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x인어
제드론다
w.혜월
푸른 바닷물이 넘실대는 모습이 한 눈 가득 보이는 바다 절벽 위에서,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나는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그 풍경이 참으로 좋았다. 새파란 바다와 푸른빛 하늘이 맞닿는 것도 좋았고, 주홍빛 바다와 황홀한 저녁놀이 만나는 그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경이다. 새카만 바다와 마찬가지로 까만 하늘 양 쪽에 뜨는 하얀 달도 좋았고, 햇빛을 가득 머금은 바다와 밝게 빛나는 하늘이 좋았다. 그 경계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싶은 그 기분을 어찌 설명할까.
오늘은 밤하늘을 구경하러 나온 길이었다. 하늘 가득 은하수가 수놓아진 광경은 바닷속 은빛 모래보다도 더 반짝거리고 선명했기에 홀린듯이 볼 수 밖에 없었다. 달은 바다에도 떴지만 해수면에 일렁이는 달이 아닌 완전한 형태의 달은 볼 수 없었다. 하얗고 둥근 달이 마치 진주와도 같았기에 저런 진주가 있다면 저가 항상 들고 다녔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에. 바로 근처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세상에! 하늘에 정신이 팔려서 인간이 오는 줄도 몰랐다니! 아주 오랜 시간 인간의 방문이 전혀 없다시피 했던 해변가였기에 방심했다 생각하며 황급히 바다로 몸을 던졌다. 어쩐지, 그 인간이 저를 부른 것만 같았다.
며칠이 지난 후, 나는 다시금 그 바닷가를 찾았다. 비록 인간이 한 번 찾아왔었지만 하늘을 구경하기에 그보다 더 완벽한 장소는 찾기 힘들었기에 돌고돌아 다시 이곳을 찾아왔다. 검은 하늘이 모든 것을 뒤덮은 시간이 아닌, 붉은 노을이 이 세상을 적시는 시간이라는 것에 위안삼으며.
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붉디붉은 노을이 지나가면 곧 분홍빛과 보랏빛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 황홀한 광경이 하늘을 가득 매울 때면 그곳이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어린 인간들이 잘 때 듣는다는 동화 속의 한 장면인 것 같이. 어미의 따뜻한 품과 같이.
그렇게 붉은 노을이 끄트머리를 남겨 둘 때 쯔음엔 나는 그 광경에 홀려 모든 신경이 하늘에만 가 있었다. 그래, 누군가 제게 가까이 오는 줄도 모르고.
해의 끄트머리 마저 자취를 감추고 온 하늘이 분홍색과 보라색으로 범벅이 되었을 때 겨우 주위를 볼 수 있게 됐고, 제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놀라 황급히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곳에, 언제 여기에? 대답이 없을 물음을 머릿속 한 가득 띄워두고서 그를 응시하니, 다시금 정신이 팔릴 수 밖에 없었다.
달빛과 같은 은잿빛 황량한 색의 머리카락이 황혼의 빛에 오묘한 빛을 띄었고 새하얀 피부는 인간의 살갗 중에서도 특히나 부드러워 보였다. 그 안에 반듯한 이목구비 중에서도, 에메랄드빛 바닷물을 부어놓은 듯 푸르른 눈동자는 어쩜 그리도 아름다운지 하루종일 보고 있더라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오롯이 너만이 보이고 오롯이 너만 느낄 수 있었다. 너의 깜박이는 눈짓까지도 모든 것이 기적을 보는 것만 같아서.
저도 모르게 뻗은 손끝이 너의 눈가에 닿기 직전, 너의 머리카락이 손끝에 스쳐 느껴진 부드러움이 너무도 생소해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흠칫, 손을 물리고서 도망치듯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그날 밤, 이 해변을 찾아온 인간은 저인간이었을까?
