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와 사랑
3회차, 마멜 님
그는 5년 전에 나를 떠나 다시는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끼던 벽난로에 불을 붙여 보아도 흔들의자를 두고 뜨개질을 해보아도
버터스카치파이를 구워 준비해놓아도 저 빈 의자에 다시 앉지 않는다
청량한 여름 하늘 아래에서 땀 범벅이 된 얼굴로 운동장을 가로질러도
스포츠 음료를 단숨에 들이키고 찬물을 머리에 쏟아부어도
수줍게 고백을 받을 야구부원이 되어주지 않는다
주저하고 무너지고 깨지고 떨어지고 흔들리고 겁먹고 소리치고 울고 터지고 사라지고 떨고 부수어도
일어서고 달리고 웃고 밝아지고 회복하고 올바르고 정갈하고 단단하고 침착하고 환하고 천진해도
발맞추어 걸어줄 길 위에 서주지 않는다
영감이 없으면 단 한 글자도 토할 수가 없다 펜을 들 수가 없다
잃어버린 그를 두고 어찌 이 위태로운 지구를 지킬까
그가 없다는 것은 약점과 치부를 아스팔트 위에 녹인 채 타인의 발에 짓밟히는 것이다
그가 없다는 것은 차가운 눈동자 사이에서 몸을 얼리고 산산조각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지지할 영혼을 잃는 것이다
그가 내 앞에서 머리를 끄덕이며 무한한 애정을 엎지르던 시대는 끝났다
공책과 펜
시집과 MP3
파이와 야구모자를 챙기자
운동화를 신고 집 문을 박차자
생의 2막을 열어야지
이건 당신과 나만의 술래잡기
이번엔 내가 그를 발견할 차례다
이번주 주제는 비밀이에요 (ㅎㅎ)
사실 너무 쉽긴 한데 ㅠㅜ 나름 반전을 줘 보려고 가장 첫 문장에 있던 주제 문장을 다른 데로 배치해봤어요. (ㅋㅋㅋ) 과연 발견하실 수 있으실지 저도 궁금하답니다!
내일이 너무 기다려져요~~ 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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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HBD 창작자
멜 님의 글을 읽으며 ㅋㅋ 평소에도 저는 멜 님과 감성이 비슷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만 이번 3회차의 시를 읽으며 아 진짜 어쩌면 좋지 싶을 정도로 같은 감성을 공유한다고 생각했답니다. 제게 나열이 강점이라고 피드백 주신 분이 멜 님이라고 생각되는데(헛다리일 시 자결) 그건 멜 님 역시 가지고 계신 장점이므로 제 글에서도 두드러지는 나열의 미를 찾아주신 것 같아요. 다른 회차보다 이번 회차의 글이 몹시 마음에 든다고 하셨는데 저 역시 그렇습니다. 멜 님께서는 갈수록 폼이 좋아지시네요. 처음부터 100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10에서 시작하더니 10000을 찍어버리는 사람이 훨씬 더 부럽고 무섭고 대단한 사람인 것입니다. 흠. 제가 이런 데에는 몹시 약한 편입니다만 그래도 주절거려 보겠습니다. 화자는 자신의 창작 원동력이 되어주던 이미지에 묶여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이제 존재하지 않으므로 졸업할 때가 되었는데도 관성적으로 거기에 종속되어 있어서 힘들어하는 것 같네요. 제 추측상 말씀하신 주제 문장은 '영감이 없으면단 한 글자도 토할 수가 없다 펜을 들 수가 없다'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화자는 모종의 사건을 통해 이 힘듦을 극복해낸 것 같네요. 이번엔 내가 그를 발견할 차례라고 강단있게 포부를 밝히는 점이 호탕하고 청명하고 산뜻해서 좋습니다. 그렇지만 6연과 7연 사이에 무언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인 줄로 압니다만, 제 이성이 갑자기 화자는 왜 괜찮아진 걸까? 의문을 품게 만드네요. 그 설명이 있었다면 이 시는 순식간에 고리타분해졌을까요, 아니면 한결 더 매끄럽게 다듬어졌을까요? 그걸 결정하는 것은 오롯하게 멜 님의 몫입니다만, 확실한 건 1회차보다 2회차가 더 좋고 2회차보다 3회차의 글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다음 번엔 또 어떤 시로 저를 깜짝 놀라게 해 주실까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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