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이웃, 생각하는 건 딱 질색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늘어지는 템포로.
막상 이렇게 써야지! 한 건 아이들의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니까 그거도 들어주시면~
늘어봤자 130년이 최대이며 그마저도 특정 조건이 필요한 인간의 생이란, 인간 외의 생명체에겐 일주일 겨우 살다 가는 하루살이와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짧은 생애면서 갑자기 세차게 내려 흥미로 다가간 존재를 담뿍 적시고는 채 말리기도 전에 먼저 떠나는 소낙비였다. 젖은 흙냄새와 빗물에 늘어진 채 애매하게 말라 축축하고 불편하게 살갗을 누르는 옷깃, 털어내도 남아버린 물 자국. 먹구름이 지나고 나타난 해가 따갑고 적나라해서 온 세상이 얇은 그림자로 한 겹 덮여 시원했던 순간을 잊지 않겠다며, 잘라낸 한때를 여럿이 붙잡고 한참을 그리워하다 오랜 시간으로 겨우 이음매가 헐거워져 떨어진 감정을 첫 번째 선반에서 두 번째로 내리고자 결심한 어느 날. ‘세 번은 힘들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귀하게 닦고 비닐을 붙여도, 결국 하드 커버가 닳고 귀퉁이가 찢어지기까지 한 거대한 책을 품에 안은 채 굵다란 눈물을 뚝뚝 흘리던 꿈 토끼가 정원에서 안방까지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을 겨우 열고 한 말이 넓은 방 안에 애매하게 퍼진 다섯의 사이를 휘돌다 열어둔 창밖으로 나가버리고, 그러자 무언가 움트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릴 정도로 고요한 정적이 삶은 달걀의 희끄무레한 막 같은 착각만 남긴 채 사이사이에 들러붙었다.
이젠 괜찮은 줄 알았는데 다시 그 애의 흔적이 보여. 근데 그게 뭐였는지 구분하는 데 시간이 걸려. 이게 무슨 소린지 알겠어?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지만 대부분이 왈가왈부하는 자연의 공평은 많은 이가 전설에 빗대어 말하는 풍요로운 모체, 어머니 대지로서 그 위에 발돋움하고 사는 생명체를 위한 것이 아닌 존재하기에 태어난 규칙의 일종이라 기준이 절대적이어서, 다양한 생명체는 타고난 몇 가지 조건으로 상대적인 삶을 산다. 온통 진공 상태인 세상에서 가볍고 부드러운 새의 깃털과 묵직한 쇠공은 떨어진 순간부터 같은 속도로 동일하게 떨어지지만 모든 화학 물질이 뒤섞인 그네들의 삶 속에서는 무조건 쇠공이 빠르게 떨어지는 것처럼. 인간이 망각의 축복을 받았다는 건 그들에게 할당된 인생의 총량이 100년이기에 10년 단위로 묶으면 고작 열 번, 5년 단위로 묶으면 그래도 스무 번인 인간이 바뀌는 자연과 환경에 맞추어 삶을 갱신하려면 바로 당장의 밀리초까지 필요한 탓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주어진 시간 자체가 짧은 편인 인간은 오랜 시간 과거를 붙들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잊음이 빠른 거지 축복은 아닌 것처럼. 그들의 인생은 잉크 카트리지면서 오로지 인간만이 참전한 마라톤 경기다. 수상한 이웃은 글쎄, 인간이 달리는 동안 다각도로 존재하는 빛이나 아스팔트 바닥에 바짝 붙어 무수한 발소리 속으로 기어드는 그림자, 머리카락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이며 많은 이가 추상적으로 비유하는 운명에 가깝지 않을까. 추상적인 존재에게 생애란, 이미 죽어서 죽는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언데드나 사례가 있는 뱀파이어 외에는 이렇다 할 통계가 없어 애매한 것이라 동화 속 인어공주처럼 물거품이 되어 녹아내리지 않는 이상 자신이 선택한 세계의 미로에서 빠져나갈 생각 없이 헤매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우리 마지막엔 그 애가 잠뜰이지만 잠뜰이 아니라 ‘ ’라고 인정했잖아. 다 같이
변색 되고 갈라진 플라스틱 게임기가 이미 삭은 지 오래라 이제껏 움켜잡지 못했음을 깜빡한 공룡이 울컥 언성을 높이며 손아귀에 힘을 주자 검은 가루와 함께 희뿌옇게 먼지 낀 유리 화면이 무너지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낙하의 순간 얼핏 화면에 비춘 다섯 쌍의 다리에 금이 가고, 바로 어제 쓸고 닦은 바닥 위로 잔해가 와르르 쏟아지면서 해묵은 슬픔이 물 먹은 먼짓덩어리처럼 엉겼다. 어쩔 수 없이 치열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인간을 기준으로 보자면 한없이 여유로운 그들은 그만큼 더 긴 시간 동안 추모하고 과거에 남겨진 채 앞으로 달려가는 그들의 등을 본다. 세차게 퍼부은 주제에 햇볕 한 줄기에 금방 사라지는 소낙비 같은, 계속해서 우중충하게 낄 줄 알아 편안함을 느낄 정도로 익숙해졌더니 문득 정신 차린 순간 가시고 사라진 먹구름 같은 인간을 앞지를 수 없기에, 그들의 망각은 얼마 안 가 죽을 자신이 먼저 떠난 이에게 내거는 재회의 약속이 아니라 영영 자신의 세상에서 그를 지우는 일이라 쉽게 잊지도 못하더라.