그렇게 다시 닿을 수 없을 물음이 다시 한번 제 속으로 삼켜지기를 한달이 지났다. 그 후로 몇번을 그 해변가에 나가도 인간의 머리카락 한올도 볼 수 없었다. 마치 그 날이 꿈인 것 마냥, 한번 오면 다시는 똑같은 모양을 볼 수 없는 파도마냥, 너는 그렇게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제 호기심은 점점 쌓여가서 너에 대한 부스럼만 가득 남게 되었다.
손 끝에 스친 부드러움 뿐만 아니라 그 부드러웠던 머리카락을 한가득 제 손에 쥐어보고 싶었다. 뽀얗던 그 피부를 더듬고, 제 피부와 맞닿아 보고 싶었다. 인간은 따뜻하다고 했다. 그 인간 또한 따뜻했을까. 그 눈을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 눈에, 그 머리카락 만큼이나 어여쁜 달이 떠있을까. 너는, 누구였을까.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이 물거품 마냥 저 위로 부유하다 결국은 사라지는 것 처럼 결국 사라져만 갔다. 그런데 참 웃기지, 어째서 그럴 수록 점점 그 인간이 더 선명히 기억에 새겨지는 걸까. 잠깐 본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만큼 온 생각이 너로 차올랐다.
그렇게, 몇날며칠이 어영부영 흐르고. 해수면을 유유히 떠다니며 하늘을 구경하다 어느순간, 뒷목을 타고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떠야한다는 강렬한 느낌이 제 전신을 지배했고, 빠르게 물 밑으로 헤엄쳤다. 하지만... 너무 늦었던 것일까.
목을 강하게 옥죄는 덫이 느껴졌다. 거센 물거품이 일었고, 결국 불친절한 공기를 한껏 맞으며 제 몸은 선박 위로 끌려나올 수 밖에 없었다. 저를 끌어올린 인간들은 하나같이 욕망 가득한 얼굴로서 나를 물건보듯이 내려다봤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모욕감과 수치스러움, 억울함과 비참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상품마냥 제 몸은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수조에서 수조로 옮겨지며 반항을 하면 할수록 수조는 그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제 몸에는 이것저것 화려한 장신구가 걸쳐졌다. 저의 자랑인 황금빛 꼬리에 하늘하늘한 프릴이 둘러지고 목에는 목줄마냥 목에 딱 붙는 목걸이가 걸쳐졌다. 작은 상의로 가슴만을 겨우 가릴 수 있었고 헤엄치기 힘들 정도로 나풀거리는 반투명한 천을 제 몸에 걸쳤다. 온 몸이 장식마냥 빛났고, 저 자신은 눈요기거리가 되었다.
저를 사가려는 사람은 많았고, 나는 그저 제 한 몸 지키기 위해 발악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점점 더 저를 옥죄는 사슬같은 장신구들과 몸을 움직이는 것 조차 힘든 크기의 수조였다.
" - 오늘의 최상급의 상품이죠! 저희 상단 최고의 상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육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저 깊은 해저에 사는 아름다운 반인반수! 통칭, 인어 되겠습니다! "
그렇게, 나는 상품이 된 채 무대위로 올랐다. 하나같이 다 화려한 가면을 쓰고서 저를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저를 보는 저 욕망 가득한 눈들을 보라. 이 얼마나 더럽고 추접한가. 무대위에 오른 순간부터 쭉 환호성과 함께 기분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20만 골드! "
" 30만! "
" 50만!... "
경매가 열린 순간부터 나의 몸값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고 있고, 너나 할 것 없이 팻말을 들며 목청 터져라 돈을 외쳐댄다.
점점 난 지쳐갔고, 모든 것이 지겨웠다. 사람을 피해 도망다니며 하늘과 해수면을 구경하고 결국 이렇게 잡혀 수조 안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해 버린 이 모든 일련의 시간들이 너무나도 환멸이 났다. 저를 바라보는 저 더러운 눈들에, 제 몸을 욕심내어보자 하는 저 더러운 손들에, 저를 사고자 혈안이 된 저 치들에 나는 결국, 체념해버린 것이다.
