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판14] 우리 집

[언약자] 구출

내 언약자 내놔

모험록 by 기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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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천만년 전에 그렸던 내 언약자 내놔라의 글 편

- 이런거... 써도 되는 걸까요? 진짜.....?

- 공포 3,608자

깜, 빡

윤로는 눈을 천천히 뜬다.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격통과 진통에 얼굴을 한껏 찌푸리며 눈을 깜빡이는 게 고작이었다. 멍한 시야와 정신에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 조차 판단이 서질 않아 눈을 깜빡인다. 깜빡, 깜빡. 시야가 조금 돌아오자 지금이 달이 훤히 뜬 한밤중이며 이곳이 나무로 마감된 천장이라는 것까진 알았다. 몸을 일으켜 살펴보고 싶은데 온 몸에서 지르는 비명 탓에 그조차도 하지 못하자 불안감이 싹텄다. 여긴 어디지?

팔락

쫑긋 솟은 귀에 무언가를 넘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윤로는 눈을 도르륵 굴려 옆을 본다. 제 옆에 누군가가 앉아있었다는걸 이제야 알아차렸다. 조금 더 보고 있자니 시야에 들어오는 건 새하얀 백발을 검은 리본으로 그러모으고 옆엔 달빛을 받아 더욱이 푸르게 빛나는 뿔을 가진 누군가의 옆모습이었다.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그 모습에 불현듯 아까 전에 있었던 일이 스쳐 지나간다.


평상시와는 조금 다른 하루였다. 단순한 위험 야생동물 토벌 따위가 아닌 제국군에 포로로 붙잡힌 사람들을 구출하는 임무에 투입되었다. 마도성 프라이토리움에 한 번 잠입해본 경험이 있는 베아트리체 랄과 윤로가 모험가 소대 대장으로 차출되었으며 그 외에도 여럿 모험가들이 투입되어 작전에 나섰다.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에 최전방에 섰던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으나 빨리 빠져나오라고 했던 그녀의 조언을 무시하고 한명이라도 더 구하려 들어 안으로 깊게 파고든 게 문제였다. 아차 싶었을 땐 누군가에게 맞아 제압당했고 그대로 지하감옥에 끌려갔었다.

털썩, 철커덕, 바닥에 살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작은 감옥에 울린다. 윤로가 바닥에 엎어진 자세 그대로 앓는 소리를 내며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는 동안 등 뒤에서 매정한 철문이 굳게 닫혀 잠긴다. 깜깜한 방 안에서 한숨을 푹 쉰다. 무리하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철수하라고 경고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사람들은 잘 빠져나갔을까, 자신은 살아나갈 수 있을까. 구하러 와줄까. 춥다. 무섭다. 등등. 사람은 한 번 생각하면 그 고리를 쉬이 끊기 어렵다고 했던가. 작은 감옥 안에 잡힌 그가 꼭 그랬다. 그는 구석에 있는 힘껏 몸을 웅크리고 빠져나가는 온기와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버티고 버텼다.

깊은 상념에 빠져 눈을 감고 있는 윤로의 두 귀로 낮은 소음이 들려온다. 별거 아니겠거니 싶었던 소음은 점차 커지고 커지다 이내 비명과 여러 명의 뜀박질 소리로 변한다. 그가 의문을 채 표하기도 전에 

'쾅'

굉음이 울리더니 사이렌 소리가 사위를 감싼다. 그 사이로 탁탁탁, 신발굽 같은 것이 바닥을 박차고 달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갇혀있는 감옥 문을 두어번 쾅쾅 걷어찬다. 어안이 벙벙해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문고리가 있는 쪽이 부서지며 문이 거세게 걷어차이듯 열린다. 문 너머로는 긴 코트를 걸친 사람이 있었다. 한 손에는 긴 창을 들고.


그래, 꼼짝없이 죽겠다 싶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구하러 왔다. 새카만 옷을 입고 손에는 제가 선물한 창을 든 단 한 사람이.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희미하다. 둘이 제국군의 시설을 돌파하고 저 사람이 자신의 손을 잡고 몰 볼들 사이로 뛰어들었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거기서부턴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필시 정신을 잃었을 테니. 그래도 눈을 뜬 게 감옥이 아닌 이불과 침대 위이며 옆에 그녀가 있단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무사히 도망쳤단 뜻이니까. 피딱지가 지고 말라 부스러진 입술 사이로 나지막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베아."

