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cht
레오루카 NCP
손목을 매만지는 손길이 익숙한 듯 낯설었다. 루카스는 제 앞의 레오나르드를 본다. 그는 드물게도 저를 응시하지 않은 채였으나 모순되게도 저를 보고 있었다. 면장갑의 감촉이 손목 안쪽을 쓸어내는 느낌이 든다. 뭘 확인하려고 이러나. 루카스는 지진부진하게 늘어지는 행동을 가만히 내버려 둔 채 생각했다. 그는 종종 제가 짐작하지 못할 부분에 꽂혀 상황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짓을 자행하곤 했으니 오늘도 아마 그러한 행동의 일종이리라. 아마 제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아닐 테지만
“레오.”
개뿔이, 신경 쓰이는 걸 어쩌란 건지. 그가 가볍게 이름을 호명했다. 이름이 불린 당사자의 손이 멈췄다가 이번엔 아예 가볍게 감싸 잡는다. 장갑의 면 너머로 온기가 느껴진다. 이어 투명한 눈이 올라와 시선이 마주하면 짧은 간극 새로 소리 없는 대화가 이루어진다. ‘뭐 하냐?’ 그런 의미를 담아 쳐다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그가 먼저 시선을 피하는 일 또한 없었다. 어쭈? 움켜잡힌 손목은 여전했고 손에 주인 또한 뻔뻔하게도 모르는 척 제 손목을 매만졌다. 아프게 잡은 것은 아니었으니 특별히 저지할 이유는 찾지 못했지만. 어쩌면 맥을 찾듯 가볍게 잡은 모양새다. 이상한 것이라도 있나? 손목으로 시선을 두자 레오나르드 또한 자연스럽게 시선을 내렸다. 여전히 말은 없었다.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는 제 손아귀 안에 가만히 머물러있는 것을 본다. 쳐내질 않네. 훈련이 부족했나. 최근엔 확실히 할 시간도 그럴 몸상태도 아니었지. 결론적으로 그럴지도 모르지만 지금 튀어나올 감상은 아니었다. 한 손에 가까스로 다 잡히는 팔목을 바라본다. 제 손이 크다는 자각은 있었다. 애초에 루카스의 손목 또한 뼈대부터 얇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 감상을 뒤로하고서 조심스럽게 매만지면 제 친구가 어떤 표정일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런 그가 저를 가만히 두는 이유는 제가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라는 인간이라서일 테니, 그 발치 아래에 당연하다는 양 깔려있는 신뢰가 기꺼웠다. 레오나르드는 제 손가락 아래에서 멀쩡히 뛰고 있는, 인간의 말단부위에서 전해지는 심박을 느끼다 천천히 손에 힘을 풀었다.
“신경 쓰이는 점이라도 있었어?”
“아니.”
그럼 왜. 그리 묻듯 루카스가 본인의 손목을 잡아 두어 번 쓸고는 눈썹을 올렸다. 그에게 의문을 쥐어준 것 같아 미안하게도 레오나르드가 방금 한 행위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적어도 루카스가 느끼기엔 시답잖은 이유일 것이라 자신했다. 그는 그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무엇을? 그리 물어본다면 다시 할 말이 없다. 특별히 숨기진 않을 테지만 물어보기 전까지 입 밖에 낼 이유도 없었다. 그의 앞에만 서면 퍽 답지 않은 짓을 하게 되는 것이 이제는 그의 일상이었으므로. 그 감각이 싫은 것은 아니었기에 레오나르드는 그의 귓가에 시선을 한 번 주었다가 다시금 눈을 굴려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쳤다. 어찌 되었든 오늘의 일은 끝이었다. 서류 작업이야 남았더라도 적어도 에른스트 경으로써, 왕세자로서의 일은 끝났다.
“신력이나 거둬. 피곤하잖아.”
“별…”
픽, 제 쪽에서 웃음이 샜다.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말투다. 사돈 남 말하네. 가볍게 타박하듯 말을 이으면 저쪽에서도 바람 빠진 소리가 들려온다. 레오나르드는 제 외투를 간결히 접어 소파 등받이에 얹는다. 루카스는 어이없다는 양 가만히 저를 바라보다가 신력으로 가려둔 가면을 없애고 손으로 가볍게 머리를 털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색채들이 돌아온다. 검고, 붉은… 어째 최근에는 이 붉은빛을 보기가 생각보다 어려워서. 고작 색채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쩌면 그가 가장 그 다운 순간에 제가 있다는 것은 퍽 기꺼운 일이었다. 레오나르드는 그 빛을 잠시동안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보다 간편해진 복장으로 침대와 의자에 걸터앉는다. 내일 처리할 일들에 대한 간단한 계획을 세우고 적당히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 4시간 정도는 잘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하나…
“루카스.”
