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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따라 유독 피곤하긴 했어. 자꾸 뭔갈 까먹고, 잊어버리고. 너무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아. 하지만 쉴 수가 없는데 어떡하면 좋담. 나도 쉬고 싶었다고. 왜 사람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일을 하는 건 괜찮아. 근데 너무 많잖아. 이래야 살 수 있는 삶이라니. 뭔가 자꾸 잃어버리긴 했지만 중요한 걸 잃어버린 것 같아.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전편 축복받으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여! 계약서의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던 순간의 감격은 오래전에 바랬다. “야 독소조항? 그런 거 있나 좀 찾아봐.” “예.” 검정고시를 치르고 방통대에서 재무회계를 배우고 이제 다른 곳에도 취업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게 욕심이라면 적어도 원서는 내어볼 수 있게 되었는데도 그는 여기 묶여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잊은 기억이 있다. 그 날의 기억은 꽤 오랫동안 선명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야, 나오지 않는 목소리, 들이켜지지 않는 숨, 움직여도 아무런 반항도 되지 않는 미약한 꿈틀거림따위가. 어느 날은 그것이 소름이 끼쳐 숨이 막혔고, 어느 날은 내 목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목 안이 졸아드는 느낌이 났다. 어느 날은 세상이 다 무서웠고, 어느 날은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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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골목 말이야. 가본 적 있어? 왜, 어두운 거기. 골목에 대한 이야기가 교실 안을 가득 채우곤 했다. 그 골목? 아니, 기분 나빠서. 무섭잖아. 위험하기도 하고. 책상에 엎드려 웅성거림을 듣고 있자면, 그게 뭐라고. 하여간 다들 유난은. 그 골목은 말이야, 아무것도 없다고. 아니, 가장 어두운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있던가. 석류나무가. 누구든 섣불
요즘 따라 최 경장이 이상해졌다. 원래부터 그가 이상한 사람이란 사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았지만 그런 의미의 이상하다가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출세길이 보장될 강력반에 벗어나 가만히 있어도 욕먹고 움직여도 욕먹는 곳에서 자진해서 오는 그의 행적 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여기서 더 이상해질 리 없다 생각했지만 소문답게 그는 그러한 생각을 깨부셨다. 이거까지
에카르트 에스 셀레스트 윈체스터는 피로했다. 태어나기를 영국의 후작위를 이을 사람으로 태어난 윈체스터는, 자신의 이름보다도 먼저 윈체스터 후의 후계자이자 후트샤 백작으로 불리는 것이 익숙해졌으며, 윈체스터가의 공자로서의 처세를 배워야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보다도 먼저 배운 것은 가문에 대한 소개였으며, 사람간의 인간적인 정보다는 타인과 선을 긋고 자신
밴드를 붙였다. 무릎이 쓰라렸다. 지독하게 넘어진 까닭이다. 한바탕 대자로 넘어졌다. 급하게 달려가다가 제대로 아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래엔 라바콘이 있었다. 누군가 가지 말라 둔 것이겠지.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어서 앞도 뒤도 옆도 아래도 보지 않은 채 눈을 감고 뛰었다. 저 뒤에서 무언가 나를 쫓아왔다. 정말로 쫓아온 것이 맞나? 확인
주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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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밴드는 망했어.” 시작한지 고작 5분도 안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도 말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라 아무도 반론하는 말소리를 내지 않았다. 고작 들리는 소리는 선풍기가 내는 털털거리는 소리였다. 그 다음으론 말한 이의 한숨과 문을 열고 닫는 소리였다. 그 다음으로 소리를 낼 만한 이가 있을까. 그 생각이 스쳐지나가기 전에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글리프 2주차 주제가 나왔다. 1주차 글이 통과되었는지 안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보다 중요한건 다음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이 어떻든 일단 쓰는 것과 마감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2주차 주제는 밴드다. 아마 글리프도 다른 밴드보단 락밴드를 생각하고 주제를 냈을거다. 밴드를 주제로 한 창작소설을 쓸 수 도 있지만 이번엔 다른 글을 써볼 생각이다. 그래
시작은 큰 이유가 아니었다. 나는 학교와 가정에서 받는 교육을 제외하면 자주 바깥을 나돌아다녔다. 고등학교 때의 나는 집에 남아있는 시간을 싫어하는 것 같기도, 혹은 내게 시간이 남는 것을 못 견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멍하니 있는 시간이 누군가가 계속 염원했을 시간이라는 것을 지워내지 못했기에, 나는 매 순간 할 일을 찾아 헤맸다. 어떤 날은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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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스러운 진주, R에게. 안녕 아가. 네가 이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우린 아마 네 곁에 없겠구나.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일거고. 그렇지? 지금 곤히 자고 있는 너의 동그란 이마가 보이는데, 어찌나 깊이 잠들었는지 침을 무슨 은하수 흩뿌리듯이 흘리는데 덕분에 내 소매가 축축하단다. 어떻게 닦아도 닦아도 계속 나오는 건지. 혹시 무슨 문제가
최량에게. 잘지내냐? 사실 너가 잘 살지 않았음 좋겠다. 수많은 사람들의 꿈을 짓밟고서 잘 지낸다는 사실을 안다면 내가 너무 분통이 터져 죽을 거 같거든. 그래서 너가 어떻게 사는지 일부러 눈과 귀를 막고 내 나름대로의 삶을 나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너의 소식은 틈새를 억지로 파고들어 배경음악 처럼 잔잔하게 들려오더라고. 그래, 너는 항상 그랬다. 처음
비가 오는 날엔 항상 무지개가 뜬다. 나는 그녀가 무지개와 정반대인 유령같다고 생각했다. 고개 힘껏 들어도 눈 한번 마주치기 힘들고 어쩌다 보아도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제대로 말해본적도 없다. 선생님들은 그래도 나와 관련있는 높으신 분이니 잘 보여야한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애초에 그녀를 뭐라고 불러야하는 지도 몰랐다. 선생님. 겨우 생각해낸
좋은 저녁 되세요 ~!
그 날은 비가 왔어요. 12학년이 되어 옮긴 교실은 항상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오늘은 바깥에 내리는 비를 머금어 눅눅하기까지 했죠. 같은 교실에 있는 아이들도 웃고 떠들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 은은하게 퍼진 불쾌감은 나까지 알 수 있었죠. 그 뿐일까요, 나도 몸에 들러붙는 천들이 불쾌해 몇 번을 옷깃을 팔랑거렸는지 몰라요. 친구들 중에는 일부러 눅눅해진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