다시는 하늘을 보지 못하겠지, 다신 오만가지 색으로 반짝이는 해수면을 보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단 하나만. 단 하나만을 추억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때 그 저녁의 그 하나만을...
" 천만 골드요! "
가장 높은 값이 나온 듯, 시끄럽게 돈을 높여가던 인간들은 어느순간 조용해졌고, 사회자는 낙찰여부를 묻고 있었다. 낙찰자가 될, 내 몸을 사갈 인간의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욕망이 그득 들어차있었다. 아, 정말 끝이겠구나. 이 모든 광경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카운트다운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모든 소음이 뚝 멎으며, 한 목소리가 이 공간을 파고들었다.
" 5천만 골드. "
앞선 단위들을 생각하더라도 꽤나 굉장한 액수가 나왔다. 잔잔하면서 또렷한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서 팻말을 들고있는 인간을 찾았다. 관객석의 가운데에, 이 무대가 제일 잘 보일 법한 자리. 즉, 나도 굉장히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은 인간은 은은히 웃고 있었다.
검은색의 단순한 가면 밑에서, 별처럼 반짝 빛나는 눈은. 언젠가 본 적 있던 에메랄드 빛 바다같은 색이었다.
" 5... 5천만 골드! 5천만 골드에서 더 없으십니까!!! "
사회자의 흥분한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귀에 들려왔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너만이 보였다. 검은 색의 정장을 입고 있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눈에 띄는 너는, 나와 마찬가지로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세상에 둘만 있는 느낌. 그래 이 느낌은...
" 낙찰! 낙찰되셨습니다!!! "
그때 그 노을이 지던 해변가 암초절벽이었다.
w.노아
큰 상단의 아들 제드 D. 모리샤x인어 류아 N. 이크론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랬다. 원하는 건 모두 가질 수 있었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억지로 떠받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거대한 상단의 주인이었고, 나는 그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그것은 우리 상단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는 약간 기뻐했던 것도 같다.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에. 그래도 적어도 어머니의 기일 날 만큼은 그 큰 상단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역시 사랑하던 마음이 있기는 있는가 보구나, 옅은 생각이 흐릿하게 지나갔다. 하지만 그런 자신은 정작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는데. 오히려 아버지는 이런 자신을 보며 괜찮다고, 칭찬했다. 어느 점이냐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고통스럽다. 예전에 상단에서 돈을 한가득 들고 도망친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을 위해서, 결혼 하고 싶다는 이유였다고 했다. 사랑 때문에 고작 그런 일을 한다는 게 믿기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그래도 역시, 공감은 할 수 없었다. 아마 그 점이 아버지가 나를 가장 크게 아낀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 내가 처음 밖에 떠돌아다니게 된 계기는 사랑과 비슷했다. 자유라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을 때, 그 때 나는 이것이 사랑과 비슷함 감정이라고 느꼈다. 아무리 거대한 상단이라고 해도 그것은 심적의 거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 속은 꽉 닫혀 있고, 그 무엇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가업 비밀이라고 자신에게조차 제대로 말하지 않던 아버지의 마음을 점차 커가며 이해했다. 주변 상단들이 하는 것들만 봐도 대략 그랬다. 서로 웃으면서 칼을 들이미는 거랑 무엇이 다를까. 자신이 더 대단하다고 경매를 붙인다. 높은 가격을 따내면 그들이 이긴 것이다. 우리 상단은 지금까지 그런 것에 거의 지지 않았지만, 여하튼 재미없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하는 것은 밤이 다 되어가는 저녁에 밥도 먹지 않고 나와 근처의 커다란 항구에서 좀 더 걸으면 있는,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바로 근처에 바다가 있단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용하는 것은 오직 항구 뿐, 바다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크고 넓게 펼쳐진 바다를 해수욕장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기는 해수욕장인가? 어느새 근처의 선박들이 내는 빛이 겨우 보일 정도로 멀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해수욕장이라고 하기엔 모래가 없었다. 돌 무더기 아래에 파도치는 바다가 보일 뿐이었다. 그래, 여기는 절벽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크고 넓게 펼쳐진 바다인데. 집에 가서 서적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필요를 느꼈다. 흥미로움을 느끼며, 암초와 바위들 사이를 뛰어넘어 바다 가장 가까이에 갔다. 바닷물은 닿으면 옷의 상태가 좋지 않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언뜻 걱정했지만, 썩 나쁜 일은 아니지 않나 싶어서 슬쩍 옷에서 눈을 돌렸다. 바다의 어두움 사이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본 것도 같았다. 착각인가, 혹은 물고기인가. 하지만 황금빛의 물고기를 본 기억은 없는데.