“그게 문제인 거야. 공룡아”
겨우 하나의 추모를 맺었는데, 이제 난 둘을 잊을까 무서워. 불규칙한 숨을 내쉬느라 거대한 구슬을 입에 문 것처럼 쉬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꿈 토끼가 오열을 바닥으로 하나둘 떨구자 눈물을 표면에 단 채 번들거리던 푸르죽죽한 구슬 여러 개가 도르륵 방바닥에서 복도를 향해 굴러갔다.
첫 번째 상실 때 허수아비는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말했으나, 사실 시간은 어느 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지났으니 필연적으로 과거보다 더 성숙해진 미래의 그들이 그때 상황을 탐색하면서 감정을 배제하고 지난날 자신이 풀지 못한 문제를 대신 해결해줄 뿐. 우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거야. 잊는 행위 자체가 두렵다면서 그 순간을 도려내어 품는 게 아니라 흐르는 수면 위 지푸라기처럼 지나가게 두어야만 했다고, 숙연하게 선 지옥 열차 기관사의 위로를 받으면서 어깨를 늘어뜨린 그는 광하시로 와서 만든 순간부터 귀하게 아끼던 책을 가만히 바라보다 점차 떨기 시작하는 손가락을 하나둘 떼어내더니 종국에는 바닥에 풀썩 떨어뜨린다. 최종장까지 개정을 거듭하다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크기가 된 동화책은 미적지근하고 달콤한 슬픔 이후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어떠한 상징이 되었기에 누군가는 차마 보지 못하겠다며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 돌리고, 누군가는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자기 신을 찾고, 다른 이는 잽싸게 떨어진 책을 도로 주워 얼룩지고 깨진 눈동자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화를 낸다. 여섯 명 중 유일한 인간인 잠뜰을 마지막까지 배웅한 불멸자만이 중재하거나 달래줌 없이 모든 모습을 제 눈으로 기록하더라. 그렇대서 그가 유독 매정한 건 아니었다. 점점 떨림이 커지며 책에서 점차 떨어지는 손가락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주먹을 쥐락펴락 금방이라도 뻗을 것처럼 어깨만 달싹이던 존재가 그였으니
“그럼 정말 잊기라도 하자고. 어떻게 다시 찾아온 애를, 잊는다고 할 수 있어?”
