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불가침이라 하여금
20241215 | 생일, 축하해.
용납할 수 없는 것.
심판자는 죄인을 무슨 마음으로 벌하는가?
악을 벌하는 자는 그 근원에 대해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답은 언제나 간단하다.
죄를 지은 자는 그 죄를 반성하고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손에 든 그 저울의 무게를 견딜 수나 있겠는가?
사람의 마음이든 죄든 칼이든 그 무게는 무겁다. 그렇기에 무슨 행동이든 뜻이 있어야 하며 쉬이 가벼워선 안 된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한다.
‘기꺼이.’
내가 칼을 들어올린 것은 그런 생각에서였다.
인간이란 존재는 후회를 한다.
모든 인간은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한몸을 불사지른다.
인생이란 스스로의 길과 선택을 증명하는 여정이다. 그 길을 찾고 걸어나가기 위해 우리는 책을 읽고, 학습한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런 과정은 필요없었다. 애당초 찾을 필요가 없었다. 당장 신문지나 핸드폰으로 뉴스칼럼만 찾아보아도 내가 가야 할 길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 세상은 썩었다. 그렇다면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개혁이다.
나는 법을 공부했다. 바꾸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우선 그것을 알아야 하니까.
‘청소를 하려면 우선 먼지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하지만 말이다. 내가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책 한 권을 읽는 시간동안 판결문에도 새로운 글이 써지기 마련이었다.
시간의 흐름이란 그런 법이다.
일본의 유죄율은 절대적이라는 수치에 육박한다. 보이스피싱을 한 사람은 수백만 원의 돈을 훔치고 달아난다. 하지만 사회는 당연하다는 듯이 벌금형으로 끝을 맺는다.
‘500만 원…….’
500만 원이라는 수치는 적을지도 모른다. 강력범죄에 비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이다. 첫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사회초년생에게 있어 500만 원이라는 돈이 과연 적을 수치일까? 대체 누가 그렇게 말하겠는가. 월급으로 200만 원 남짓한 돈을 받는 사회초년생에게 20대를 바쳐 저축해 온 500만 원이라는 돈이. 게다가 그 사회초년생에게는 불치병을 앓는 조부모가 있었다. 없는 형편에 그렇게까지 과할 만큼 저축한 이유는 수술비를 모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그런 사회초년생에게 마이크를 쥐여주지 않는다. 하다못해 칼을 쥐여주지 않는다. 돈이 없으니까. 학력이 낮으니까.
‘이건…….’
‘이건 아니잖아.’
범죄는 연쇄적이다. 죽어나가는 신음소리에도 끊지 못한 탯줄은 새로운 죽음을 만들어낸다.
‘아니야. 이건, 이런 건… 그렇잖아. 너무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그만큼의 시간을 써야 하는 거지.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를 악물던 나는 곧 깨달았다.
‘이러는 건 내가 약자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
분노를 짓누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 길을 나아가기 위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새기던 그 말을 다시금 되새겼을 때였다.
신문에서 보던, 피해자가, 피해자의 유족들이 겨우 받아낸 마이크에 대고 되풀이하던 말과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약자의 투쟁법이다. 나에게는 돈이 있다. 교육력이 높은 집안 덕에 유망 높은 대학교의 진학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내게 높으신 분들과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몇 가지가 있다.
‘나이가 어리지. 학력이 높을지언정 대학을 다니는 통에 사회경험이 없어. 하지만 그 경험을, 경력을 쌓는 동안 누가 그 비명을 재워주냔 말이야. 나 같은 사람이 아니면 누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냔 말이야. 일상이 부서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가 도와주냐고. 누가… 누가 그 악인들을 벌해주느냐고.’
이내 방 안에는 어렴풋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내려야 한다고…….
***
그렇게 방구석에서 분노하던 시절이 내게는 있었다.
이곳도 방구석인 것은 똑같지만. 다른 점이 있지 않은가.
‘죄인을 벌할 수 있어.’
공교롭게도 이 장소에 모인 모든 인간은 범죄자다. 그중에서도 흉악범, 이름하여 소위 ‘살인자’들이었으니까.
‘밀그램……이라고 했지.’
선과 악이 애매한 살인범들을 모아 그 선악을 가리는 곳이라고.
‘하여간 마음에 들어.’
뭐, 살인범들한테 애초에 선 같은 건 없지만!
***
“생일, 축하해.”
못 들었다. 아니, 들었다.
못 들은 게 아니라 예상을 못한 거지. 죄인에게 선의를 바라는 일을 대체 누가 하는가. 특히 살인이라는 건 쉽게 마음 먹는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이건 내가 증인으로서 말할 수 있다).
하하. 비인도적이지 않은가.
누구는 마음에 들지 않으니 죽이고, 누군가는 살려주고. 누군가는 죄를 저질렀으니 벌을 내리고, 선행을 베풀었으니 축복을 빌어주고.
…….
……나라고 한다면.
나라고 한다면 축하의 말을 건넸을까…?
시이나 마히루는 이제 영원히 두발로 걸을 수 없다. 그럴 각오로 내뻗은 발이었다. 아니, 죽일 각오로 내뻗은 거였지.
가지던 것을 잃는 분노와 원망과 절망은 감히 말로 이룰 수 없다. 사람들은 일상을 잃었고, 나는 정의를 잃었다. 사회는 질서를 잃었다. 시이나 마히루는 무엇을 잃었는가? 아니, 애초에 모든 것을 놓친 것이 아닌가. 회복할 수 없는 팔다리는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늘린다. 사랑뿐만이 아니라 무엇조차 잡지 못하는 손이 눈에 밟혔다.
아니.
……확신을 가져라.
나는 약자를 대변해서 범죄자를 벌하는 심판자다. 약자에 이입하리. 범죄자의 입장을 대변한다니 우습지도 않아.
“정신 나갔어, 너.”
둘 중 하나는 미쳤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지 않고서야…….
“…….”
왜 ‘너’라는 말을 마지막에 붙인 거야. 그 정도는 앞에 붙였을 수도 있는 건데.
나는 후회를 했다.
오랜만에――줄곧 해 오던 그것을.
‘나는 잘못되지 않았어.’
이것은 다른 말로 불가침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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