약간 떨려오는 마음 한 편으로 무언가 소문을 기억해냈다. 인어. 그들은 아름답다. 빛이 나는 꼬리는 다양한 색으로 반짝이고, 바다 속에서 그 무엇보다 아름답게 유영한다. 조용한 바닷속은 그들의 사는 장소이고, 사람이 함부로 들이밀 수 없는 곳에서 그들은 살아간다. 인어에 대해 자세하게 탐구한 서적은 없었지만, 자잘하게 들려오는 풍문은 대략 그랬다. 그 인어는 분명 비싼 값에 팔리리라.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아서, 어쩔 수 없는 대 상단의 아들로써 심장이 뛰었다. 쿵쿵 거리는 심장 속에서 그 인어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앞서서, 소용돌이치는 것 같은 어두운 바다에 발을 들이밀었다. 손에 꽉 쥔 신발은 설레이는 감정과 바닷바람을 따라 흔들렸다. 무릎을 넘는 바닷물은 차가웠으나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반짝이던 그것을 쫓은 결과는 작은 해안가였다. 절벽이 점점 낮아진 모양이군, 흐릿한 생각 끝에, 드디어 그것을 만났다. 그것이라고 하기에는 아름다운 빛무리 같아 보여서 잠시 침묵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윗옷을 벗어 발을 닦아 신발 속에 발을 넣었다. 제대로 닦이지 않은 발과 신발이 썩 기분 좋지 않게 맞닿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인어의 옆까지 다가갔다.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인어는 아무것도 몰랐다. 순진한 어린애와도 같이. 문득 그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금빛의 지느러미는, 그 꼬리는 가끔 바닷물과 만나 움찔거리며 흔들리고, 그 꼬리만큼이나 유연한 머리카락은 간간이 바람과 함께 흔들리며 새하얗고 뽀얀 피부를 들췄다. 인간의 피부라고 하기에는 등허리부터 비늘로 빼곡하니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 허튼 생각 속에서 얕게 끓어오른 뜨거운 무언가가 작게 숨으로 토해졌다.
젠장, 그것이 실수였다. 인어는 곧장 바다를 향해 뛰어들어, 순식간에 그 황금빛 몸을 이끌고 사라져갔다. 손을 뻗어 그 인어를 부르고자 했지만, 그 무엇도 알지 못했다. 인어, 라고만 메아리치는 입 속 이야기는 차마 뱉을 수 없었다. 밤 하늘이 은색 비늘마냥 빛났다. 인어가 보고 있던 것은 달이었나 별이었나. 정작 자신이 본 것은 그 인어의 뒷모습 뿐이었는데, 다시금 끓어오르는 가슴 속 답답함이 약간 더운 무언가로 바뀌었다. 성욕인가, 인어는 유해한걸까.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음에도 그런 모습이 자신을 흥분시켰다. 고양감으로 가득 차오른 지금, 그 인어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집으로 돌아온 후에 옷가지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바닷물을 흠뻑 머금은 옷은 재활 불능이라고 적힌 것처럼 쪼그라들고 마르면 마를수록 하얀색의 얇은 바스라기들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 나는 어떤가. 커다란 욕조에 가득 물을 채우고 그 속으로 깊게 들어갔다. 과연 나는, 그 인어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것을 사랑이라 불러도 괜찮은 것인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욕조 안으로 머리 끝까지 밀어넣었다. 그 인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몸이 더워졌다. 마악 아침 동이 트는 것처럼 밝은 금빛의 머리카락과, 그보다 더 황홀하게 만드는 그 지느러미가 아름다웠다. 새하얀 피부가 한 번이라도 건들면 그대로 자국이 남아버릴 것 같았다. 세게 쥐면 물거품이 될 것 같고, 마치 물이 되어 녹아버릴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인어를 만난 순간부터 집에 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 바다에 가면 다시 그 인어를 만날 수 있나? 아득한 감정이 저 멀리서 그 파도처럼 가득 차올랐다.
