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밴드 아세요?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와 진짜요?
나도 선택지가 없었어
입덕에는 나쁜 게 두 가지 있다고 했던가. 십마이너 입덕과 늦은 입덕. 그리고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십마이너를 늦게 입덕하는 거라고… 이 말은 이를테면 머슴살이를 하더라도 대감집에서 하라는 우스개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장르 하나 흥하기 시작할 때 머뭇거리지 말고 뛰어들고, 큰 판에 가서 이리저리 부대껴 놀아보라는 옛 성현 오타쿠들의 가르침은 거를 것이 없다. 그런데 그런 성현들의 흔적조차 없는 판에 나 혼자 뛰어들었다면? 풍화된 유적과 색채 없는 사진만이 나를 반기고 있다면??
(상대적으로)국내에서 유명하지 않은 밴드를 좋아하는 일은 즐겁고도 슬픈 일이다. 팬덤의 크기를 재는 게 아니라 팬덤의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울 때… 마치 황무지에 홀로 내던져진 듯한 기분은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른다. 이쯤 되면 스놉이라는 말에 묻어가기도 진절머리가 난다.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야. 단순히 나 말고 이 밴드의 노래를 듣는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게 다라고!
오타쿠는 이쯤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척박한 땅을 보고 발길을 돌리든가, 맨손으로 개간을 시도하든가… 물론 나는 후자였다. 유일신 구글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위키를 뒤져 그간 발매된 디스코그래피와 멤버 교체 목록을 섭렵하고, 내 머리보다 유능한 번역기의 힘을 빌어 온갖 SNS와 핀터레스트 등지를 헤매며 사진을 모으고, 이미 수십 년도 더 전에 지나간 소식을 접하며 몇 년 주기로나마 간신히 갱신되는 인터뷰 따위를 모아 근근이 연명하는 삶을 지금까지도 살고 있다.
물론 달가운 소식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아니… 거의 40년도 더 된 밴드라 함은 그들의 음악적 소양 이전에 지금의 시각으로는 곱게 보기 힘든 짓거리들을 수도 없이 저질렀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거친 혼덕질의 풍파를 맞은 두 눈은 이미 눈물로 흐린 눈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합리화에 필요한 시간이 길지는 않다. 여차하면 얼굴을 좀 오래 들여다보면 다 잊힌다. 잘생긴 건 어디까지나 한때라는 말은 그 잘생김을 누려본 적 없는 이들이나 하는 말이다. 잘생김은 평생 간다. 그러니까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무지개 끝에는 보물이 있다고 하잖아 그 말이 전해질 수 있는 건 결국 그 보물을 이미 가져간 누군가가 있다는 거 아니야?
트위터에 썼던 글
꼭 그런 가정 하더라
if나 au를 왜 하는 거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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