“왜?”
“요새 몇 시간 정도 자?”
“… 갑자기?”
“곤란한 질문은 아니잖아?”
레오나르드는 의견이 마무리될 때쯤 이 주제를 꺼냈다. 생각하듯 미간을 찌푸리는 루카스를 고요하게 바라본다. 딱히 좋은 주제 선정은 아니었다. 어쩌면 퍽 유치한 대화가 오갈지도 모르지. 하나 그는 그것마저도 나름 괜찮을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곤란한 질문은 아니지. 제게 일을 주는 주체가 묻기엔 뭐냐? 싶은 질문이긴 해도. 루카스는 제게 날아온 레오나르드의 질문에 다시금 눈썹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한 편으로는 가슴 한편을 바늘로 쿡쿡 찔린 것 같기도 했다. 특별히 죄를 지은 것은 아니고. 그냥, 요새 몇 시간 정도 자냐는 물음에 걸릴만한 짓거리가 몇 있는지라 그는 무어라 대답해주어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어차피 거짓말은 의미가 없으니 순순히 대답할 참이지만 미리 어느 정도 변명하자면 일이 바빠 자는 시간이 조금 아깝다 생각한 적은 있어도 아예 잠을 거른 적은 없었다. 나는 며칠간의 제 수면시간을 계산한 뒤 입을 열었다.
“6시간.”
“하루에?”
“….”
“루카스.”
어쩌라고. 뻔뻔해지기로 했다. 일이 바빠서도 있었지만 그냥 잠이 안 온 것도 있었다. 그리 생각하더라도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수면을 취했다. 물론 평균에서 한참 떨어진 수면시간일 수는 있었으나 그건 제 앞에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이제 와서 제 수면시간을 관리하려 드는 것이라면 헛웃음이 나올만한 주제선정이다. 이 익숙한 불신을 보라. 아니 역으로 신뢰라 말해야 마땅한가?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지.”
“그래서 며칠?”
“나흘. 됐냐?”
"오늘은 아직 안 잤으니까… 그래, 루카스. 하루에 두 시간씩은 자 주었다는 말이구나. “
이 자식을 봐라, 건조하게 비꼬는 실력이 아주 일품이다. 네가 지금 말 같잖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네 스스로도 알 텐데 뭐 이렇게 뻔뻔히 나오냐는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평균 권장 수면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으니 이 주제는 그다지 서로에게 좋지 못했다. 아무도 득을 보지 못할 주제를 굳이 입 밖으로 내어 꺼내왔다는 건 그가 피곤하거나 내가 피곤해서 잘못 들은 거거나 둘 다이거나. 아니면 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일 테다. 안 그래도 집무실까지 합쳐놓은 주제에 이젠 내가 잠을 자는지 안 자는지까지 알아야겠다 이건가?
“그러는 너는.”
“적어도 하루에 4시간은 잤어.”
도긴개긴이다. 사정이 좀 나을 수는 있겠으나 울리케가 듣는다면 비명이라도 지를 수면시간을 가진 인간들이 둘이 되었을 뿐이라고 나름의 객관적인 판단을 내렸다. 들키면 당장 이불로 둘둘 말려서 둘 다 침대행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약점 하나를 쥔 셈이었다. 정말 시답잖고 누구한테 말할 리도 없는 약점을 말이다. 애초에 둘 다 잠도 없는 타입이 아니던가.
“이렇게 유치하게 나와야겠어?”
그러게, 레오나르드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말을 받아쳤다. 너나 나나 거기서 거기인 말들이 이어지고 큰 의미 없이 허공을 진동시킨다. 레오나르드의 방이자 에른스트의 집무실은 혼자일 때엔 그다지 인식하지 못했으나 겨우 사람이 둘 존재하기엔 지나치게 넓은 감이 있었다. 말소리는 아무리 작게 한다 해도 어느 정도 울리기 마련이었고 이는 상식으로 알고 있었으나 혼자가 아닌 둘일 때 와닿는 것은 경험해본 자와 경험해보지 못한 자의 차이만큼이나 컸다.
물론 그는 이미 이 일에 익숙해졌다. 이젠 일상이라 말할만큼. 마지막 말이 흩어지고 뻔뻔하기 그지없는 인간 둘이 서로를 마주 본다. 침대에 앉아있는 루카스를 가만히 바라보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다가 포기인지 체념인지 피곤인지 모를 표정으로 이내 척추에 힘을 풀고 침대에 몸을 뉘였다. 매트리스가 들썩이는 소리는 이불이 잡아먹었다. 레오나르드는 그에 잠깐 스친 웃음을 집어넣고 팔걸이에 올려두었던 팔을 세워 턱을 괸다.