며칠 내내 그 장소 근처를 맴돌았다. 오지 않는걸까. 모호한 생각 끝에 일찍 자리를 뜨려고 했다. 실제로 바다를 뒤로 하고 일직선으로 걸어가는 중이었지만, 하지만, 무언가 그럴 수 없게 막았다. 마지막으로 돌아본 바다가 붉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발에 씁쓸한 웃음을 짓고 잠시 그 아름다움에 취하기로 했다. 붉은 노을이 바다 저 멀리에서 빛났다. 그리고 그 순간,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더 이상 자신의 눈에는 해 따위나 노을 따위가 들어오지 않았다.
곧장 다시 돌아갔다. 그 바다를 향해서. 그 똑같은 자리에 앉아 점점 사라져 가는 해를 보는 인어를 향해서. 점점 어두워지는 세상에 감탄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친 지느러미를 쉬러 오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해가 사라지고, 하늘이 다른 색이 되었다는 것은 인어의 지느러미가 덜 빛나는 것을 보고 예상했다. 황금빛은 아름답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본 금색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고작 황금 따위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금이었다. 내 생에 잡을 수 없는 금이었다.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는 그 푸른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밤인데 밤인 것 같지 않았다. 보석을 닮았지만 저런 완벽한 파란색을 띄는 보석은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상단이라고 하고, 보석을 아무리 근처에서 볼 일이 많았다고 해도 자신은 그래봐야 고작 작은 상자 속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얼마 되지 않는 보석을 모아둔 상자를 바라보며 이것이 전부라고 여기던 꼬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파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꼈다. 그것은 결코 인간이 아니었다. 고작 인간이라는 틀 안에 가두기에 그 외모는 너무나 훌륭했다. 인간의 언어로 할 수 있는 온갖 표현을 가져다 쓴다고 해도 모자라겠지.
황홀경 속에 들어간 것 같았다. 오로지 자신만을 담은 그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일종의 쾌감과도 같았다. 저 아름다운 눈 안에 자신 말고 비춰지는 것이 없기를 바랐다. 그와 함께 제게 다가오는 그 손길이 두렵지 않았다. 만약 살의를 품고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 끝에 살짝 닿은 네 손가락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그 손을 잡기 위해 손을 올렸다. 그 손은 차가울까? 혹은 거칠까? 아니면 내 생각대로 보드랍고 투명하며 따스한 걸까. 바다 속에 있음에도 차가운 기운이라고는 하나 없을 것 같던 그 인어의 모습이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임을 느꼈다.
흠칫, 손을 거두고 곧장 바닷속으로 뛰어든 인어. 한참을 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날 본 인어가 지금의 인어였다는 것은 사실일테다. 저 인어 혼자 살고 있는걸까? 손이 닿았던 머리를 감싸쥐었다. 소중해져버렸다.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한 그 인어가.
거기서 대체 뭐하고 있는거냐!
