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단] 합작
타로카드 합작
태양 : 행복한 결혼식
내 몫일 필요가 있나요.
*
당신이었구나.
당신이었네요.
서로 사는 이야기나 조금 해볼까요.
마녀와의 잡담
바다 향기를 비늘처럼 달고, 다리를 끌고 다녔지. 물속에서. 호브는 아름다운 땅이야. 나는 이곳의 바다를 좋아해.
물론이야. 우리가 인간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어? 더구나 당신들은 우리의 바다를 앗아갔는데. 고집, 고집이라……. 내가 호브의 바다를 명명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제는 어때. 당신들의 바다가 되었잖아. 쫓겨서 달아나는 처지로 하는 소리쯤이야 무엇이어도 받아줘야 해. 승리한 자들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양식으로써.
흐음, 당신 말은, 인간의 바다라고 할 수도 없다, 는 건데, 그렇다면 누구의 것도 아닌 바다이거나 모두의 바다여야 한다는 거야? 둘 다 어설픈 말인 걸. 마법사, 알고 있어? 인간이 서 있을 수 있는 땅이란 향기롭지 않고 그저 끔찍해. 인간의 용사가 이 땅을 바꾼 후로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누구도 이 땅에 머무르고자 하지 않아. 글쎄, 우리는 먼 바다로 떠나는 형편이지만, 사막의 수인족은 인간의 발이 미치지 않는 땅으로, 땅으로, 내몰렸겠지. 당신들은 느끼지 못하지? 이 도려내진 감각을. 어떻게,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땅일 수 있겠어?
그래, 반지. 당신은 반지 이야기를 하러 왔지. 왜 돌려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 이 땅에는 보석과 잔해들이 한 데 뒤섞여 너부러져 있는데. 폐허에서 나뒹굴던 것과 내 손에 끼워져 있던 것 사이에 외견상의 차이가 있었어? 백골의 손마디에 걸려 있었어도 나를 주인으로 둔 지금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을 텐데. 아하하, 감이야? 엉뚱한 소리를 지껄일 줄 아네. 응, 맞아. 이게 세이렌의 솜씨일 수는 없지. 그러나 드워프의 손을 탄 것도 아니야. 흐음, 정확하게 짚었어. 인간에게서 받은 거야. 나는 그날, 청혼을 받았지.
당신, 바다 향기를 매달고 있는 사람들을 알아? 몸에, 그을린 살결 위에 켜켜이 소금기를 씌워놓고 있는 사람들. 내가 바다를 인지하는 방식이 향기였으므로 나는 처음, 선원들을 보았을 때 그만 그들이 비늘을 달고 있다고 믿었어. 인어처럼 반짝거리는 비늘은 없지만 투박하고 초라하게, 어떻게든 바다와 친근하리라 순진하게 믿었어. 나는 내 짝이 될 만한 사람을 골랐어. 이상하지, 막상, 그 남자가 바다로, 내게로 뛰어들었을 때에는 그런 몸이 아니었는데, 나는 그 남자의 검은 몸이 너무 탐났어. 바다를 매달고 볕에 내맡겨져 있던 몸. 수면 위로 쏟아진 흰 햇살 같은 냄새. 나는 그런 몸을 본 적이 없어서, 그 남자를 불렀어. 나를 사랑해줘요.
당신 그런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 너무 무심해. 나를 욕망해줘. 내 목소리는 아름다운데.
아, 그 몸은, 나를 녹을 것 같이 달콤한 눈으로 보더니 곧 숨이 죄어 죽어버렸지. 버둥거리던 몸은 볕으로 건조된 싱싱한 냄새가 씻겨지더니 곧 축 늘어졌어. 나는 눈물을 흘렸어. 내 사랑이 죽어서. 당신 말대로야. 세이렌의 요사스러운 유혹, 이라느니 해서 붙는 이야기들은 그래도, 정말 사랑 이야기야. 그들의 숨이 조금만 더 질겼다면, 바다에서도 호흡할 수 있었다면 우리의 사랑도 아름다울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폭풍이 치는 날, 지상을 바다로 착각하고 물 밖으로 뛰쳐나온 물고기가 그러하듯, 숨이 막혀서 죽어버렸어. 어쨌든, 그렇게 수도 없이 구애하고, 청혼을 받고, 사랑을 했는데, 당신처럼 머리카락이 반짝거리는 사람이었어. 동굴에서 쉬고 있던 나를 찾아왔지. 어디서인지, 내 목소리를 들었는데 잊을 수 없었다고 했어. 그게 내 목소리였는지 아니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우리의 목소리는 누구의 것이라고 분명하게 구별하는 일이 이루어질 수 없도록 모호하게, 그저 압도할 만큼 황홀할 뿐인데. 나는 그래도, 그랬나요, 대답해주었고, 그 사람은 내게로 다가왔어. 자살하려는 사람의 몸짓이 그러하듯 무서워하지도 않고 홀린 듯이 물 안으로 들어왔지. 당신이 날 불렀나요? 그 사람이 물었는데, 그러고 보면, 그 사람 눈도 파랬어. 당신 눈처럼.
