부는 이 골치 아픈 문제를 법무부에 넘겼고 법무부 장관은 이를 받아 산하 기관인 연방수사국에 넘겼다. 그리고 수사국 본부는 안드로이드 사건과 가장 연관성이 높은 디트로이트 지부에 모든 걸 일임했다. 이 모든 것이, 디트로이트에 FBI관할 안드로이드 범죄 수사팀이 처음 만들어진 계기였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디트로이트 시 라파예트 거리. FBI 건물과 3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그곳에서 한 하원의원의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민주당 소속으로 상대 후보와의 치열한 공방을 벌이며 재선이 유력했던 페이지 클라인은, 사이버라이프 수석연구원 출신으로서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위해 선두에 서 싸우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약에 취해 자신이 고용한 안드로이드를 무참히 폭행, 살해하고 본인은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언론이 삽시간에 떠들썩해졌다. 그를 지지하던 자들과 반대하던 자들의 논쟁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할 것 없이 격화되었고 일각에선 클라인 의원의 죽음이 전부 연방정부가 꾸민 일이라는 음모론까지 제기됐다.

완전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생전 클라인 의원은 안드로이드의 권익에 미온한 태도를 취하는 정부를 강력히 비판하며 시시콜콜 싸움을 걸었던 만큼 적도 아주 많았다. 평화 시위 이후 안드로이드에겐 상당한 권리가 주어졌지만, 여전히 여러 부분에서 그들은 인간들과 같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특히나 클라인이 주장하는 안드로이드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은, 많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여자를 공격할 빌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은 논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의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달라는 탄원과 함께 미국 정부를 향한 근거 없는 비난이 줄을 이었고, 결국 법무부 장관은 연방 수사국에 철저한 사건 조사를 명령했다.

이에 FBI 디트로이트 지부, 데이나 깁슨 지국장은 자신의 부하 중 가장 유능한 두 명의 요원을 불러냈다.


호출을 받은 리처드 퍼킨스와 그의 파트너, 노먼 제이든이 국장실로 들어왔다. 한참 동안 그들을 앉혀놓고 사건 브리핑을 마친 깁슨이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여론이 심상치 않아. FBI를 공격하던 자들에게 미끼를 던져주기 딱 좋은 사건이니, 빈틈없이 조사하고 뭐 한 건 찾을 때마다 즉각 보고해. 추가로 질문 있나?"

잠자코 듣던 퍼킨스가 물었다.

"레드아이스 중독으로 인한 사망이 가장 유력해 보이는데, 왜 마약 단속국으로 넘어가지 않고 우리 쪽으로 배정된 겁니까? 저희는 안드로이드 범죄 대응 전담팀인데요."

"본부에서 직접명령이 떨어졌어. 워싱턴 국장이 정확히 두 사람을 지목하더라고. 특히 노먼 제이든, 자네를. 혹시 그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야?"

단박에 이해했단 표정이 된 퍼킨스가 입꼬리를 올려 파트너를 바라봤고 노먼은 그저 머쓱하게 대답했다.

"그쪽에서 일할 때 잠깐 뵌 적이 있어요.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깁슨이 눈을 가늘게 뜨며 노먼을 바라봤다. "조사하는 건 좋지만, ARI는 적당히 사용해."

"네. 알겠습니다."

"또 말만 하지 말고."

노먼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좀 더 확실하게 대답했다. "네."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 그를 바라본 깁슨 국장은, 결국 둘을 내보냈다. 브리핑 자료들을 정리한 그는 홀로 남은 사무실 외벽 창가에 앉아 빛이 꺼지지 않는 밤의 도시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제리코의 평화시위 후, 안드로이드 학살 사건의 책임을 물어 FBI 디트로이트 지부의 폐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깁슨으로선 억울했다. 전임자가 벌이고 떠난 일이건만 모든 화살은 그 뒤를 이어 부임한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사건을 직접 지휘했던 퍼킨스도 여론의 엄청난 공격을 받았고, 몇 개월간의 정직 처분 뒤 돌아온 뒤 한 단계 낮은 직위로 강등되었다. 그는 그럭저럭 수긍하고 적응한 모양이지만 깁슨은 아직도 항의 전화와 소송으로 날마다 골머리를 썩였다. 게다가 좀 전에 워싱턴에서 온 통화 역시, 본부는 계속해서 디트로이트 지부를 주시하며 이제는 지국장인 자신의 권한마저 침범하려 하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창밖만 바라보던 깁슨은 주머니에서 울리는 벨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벌써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있었다. 지속해서 울리던 휴대전화를 피로한 눈으로 바라보던 깁슨은, 이내 가방을 챙겨 들고 남편에게서 온 전화를 받으며 국장실을 나갔다.


