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풍] 아파

완독 스포 있습니다

연성백업 by sol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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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독 스포 있습니다

- 상해 언급 있습니다

- 날조 있습니다

- 퇴고 안했습니다

- 정발 전 동인 호칭이나 명칭이 섞여 있어요

- 지풍... 아닌 거 같은데? 맞나? 아닌? 듯?


"아파."


노풍이 말했다.

광인은 제 정신이 아픈지 모른다던데, 그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거다. 누구한테 얘기하는지도 모르고 혼잣말을 하는 게 분명했다. 아파, 아파… 어? 아파. 뭐지……. 아파. 의아하다는 듯이 중얼중얼거리는 게 거슬렸다. 몸 성한 거지들은 제각기 막노동이든 구걸이든 하루 밥벌이를 하러 나갔고, 남은 건 스스로 삶을 지탱할 수 없는 병자나 노인이다. 고아들조차 소매치기를 해서라도 거지굴에 도움을 주는 판국에, 사지 멀쩡한 놈이 하나 들어와서 자리나 차지하고 시끄럽게 중얼중얼거리고나 있는 꼴이 거슬릴 수밖에 없다. 거지굴의 병자들은 대부분 조용하다. 빨리 조용히 죽어나가는 게 그들의 사명이다. 먹을 것도 약도 없으니 죽을 수밖에 없는데, 입을 하나라도 줄이는 게 낫다. 그래서 저리 중얼거리는 병자 - 게다가 광인이기까지 - 는 퍽 새로웠고, 그보다 거슬렸다.

노풍은 여러모로 새로웠다. 며칠 전에 새로 들어왔다는 것부터가 새로웠다. 그를 이 거지굴까지 데려온 소년 왈 그는 넋을 놓고 어디 골목에 앉아 있었는데, 처음에는 어느 댁 귀공자가 술을 쳐먹고 정신을 잃었나 했다. 댁에 모셔다 드리고 사례로 몇 푼을 얻든, 호주머니를 털어 잽싸게 도망치든 할 생각에 다가갔더니, 손을 턱! 잡더란다. 깜짝 놀라 쳐다봤더니 얼굴과 겉옷에는 피가 조금 튀어 있고, 눈은 흐리멍텅했다. 공허해서는 생에 남은 구명줄이란 그 소년의 손 밖에는 없는 것처럼 굴었다. 소년은 대번에 직감했다. 아, 이거 인생 망한 사람 눈인데.

흐리멍텅한 청년은 소년이 이끄는 대로 비척비척 걸어서 거지굴에 입성했다. 


"아재들, 일꾼 하나 데려왔소. 집안 망한 사람 같은데, 정신 좀 깨면 뭐라도 도움이 되겠지."

"거, 며칠 안에 정신차릴 눈은 아닌 것 같은데. 그동안은 네 밥에서 까도 되냐?"

"염병! 그런 게 어딨어요? 쩨쩨하게 굴지 말고 좀! 사람 하나 살린다 치자고요!"

"어이구. 길윤이 네가 그런 말을 다 해?"

푸하하 웃은 거지들은, 그래도 노풍을 받아줬다. 소년의 말대로, 사지육신 멀쩡하고 키도 제법 있으니 영 못써먹지는 않을 것이고, 원래 거지굴의 생리가 그러했다. 내몰린 자의 눈이다. 밑바닥 외에 그가 갈 곳은 없다. 그러니 받을 수밖에.

두 번째로 새로웠던 점은, 이 자가 참신한 광인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거지굴에는 광인이 제법 있었다. 팔삭둥이로 태어나 영 어리숙한 치도,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도 수가 틀리면 홱 돌아 이성을 잃는 치도, 치매에 걸려 거지굴의 모두를 제 손주 이름으로 부르는 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허풍선이는 없었다. 이름을 물으니 입을 굳게 닫고 도리질을 쳤다. 거의 공포에 가까운 수준이라 더 캐묻지 못했다. 그 다음으로 뭘 하던 이냐고 물으니, 풍사 대인이란다. 당연히 자기를 알아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태도가 기막혔다. 그러면서도 아니, 아니야…, 나는 아닌데… 그러면 안되는데, 하며 혼란스러워했다. 당연하지, 풍사께서는 낭랑신인데! 이 커다란 청년이 풍사일 리 없다. 지방에  따라서는 풍사를 남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있다고 쳐도, 신선께서 제 앞가림도 못하고 미친 사람이 되어 거지굴에 떨어질 리 있는가?