나는 그를 부른 적이 없었어. 그 아닌 누구였어도 사랑할 수 있다면 괜찮았지. 그러니까, 그래서 그는 오히려 호명된 거나 마찬가지였어. 그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를 사랑할 수 있었으니, 그건 사랑이었어. 나는 전생의 연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애틋하게, 슬프게, 그를 바라봤어. 그 사람의 푸른 눈. 그 동굴에는 야광의 해초들이 자라나 있었고, 그는, 그 어설프고 진한 빛을 받고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채로, 내게로 내게로 왔어.
그는 내게 청혼을 했어. 당신이 들고 있는 그 반지를 내밀며, 한쪽 무릎을 굽혀 시선을 낮춰서, 나를 숭배하듯이, 내게 애걸하듯이 나를 봤지. 그 푸른 눈으로. 나와 결혼해줘요.
행복한 결혼식. 내 결혼식은 찬연한 행복으로 수식되어야만 해.
세이렌에게는 결혼이라는 단어가 없어. 다른 종족들의 관습으로써만 전해 들어 알고 있을 뿐,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우리에게도 결혼이라는 단어가 있으려거든 우리가, 인간 남자의 싱그러움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도록 동족의 남자가 많아야 했겠지. 우리는 그저 짐승처럼, 번식을 위한 결합만을 가졌는걸. 사랑은 잉태될 수 없는 듯이. 인어들은 우리를 가련히 여겼어. 그들이 종족 멸절의 위협을 감수하고 거머쥐고 있는 사랑을 과시하듯이. 어쩌겠어,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고,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는데. 밉지는 않았어. 한없이 부러웠지만.
그, 탄생에서 배태된 슬픔은, 그 순간 말끔히 씻겨나가는 것 같았어. 나는 본디 내 종족에 없던 것을 누릴 수 있었으니까. 그는 내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어. 그래, 당신이 들고 있는 그것. 반지만 있었을까. 그는 내게 신부의 베일을 씌워주고, 보석을 둘러주고, 나를 치장해주었어. 그 동굴 안에서. 내 목소리는 너무 아름다웠고, 그는 나를 사랑했어.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알아?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여자. 그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지. 바다에서 숨을 내쉬어서, 물거품이 자꾸만 위로 올라갔고, 그는 아래로 가라앉았지. 나를 사랑했으니 나의 바다로 같이 갔던 거야,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바다가 아니었는데도. 물거품이 내게 속삭였지. 사랑해, 나의 신부.
당신은 그를 닮았어.
나는 당신처럼 희고 푸른 사람을 사랑했어. 당신처럼 낮은 데서 언약을 구해주었던 사람.
내게 다시 청혼해줘. 그것이 전생의 일이었던 것처럼.
회신
레이븐이라고 해요. 내 까마귀의 이름. 레이븐이 내게 이 반지를 가져다주었죠. 그리스비의 잔해에서는, 온갖 게 나오더군요. 보석이라든지, 장신구라든지. 호브는 벌써 정리가 다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일이었어요. 뒤늦게 값비싼 물건이 나왔으니까. 나는 처음에는 사람들에게서 가져왔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레이븐이 부정하더군요. 아, 까마귀도 알 건 다 알죠. 내 까마귀는 영리하고 현명하거든요. 그러면 누구의 것인지 묻자, 레이븐이 대답했죠.
까마귀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까악 울었지.
당신들과의 만남이 평온할 리 있나요. 도박인데. 네에, 메데이아, 아름답고 막강한 우리의 지배자에게는 내 운을 걸었어요. 전설에 따르면, 나는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겠죠.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해, 당신들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건 내 의지일 수 있나요? 그럼에도 나는 메데이아를, 나의 이디스를 만났어요. 아름다웠거든요.