“내일은 에른스트가 나설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일찍도 말한다. 알아.”
그렇겠지. 방금 전에 나눈 대화로 전부 알 수 있는 사안들이었으니. 루카스는 이 어두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켜져 있는 마력 등의 빛을 손등으로 가렸다. 안타깝게도 이 마력등은 예부터 사용해 온 것이라 빛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쪽은 아니었으니 레오나르드는 책상 위에 놓인 마력등을 끄고 몸을 일으켜 침대 옆에 놓인 조금 더 은은한 쪽의 불빛을 켰다. 이어 루카스가 눈을 가린 채 입을 열었다.
“나가라.”
“내 방인데.”
“니 침대로 가라고.”
“내 침대야 루카스.”
“아.”
그래 철회한다. 사람은 잠을 자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왕세자 저하 침대에 드러누워서 니 침대로 가라고 했단 말이지. 헛웃음을 흘리니 가까운 거리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웃기냐? … 그래 웃어라. 루카스가 체념한 듯 허탈한 웃음을 같이 흘렸다. 어두워서 뵈는 게 없으니 그 침대가 그 침대다. 아니, 애초에 제가 쓰던 침대도 원래 그가 쓰던 침대였을 테니 사실상 구분에 의미는 없을 터였다. 그걸 이놈도 알 거고. 굳이 태클걸지 않고 다른 침대로 갈 수도 있었을텐데. 매트리스가 다시 한번 소음을 잡아먹는다. 충격까진 잡아먹지 못했으므로 이미 누워있던 몸이 한 번 출렁였다. 손등에 가려진 감은 눈 아래에서 시선을 굴렸다. 손을 떼면 레오나르드가 보일 것이다. 틈새에서 그림자가 진 것이 느껴졌다. 잠깐의 고요를 깨뜨리고 소리가 울린다.
“루카스.”
“안 자.”
“그래? 아쉽네.”
자길 바랐나? 뭐 그렇겠지. 안 자면 곧 손수 재워줄 기세군.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쓸데없이 태클을 걸고 싶어 진다. … 진짜 그럴 리 없나? 루카스는 잠깐 제 안의 아직 다 부서지지 않은 ‘레오나르드‘에 대한 해석을 되돌아본다. 이미 제가 아는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에서 변화한 지 오래였으므로. 이러한 가정들은 사실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희망사항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물리적으로 재우려 들 순 있을 것 같다. 몸과 정신이 편하니 나오는 헛된 상념들을 깨듯 귓가에서 그가 장갑을 벗는 소리가 들렸다. 살에 면이 스치는 것부터 탁자 위에 얹어지는 소리까지 들리면 루카스는 손등 아래 남은 틈 새로 어느새부턴가 뜨고 있던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나른하다.
레오나르드는 그 나름의 시간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제 시야 안에서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은 채 제 사람을 눈앞에 두고 휴식이라 말할 수 있을 법한 시간을. 아직 둘 다 신체 중 반쯤은 침대 밖에 자리했으나 곧 누구 하나가 일어서든 이대로 다리를 올리든 기묘한 간극은 언제든 막을 내릴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지금 이 나른함을 즐기기로 했다. 제 친구 또한 별다른 반응 없이 눈을 깜박이고 있는 걸 보면서 레오나르드는 부러 살짝 몸을 기울였다. 그에게 쏟아지는 빛이 가려진다.
“손 좀 줄래?”
“손?”
의아해하면서도 툭, 내주는 것은 얼굴을 가리지 않은 반대쪽 손이었다. 가끔씩 이유를 되묻는 것 없이 내어주는 이런 것들이 레오나르드 안의 기묘한 만족감을 채워줬다. 이게, 제가 평소에 쌓아 올려온 것들이다. 알고 있었다. 그 신뢰라 표현할 수 있는 파편들이 하나 둘 쌓여 너와 저를 잇는 다리가 되었다는 것도. 네가 날 선택해 주었다는 것도. 이런 사소한 점에서부터 시작해 연결되고 이어지며 결국엔 다시금 너로 돌아오는 것들을 되새길 때마다 그가 주는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았다. 아까는 느끼지 못했던 감촉이 손안에 선명히 자리한다. 마사지하듯 부드럽게 굴리며 물었다.
“졸려?”
“나른하네.”
