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nature take its course

天衣無縫 천의무봉 (3)

HitMan by Jack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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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man 연구원 실험체 au
*본 내용은 허구이며, 사실 고증에 있어서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자살, 살인, 가스라이팅, 고문, 폭행, 잔인한 묘사, 유혈 등 트리거 요소가 있으니 감상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베드로전서 5장 中-


3. Jay Shepard

젠장, 젠장! 제이가 한쪽 눈을 홉뜨고 뜨거운 눈물을 질질 흘렸다. 오른 눈은 여전히 똑바로 뜰 수조차 없었다. 연구원 놈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날 실명시킬 작정이 아니었다면 누가 이딴 짓을 해? 본래 두 개였던 시야가 하나로 줄어들자 발 한 걸음 떼는 것도 불안정했다. 휘청휘청거리다 끝내 벽을 짚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게 슬슬 피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지혁이 아직 좀 더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실험실에 있기를 권유했지만 이미 제이가 복도로 뛰쳐나온 뒤였다. 그곳에 조금도 머무르기 싫었다.

매번 연구원들을 따라 다녔던 길이었지만 저 혼자 나와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안대를 쓰고 이동했었기에 길을 모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상태가 좋지 않아서 방향감각까지 엉망이었다. 문이 열려있는 곳이 보이면 그리로 들어가자. 고통이 좀 사그라들 때까지만 거기에 있자. 이를 악물고 다리를 움직이는 것에만 집중했다. 휴게실, 여기도 닫혀있고. IV? 이건 또 뭐 하는 곳이야. 여기도 잠겼네. 망할,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슬슬 땀이 났다. 아까는 고통에 젖은 식은땀이었다면 지금은 순전히 몸을 움직여서 나는 땀이었다. 코너 하나만 더 돌아보고 그래도 열린 곳이 없으면 제자리에 주저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히 엉덩이 시릴 일은 없었다. S.H라고 쓰인 방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연구원 중에 저런 이니셜을 가진 사람은 없었지, 아마도. 외자인 사람도 없었던 것 같고. 머릿속에서 출석부를 펼쳐보던 제이는 이러나저러나 제게 선택지가 없음을 받아들였다.

"…그러엄, 실례할게여."

작게 중얼거린 그는 몸을 안으로 던져 넣다시피 했다. 그러나 완전히 드러눕지는 않았다. 정신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미리 들킬 것을 대비해 두는 게 좋았다. 언제 닫힐지 몰라 불안한 자동문 사이에 생수병 하나를 세워두었다. 이곳의 문은 밖에서 열 때는 물론이고 안에서 열 때에도 키카드를 필요로 하여 되려 방에 갇힐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 밖을 살폈다. 침대와 바닥을 번갈아 보더니 제멋대로 남의 잠자리에 누웠다. 나 환자고, 소중한 실험체고.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눈은 아까만큼 아프진 않았다. 다만 기분 나쁘게 계속 욱신거릴 뿐이었다. 거울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으나 이미 힘을 빼고 누워버려 더 몸을 움직일 기운 따위는 없었다.

'잠깐만 눈을 감고 있어야지.'

통증이 잦아들 그때까지만. 분명 그랬을 터인데 지금 이 상황은 뭘까. 제이는 제 다리를 지그시 눌러오는 작은 머리통을 내려다봤다. 저도 모르는 새에 잠이 들었는지 시간은 벌써 3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실험실에서 마지막으로 시계를 봤을 때 12시 반이 조금 넘었었는데 그럼 이 여자는 얼마나 오래 여기에 있었던 걸까. 슬쩍 손을 뻗어 이불 위에 흩어진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그 작은 손길을 느꼈는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올라갔다. 초록색 눈동자 속의 하트 모양 동공과 시선이 닿았다.

"굿모닝이에여."

"제, 제이 군 일어났어? 피곤해 보, 보여서 안 깨웠는데 미, 미리 깨울 걸 그랬, 그랬나…?"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잠겨있는 스지의 목소리가 퍽 듣기에 괜찮았다.

"여기 그쪽 방이에여?"

"아, 으응. 무, 문이 고장 났는지 요 며칠 자, 잘 안 닫히던데 또 열려있었던 모, 모양이지?"

"네에, 덕분에- 잠시만, 근데 왜 저 여기 있다고 안 일렀어여?"

