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은창, 운전면허 정도는 따 두는 게 좋아."
"왜, 차로 치어버리라고?"
"쯔, 그런 거 말고. 물론 이 일 하는데에도 운전면허가 필요하기도 하지만...만약에 네가 나중에 조직에서 나가더라도 운전이라도 할 수 있음 어디 가도 그렇게 꿀리지는 않을 거 아냐."
"......."
애초에 복수를 바라고 선진화파에 투신한 정은창이었다. 복수를 완료하기도 전에 선진화파를 나가는 일은 죽어도 없을 터였다. 만약에 복수를 성공적으로 맞이하는 날이 온대도 홀가분히 자기 몸을 빼내 떳떳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소완국이 충고랍시고 말해두는 것은 당장의 조언보다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형처럼 오토 모는 면허나 따라고?"
"어허, 너도 오토를 무시하는 파냐? 알아서 예쁘게 변속을 직접 해 준다는데 뭐하러 일일이 힘들게 바꾸고 있어. 기술이 있으면 써먹으면 되지. 은쫭이 넌 이 형의 명언을 깊이깊이 새겨두어라~"
"스틱 따면 오토는 따놓은 당상 아니겠어?"
"그럼 사람들이 다 스틱 따지 왜 오토를 따겠냐 엉?"
소완국은 얼씨구, 그럴 듯 하네 하는 표정이었지만 곧 표정을 바꾸었다.
'...내가 저런 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스틱을 따고 만다.'
그리고 정은창은 소완국의 조언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
"...창! 운전할 수 있냐고 물었잖아."
"어?"
"아이씨, 이 새끼, 너 내 말은 귓구멍으로도 안 쳐들었지?"
주정재가 씩씩거리며 정은창에게 쏘아붙였고, 본의 아니게 딴생각에 빠져있었던 정은창은 순순히 사과하며 뭣 때문에 그러냐고 되물었다.
"이 꼴통 놈들이 조직에서 대 주는 차로 이동하는 거 다 알면서 면허가 없다는 놈이 있대잖냐. 나참, 어이가 없어서. 둘 다 면허 없으면 자동차로 국 끓여먹겠다는 거야, 뭐야?"
"버스라도 타고 가려나 보지. 아, 난 운전할 줄 알아."
"다행이군. 물론 나도 할 줄 안다. 아, 그래서 넌 스틱이냐, 오토냐?"
"오토...아니, 스틱이야."
정은창은, 조직 내에서 그나마 안면 트고 정체가 서로 밝혀져 있는 주정재랑 투닥이고 있노라면 어떤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소완국 역시 경찰 정보원이었고, 정은창이 상경했을 때 그런 식으로 재회하지 않았더라면 껄끄러우면서도 미약하게나마 반가운, 그런 씁쓸한 재회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어쩌면, 주정재보다는 더 나은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제멋대로인 생각.
...목숨을 위협받고 있었다지만 주저없이 소완국의 얼굴을 한 이준영을 죽인 주제에.
"..내가 운전할게."
"그래, 갈 때 네가 운전하니까, 올 땐 내가 하는 걸로. 오케이?"
정은창은 고갯짓을 하고 운전석에 올랐다.
이준영을 죽이고, 황도진의 경호원을 죽였다. 손이 피투성이로 젖어있는 악몽 같은 건 꾸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일까. 죽기 전에 보았던 모습, 이준영의 모습으로 보았던 모습이 자꾸 어른거렸다. 그리 정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건만, 그게 또 아니었던 모양이다.
***
"정은창! 뭐해?"
호쾌한 소리와 함께 휴게실에 벌컥 들어온 최재석이 정은창을 발견하고는 한 걸음에 거리를 좁혀들며 물었다.
정은창은 볼펜을 손으로 빙빙 돌리다가 대답했다.
"면허 공부."
"으잉? 너 면허 있잖아. 왜, 저번에 나갔을 때 취소라도 됐냐?"
"..그건 아니고, 그냥, 일 없는 동안 소일거리로. 난 스틱이니까..오토 쪽으로 알아보고 있어."
"크, 꽤 건전하고 좋은 소일거리네. 한방에 통과하길 기도해 줄게."
"그래, 고맙다."
일이 없을 때 각자의 방이나 휴게실 등에서 노닥거리는 건 같았지만 몇몇 질 나쁜 조직원들은 갈취할 필요가 없음에도 금품을 갈취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유흥업소에 드나들곤 했다. 최재석은 그런 부류와는 공적인 것 외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 실태를 알기 싫어도 알게 된 터라, 정말로 '건전한' 소일거리를 하는 정은창의 모습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모르면 나한테 물어보고."
"뭐야, 너 오토 면허 있냐?"
"고럼! 난 편한 게 좋더라고. 스틱도 대충 몰 수는 있지만 난 알아서 해주는 거 좋더라고."
'뭐하러 일일이 힘들게 바꾸고 있어. 기술이 있으면 써먹으면 되지.'
"그래, 그렇다면야 나중에 모르는 거 있으면 좀 물어볼게."
"엉야!"
오토 면허를 따기 전에 죽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정은창은 곧 필기문제집을 내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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