저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미 인어는 간 지 오래인데. 왜인지 인어를 걱정하게 되었다. 집에 들어서자 마자 아버지는 내게 소리쳤다. 도대체 무얼 하는 거냐고. 매일 밤 늦게 들어와서 입었던 옷은 바다 향을 그대로 품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러고 보니 요즘 상단의 일에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확실히, 일도 공부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울분이 터질 만도 하다. 딱 하나 있는 아들이 대를 잇지 않으면 이 거대한 상단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죄송하다는 어설픈 사과와 함께, 모호한 웃음을 지어보이고 그 인어를 떠올렸다. 과연 어떻게 되는걸까. 혹여 사람에게 들키진 않았을런지.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는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한 번 생긴 갈증이나 가려움처럼, 계속해서 생각났다. 날을 세는 것만큼 무의미 한 일은 없다고들 하지. 실제로 그랬다. 머릿속으로는 그로부터 이십 몇 일 정도가 지났음을 알고 있지만,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 않았다.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 오로지 집에서 공부를 하고, 상단에 나가 아버지를 도와 직접 거래를 했다. 인어를 만났다는 것은 오직 내 기억 속에만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대략 그렇지. 일부로 그 바다를 두 번 다시 찾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차오르는 강렬한 욕망은 그 인어를 한 번만 만지고 싶다는 욕구였다. 절대 놓을 수 없는 그 욕구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었다.
딱, 한 번이었다. 한 번만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만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 고작 삼주였다. 삼주만에 의심이 지워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인간은 어리석고, 욕심하며 욕망한다. 인어는 인간에게 속박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집 안에 있는 모든 서적을 뒤져 인어에 대해 알고자 했고, 아버지는 그런 나에 대해서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챘던 모양이었다. 내가 나가는 모든 곳에 사람을 붙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인어라는 존재는 그렇게 소소해 보이면서도 그렇지 않다. 확실한 돈벌이인 것이었다.
고생했다. 여기가 바로 그 인어가 산다는 바다구나.
네 덕분에 우리 상단은 다시 한 번 명성을 크게 높일 것이다.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전해주길 바란다.
아버지와 간간이 교류를 하던 상단이었다. 우리 상단이라고 하기에는 다르다고 생각한 순간, 뒷목에서 아릿한 기분이 느껴지고, 순식간에 눈 앞이 점멸하다 결국 어두워졌다.
내가 눈을 떴을 때에 보인 것은 익숙한 천장이었다. 언제나 내가 잠을 자고 공부를 하는 나의 방. 그 방의 침대 위에서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창 밖에서 어슴푸레 떠오르는 해를 보았다. 이미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곧장 자리를 박차고 큰 망토를 두르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문제가 생겼다. 인간의 욕심은 결코 믿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 그렇게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말이어서는. 입 안 가득 욕을 뱉으며 그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바다에 도착하지도 않았음에도 불안감이 맞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바다 위를 크게 떠다니는 거대한 선박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 끝부터 저 끝까지. 보이지도 않게 거대한 덫을 치고 있었다. 티나지 않도록 바다 그 깊은 곳을 시작으로.
바다 속을 지배한다던 인어는 약했다. 한낱 덫에 걸려 물거품과 함께 고통을 내질렀고, 그대로 위로 끌어올려져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더 이상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모멸감과 멸시를 아버지에게 그대로 느꼈다. 고작 인어 따위에게 마음을 빼앗겼느냐. 그런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결국 나에게 거대한 상단을 맡기기 위해 내가 원하는 정보를 주리라는 것을. 내가 미쳐서 자결이라도 하면, 이 상단은 결국 끝이니까. 푸슬푸슬 흘러나오는 웃음이 결국 내가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이 말이냐.
그 날의, 그 밤의 인어 말고 제가 원하는 게 또 달리 있을 것으로 생각하시는 건가요?
내가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알겠느냐.
아버지가 모르시면 누가 알겠습니까.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것이 너를 망치는 결과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말하겠느냐.
말하지 않아서 망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입니까?
아니,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너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아무것도 관심이 없던 그 어린 너로.
아니요. 절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인어를 쫓아서 영영 눈 앞에서 볼 수 없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면 어서 정보를 주십시오. 그 인어는 제게 필요합니다.
