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판 독자들이 남성 작가를 싫어하는 이유
조아라 베스트 둘러보다보니 모 작품에서 약간 난리 난 거 같아서 왜 이렇게 된 건지 맥락을 설명할 겸사 가볍게 적어본다. 미리 선을 그어두는데 '경향성'에 대한 얘기다. 특정 작품이 아니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는 확고한 경향성이었다. 요즘엔 살짝 유해진 편이긴 하지만 로판 독자들이 남성 작가를 싫어하는 이유는 다중적이다. 먼저 로판 자체가 판타지에서 내쫓긴 여성 작가와 독자들이 만든 장르라는 태생적 이유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지금처럼 남성 작가를 싫어하는 독자층을 만든 건 순전히 남성 작가들이 한 선택으로 기인한 점이 많다.
비츄가 쓴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어마어마하게 미소지니에 쩌들은 남존여비 사회를 그리는 걸로 모자라 여적여로 불리는 행태를 애용하는데 정말... 끝까지 읽지 못할 정도라서 자세한 비평은 넘어가겠다. 이렇게 끝까지 읽기 힘들만큼 기분 나쁜 물건이 윤슬 작가가 쓴 '황제의 외동딸'의 아류작인 게 놀라울 지경이다. 거기에 분명 전연령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베드씬과 폭력 묘사는 얼마나 포르노로 쓰고 싶었는지 잘 보여준달까. 총체적으로 기분 나쁘다. 그리고 이게 비츄만의 문제는 딱히 아니란 점 때문에 싫어하는 층도 있다.
특히 남성 작가들이 자주 착각하는 부분인데 여성들은 자신의 가슴에 대해 그닥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성기 길이를 꼭 재어보기라도 하는지 여성은 자신의 신체라 별 생각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거 같은데 작 중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며 크다고 대박이라고 중얼거리는 것만큼 쉰내 풍기는 짓이 없다. 새 몸을 얻으면 꼭 허리 아래 물건 확인해보는 씬 넣는 남성향 판타지에서 하는 짓을 고대로 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으나 로판에선 안 먹힌다.
물론 여성 캐릭터가 악인이어도 좋긴 하다. 좋긴 한데 스스로의 미소지니를 가다듬을 생각은 안 하는가? 그냥 평범한 악인상에다 성별만 여성으로 바꾸면 될 걸 꼭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남자가 생각하는 썅년'이어야만 하는가? 지루하게.
초기 로판에서 이런 걸 쓰고도 히트를 쳐놓으니(솔직히 초기에나 가능했다고 본다) 싫어하는 층이 생겨났는데 그 이후로 나온 남성 작가가 쓴 히트작에서도 문제가 없진 않다.
havoc의 '수호룡과 거짓의 황녀'가 그렇다. 그리고 난 이 작품을 끝까지 읽긴 했으나 싫어한다. 어느 정도의 사감은 감안해달라.
'수호룡과 거짓의 황녀'가 조아라에서 연재되던 시절부터 읽었는데 발상 자체는 흥미로웠다. 물론 이 작품도 그렇고 '두 얼굴의 황녀'도 그렇고 당시에 히트쳤던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대너리스 캐릭터에게 영향을 받은 티가 나는데 오마쥬 정도라 그 부분을 크게 문제될 건 없는 정도긴 하다.
어쨌든 '수호룡과 거짓의 황녀'에 히트칠만큼 좋은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어느 정도는 현실적인 중세적 마인드에 대한 고증과 실제로 용이 중세에 있었다면 공군 역할을 했을 거라는 점을 기본 골조로 작가가 나름대로 변형해 용에 대한 세부설정을 붙였는데 나름 재밌었다. 스토리 자체도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은데 결국에 끝에 가선 미소지니했다.
주인공이 농노 출신으로 시작한 건 좋다. 그리고 중세 마인드가 박혀서 어느 정도 선까지는 그래도 자신을 농노라고 여겨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까진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압도적인 무력과 실력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고 황족이라는 명목도 가지고 결국에 황위까지 거머쥐었으면 주인공이 정신적으로도 성장을 해야할 거 아닌가? 여느 남성향 판타지에서 그렇듯 말이다.
그런데 havoc은 현실의 미소지니를 고대로 빼와서 여성인 주인공이, 용을 타고 전쟁 나가서 승전까지 해온 황제가 남자 주인공에게 '아냐 나는 미천한 농노' 마인드를 고대로 유지하며 황족이라고 존댓말 해가며 사랑놀음을 한다는 줄거리를 밀어붙이는 결정을 한다. 연재하는 내내 러브 스토리도 너무 별로였고 이 부분에 불만을 가진 독자들도 있었는데 구태여 그렇게 했다.
이 작품의 결말이 더 짜증이 난 이유는 havoc 작가는 문피아에서 SF물을 몇번 낸 기성작가란 점도 있다. 글을 처음 쓰는 작가라 삽질하는 거면 관대하게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농노인 주인공이 용이랑 황제까지 올라가는 스토리라고 셀링 포인트를 잡아놓고 독자가 싫어할 선택을 꾸역꾸역 해댄 건 작가의 선택이지 않은가. 독자층은 주인공이 성장하며 자신이 설정한 한계점을 격파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건데 이를 무시한 건 작가다. 몰라서 그랬다면 시장 조사를 덜 한 거고 알고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면 장르의 공식을 어긴 점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음을 받아들여라.
샤이닝 로드의 결말을 왜 당시 독자들이 성토했겠는가. 장르의 공식을 무시해서 그런 게 아닌가. 샤이닝 로드가 그래도 사적 가치가 있는 건 분명하나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나 '수호룡과 거짓의 황녀'에는 딱히 사적 가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일단 남성 작가가 쓴다고 하면 으... 소리 부터 나오는 사람이 있는 거다. 로판 내에서도 타 장르에 대한 몰이해로 삽질하는 작가가 있는 걸 싫어하는 층이 분명히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무조건 남성 작가가 로판에 들어오지 말라는 게 아니다. 들어올 거면 이쪽 장르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조사하고 들어오고 미소지니 좀 어떻게 하란 소리다. 어차피 장르가 발달하면 유입풀도 넓어지는 건 당연한데 굳이 장르 안에서 있었던 논의나 문제 제기를 싹 무시하고 멋대로 뛰어들어오는 걸 곱게 봐주긴 어렵다. 애초에 로판이 생겨난 이유도 분류 폭력인데 '아 내가 한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나 그러다 완전히 남성작가에게 배타적이 되어버리면 누구에게 손해일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배타적인 층이 생겨버린 건 분명히 남성 작가들의 선택으로 인한 영향이 있다. 이미 로판은 페미니즘 영향이 굉장히 강한 작품들이 대중적이다. 그 부분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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