네에, 시시한 가장은 그만두는 게 좋겠죠. 그건 내가 여유를 두고 허용해주었던 관계는 아니었으니까. 기꺼이, 더 약한 자에게 시혜 같은 너그러움이 주어졌던 거지.
행복한 결혼식……. 그건 당신이 이미 체험한 일일 수 있나요?
메데이아의 결혼식이라니, 없을 만한 일을 이야기하는군요. 그녀는 결혼식에 관심이 없을 것 같아서. 당신은 오래 살았으니, 인간의 결혼식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봐요. 굳이 의식으로 분류하는 말을 하고 있으니. 글쎄, 하객은 있었나요? 레굴루스가 왔나. 메르지뉴도?
왜 모르겠어요? 내가 부순 것들을. 나는 내가 부순 것들로 만든 기반으로, 당신에게서 부서지지 않으려는 건데. 너무 이르게 내게 당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말아요. 그건 좀, 시시하죠. 손을 뻗어 봐요. 내가 낮은 데서 사랑을 말하며 반지를 끼울 수 있도록. 기꺼이 장난에 어울려줄게요.
당신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면, 나는 당신을 숭배하지 않을 수 없을지도 모르죠. 세이렌의 유혹은 절대적이니까. 전생의 사랑처럼 내가 애틋해졌나요?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는군요. 내 눈이, 당신의 사랑일 수 있었던 사람과 같은 색으로 당신을 보고 있나요?
거짓을 말해봐요. 정교한 진실처럼. 혹은, 정교한 거짓처럼 진실을.
내가 감히 당신들과 내 경우를 등치시킬 수 있겠어요? 전제 자체가 다른데. 당신들은 선택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고, 나는 선택할 수 있었죠. 나는, 하려나? 네에, 결혼을 생각해본 상대는 없어요.
당신을 닮은 사람을 만난 적은 없어요. 당신은 너무 아름답거든요.
이 반지가 정말 당신의 것인지가 중요한가요. 당신이 당신의 결혼반지로 이름 지었으니, 이 반지가 사실은 백골의 손마디에 걸려 있었더라도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정말 결혼반지가 될 수도 있지 않았겠어요? 내가 구색 정도는 맞춰줬을지도 모르고.
그러나 당신은 나를 미워하는군요. 당신의 지배자를 닮은 눈으로, 나를 사랑하지 못해요.
내게서 바다 냄새가 나나요? 나는 바다에 끌려갈 이유는 없는데. 나는 물거품의 말을 하지 못해요. 사랑한다고 속삭일 수도 없겠죠 내가 파도에 삼켜지지 않는다고 해서 언짢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그건 내가 해줄 수 없는 일이라서. 그리고.
당신은 화난 얼굴이 아름다워요. 지금처럼.
더 화나게 한 모양이죠? 물보라 같은 저주를 속삭이는군요. 성가시게. 세이렌의 결혼반지는, 예물로 가져가는 걸로 할까요. 우리는 그러니까, 파혼을 한 셈이네요. 돌려받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노여워하지는 말아요.
내가 행복한 결혼식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잖아요?
잘 가요. 당신의 바다로.
*
내 까마귀는 별걸 다 물어 와서. 이런 게 있네요. 네에, 황무지에 굴러다니던 것들 중 하나죠. 음, 이렇게 꾸며볼까요. 옛 카스토드 시대에 인간이 누렸던 영화의 흔적이에요. 귀하고, 아름다운. 안심해도 좋아요?
선물이에요. 반지를 맞추지 못해서 아쉬워했잖아요. 아무래도, 한 개뿐이지만. 레이븐이 한 개 더 물어오면, 그때는 짝을 맞출 수도 있겠네요. 레이븐을 응원해줘요.
받을 수 없나요? 그건…… 아니군요. 기뻐해줘서 나도 기뻐요.
행복한 것 같아요?
에이, 실없는 질문도 받아줘요. 당신들은 오늘 가장 행복한 사람들인데.
행복한 결혼식이라, 좋은 말이네요. 당신들이 앞으로도 행복하기를 바라요. 나는 당신들이 웃는 게 좋아요. 하하, 내 이야기는 왜 나와요? 신랑신부께서는 오늘 본인들에게만 집중하는 거예요. 네에, 부케네요.
어.
나한테?
잠시만요.
안 되죠, 당연히.
셀비아.
*
신부가 뒤를 돌아봤을 때 마법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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