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비의 끝에

Dusk by 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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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축축하고 무거웠다. 닫힌 창문 너머로 들리는 빗소리가 희미하게 귓가에 와닿았다. 억지로 눈꺼풀을 밀어 올리니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이쪽을 향했다.

“마침 깨우려고 했는데. 잘 잤어?”

“으응…….”

긍정도 부정도 아닌 소리가 새었다. 다시 눈을 꾹 감고 이불과 함께 몸을 말자 발소리가 다가왔다. 커다란 손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느껴졌다. 답지 않게 상냥한 손짓이었다.

“여전히 비 오는 날에 약하네.”

“비, 싫어…….”

우타히메는 비 오는 날이 싫었다. 온몸이 찌뿌둥하게 아파 오는 것도, 이 끈적한 공기도, 한 손을 우산에 묶인 채 나가서도 여기저기가 온통 축축해지는 것도 싫었고, 소리에 민감한 탓에 천둥이라도 치는 날은 신경이 과민해지곤 했다.

덤으로 비 오는 날은 주령 발생률도 임무 중 사고율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어서, 도저히 좋은 마음이 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머리 위에서 웃음소리가 떨어졌다.

“비 오는 날 태어나 놓고.”

“……내가 태어날 땐 비 안 왔댔어.”

그가 말하는 것은 절기의 얘기였다. 우수(雨水)에 태어난 우타히메는, 추위가 풀려 따뜻해짐을 상징하는 이 절기를 좋아하면서도 비를 싫어하는 자신이 비와 관련된 날 태어나버린 것은 참으로 요상한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퍼져있을 순 없었다. 비가 오는 날에도 하루는 변함없이 흘러가니, 우타히메도 몸을 일으켜 하루를 살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게다가 오늘은, 비가 와도 딱히 몸이 아프지 않고 우산도 필요 없고 천둥은 신경도 안 쓰는 데다 비 오는 날 정도로 발생하는 저급 주령이나 임무 중 사고 같은 건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어떤 남자와 함께 외출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그의 쉬는 날은 귀중한 것이어서, 자신의 기분 정도로 그것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금방 씻고 나올게.”

“나는 비 좋은데.”

“어련하겠어.”

“걱정하지 마. 소나기래.”

“아. 그건 다행이네.”

우타히메는 그렇게 말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샤워실 안으로 쏙 들어갔다.

 

💧

 

눈이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고는 했다. 아마 머리 색에 의거한 일차원적 사고의 결과로 떠오른 이미지겠지만, 남들이 멋대로 떠드는 것에 익숙한 그에게 그 정도 얘기야 신경 쓸 것도 아니었다. 마침 그런 식으로 아양 떨기 좋은 날에 태어나기도 했고.

다만, 눈을 보고 깨끗하다고 말하는 사람만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복이 쌓인 눈이야 언뜻 그럴듯해 보여도, 몇 번 밟아 질척해진 눈은 금방 까맣게 바닥을 더럽히고는 하지 않는가. 남에게 밟힐 일이 없는 그에게 빗대기에는 크게 틀린 말이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그에게 눈은 전혀 깨끗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는 비가 좋았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빗소리에는 쌓여 있던 것을 전부 쓸어내 버리는 호쾌함이 공존했다.

그리고.

“우타히메, 우타히메!”

“잠깐, 나 아직 머리 안 말렸어.”

“지금 봐야 돼!”

샤워 후 옷을 입고 머리에 막 수건을 얹은 우타히메를 끌고 그는 창가로 갔다.

그는 비가 좋았다. 비가 내린 후, 온갖 더러운 것이 쓸려나가 청명해진 하늘이 좋았다. 생명의 물을 한껏 머금고 태동하는 푸름이 좋았다. 흐린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햇빛에 세상이 반짝거렸다.

“와…….”

감탄하는 우타히메의 머리카락 끝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톡 하고 떨어졌다. 고죠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우타히메의 시선 끝을 따라갔다. 눈이 오는 날에는 볼 수 없는 커다란 무지개가, 그의 행운을 축복하듯 한껏 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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