그래서 거지들은 생각했다. 아마 이 신입은 풍수묘의 제관 정도 되는 집안의 자식이었을 것이다. 본인이 도장이었을 수도 있겠고. 흑수현귀가 풍사낭랑을 탐내어 그 지아비인 수사 대인을 해하고 아내를 가로챘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그 여파로 풍수전이 몰락하며 그 집안도 망했을 게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 피 튀기는 일이 있었고, 가엾게도 가족을 눈 앞에서 잃은 청년은 착란을 일으켜 저가 풍사 대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일 테다. 그러다 흘러들어온 곳이 하필이면 옛 풍수전 터였던 이 거지굴이라는 게 안타깝지만. 마찬가지로, 이름을 대답 안하는 것도 '풍사'가 아닌 제 이름을 떠올릴 수 없어서리라. 아니라면 빚쟁이든 뭐든 제 이름을 듣고 찾아올 누군가를 경계하는 게 몸에 배어 그렇겠지. 그리하여 청년은 풍사의 호칭을 딴 '노풍'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여하튼 이 새로운 거지가 제정신을 찾을 때까지는 가만히 두어야 했다. 적어도 얌전하다는 게 다행이었다. 피가 좀 튀긴 했지만 쓸만한, 아니,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무 고급이라 거지들은 만질 엄두도 안 나는 귀한 겉옷을 벗겨도 얌전했다. 세탁하는 공임을 제하더라도 노풍이 멍 때리는 동안 먹을 밥값을 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문제는 그렇게 얻어 온 밥값으로 노풍의 밥값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먹을 것을 줘도, 

"……안 먹을래."

라고 뻐팅기는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거지들은 거지 나름의 양심이 있어, 아무리 그래도 멋대로 옷을 팔았으니 남겨먹는 일 없이 고스란히 대금을 그의 몫으로 남겨 두었으며, 빨리 기운을 차리라고 거지가 구할 수 있는 최대한 좋은 쌀로 죽을 쑤어 주었다. 그래도 안먹는다니 아직 고생을 덜 했거나, 지금까지의 고생에 차마 넘어가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전자일 가능성이 크겠지. 거지들은 대충 납득하고 자기들끼리 쌀죽을 나눠 먹었다. 첫째 날은 그렇게 지나갔고, 둘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셋째 날 저녁에도 노풍은 죽을 거부했다. 거지들도 사람인지라 슬슬 기분이 상했다. 여유 없는 거지들에게 나눔의 여유는 짧았다. 도성의 거지들은 나서부터 거지인 경우보다 인생길 도중에 걸인으로 전락한 경우가 더 많았다. 거지로 난 사람들은 아기일 적부터 태반이 죽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생이 나락으로 처박힌 기분을 잘 안다. 노풍은 그중 하나일 뿐이라는 소리다. 저가 뭘 특별하다고? 사정 딱한 건 알겠다만 제정신 차리는 쪽이 그에게도 낫다. 차가운 눈초리에 노풍도 조금은 눈치를 챘는지, 건네진 그릇을 받았다. 수저를 찾는 모양이었으나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노풍은 한참을 이 빠진 그릇을 쳐다보다가, 입에 대고 조금 마셨다.

그리고는 바로 뱉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고생 없이 살아온 태가 역력한 도련님이다. 거지들이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쌀이라고 해도 쌀겨와 모래가 섞였고 간간이 조그만 돌이 들어있다. 황도의 우물물은 그렇게 맛이 좋지 않다. 땔감이라 해도 넝마나 잔가지가 섞여 매캐하다. 그러니 결과물인 쌀죽의 맛도 도련님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거지들이 감히 귀중한 음식을 땅에 뱉어버린 노풍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기가 막힌 거지들은 노풍을 쏘아보고, 몇몇은 욕을 하고, 하나는 기어이 노풍의 대가리를 살짝 후려쳤다. 이 자식이, 곱게만 자라서! 좀 적응할 생각을 해! 어안이 벙벙해진 노풍은 곧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감히- 라고 소리쳤으나……. 그가 뭐라고 감히라는 말을 뱉는다는 말인가? 노풍도 그리 생각했고, 거지들도 그리 생각했다. 생각의 연유는 달랐으나. 노풍은 잠을 택했고, 거지들은 바닥의 침과 음식물을 대충 치우고 남은 죽을 나누어 먹었다.