하, 어찌 이런 미련한 놈이 되었느냐.
원래 그랬습니다. 이제서야 더 잘 보이게 되신 모양입니다. 이제서야 아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시는 것입니까?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아버지께서 상단을 이끄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거 말고 내가 관심을 가질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네 어미조차 살아 남지 못한 이 세상에 내가 지킬 것이 더 이상 무엇이 있겠냐는 말이다.
그 어머니를 닮은 제 얼굴이라도 지켜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토록 사랑해 머지않던 어머니를 닮은 저를요. 처절하게 망가져가는 어머니를 보고 싶은 것입니까?
아주 못하는 말이 없구나. 어디서 그런 버르장머리가 생겼느냐?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아니면 도대체 또 누구에게 배울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빠르게 세상이 돌았다. 철썩, 하고 큰 소리가 들렸다. 분명 정면에 보였던 것이 왼쪽으로 가 있었다. 아마 내 고개가 오른쪽으로 돈 탓이리라. 시뻘겋게 달아오른 뺨이 느껴졌다. 아프다는 감각 또한 있었다. 아버지가 분노했다는 사실도 이해했다. 그러나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 인어를 다시 한 번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가라.
아직 정보가 없는 것으로 알고, 빠른 시일 안에 준비해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나가라고 했,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호탕한 웃음이 자신도 모르게 나올 뻔 해서, 애써 입을 꾹 막았다. 비웃는 것처럼 입꼬리가 비대칭으로 올라갔다.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일까. 모호한 감각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금 그 날 밤의 푸른 눈을 떠올렸다. 그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다. 크게 뛰었던 심장을 다시 마주하고 싶었다. 그 때는 정말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익힐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오늘 밤, 암시장 뒷골목의 가장 큰 천막. 암호는 세이렌.
내가 허락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 인어를 데리고 온다면, 이 상단을 제대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내 아내를 빼닮은 모습으로 추태는 용서하지 않겠다.
이번 일이 끝나면 두 번 다시 그런 짓은 용납하지 않는다. 제대로 상단 일을 공부해야 할 것이다. ]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은 맞다는 것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결국 인어는 암시장에 들어섰나. 오랜만에 경매에 참여하겠구나. 상단의 아들이 굳이 경매에 설 이유는 없었던 탓에 경매에 대한 것은 아버지가 하도록 대략 내용이나 구성만 알고 실제로 경매장에 들어서지는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인간들의 추악함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장소가 그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아서 굳이 발걸음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래 전에 갔던 이유는 최소한 상단을 끌기 위해 경매장의 방법 정도는 익히고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방침이었다. 이제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아버지는 사실 썩 나쁜 사람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많은 것을 가르쳤다. 자식이니 뭐니 관심이 없다는 것만 빼면,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족애라는 게 대체 언제 느낀 감정이었던가. 흐릿한 감각 사이에서 가면과 정장을 준비했다.
아아, 다들 준비 되셨는지요! 오늘은 가히 특별한 상품이 마지막에 준비되어 있으니, 아무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도 그 자리를 지키셔야 할 겁니다!
가볍게, 첫 번째 상품인 이 오래된... ......
궁금하지 않았다. 오래된 골동품이니 도자기이니, 전 세계에 하나 있는 오르골이니 뭐니. 내가 원하는 것은 분명 마지막의 그 특별한 상품에 있을 것이었다. 다른 자들과 썩 다르지 않겠지만, 홀몸에 깔끔하게 맞춰진 검은 정장과, 마치 유리나 도자기와 같은 깔끔함을 자랑하는 검은색의 가면은 아주 단순해보이면서도, 다른 자들의 튀는 가면과는 완벽하게 달랐다. 경매장의 분위기에 녹아들면서도 사실상 가장 보이지 않을 위치에 있는 나는, 주변 사람들의 진한 향수 향과 몇 번이나 드는 자신의 자리를 표하는 번호판들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이것을 과연 가만히 보고 있는 게 맞는걸까. 그러면서도 이 한 자리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뒷자리의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결코 자리를 뺏길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이 번호판을 뺏으면 경매에 참여하고, 특급 상품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 그렇겠지. 고작 상급 상품 따위와 달랐다. 최상급, 가히 특급을 뛰어넘는 그 상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한정 되어 있었다. 우선적으로 번호판을 받은 사람, 그래, 아버지가 알려주신 그 암호를 부른 사람에게 그 상품을 보고 값을 매길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모조리 이 천막에서 나가주어야 한다. 값을 매길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 암호는 이 상단에서 아주 특별한 몇 인물들에게만 말하는 암호, 그리고 그들에게 인정받은 몇 사람에게 추가적으로 말해질 뿐. 그 외는 선착순으로 우연하게 자리를 차지한 사람일 뿐이었다.
