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자] 휴식
일단 좀 쉽시다
- 이번에도 돌아온 트위터 썰 글로 쓰기
- 평화로운 글도 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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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장 쉬어야 한다니까요!
남자의 목소리에 여자는 피곤한 기색을 숨길 새도 없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벌써 30분째 입씨름 중이었다.
모험가들이 자주 다니는 물 빠진 돌고래 주점, 여관 뒷돛대의 앞. 두 사람에게 시선이 쏠린다. 주점의 직원들은 물론이고 여관 안쪽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까지 흘끔흘끔 둘을 쳐다보기 바빴다.
붉은 머리에 붉은 문신을 한 미코테 남자. 흰 머리에 푸른 뿔을 가진 여우라 여자. 둘 다 림사 로민사에 눌러앉듯 살아 거의 모든 직원이 얼굴을 아는 유명인사라는게 두 사람에게 불행이라면 불행이었달까. 둘은 림사 로민사에서 유명한 빛의 전사들 중 하나였다. 도대체 둘이 어떻게 언약한 거냐고 사람들이 자주 말하곤 하는 모험가들이기도 했고.
그럼, 이야기를 하는 남자를 보자.
남자, 윤로는 남들이 보기에 태양 같은 사람이었다. 얼굴에선 건강한 기운이 흘렀고 탄탄한 몸은 그의 상징과도 같은 새빨간 셔츠에 입혀져 꼬리와 함께 잘 빠져있었다. 두 팔은 곧게 뻗어있었고 두 다리는 튼튼히 땅을 딛고 있었다. 그래, 말이 길었지만 어쨌든 건강하고 튼튼하단 거였다. 아주 걱정되어 죽겠다는 바락바락한 목소리와 함께 손짓·발짓 중였지만.
그럼 반대편.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여자를 보자.
여자, 베아트리체 랄은 남들이 보기에 썩 좋은 몰골은 아녔다. 알라미고 가운 아래로 드러난 팔과 짧은 탐험대 바지 아래로 드러난 다리에는 붕대와 거즈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가뜩이나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에 흰 붕대까지 감싸자 산송장이나 다름 없었다. 얼굴도 반창고가 가득한게 쉬라고 하는 남자, 윤로의 말도 틀린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쉬겠다고요. 들어가서 쉬려고 하는데 잡는건 당신인데."
"그건 쉬는게 아니에요. 좀 더 치료를 받고 제대로 요양해야 한다고요. 어차피 움직일 수 있으면 또 나갈 거잖아요. 맞죠?"
"네, 나갈 건데요."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지 말고요-!"
으앙, 이라는 문구가 얼굴에 드러날 정도로 울상이 된 윤로는 베아의 손을 붙잡고 거의 매달리다 싶이 말리고 있었다. 같은 말을 붙여가며 붙잡고 있지만 결국 그가 원하는 바는 두 가지였다. 충분한 휴식을 취할 것, 자신과 같이 갈 것. 둘이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자신을 감시하기 위한 차원이라 판단한 베아는 귀찮기 그지없었다. 그냥 확 내쳐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에게 윤로가 최후의 통첩이라도 되는 양 말했다.
"밥도 사 드릴게요!"
지금 그걸 회유라고 하는 건가 일순 한심해지는 베아였지만 결국 한숨을 쉬며 따라나서겠노라 말한다. 말로 해서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걸 새삼스레 깨달아버린 탓이다. 그런 그에게 기쁜 마음으로 꼬랑지를 삐죽 들어 올리며 환히 웃는 윤로였지만 베아의 표정은 반대로 우중충하기 그지없었다. 한손에 든 창을 꽉 쥔 채로 그를 따라가는게 흡사 죽으러 가는 몰골이라 다들 오늘도 둘은 어떻게 언약하게 된 건지 참 신기하다며 웃고 넘겼다.
도착한 곳은 동부 라노시아의 코스타 델 솔 근처의 핏빛 해변가였다. 햇살도 좋고 위협이 될 몬스터도 없으니 평화로운건 맞지만 이곳까지 데려와서 뭘 하려는 건가 싶어진 마음에 베아는 윤로를 봤다 어이가 없어졌다. 난데없이 의자와 돗자리, 그리고 파라솔을 피고 여기 앉으라는 듯 돗자리 한쪽을 툭툭 두드리는 손길까지. 설명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자기 혼자 판을 벌리고 있으니 황당할 법도 한데 베아가 그렇게 느끼든 말든 윤로는 뿌듯하고 당당한 표정으로 베아를 바라본다.
"이게 뭔데요."
"쉴 자리요!"
"네?"