넷째 날에는 아무도 그에게 쌀죽을 건네지 않았다. 겉옷 대금은 삼분지 이 정도 남았는데, 그건 그대로 주머니에 넣어 노풍의 허리끈에 묶어 주었다. 그래도 퍽 정 있는 거지들이었다. 정신 좀 차리고. 어휴, 다들 며칠은 이런다지만……. 끌끌. 혀 차는 소리와 함께 거지들은 각기 제 밥벌이를 하러 갔다. 노풍은 아직도 누워 잠을 청했다. 현실에서 잠의 세계로 도망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다섯째 날 점심.

"아파."

노풍이 말했다.


아파, 아파… 어? 아파. 뭐지……. 아파. 배가 아팠다. 아니, 배앓이를 할 때의 감각은 아니었다. 사청현은 몇 백 년간 이런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위장이 죄어들었다. 작은 물고기 떼가 뱃속을 살살 갉았다. 이마께에서 피가 돌지 않는 듯했다. 뒤통수가 뻐근했다. 기력이 없다. 목구멍이 좁아지고, 침방울이 혀를 간질였다. 이게, 뭐지? 모르겠어. 이게 뭐지? 몇 백 년간 자격 없으나마 신 노릇을 했던 인간인데도 아직 모르는 게 있었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적은 없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감각이 '아프다'였다. 배가, 아파.

"거, 염병……. 좀 조용히 하지, 여기 저 말고 아픈 사람 없는 줄 아나?"

"아픈데……."

"니미럴, 아 누가 안 아프냐고 했다! 징징댈 거면 저어기 꺼져서 징징거려!"

마른기침을 쿨럭거리는 노인이 욕설을 쏟았다. 험한 말을 많이 들어본 적은 없으나 좋지 않은 뜻인 건 확실했다. 꺼져, 그 말에 홀린 듯 사청현은 비척비척 일어났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가, 우당탕 넘어졌다. 사지 말단까지 힘이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배는 계속 아팠다. 아파, 나 아파……. 어딜 가면 이 복통이 사라질까,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쯧쯧, 혀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의 노인이다. 젊은 놈이 미쳐서는 저 지랄이다, 라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뜻인지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에게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고 제 몸은 왜 이러는지 물으려 했으나…… 할 수 없었다. ◼은 이제 없고, 부르면… 안되니까. 왜? ◼◼으니까. 그게 뭐지?

사청현은 갓 태어난 말 새끼처럼 휘청이다가, 몇 번 더 넘어진 끝에 결국 몸을 일으켜세울 수 있었다. 머리 아파. 배 아파. 왜……? 그렇게만 중얼거리며, 걸었다. 저어기 꺼지라고 했으니까, 갔다. 문턱에 걸려 넘어질 뻔 했지만, 갔다. 번화가는 빈민가 한 골목 앞이었다. 그 한 골목 나아가는데도 몸을 가누지 못했다. 겨우겨우 몇 번이고 등을 벽에 대고 쉬었다. 그래도 갔다. 아파. 아픈데, 이게 뭐야? 

몇 번이고 인세에 내려와 들렀던 거리다. 누구와?  ◼◼와. 그게 누군데? 머리가 아팠다. 사실 며칠 전부터 돌아가지 않는 머리였는데, 지금은 아예 텅 빈 듯 했다. 피가 다 빠져 희어진 머리가 아팠다. 이 거리가 원래 이랬던가? 햇빛에 눈앞이 뿌얬다. 노랬다. 시야가 좁아졌다. 시각만 그런 게 아니라 오감이 다 둔했다. 모르겠다. ◼ ◼, 나 뭘 어떻게 해야 해? 나… 아파. 왜 없어? 어딨어? 그러다가 갑자기 턱, 공포가 목까지 치달았다. 안 돼, 이름이…, 그게 뭐더라. 애써 눈을 깜빡였다. 눈꺼풀이 천근추를 매단 것마냥 무거워 쉽지 않았으나, 제정신을 차려야 했다. 왜? 몰라. 아파. 조금은 애쓴 보람이 있는지, 시각은 아니되 다른 감각이 서서히 눈을 떴다. …이거, 무슨 냄새지……?

사청현은 홀린 듯 냄새의 근원지로 다가갔다. 힘이 없는 두 다리가 급해 아우성치는듯 움직인다. 그러다가 꼬여 비틀, 그러나 걸을 수 있었다. 이거…, 닭 냄새? 튀긴 계육의 기름 냄새. 매콤하고 달콤한, 고추와 향신료를 섞은 양념의 냄새. 본디 사청현은 자극적인 싸구려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저거…… 저거, 먹으면 안 아플 것 같아. 전에 ◼◼가 길거리를 지나다 닭꼬치를 열 개는 사서 들고 먹었었는데, 한 입 얻어먹고는 그만두었다. 그런데도, 침이 달았다. 꿀꺽 삼켰다. 안그래도 몽롱한 시야가 더 희부얘졌다. 어디서 무슨 소리가 난다. 배에서 나는 소리일까? 아파, 나 아파. 빨리. 급한 마음에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 미친 거지 새끼가,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어제보다 더 강한, 퍽. 하는 소리.