힐금, 제가 하는 짓을 보다가 다시금 눈을 감는 그가 조금 잠긴 목으로 대답했다. 아파? 아니. 레오나르드는 그 행동에 자연스럽게 눈을 내리 깐 채로 손아귀의 힘이 너무 강하지 않게 조절했다. 조곤조곤 이어지는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끊겼다가 다시금 이어진다. 구태여 빠르게 회전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그는 평범한 속도로 대답을 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틈이 생기기도 하고 생각하듯 끊어졌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막힘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어떠한 주제를 내놓던, 루카스 아스카니엔은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의 질답에 응할 것이고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는 저와의 대화를 피하지 않을 것이다.
“루이제가…”
“응.”
“바다에 가고 싶다고 했어.”
“미메시스로는 부족했던 모양이지?”
“그럴지도. 뭐, 진짜와 마법으로 만든 건 다르니까.”
바다라. 갈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없다면 만들면 되겠지. 레오나르드는 짧은 생각이 흘러가는 것을 잡아채지 않은 채 루카스의 손목쪽 셔츠 단추를 풀고 엄지손가락에 꾹, 힘을 주어 누른 채 밀어 올리자 그가 반응하듯 손등을 얼굴에서 떼어냈다. 간지럽기라도 한 건가. 자연스럽게 허공에서 마주한 시선이 엇갈리지 않고 유지된다. 그렇게 잠깐 의미 없는 눈 맞춤이 이어지고 서로가 두 어번 더 눈을 깜박일 때쯤 레오나르드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 왜?”
“그냥?”
“… 그래?”
“어, 그냥.”
온전히 납득하진 못했으나 레오나르드는 눈을 데구르르 굴리다 돌아왔다. 그냥, 이라면 그냥인 거지. 왜 의문문처럼 말을 하는 건지. 루카스라 해서 언제나 온종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 또한 대답에 의문을 제기할 생각은 없었으나 대부분의 상황에서 루카스의 행동은 어느 정도 의미를 내포했으므로 레오나르드가 그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보다 시선을 두는 것은 이제와 당연한 일이었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자 비식, 웃음을 흘리는 제 친구가 퍽 얄미웠다. 대답을 촉구하듯 눈썹을 올리니 그가 입을 연다.
“그냥, 이렇게 여유로웠던 게 오랜만인 것 같아서.”
새벽 2시를 넘어가는 시간에, 레오나르드는 가만히 그의 말을 되새겼다. 아마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생각하는 그러한 류의 것들이 아니었으므로. 바다, 바다라…. 레오나르드는 생각하듯 눈을 깜박이며 그의 답변에 구태여 덧붙이지 않았다. 손목을 가볍게 그러쥔다. 엄지로 지그시 누르면 손가락 밑에서 맥동하는 것을 느끼며 부드럽게 쓸다가 미약한 아쉬움을 거두고 내려놓았다. 그에게 진정한 여유를 줄 때가 되었다.
그리고 조만간 정말 쉴 수 있도록 일정을 비워야겠다. 왕세자로서도, 에른스트로써도, 에스체트로써도. 쉴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달리기에도 모자란 나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휴식 또한 중요했다. 정확히는 주저앉더라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도. 간간히 되찾는 일상들을, 숨을 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느꼈다. 네가 지금을 여유라고 느껴주는 것은 기뻤지만 제가 주고 싶은 여유는 이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너와의 시간이 소중했다. 너 또한 그리 느낄 것을 알았다. 지금 이 시간을 고작이라고 칭할 생각은 없다. 오늘의 기억이 내일을, 언젠가를 이어가게 할 초석이 될 것이다. 지나치는 일상은 내일을 만든다. 레오나르드는 그를 잘 알았다.
“일어나기 귀찮은 거면 오늘은 네가 여기서 자.”
“그래도 되면.”
“안 될 건 없지.”
그래, 그럼. 그리 덧붙이곤 루카스가 일어나 앉았다. 자세를 바로 할 것이라 생각했던 레오나르드가 일어서자 그의 시선이 제게로 올라온다. 의아함을 담아 바라보자 그가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웃음이 나는 것을 참으며 물었다.
“이건?”
“한쪽만 하려고?”
“….”
“2시간은 잘 수 있겠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이 샜다. 가볍게 울린 것들이 점차 잦아든다. 줄어든 숫자들에 불만을 가질 순 없었다. 그 시간만큼 우리가 함께였으므로. 너는 내 이유 모를 불안을 아는 것처럼 굴었다. 레오나르드는 다시금 제 손아귀 안에 스스로 들어온 것을 매만지며 지금을 만끽했다. 그가 제게 주고 싶어 하는 것들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루카스, 그리 부르면 당연하다는 양 대답이 돌아왔다. 그 당연함이 좋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네가 나에게 답해주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의 내가 원하던 것이었으므로. 네가 이리 맥동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하나의 대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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