...... 오늘의 최상급의 상품이죠! 저희 상단 최고의 상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육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저 깊은 해저에 사는 아름다운 반인반수! 통칭, 인어 되겠습니다!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너를.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가 오히려 고양감을 만들었다. 이들의 더러운 욕망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자신이 고결하다거나, 순수한 사랑을 위해서 그 인어를 찾는 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추잡하고 경박스러운, 그리고 무엇보다 고작 그 아름다운 인어의 가치를 저렇게 낮추어 부르는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20만 골드!
아니, 30만!
50만!
그 고상한 입들에 재갈을 물리고 싶었다. 고작 그 가격이 다인가 싶었다. 저 황홀한 외모에 오히려 그것을 방해하는 이상한 장신구 따위를 매고, 아무것도 필요없는 그 몸에 이상한 천조각을 두르고, 당연지사 그 거대한 바다를 누빈 몸을 적어도 움직일 수는 있도록 커다란 수조를 준비해 두었어야지.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 저 곳에서 저 인어를 데리고 나와야했다. 그 장신구나 작은 수조에서 멍하니 지쳐버린 인어는 아름다웠다. 그 무엇도 하고 있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다 죽어가고 있었지만, 아무 문제 없었다. 그럼에도 나를 황홀경에 몰아넣은 그 외모는 변하지 않았고, 아무리 수척하다고 하지만 그 금색의 빛나는 지느러미와 푸른 눈동자는 변함이 없었다.
천만 골드요!
다들 잠잠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게 사람들에게 있어 인어를 마주하기 위해 낼 수 있는 최대의 가격이라는 말인가? 사회자는 고작 이 가격에 낙찰을 하라고 하고 있는 것인가? 적어도 내가 생각한 이 인어의 최소 가치는,
5천만 골드.
웃음이 흘렀다. 고작 천만을 부르짖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천만을 넘을 수 있는 가격을 가진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드디어 마주할 수 있다. 동경 혹은 애정, 사랑. 그 즈음 어딘가의 감정을 마음 속에 품고 인어를 보았다. 우연일까 아니면 정말일까. 눈이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동감 넘치는 그 두 눈동자가 나를 기억하는 것처럼 요동쳤다.
5... 5천만 골드! 5천만 골드에서 더 없으십니까!!
아름답구나. 이것이 진정한 미라고 부를 수 있는 거구나. 아무리 더러운 나락의 수렁에 빠지고 구렁텅이에서 목이 옥죄여 있어도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하고 진정한 미라고 부르는 것이구나. 사회자의 목소리 따위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많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박차고 뛰어나가 너를 한 번이라도 안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날 나의 머리카락을 스친 그 손가락에 한 번 입을 맞추고 싶다고 생각했다.
낙찰! 낙찰되셨습니다!!!
이제 드디어, 너를 마주할 수 있겠구나. 오로지 둘만 보이는 이 시끄러운 세상이 가소로웠다. 나에게는 이제 너가 있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무대 가운데에 사회자를 뺴면 홀로 나와 지느러미를 조금씩 떨고 있는 너는, 아름다웠다.
그 밤에 보았던 네 눈동자는 변하지를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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