건물을 나온 두 사람은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독특하긴 해."

노먼의 중얼거림에 퍼킨스가 무심히 대꾸했다. "뭐가?"

"페이지 클라인. 중독으로 사망할 정도면 통상 그전까지 꾸준히 약을 해왔을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면 전조증상이 있었을 텐데, 최근 찍힌 선거유세 영상에선 레드아이스와 관련한 어떤 부작용도 보이지 않았어."

퍼킨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반론했다. "이번이 처음이었을 수도 있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몰라서 치사량까지 섭취하고 골로 가는 인간들 생각보다 많아."

"그렇지만 클라인은 사이버라이프 연구원이었어. 화공학 박사학위까지 갖고 있던 그자가, 레드아이스 성분에 대한 위험성을 몰랐을까?"

"약학 계열은 아니었잖아. 은퇴 직전까지 엔지니어링에 더 집중했고. 나도 내가 대학 때 뭘 배웠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그 여자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꿰고 있겠어?"

여전히 석연찮은 노먼의 표정을 본 퍼킨스가 이어 말했다. "사람은 생각보다 더 무모하고 멍청해. 평소 자신만만하게 여긴 분야일수록 한층 더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스스로 명줄을 단축하는 경우도 있고."

노먼은 피식 웃었다. "뭐, 그건 그렇지…. 알았어. 일단 감식 후 다시 얘기해보자.“ 그러곤 자신의 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퍼킨스는 멀어지는 노먼의 등 뒤로 외쳤다.

"라파예트 1544번가면 코앞이야. 그냥 같이 가지 그래? 조사 끝나면 데려다줄 테니.”

"됐어. 난 내 차가 편해." 뒤로 손만 휘적인 파트너가 기어코 본인 차에 탑승했다. 퍼킨스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먼을 바라봤다.

저 자식은 제 손이 가끔가다 떨리는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수동밖에 안 되는 자차 운전을 고집했다. 저러다가 언제 한 번 크게 사고가 날 것 같아 퍼킨스는 늘 조마조마했으나, 노먼은 아직까진 차에 작은 기스도 낸 적이 없는지라 조언만 할 뿐 강권하진 못했다.

퍼킨스는 목적지를 입력하고 편히 기대어 앉아 사건 파일을 들여다봤다. 10분도 안 되어 현장에 도착했고 근처에 주차한 노먼도 곧이어 차에서 내렸다. 저택 주위로 경찰 통제선이 쳐졌고 디트로이트 경찰차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주차되어 있었다. 퍼킨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FBI에 인계된 게 아니던가?"

파트너의 말에 노먼이 근처에 있던 한 경관에게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며 물었다.

"노먼 제이든, FBI입니다. 저희가 사건을 인수한 걸로 아는데 아직 서로 전달이 안 된 건가요?"

경관이 허리를 짚고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전달받았죠. 그런데 당신들이 오기 직전, 침입 사건이 발생한 바람에 우리 측에 지원요청을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침입이요?"

"철수 준비를 마치고 현장에 몇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미친놈이 2층 창문으로 넘어 들어왔어요. 목격자는 없었고 나중에야 주요 증거품 중 하나가 사라졌단 걸 알았습니다."

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동료 경찰이 작은 목소리로 속닥였다.

"릭. 증거품이 아니라 피해자라 해야지. 요즘 말 한번 잘못했다간 아주 여기저기서 공격당한다고."

눈알을 굴린 릭이 다시금 정정했다. "그래요, 그래. 피해자."

퍼킨스가 미간을 좁혔다.

"피해자가 사라졌다고요?"

"네. 의원에게 맞아 죽은 안드로이드 말입니다."