"정신이 좀 드나?"

"하이고……. 이거 심하게 얻어맞았구만. 목숨이라도 붙어있는 게 용해."

"아무리 도둑질을 했어도 그렇지. 정신 성하지 않은 게 딱 봐도 보이는데, 닭꼬치 하나 집었다고 여럿이서 밟고 패? 진짜로 송장 치울 일 있나!"

"나 같으면 그냥 죽는 게 낫겠다. 쯧쯧, 사지 멀쩡한 놈 데려왔더니 이 꼴이 돼? 어디에 써먹게?"

노풍은 먹먹한 소란 가운데 깨어났다. 온몸이 둔했다. 정신이 신체와 유리된 듯한 불쾌한 기분이었으나, 그게 차라리 나았다. 아직도 희부연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거지들이 제각기 걱정하듯, 경멸하듯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돈 줬더니, 그거로 사먹지. 이 사람아. 며칠 굶은 놈에게 뭐가 봬겠어? 돈이 있는 줄도 몰랐고, 집은 게 음식인지도 몰랐고, 그걸 사지 않았다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왜 배가 아픈지도 몰랐다. …아파. 아직도 배는 아팠다. 

"…혀, ……."

"어어, 뭐라고?"

"말을 제대로…, 아니다. 지금 무슨 정신이 있겠어."

정신이 없어서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신이 없는 것은 맞지만, 불러봤자 소용이 없어 그만두었다. 대신, 

"……나, 아파."

라고 말했다. 당연히 아플 만 하지, 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왜 아픈 게 당연한 거지……, 하고 몸을 일으키려 하니 그제야 격통이 몰려왔다. 뒤통수에 뭔가 흘렀다. 뜨끈해 소름이 돋았다. 갈비뼈 께가 다쳤는지 호흡이 부자연스럽다. 한쪽 팔은 팔꿈치부터 부러져 달랑거리고, 다른 쪽 발목은 세게 밟혔는지 이상한 각도로 뒤틀려 퉁퉁 부어 있다. 대충 붕대를 감아 두었으나 제대로 된 치료는 절대 아닐 것이다. 사청현은 직감했다. 이제 팔다리 한 짝 씩은 못쓰겠구나. 서러웠다. 조심조심 부축을 받아 벽에 기대 누웠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눈물이 고여 시큰하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아파. …아파 죽을 거 같아."

"그래, 그래. 조금만 참게나. 남은 돈으로 아편이라도 조금 사온다고 하니까."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옆구리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

"다른 데는 더 아픈 곳 없나? 뭐라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

"배가, 배가 아파."

배? 만일 밟히느라 장이라도 터졌으면 며칠 못 가서 죽을 텐데, 거지들은 걱정했다. 사람 목숨 상하는 것도 안타까우나, 진짜 송장을 치우기도 싫었다. 이 거지굴에서는 몇 번이고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다행히 피를 토하는 것 같지는 않고, 갈비뼈도 부러진 건 아니라 요행히 멍 든 선에서 끝났으니, 아플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배가 어떻게 아픈데?"

"아픈데……. 막 아프진 않고, 몰라…, 막, 이상한 소리도 나고, 으응. 뱃속이 꿀렁거리고……."

거지들은 노풍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표정이 아리송해졌다. 목구멍이 죄이는 듯 하고, 침이 많아지고, 기력이 없고……? 딱히 아픈 건 아닌데, 아프다고? 다들 각기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누군가 깨달았다.

"그거, 배가 고픈 거 아냐?"

잠깐의 침묵. 그 후, 다들 맞네, 맞네! 하며 손뼉을 쳤다. 배가 고프니 식도부터 위장까지 울렁거리고, 뭐라도 입에 넣었으면 좋겠으니 침이 줄줄 흐르고. 배에서 소리가 나는 건 당연히 꼬르륵하는 소리일 것이고! 몇몇은 아무리 그래도 배고픔을 모를 수 있나 수군대고 몇몇은 허무함에 피식거리더니 이내 와하하, 하고 웃었다. 이내 거지들 전부가 웃었다. 웃지 못하는 건 노풍뿐이었다. 뭐, 뭔데? 왜들 웃는 것이야? 감, 히가 아니고……, 어찌할 바 모르는 노풍을 보고 또다시 웃음이 번졌다. 

