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마사지

"크하, 추워 죽겠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둔 뒤 텔레비전 앞에 놓여있는 소파로 도도도 달려가 털썩 앉은 허건오는 손을 싹싹 비볐고, 김주황 역시 옷을 걸어둔 뒤 조용히 옆자리에 거리를 조금 두고 앉으면서도 허건오의 부산스러운 행동에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늙은이 같기는.."

"고릴라가 나보다 나이 더 많거든?"

"1살 차이는 나는 것도 아니거든,"

"내참 그렇다고 나이 먹은 거 어디 가냐? 엉?"

"날도 춥고 힘드니까 시비 걸지 마라..."

"흠..."

김주황이 소파에 기대 눈을 감고 있는데, 허건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단하게 움직이는 소리를 냈다. 달그락, 탁, 하고 무언가를 서랍같은 데서 꺼내는 소리가 나자 김주황은 '또 뭘 하려고.' 라고 생각하며 눈을 반짝 떴다.

"고릴라, 힘들다고 했지?"

"왜. 또 뭐."

"아이 씨, 사람이 좋게 물어보니까는. 여튼, 힘들잖아?"

"그래."

"내가 피로 시원~하게 풀리라고 우리 고릴라 마사지 해 줄게."

"....마사지?"

***

난방으로 뎁혀놓은 공기임에도 옷을 벗으니 한기가 내달렸다. 김주황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으나 허건오가 해 준다고 할 때 잠자코 벗어! 하면서 옷자락을 찢어져라 잡아당겨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속옷만 남기고 죄다 벗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디서 뭘 보고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김주황이 드러누워도 될만큼 타월을 넉넉하게 깔고 그 위로 누우라고 한 허건오는 아주 신나보였다.

"내가 처음에 잘 해줄 테니까 고릴라도 고대로 나한테 잘 해주면 된다고. 알간?"

"빨리 하기나 해. 감기 걸리겠다."

"쳇, 해준대도 지랄.."

외간 놈한테 -일단 그렇게 오래 된 사이는 아니었으니- 맨살, 그것도 등이며 허벅지 아래로 시원하게 보이는 건 어쩐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그야 공중 목욕탕 같이 가게 된지도 얼마 안 됐고. 오일의 뚜껑을 여는 소리와 쭈욱 하고 바람빠지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자 없는 솜털이 바싹 곤두설 것만 같았다. 시작은 어깨였다. 오일은 미적지근했고 그걸 손바닥에 골고루 문지른 허건오의 체온은 그럭저럭 따스해서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애초에 김주황은 목욕탕에서 세신은 부탁한 적 있어도 마사지 등을 한 적은 없어서 당연하게도 생경하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전재는 아니었다.

"...릴라."

"......"

"고릴라! 눈 뜨고 자?"

"아, 안 자."

"뭐야, 안마해준다는데 멍하게 지 혼자만 발그레해져 있고..."

김주황은 괜히 야한 잡지를 보다 들킨 것처럼 딴청을 피웠고, 허건오는 중얼거리다가 씩 웃어보였다.

"야한 생각 했구만?"

"시, 시끄러."

키득키득 거리던 허건오가 아, 고릴라 귀엽네. 하고 중얼거리고는 손을 뻗어 김주황의 얼굴에 갖다댔다. 김주황은 순간적으로 상상속에 오일 바른 손처럼 차가우면서도 미적지근해서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슬쩍 힘을 주어 돌린 고개를 바로 하고는 앉아있는 김주황의 허벅지 위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김주황의 얼굴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던 허건오는 키들거리는 입술로 도장을 찍듯 김주황의 입술을 덮었다. 서로 여자를 사귀는 데에는 여력이 없었을 텐데 허건오는 지독하리만치 입 쓰는 법에 능숙했다. 입술 자체로 진득하게 부빈다거나 혀 끝을 뾰족하게 세워 입술 라인을 끈적하게 훑는다거나, 입 안 깊숙한 곳까지 훑으면서 사람 기분을 흐뜨려놓고 열기로 들뜨게 하는 게 김주황보다는 훨씬 능숙했다. 쪽쪽거리는 소리, 츕하는 소리가 마지막으로 축축해져가는 입맞춤이 끝났다.

"벌개졌대요, 고릴라!"

"시끄러."

"기분 좋았어? 응?"

"젠장, 좋았다, 좋았어! 됐냐! 엉? 됐냐고!"

김주황이 없는 방석을 만들어내서 내던질 것 같아서 허건오는 놀리기를 그만두었다.

"어이구, 우리 고릴라 착하게 술술 잘도 불어. 자, 그럼 진짜 안마나 해 줘 볼까?"

허건오는 싱글벙글 웃으며 김주황의 어깨를 꼭꼭 주무르기 시작했다.

주무르기도 하고 힘이 좀 빠질 것 같으면 주먹 쥐어 투다다닥 두드리기도 했다.

부끄러움 반, 분노 반이었던 김주황도 어깨가 점점 시원해지는 것에 기분이 슬슬 풀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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