분함이 진득한 진흙처럼 묻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횡설수설하던 공룡은 문득 시선 아래로 색이 바래 거의 하얗기까지 한 표지가 혹여 깨지지 않았는지, 내지가 상하진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확인하더니 그대로 품에 안고서 웅크렸다. 그 애가 남겨준 가게도 이젠 사라지고, 인화한 사진도 대부분 분해돼서 남은 거라곤 몇 장 없는데. 누구도 어린애 같은 투정에 말을 얹지 않았다. 몰랐다면 하고픈 말이 많으나 그러기엔 서로가 서로를 너무도 깊이 이해하고 있으니, 대신에 가장 어른스럽고 말 고를 줄 아는 허수아비가 조심스레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리는 게 전부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맞장구 외에 말이 없던 뱀파이어는 그림자처럼 평온한 듯 고뇌하다 언데드와 눈을 맞추고, 음성은 없으나 몇 번 깜빡임으로 소통한 둘은 어느덧 열린 창문을 타고 슬금슬금 들어온 땅거미를 가리키며 이만 돌아가자고 등을 떠밀더라. 우리 오늘 너무 많이 생각했어. 그런 첫 말만 꺼낸 채
공룡에게 잠뜰은 인생 첫 친구이자 아무리 이해관계가 얽혔대도 인간의 몸으로 저의 세상까지 찾아와 자신을 찾은 끈질기긴 자였다. 부모와 동족 외 가까이 둔 생명체가 없던 미숙한 자에게 불현듯 들이닥친 절벽 아래 파도 같은 강렬한 처음의 충격. 이젠 꽃을 먹어 인간이 되지 않아도 놀라지 않는 동네 주민 사이에서, 이종족이어도 제한 없이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에서 굳이 게임기를 인간 친구의 집에 설치하고 뻔질나게 찾아간 건 제 울타리 안에 들인 것과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픈 아이 같은 의미도 있으나, 이미 한 번 먼저 떠나가는 짧은 생의 등을 물끄러미 볼 수밖에 없던 자가 절로 행한 본능이자 시도기도 했다. 멀어질 시도 한 번 해보기도 전에 제 삶에 박혀선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모습으로 스스로 모서리를 문질러 지우고 붙었다면, 다시금 등을 보면서 기어코 이별을 맞은 순간 영원한 상실이 제 옆에 남은 빈자리를 채워도 마음만은 충만하도록. 아빠는 엄마가 그리울 때 뭘 해? 어린 날 했던 질문은 함께한 시간만큼 묵직하게 꺼낸 이를 짓누르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 이미 거대한 공동처럼 파인 그리움을 가슴에 품은 채 살던 오랜 드래곤은 제 자식 가슴에 한 움큼 파인 구멍을 침잠한 눈으로 바라보다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인간은 하늘의 별이 됐으니 하늘을 보면 된다고 했지만.
근원지에서 산을 타고 내려오는 도중에 갈라진 물은 결국 바닥으로 가면 바다로 모여 한참을 넘실거리다 증발하여 다시금 근원지로 돌아간다. 우정, 애욕, 가족애 외에도 조그마한 내처럼 다양한 방향으로 갈라진 그 모든 감정이 기어코 사랑이라는 근원으로 돌아옴으로, 아비는 상대를 찌르던 제 모서리까지 직접 갈아가며 사랑했던 먼 과거의 자신처럼 타인의 흔적이 짙게 남을 정도로, 시작은 완전히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사랑을 인간의 속도에 맞추느라 잠긴 그리움에 벗어날 힘도 없어 얼굴만 겨우 내밀고 떠오른 제 아들을 안았다. 잔물결에 여즉 가라앉지 않고 부표처럼 둥둥
“생각날 때마다 꽃을 바치는 수밖에 없단다. 꽃잎이 속을 채우고 기어코 범람할 때까지.”
헛숨 들이키듯 벌어진 입술이 천천히 닫혔다. 같은 상처를 지녀도 이해의 순간은 다를지니, 기나긴 밤이 지나 해가 뜰 때까지 꽃다발 하나와 너른 들판에 누워 느리게 움직이다 사라지는 별을 구경하던 아버지의 심정을 그제야 깨달은 자식은 말 대신 북받치느라 더운 숨을 가늘게 뽑으며 이마를 기댄다. 오랜 시간 뭉쳐 다닌 이웃에게 한 것처럼, 그리고 평소처럼 투덜거리며 제 섦만 줄줄이 읊기에는 오랜 시간 부는 바람에 풍화되어 이미 삶의 일부가 된 그리움을 품고 사는 이의 달관 따위가 느껴져 속이 진정한 덕이다. 대신 어디서 왔는지 모를 슬픔이 뱃속부터 홧홧하게 올라오더니 목구멍을 타고 역류해, 한계까지 바람이 들어와 얇아지다 못해 터져버린 풍선처럼 모으고 모은 감정이 울컥 터져 한참을 울었더란다. 흘리다 못해 눈물과 동시에 질질 흐른 콧물 때문에 비강이 부어 숨이 꽉 막힐 정도로. 역시 시간이 해결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한 번 탈피한 미래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을 돌볼 뿐. 3200년 하고도 약 이백여년을 더 살고서야 밟은 성숙의 계기는 적어도 시간보다 공평하게 찾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와 소리 없이 꼬인 속을 풀어내던 공룡이 며칠을 앓는 새 나머지 이웃도 각자 구석에 박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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