식탁 의자를 끌고 와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스지가 그것을 낑낑대며 제자리에 돌려놓고 있었다. 제, 제이 군 그거 싫어서 여기로 도, 도망친 거 아니었어…? 제이는 말없이 상체를 일으켜 침대 등받이에 기댔다. 절룩이는 그녀의 다리와 힘없는 손아귀에서 주르륵 빠져내리는 의자 팔걸이를 보았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자꾸만 눈길이 갔다. 도와주려는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그저 그런 불완전한 스지의 순간들을 주워 담았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엉덩이만 걸치고 매트리스 끄트머리에 앉았다. 이 공간이 전부 그녀의 것이기에 당장 비키라 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쪽 때문에 이 실험은 망했어여."

"하, 하하. 저, 정말 그럴지도 모르, 모르겠네. …어,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잘 때 보, 보니까 땀이 나, 났던 것 같아서."

"아, 맞다. 거울 좀 줄래여?"

작은 손거울로 비춰 본 오른 눈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렇게 끔찍하게 아팠던 것치고는 상처도 없었고, 실핏줄이 터졌다든지 그런 것도 없었다. 너무 멀쩡한 것이 불안했던 제이가 눈을 여러 번 깜빡거려 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눈밑에 말라붙은 눈물자국만 아니었다면 아까의 일은 전부 꿈이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머저리들. 결국 실패할 거면서 왜 내 희생을 착즙해?

"괘, 괜찮아?"

"괜찮아여."

"있지, 추가 실, 실험 일지는 내가 임의로 적어둘게. 어차, 어차피 변화 없었던 거잖아. 마, 맞지?"

"완전 처참하게 망했다고 적어주세여. 사람 눈에다 바늘을 꽂는 게 말이 돼여?"

"미, 미안…." 

제 잘못이 아님에도 고개를 푹 숙이고 손톱 거스름을 만지작댔다. 저 말고 딴 사람들한테는 한 번쯤 해볼 만하다고 써도 되구여. 제이가 심술궂게 한 마디 하자 스지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농담이라고 생각한 걸까. 진심인데. 아마 그녀가 이를 알았더라면 다 같이 아프지 않은 게 최고라고 한 소리 했을 터였다. 

커피 한 잔까지 얻어 마시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 내일 보자고 인사도 건넸건만 관찰실로 가는 길을 모른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복도에서 이리저리 서성거리다 우현의 눈에 띄어 간신히 저녁 식사 직전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가 당황해서 안대를 반대로 씌워주기라도 했는지 유독 검은 천이 까슬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스지라는 이름에는 H가 안 들어가는데. 하고 생각했다.

근래에 들어 기운이 넘쳐났다. 취침시간에는 잠이 오지 않아 누운 채로 양을 세야 했고, 아침에는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눈이 떠졌다. 게다가 힘이 세지기라도 한 건지 이번 주에만 수도꼭지를 한 번, 전등 스위치를 두 번 박살 내는 바람에 연구원들을 귀찮게 했다. 샬롯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떨떠름해졌지만 별로 신경 쓰이는 일은 아니었다. 매일 하는 검사는 똑같았다. 스지가 정말 일지를 그럴듯하게 꾸며 썼는지 눈에 대한 언급도 일절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지혁이 보이는 빈도가 조금 줄어든 것 같기도 했다. 그건 조금 기쁜 일이었다. 그렇게 별 거 없는 일상을 보내다가 또 개인 실험이 잡혔다. 산 정상의 메아리도 이것보다는 느리게 돌아오겠다. 제이는 혀를 쯧쯧 찼다.

구속복에 팔을 넣고 가만 서 있으니 연구원들이 그를 둘러싸고 버클의 길이를 조절했다. 가슴 부분 좀 조이는데여. 아무도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어라, 저건 또 뭐야.

"저기여, 원래 구속복 상의만 쓰지 않아여? 왜 제 다리도 그걸로 묶고 있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되는데여. 불안하게시리."

"조용히 좀 해."

천예화네. 희멀건 머리카락을 보며 제이는 저 얼굴을 본 게 얼마만인지 떠올렸다. 적어도 3주는 된 것 같았다. 저 멋대로인 사람이 여기에 와 있네. 그리고 나는 방금 다리도 묶였고. 저 단방향 투과성 거울 뒤에는 연구원이 몇 명이나 와 있는 걸까. 4명? 5명?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이? 스지도 여기 있나? 음, 이거 확실히…. 그러는 사이에도 기계 여러 개가 오갔다. 팔이 여러 개 달려 있는 괴상한 로봇이 그의 목과 머리, 구속복 사이로 맨살이 드러난 팔과 구멍이 드문드문 뚫려 있는 등에 무언가를 부착했다. 실험실 한가운데에 있는 실험용 베드가 의자처럼 구부러지더니 제이의 뒤쪽에서 멈췄다. 앉아. 마주 보고 선 예화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알아차린 듯 오금이 저렸다. 제이는 입술이 말라가는 것을 느끼며 순순히 그 무언의 지시에 따랐다. 