그가 작게 소리 내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그녀는 뒤를 돌아본다. 달빛을 받아 선명하게 빛나는 하얀 안광. 역광을 받아 새카맣게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 속에서 빛나는 눈을 마주치면 아까 전 자신이 갇혀있던 감옥의 문을 부수고 들어오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어두운 감옥 안에서 마주 봤던 짐승과도 같던 밝은 눈. 흐릿한 시야로 그녀를 멍하니 보고 있자 나지막하지만 고저 없는 목소리가 직격으로 꽂힌다. 

"내가 적당한 선에서 빠지라고 했죠."

적당히 빠지라니. 말이야 쉽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와는 달리 자신은 최전방에서 파티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모든 공격을 받는 사람인데. 그럼 다들 다치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갈 때까지 버텨야 하는 건데. 하지 말라는 짓을 골라선 한 건 이쪽이지만 억울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눈을 굴려 시선을 피하자 베아트리체가 한숨을 쉬며 보고 있던 책을 덮는다. 그러곤 그대로 뻗어져 오는 손에 그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려도 무르는 것 없이 이마에 손을 댄다. 잠시의 침묵이 지나고 그녀는 치유술은 자고 일어나면 마저 걸어달라 부탁해야겠다는 등, 의학적인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손을 거둔다. 덮어놨던 책을 품에 안고는 가보겠다며 몸을 일으키는 그녀의 옷자락을 남자는 콱 움켜쥔다. 앞으로 나아가던 그녀는 막아서는 작지만 정확한 힘에 멈칫 몸을 멈춘다. 뒤를 돌아보는 얼굴엔 의문이 가득하다.

"?"

"아, 그게..."

막상 잡아놓고 할 말이 없어 손을 천천히 놓자 그를 베아트리체는 멀거니 바라본다.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고 그녀가 한숨을 푹 쉰다. 그가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손을 잡고 떼어낸다. 저도 모르게 귀가 쳐지려는 찰나 그녀가 침대 옆에 있던 소파에 책과 겉옷을 벗어 올려놓는다. 그러곤 구두까지 벗어 가지런히 침대 옆에 두곤 남자 옆에 낑기듯 눕는다. 그가 당황스러워 눈을 도르륵 굴리자 팔을 뻗어 남자를 끌어안는다. 베아의 품에 안긴 윤로가 고개를 살짝 들어 위를 쳐다봤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새카만 밤 사이로 푸른 저녁 빛이 들어오고 그 사이에 흰 안광과 푸른 눈이 서로를 바라본다.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한다.

"같이 자달라고 붙잡은거 아니에요?"

"에?"

"아니어도 귀찮으니 그냥 자죠."

"?????"

"어차피 이대로 혼자 두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면서 밤새도록 자기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다 또 컨디션 조절 못할 거잖아요. 아닌가?"

".....어-....."

"그러니 얌전히 자요."

베아는 제 할 말만 하곤 눈을 감는다. 그러곤 얼마 되지도 않아 곤한 숨 소리를 내며 잠들어버렸다. 뭐라 할 새도 없이 잠이 드는 그녀를 보며 윤로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만다. 자신에 비해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느끼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이토록 제멋대로 구는 사람이 아닌데. 어지간히 힘들고 피곤했구나 싶어져 조금 움직일 수 있는 몸을 움직여 편히 잘 수 있게 자리를 잡아주곤 어둠 속에서 그녀를 빤히 바라본다.

같이 모험가의 신분으로 작전에 참가했지만 그녀와 자신은 전혀 다르다고 윤로는 생각했다. 자신에게 단신으로 구하러 올 수 있냐 묻는다면 아니라 답할 것이다. 민필리아를 구하러 갈 때처럼 소규모 인원으로 갔을 테다. 그런데 그녀는 단신으로 왔다. 무모하지만 강한 힘을 가지고 단호하게 행동하는 그녀만 할 수 있는 행동. 자기에게 뭐라고 하면 안될 만큼 그녀도 무모했다. 자칫하면 둘 다 갇힐 수 있었고 어떤 꼴을 당했을지 모른다. 그럴 수 있는데 자기한테만 화내다니 억울한 마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구하러 와줬다. 그녀 혼자 온 것에는 이유가 있을 테다. 포로 구출 작전을 하러 왔는데 다시 한명을 구하러 들어가는 건 큰 리스크다. 다들 구하러 가냐 마냐로 이야기할 때 그녀 혼자 뚫고 들어왔을 것이다. 아마 화를 내면서 바보 같다고 욕했을 수도 있지.

그래도

"고맙습니다."

구하러 와줬다.


잡담


연성 정리하다가 예전에 그린 그림이랑 눈 마주쳐서 끄적이는 글... 생각해보니 냑자님이 종변해서 남콧으로 돌아온 김에 후다닥 갈기는게 답이다

남의 집 냑자 탐내지 말아라 이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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