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끝에는 보물이 있다고 하잖아 그 말이 전해질 수 있는 건 결국 그 보물을 이미 가져간 누군가가 있다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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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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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었다. 잠시나마, 부모님이 내 살던 지역의 유지와 나뭇진마냥 끈끈했던 유착관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사셨던 적이.

아는 사람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 아는 사람이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학교, 아는 사람이 아는 나는 모르는 사람들.

당시 나는 몸이 좋지 않았다. 병증의 진짜 이름도 모르고 애먼 가래 삭히는 약만 타다 먹이게 만든 의사의 이름은 끝내 기억하지 못하던 부모님 손을 잡고 다른 병원에 갔을 때쯤에는, 앞으로는 평생 달고 살 병이 되었다고 하더라. 그러나 이것이 딱히 죽을 병까지는 아니었기에 이를 핑계삼아 나는 조퇴를 자주 했다.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은 언제나 곤란한 웃음을 지어보이셨으나, 나는 결국 학교가 파하기 전 교문을 나서는 데 익숙해지는 학생이 되었고 빈 좌석을 실은 버스와 북적이지 않는 거리를 따라 도서관으로 갔다 가끔은 포장마차에 들러 군임석질도 하고 그랬다 그리고 평소대로 집에 갈 시간에 맞춰 귀가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부모님이 문득 말을 꺼냈다.

“니 며칠 은제 그 때 조퇴했었제?”

하시는 말에 바른대로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딱히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그랬더니, 부모님은 썩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답하시기를

“내 아는 아저씨가 니 낮에 정류장 앞에 가는 거 봤다 카드라. 아저씨가 (내 이름)는 핵교 안있고 뭐하나 싶어가지고 봤단다.

니는 몰라도 이 동네 내 아는 사람 천지삐까리다. 니 뭐 하면 다 내 귀에 들어온다. 니 아나?“

당신께서는 나중에 말하시기를 내가 다 니 지켜줄라고 그러는 거제, 하셨으나 나는 이 소리가 그저 우옜건 니는 내인테 감시당할 줄 알아라 하는 으름장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기억한다.

차라리 당신의 입에서 공부 똑디 해라 머리 단디 쭈매고 다니라, 카는 뻔한 잔소리가 박혔다면 밤마다 주인 모를 눈알들에게 쫓기는 꿈은 꾸지 않았겠지. 타인의 눈을 쳐다보기가 힘들다는 말을 들은 친구에게서 그럴 때면 그 사람의 미간을 보면 돼, 하는 충고를 들을 일도 없이 내내 바닥을 보고 다니는 일도 없었겠지. 그래서 그 시절 내게 가장 친근했던 무지개는 아스팔트 위의 구정물 웅덩이가 피워낸 울렁거리는 일곱 색 기름띠였다.

결국 지켜준다는 것이 당신의 평판이었는지, 내 안위였는지… 내가 기대하는 것이 맞았다면 그때 그런 말을 하시지는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와 은근슬쩍 운을 띄울 생각조차 없는 것은

핵교에서도대체뭘가르치길래그래할일이읎나숙제안하나아임내가니인테만만해가그라나니는꼭그라드라기억도안나는몇년다지난이야기갖고와가사람불편하게하고내가어짜자고니를이래키앗나모를따다른집아들은안그런다카는데니는뭐평생잘못안하고사나니그래살모나중에친구하나또없다다내가먼저살아보고하는소리잉께불편타생각말고알아들으라댔다이제가서자라

무지개가 드리운 자리에 여즉 무엇인가가 남아있다면, 그것은 필시 내가 찾고 싶었을 무엇인가가 아니라는 확신이 더 찬란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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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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