"여기 버클 연결 다 끝났습니다."

"전극 부착 끝났습니다."

"마지막 체크 완료. 마취제 투약하겠습니다."

베드가 뒤로 기울어졌다. 천장의 조명 때문에 눈이 부셨다. 이왕 마취제 투약하는 김에 수면제도 좀 같이 넣어주지. 맨날 실험체의 심리 변화니 인격이니 하는 걸 봐야 한다고 잠도 못 자게 하고. 케이지 안의 쥐 취급에 싫증이 난 지는 오래였다. 마지막 연구원까지 모두 방을 나갔다. 멸균된 이 흰색 방에 남은 것은 제이 하나뿐이었다. 벽면 모서리에 매달린 카메라에 붉은빛이 들어오는 걸 봤다. 그리고 몸에 힘을 뺐다. 

미리 팔에 꽂아둔 젤코에 투명한 관이 연결됐다. 색이 없는 액체는 점도가 높은지 한참을 꿀럭대면서 몸속에 들어왔다. 그 부분을 중심으로 몸에 화한 기운이 돌더니 피부가 화끈거렸다. 기분은 더럽기 짝이 없었다. 그다음으로는 묽고 연한 색의 노란 액체가 들어왔고, 조명을 다 가릴 정도로 큰 기계가 그의 위쪽으로 이동해 이것저것을 스캔했다.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심지어 그 기계가 더욱 가까이 다가와 제 눈꺼풀을 위아래로 잡아 벌릴 때까지도 괜찮았다. 벗어나고 싶어도 꾹 참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또 별 일 없이 돌려보내줄 테니까. 기계가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기괴한 느낌이 들 때에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래도 머리통을 여는 것보다는 척수에 구멍을 내는 게 나으리라. 그때 머리 위에서 기계팔이 축 늘어지더니 입에다가 천으로 된 재갈을 물렸다. 왜? 왜 이게 필요한데? 이거 뭐, 약이라도 묻혀둔 거야? 등줄기가 무언가에 쿡 찔렸다. 조금 더 두꺼운 주삿바늘 같았다.

"쟈시마혀-"

울컥, 기분 나쁜 것이 들어왔다. 이건 인간에게 맞지 않는 것이라는 걸 온몸이 외치고 있었다. 먹어치울 듯이 거대한 고통이 제이를 훑고 지나갔다. 다물린 입에서 저절로 신음소리가 샜다. 몸을 들썩이며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마와 목에 힘줄이 섰다. 마취제 썼다며, 이 개새끼들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었다. 기계가 다시 그의 눈을 벌렸다. 또 스캔- 공기에 오래 노출되어 바짝 마른 각막이 따끔거렸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눈알을 뽑아내어 불에 태우는 느낌이었다. 눈물이 고여 앞이 잔뜩 흐려졌다. 하도 상체를 일으키려 해서 재갈이 거의 목젖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구역질이 절로 올라왔다.

그 뒤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기계가 눈을 감겨줬는지 아니면 제 힘으로 감았는지 아무튼 암전이었다. 처음 약을 넣고 화끈거렸던 몸은 너무 뜨겁다 못해 차갑다고 느낄 지경이었고, 잔뜩 흔들어서 터지기 직전인 콜라처럼 속이 부글거렸다. 축 처진 몸을 누군가가 부축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님 그냥 누운 채로 침대에 실려 이동했던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또 다른 방이었다. 제이는 반쯤 풀어진 구속복을 바닥에 질질 끌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무엇도 그를 고정시키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어두워서 미간에 주름질 일은 덜했다. …그냥 눈에 문제가 생긴 건가?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하나-둘하나-둘- 제이는 그 엇박을 알고 있었다.

"왔어여?"

웃으면서 팔을 벌렸다. 어쩐지 그 사람한테는 아픈 걸 티 내고 싶지 않았다. 회색빛의 칙칙하고 먼지 날리는 이곳에서 참 따뜻하다고 느낀 유일한 사람이었다. 스지의 안색이 창백했다. 보면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이의 뺨을 쓸었다. 앉아 있으니까 당신을 올려다볼 일도 생기고 신기하네. 제이는 어리광을 부리듯 얼굴을 문질렀다. 

"제, 제이 군. 아니, 제이…. 너, 너 눈이 왜 그, 그래?"

"내 눈이 왜여?"

