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환생

광마환생 1화

상상과 현실이 구분되고 망상과 실재가 나눠질 때쯤, 이자하는 자신의 기억이 사실임을 알았다. 영문은 알 수 없었으나 혼란은 없었다. 그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나아갈 뿐.

이자하는 이곳에서 나아갈 길을 찾아야 했다.

“자하야, 탕수육이 그렇게 좋아?”

“응.”

이번 생의 부모는 아직 살아있다. 조부모와의 관계도 원만하다. 경제적인 여유도 넘치지는 않지만 적당하고. 한 마디로 행복한 가정이다.

11세, 초등학생 이자하는 탕수육을 입안에 밀어 넣으며 생각했다.

그런데 왜 하필 또 같은 이름일까. 잠시 고민하다가 탕수육과 함께 씹어 삼켰다. 어차피 모를 일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게 낫다.

이번에 태어난 나라는 중원 옆의 작은 반도. 전쟁을 겪고 반으로 갈린 남쪽 땅. 여러모로 머리 아픈 일이 많은 나라다.

현대의 대한민국에는 강호도 무림도 없다. 내공이나 절기 같은 건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상상의 산물이 되었다. 하지만 이자하는, 광마는 무를 통해 길을 낸 사내였다.

중학생이 된 뒤 첫 시험, 이자하는 당당하게 일렬로 줄을 세우고 엎어져 잤다. 단박에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도 같았으나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학문에는 뜻이 없었다. 오히려 유치원 시절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한 태권도라는 무예에 흥미를 느꼈다. 태극 문양이란 결국 음과 양이 서로의 꼬리를 문 형국이라 그가 이전 생에 추구한 무학과도 맞닿아 있었다. 내공은 불가능해도 외공은 단련할 수 있다. 그렇게 이자하는 태권도에 매달렸고 정신 차리고보니 영재가 되었다.

성인이 되고, 군대라는 뭣 같은 경험도 해보고, 홀로 자립할 때가 되자 이자하는 이 나라 이 시대에 가장 힘이 없고 자유를 박탈당한 존재를 살피기로 했다.

‘축 개업, 하오문 태권도’

화환이 건물 입구 양쪽으로 자리 잡았다.


“관장님! 무서운 아저씨가 입구에 서 있어요.”

도장에 들어오던 한 아이가 말했다.

“무서운 아저씨?”

이자하는 도복 차림으로 입구를 봤다. 과연 심각하고 어두운 인영이 그곳에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사내는 간판을 올려다보는 듯했다. 알 듯 모를 듯 미묘하게 표정이 변했는데, 그 모습이 웃는 것도 같았다. 이번 생의 검마는 그래도 처음부터 웃을 줄 아는 사내였다.

“맏형, 왜 그러고 있어? 들어와.”

신기하게도 별 기대 없이 던진 말에 답이 돌아왔다.

“오랜만이구나, 셋째야.”

둘은 관장실에서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흡사 상담하러 온 학부모였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놀고 있었다. 관장실 한쪽이 통유리창이었기에 이자하는 그 모습을 다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찾은 거요?”

검마가 먼저 입을 뗄 생각을 않기에 이자하가 물었다.

“뉴스에서 봤다. 범죄자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고.”

“아, 그거.”

두 달 전이었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간에 맞지 않게 큰 목소리가 들려서 골목을 들여다보니 웬 이상한 놈이 원생 팔을 붙잡고 데려가려는 양 씨름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자하는 감히 하오문도를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해주었고 그 결과 용감한 시민상을 받았다. 수상하러 지역 경찰서에 들렀을 때 전생에서 무림맹에 처음 발을 들이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던 게 기억난다. 그러고 보니 거기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몇 있었던 것도 같고.

“기억은 언제?”

거두절미한 물음이었으나 검마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10세 전후로 자각이 들더구나.”

“마찬가지군. 형님은 요새 뭐 하고 지내시오?”

“경호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경호?”

“그래.”

“혹시 경호 대상이…….”

“아니다.”

“그럼 됐고.”

둘은 뜻 없이 웃었다. 그러다 문득 이자하의 입에서 한 마디가 굴러떨어졌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군.”

“이번에는? 그게 무슨 뜻이냐.”

“아무것도. 온 김에 애들이나 봐주고 가시오. 경호원이면 태권도도 할 줄 알겠지.”

이자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관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검마는 순식간에 아이들 틈에 섞여 나뒹구는 이자하의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았다. 열린 문을 통해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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