"안드로이드라면 완전히 망가져 가동 중지되었다고 들었는데. 메모리 조사가 가능한 상태였습니까?"

"저도 모릅니다. 대가리가 완전히 박살 나서 제대로 남아있는 메모리가 있을지도 의문이고, 애초에 메모리 조사도 제대로 된 승인 절차를 밟기 전엔 함부로 하지도 못해요. 안드로이드 권리 어쩌구 하면서.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원."

곰곰이 생각하던 노먼이 질문했다.

"혹시 집안에 감시 카메라가 있나요?"

"현관에 달린 것 외에는 없습니다. 침입자의 모습은 찍히지 않았고요."

노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한 번 둘러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경관이 자리를 비켜주고 퍼킨스와 노먼은 저택 내로 들어갔다. 환히 켜진 조명으로 내부는 밝았고, 침입자의 흔적을 조사하던 경찰 몇이 현장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노란 증거물 표식 옆에, 안드로이드의 살해 흉기로 추정되는 골프채가 놓여 있었다. 휘어지고 망가진 샤프트 끝에 달린 헤드엔, 증발하고 남은 짙푸른 혈액이 묻은 상태였다.

“안드로이드와 클라인이 죽은 장소는 2층이라지 않았어? 왜 여기에 둔기가 있는 거지?”

“모르지. 마약에 취해 여기저기 나돌아다니다 떨어뜨렸을 수도 있고. 일단 가보자.”

그들은 의원이 사망했다는 응접실로 올라갔다. 시신은 부검소로 옮겨졌지만, 사망자가 바닥 이곳저곳에 남긴 토사물은 레드아이스 특유의 향과 결합하여 여전히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복도의 문과 창문을 전부 열어 환기했음에도 시취와 닮은 그 지독한 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경관과는 달리, 사복 차림의 한 사람이 방 안에 들어온 불청객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들 뭡니까? 누가 들여보내 줬어요?"

이번에는 퍼킨스가 그의 목에 달린 명찰을 보여주었다.

"FBI입니다. 사건 인수하러 왔죠. 낯이 익은데, 혹시 DPD경관입니까?"

가늘게 뜬 눈으로 퍼킨스의 얼굴과 명찰을 번갈아 보던 남자가 한쪽 입술을 끌어 올렸다.

"아아. 그때 그 FBI 양반이구만."

남자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팍팍 내며 대답했다. "개빈 리드. 형사입니다. 여기는 크리스 밀러 경관."

옆에 선 다른 경찰관이 고개를 까닥였다.

노먼은 주위를 둘러봤다. 응접실 안에는 한 명이 더 있었다. 그들을 등진 채로 창가에 선 사람을 보며 노먼이 물었다.

"저분은?"

개빈이 고개를 돌려 노먼이 가리키는 곳을 보곤 코웃음을 쳤다. "저건 무시해도 됩니다."

그자는 방안에 누가 들어왔는지 신경도 안 쓰고 창가만 유심히 살피는 중이었다. 노먼이 목을 쭉 빼며 개빈의 어깨너머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여긴 FBI가 인계받아서요. 남은 조사는 저희가 이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노먼의 말에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몸을 돌렸다. 노먼은 그의 관자놀이에서 빛나는 푸른색의 빛 고리를 발견했다.

안드로이드의 밤색 눈동자가 이윽고 정면을 향했다.

그와 동시에 활짝 열린 창을 타고 넘어온 서늘한 밤공기가 응접실 안쪽으로 들이치며, 라파예트 공원에 만개한 금목서 향이 현장에 짙게 깔린 죽음의 기운을 흐트러뜨렸다.

안드로이드의 이마를 살짝 덮은 어두운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살랑이고 노먼의 옷자락이 뒤로 나부꼈다. 노먼은 앞에 선 자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주름 하나 없이 단정하게 차려입은 회색 유니폼, 정돈된 넥타이와 깔끔하게 넘긴 머리, 각진 선의 얼굴, 얇은 입술과 곧게 뻗은 눈썹. 그 아래 자리한 두 눈은 차갑도록 무표정했다.

미술관에 전시된 조각상처럼 반듯한 그의 얼굴이 맑은 우물처럼 투명하고도 깊은 은회색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했고, 안드로이드와 인간은 조용히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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