"베아가 절 늘 챙겨줬으니 이번엔 제가 챙길 차례에요. 아프니까 빨리 여기 와서 누워서 자요!"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니 더 할 말이 없다. 햇살은 적당히 따스하고 바닷바람은 적당히 선선하다. 구름도 햇빛을 적당량 가리니 그야말로 사람들이 말하는 '나들이 가기 좋은 날씨'일 것이다. 그런 날이니 이 아픈 사람을 붙잡고 여기까지 끌고왔을테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그럴 사람도 없겠다만) 미쳤냐며 뺨을 한 대 치고 뒷돛대에 들어가 온종일 처박혀 앓았겠지만 윤로는 아주아주 조오금 달랐다.
둘은 비즈니스로 맺어진 언약자이자 모험을 위해 서로의 심신을 케어하는 관계다. 토벌전이 끝나고 베아가 윤로의 침대에 들어가 다독이던 것처럼 윤로도 거의 처음으로 베아를 자신의 방식대로 다독이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다 대고 싫다고 이야기하기엔 베아가 윤로에게 해온 것들이 많다. 거절하면 자신의 당위성을 잃는 것이니 따라야 한다. 결과가 도출됨에 베아는 윤로에게 끌리듯 자리로 다가갔다.
베아트리체가 자리에 천천히 앉자 윤로는 피크닉 바구니에서 어떻게 넣은 건가 싶을 정도로 꼬깃꼬깃 접힌 담요를 꺼내 머리밭에 놓아줬다. 베고 자라는 걸 테다. 이상하리만큼 철두철미(?)하게 챙긴걸 보고 의심스레 노려봤지만 되려 갸우뚱, 머리를 기울이는걸 보고 베아는 입씨름을 할 마지막 의지마저 잃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달은 탓이었다.
입 씨름을 하기에 베아는 너무나도 지치고 피곤하고 아픈 상태였다. 베아에 비해 윤로는 너무나도 건강하고 멀쩡하며 아프지 않았다. 평상시라면 둘의 기싸움은 그리 부르기에도 안쓰러울 만큼 베아의 일방적인 기 펴기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기를 펼 체력도 이유도 되지 않는다. 윤로가 부러 베아의 상태를 보고 그리 고른 것이라면 그는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를 붙잡은 거였다.
베아는 자리에 누워 담요에 머리를 파묻는다. 그의 말대로 햇빛은 따뜻했고 바람은 선선했으며 파라솔은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줬다. 또한 코스타 델 솔 특유의 푸르른 경치 덕에 눈도 피로하지 않았으며 파도는 귓가를 적당히 간질였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야말로 요양하기 좋은 날씨였다. 그 모든 것들을 보여준 장본인인 남자를 베아는 흘끗 올려다본다. 그는 어느새 낚싯대를 꺼내 미끼를 끼우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참 미련하고 이상한 사람이다. 그냥 적당히 내버려 두면 다시 싸우러 갈게 베아 자신이건만 돌봐준답시고 이리 끌고 왔으니 말이다. 노곤함이 수면을 이불 삼아주듯 천천히 덮어주는 것을 베아는 뿌리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이내 깊은 잠이 베아를 덮었다.
새근, 새근.
어느새 베아의 숨소리는 고요히 잦아있었다. 그를 한 번 흘끗 본 윤로는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며 몸을 뒤로 길게 물려 기지개를 켰다. 그의 언약자, 베아트리체 랄은 심할 정도로 자신에게 둔감하며 무감한 사람이었다. 잠드는 순간에도 옆에 창을 두고 잠들 정도로 예민하게 굴면서 상처에는 이리도 둔감하게 구는, 아니 둔감하게 행동하려 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베아가 그를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윤로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둘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에 광해 간섭하지 않는다. 남들이 어떻게 언약했는지 모르겠다 말하지만 둘은 이해하지 않으면서 간섭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기에 언약식을 올리고 유지하는 거일 테다.
윤로는 챙겨온 피크닉 바구니를 열고 미코테식 해물 볶음이 가득 든 만두를 꺼낸다. 약간 식긴 했어도 따뜻한 코스타 델 솔의 기온 덕에 여전히 따뜻한 만두를 입에 한가득 물고 낚싯대를 던진다.
어느 한 때의 오후가 파도를 따라 밀려간다. 더없이 평화로웠다.
잡담
맨날 우당탕 콰장창 이런 것만 쓰고 그리다보니까 나도 평화로운거 써보려고 했는데 장렬히 실패.
한 번쯤은 베아가 윤로를 위하는게 아닌 윤로가 베아를 위하는걸 보고 싶다는....썰에서 출발한 글이었는데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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