사람을 마주 보고 서면, 나의 오른눈이 상대방의 왼눈과 데칼코마니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제이가 앞머리를 쓸어 올렸을 때가 그러했다. 녹빛 구슬 속에 새까만 것을 보았다. 먹물 같기도 하고 뻥 뚫린 구멍 같기도 했다. 제이가 작게 와아, 하는 소리를 내며 입꼬리를 올렸다. 전부터 느낀 이 들뜬 감각이 뭔가 했더니 이거였구나. 이제 알 것 같아. 제이는 여전히 제가 약에 취해 있는지 아니면 열기운에 미친 건지도 분간하지 못한 채 마냥 히죽댔다. 내가 실험당하는 걸 다 보고 있었지, 당신? 당신은 능력에 비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잖아. 이번 일에는 당신 입김이 얼마나 들어갔어? 그의 볼이 붉게 상기됐다. 순전한 기쁨이었다. 

"이것 봐.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든 거야."

"…제, 제이."

"당신이 직접 빚은 거야. 어때여?"

스지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닿아있는 손바닥에서 땀이 나 축축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아슬아슬한 얼굴로 입을 앙다물더니 고개를 떨궜다. 

"추, 축하해. 강해지는 건 좋은, 좋은 일이지."

툭, 하고 그녀의 팔에서 힘이 빠졌다. 달랑거리며 떨어지는 것이 마치 죽은 자의 것과 닮아 있었다. 제이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그 움직임을 눈동자로 쫓았다. 스지는 제 얼굴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내렸다. 그대로 뒤로 돌더니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제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축하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쯤은 그 누구라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성과를 가져다줬는데. 내가 당신으로 인해 새로이 태어났는데 왜 그런 표정이야? 저 스스로가 스지를 가지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스지가 저를 가졌으면 하는 것인지. 비틀린 집착과 소유욕 사이에서 제이는 뇌가 어느 때보다도 맑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내 사고방식에 문제가 생긴 건가. 나도, 나도-

그 뒤로 제이는 시도 때도 없이 연구원들에게 끌려 다녔다. 이 정도면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이상하게도 저는 고통이 심해지기만 했다. 일어나는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타자 치는 소리가 더 빨라졌고, 제 곁의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스지는 그날 이후로 볼 수 없었다. 나중에 가서는 제발 멈추라고 외쳤다. 목이 다 쉴 정도로 시달렸다. 정신이든 육체든 할 것 없이 궁지에 몰렸다. 문경과 대화한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괴, 괴물이잖아."

그래서 오지 않는 거야, 당신? 내가 이제는 괴물이라서 날 보고 싶지 않아 진 거야? 

구석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관찰실을 나가기를 거부하던 제이가 결국에는 피를 봤다. 마취총을 든 쿠루기에게 달려들었다가 검지손가락 끝에 상처가 난 것이었다. 연구원들이 모두 놀라 안절부절못하던 그때에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철컥, 하는 소리가 관자놀이를 쳤다. 장전된 쇠붙이를 들어 올린 그 자세로 검지와 중지, 그리고 엄지만을 펼쳐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아.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어. 선혈의 실탄은 우현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급하게 손으로 제 귀를 붙잡은 그가 나머지 사람들은 안심시키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지혁이 그를 급하게 따라갔다. 상황 파악이 덜 된 나머지 말단들도 하나 둘 사라졌다.

제이는 바닥에 두어 방울 떨어진 붉은 액체를 문지르듯 밟았다. 그에게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더 알아야 했다. 우현이 상처가 난 걸 봤으니 인간에게는 확실히 통한다. 그렇다면 양에게는?

"빵야-"

샬롯의 머리통을 조준한 그가 작게 읊조렸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새 손목까지 흘러내린 피가 윗옷의 소매를 적셨다. 그게 다였다.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 사태를 관망하던 아름송이 사람을 불러 다친 것을 치료하라고 했다. 제이는 입을 벙긋거리다가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갔다. 저기요, 아까 피가 많이 난 것 같았는데…. 대꾸하지 않았다. 소녀가 종종걸음으로 옆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으니 더 이상 자신을 귀찮게 굴 여유는 없을 것이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스스로를 불완전한 반쪽짜리라 정의 내렸다. 세면대에 손을 씻으며 피로로 뻑뻑해진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역안은 이미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다시금 이루지 못할 잠을 청하며 침구에 몸을 파묻었다. 좆같았다.

그렇게 제이가 고열이 끓어 들것에 실려갔을 무렵, 그의 관찰실이 다른 곳으로 이동됐을 즈음에-

설지혁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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