"아하하, 자네 진짜……. 굶주림이란 모르는 귀공자였구만!"

"이 정도라면 인정하지. 그렇게 정신을 놓아도 인정할 수 있지! 아무리 그래도 배가 고픈 걸 모를 수 있나. 껄껄……."

"그렇더라도 귀한 밥을 대놓고 바닥에 뱉는 건 너무했어! 하하하."


얼떨떨했으나, 다들 왠지 노풍에게 조금이나마 더 상냥해진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어리숙하고 약간 정신이 이상한 풋내기 노풍이지만, 이런 통과의례를 통해 '우리'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일까. 그제야 노풍은 조금 정신을 차렸다. 사청현에게 적의와 무관심과 냉막함은 너무나 낯설었다. 약간, 아주 약간이지만, '생목숨'이나 '일꾼'이 아닌 '노풍'에게 보이는 호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그제야 아직도 제가 바람인 줄 알고 부유하던 그가 그들과 같은 인간으로써 땅에 발을 딛은 순간이었다. 아프고 배고프고 더럽고 추한, 언제 죽을지 모를 인간으로써. 이제 더는 사청현이 아닌 노풍은 거기에 절망하면서, 동시에 묘한 해방감을 느끼면서…….

"어라, 지금 노풍 우는 건가?"

"다 큰 사내가 배고프다고 울면 쓰나! 이봐, 빨리 죽이라도 가져와!"

"아파…, 으흑, 아파, 그리고 배고파……."

"하하. 여기 이거나 좀 들게나. 어어? 그제는 그리 뱉더니. 오늘은 더 맛이 없을텐데?"

"맛있어……. 흑."

"잘 먹어서 좋구만! 숨 넘어간다 숨 넘어가. 탈 나겠어!"

"닭꼬치 같은 건 냄새는 좋더라도 며칠 쫄쫄 굶은 사람 배에는 좋지 않아. 잘 먹고 낫더라도 그 집은 절대로 가지 말고. 우리도! 그 집은 팔아주지 말자고?"

"장 씨, 그런 사치할 돈은 있고? 아하하!"

그러면서, 문득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감옥에서 2년을 굶으면 얼마나……, 하고.


"명 형, 그리 급히 먹으면 어떻게 해? 쯧."

"……."

"저 보라지! 술은 놔 두고 안주에나 정신이 팔려서는. 식대로 지사 대인의 체면까지 지불한 거야?"

"맛있는데 어떡하라고."

"어라. 지사의께서 이런 대답도 할 줄 아는 분이셨나~? 그렇지만 어때. 본 풍사의 안목, 나쁘지 않지? 이 성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는 주루라고 들었어."

"……."

"또 무시하는 거야? 나 참. 이리 아리따운 풍사 낭랑의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쯧."

"명 형, 명 형. 식사라는 건 말이야, 본 풍사처럼 여유롭고 기품있게! 해야 하는 거야. 으음~, ……. 음, 생각보다는 별로인데."

"이제야 첫 수저를 뜬 건가?"

"명 형이 너무나 복스럽게 잘 젓수셔서 말이죠! 보는 본 풍사까지도 배부르던데 말입니다!"

"헛소리."

"아무튼, 그래. 술은 나쁘지 않아. 이 근처에 형이 인정할 정도로 맛있는 물이 나는 샘이 있어서인지 깔끔하고, 향도 좋군. 그런데 안주는 게 못 따라가는 걸."

"맛있기만 한데."

"물론 상천정의 진미와 비교하자는 건 아니야. 그러나 전체적으로, 과해. 아주 약간이지만 간이 세."

"그리 미세하게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나. 먹을 수만 있으면 되지."

"성의 없어라! 됐어, 난 원체 입이 짧은 걸 명 형도 알잖아? 명 형과 어울리면서 그나마 양이 늘어났지만."

"……굶어 본 적 없는 금지옥엽이나 할 만한 투정이군."

"명 형은 많이 굶어 본 것처럼 말하는군?"

"됐어. 밥이나 먹지."

"술은 아니고? 깔깔! 자, 자! 건배~! 본 풍사와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지사 대인을 위하여!"

"그게 누군데."


이 다음부터 노풍은 이전의 품위 넘치는 식사 예절은 점차 잊고 먹을 것만 생기면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입에 욱여넣고 보는 습관이 생겼다고 합니다 젓가락 같은 건 쓰지도 않고 손으로 퍼묵퍼묵 댈엄지

그리고 그걸 보고 왠지 킹받는 하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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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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