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레피리오, 제드론다, 휴아여월

인간x인어

제드론다

복지사업 by 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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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닷물이 넘실대는 모습이 한 눈 가득 보이는 바다 절벽 위에서,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나는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그 풍경이 참으로 좋았다. 새파란 바다와 푸른빛 하늘이 맞닿는 것도 좋았고, 주홍빛 바다와 황홀한 저녁놀이 만나는 그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경이다. 새카만 바다와 마찬가지로 까만 하늘 양 쪽에 뜨는 하얀 달도 좋았고, 햇빛을 가득 머금은 바다와 밝게 빛나는 하늘이 좋았다. 그 경계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싶은 그 기분을 어찌 설명할까.

오늘은 밤하늘을 구경하러 나온 길이었다. 하늘 가득 은하수가 수놓아진 광경은 바닷속 은빛 모래보다도 더 반짝거리고 선명했기에 홀린듯이 볼 수 밖에 없었다. 달은 바다에도 떴지만 해수면에 일렁이는 달이 아닌 완전한 형태의 달은 볼 수 없었다. 하얗고 둥근 달이 마치 진주와도 같았기에 저런 진주가 있다면 저가 항상 들고 다녔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에. 바로 근처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세상에! 하늘에 정신이 팔려서 인간이 오는 줄도 몰랐다니! 아주 오랜 시간 인간의 방문이 전혀 없다시피 했던 해변가였기에 방심했다 생각하며 황급히 바다로 몸을 던졌다. 어쩐지, 그 인간이 저를 부른 것만 같았다.


며칠이 지난 후, 나는 다시금 그 바닷가를 찾았다. 비록 인간이 한 번 찾아왔었지만 하늘을 구경하기에 그보다 더 완벽한 장소는 찾기 힘들었기에 돌고돌아 다시 이곳을 찾아왔다. 검은 하늘이 모든 것을 뒤덮은 시간이 아닌, 붉은 노을이 이 세상을 적시는 시간이라는 것에 위안삼으며.

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붉디붉은 노을이 지나가면 곧 분홍빛과 보랏빛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 황홀한 광경이 하늘을 가득 매울 때면 그곳이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어린 인간들이 잘 때 듣는다는 동화 속의 한 장면인 것 같이. 어미의 따뜻한 품과 같이.

그렇게 붉은 노을이 끄트머리를 남겨 둘 때 쯔음엔 나는 그 광경에 홀려 모든 신경이 하늘에만 가 있었다. 그래, 누군가 제게 가까이 오는 줄도 모르고.

해의 끄트머리 마저 자취를 감추고 온 하늘이 분홍색과 보라색으로 범벅이 되었을 때 겨우 주위를 볼 수 있게 됐고, 제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놀라 황급히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곳에, 언제 여기에? 대답이 없을 물음을 머릿속 한 가득 띄워두고서 그를 응시하니, 다시금 정신이 팔릴 수 밖에 없었다.

달빛과 같은 은잿빛 황량한 색의 머리카락이 황혼의 빛에 오묘한 빛을 띄었고 새하얀 피부는 인간의 살갗 중에서도 특히나 부드러워 보였다. 그 안에 반듯한 이목구비 중에서도, 에메랄드빛 바닷물을 부어놓은 듯 푸르른 눈동자는 어쩜 그리도 아름다운지 하루종일 보고 있더라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오롯이 너만이 보이고 오롯이 너만 느낄 수 있었다. 너의 깜박이는 눈짓까지도 모든 것이 기적을 보는 것만 같아서.

저도 모르게 뻗은 손끝이 너의 눈가에 닿기 직전, 너의 머리카락이 손끝에 스쳐 느껴진 부드러움이 너무도 생소해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흠칫, 손을 물리고서 도망치듯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그날 밤, 이 해변을 찾아온 인간은 저인간이었을까?


그렇게 다시 닿을 수 없을 물음이 다시 한번 제 속으로 삼켜지기를 한달이 지났다. 그 후로 몇번을 그 해변가에 나가도 인간의 머리카락 한올도 볼 수 없었다. 마치 그 날이 꿈인 것 마냥, 한번 오면 다시는 똑같은 모양을 볼 수 없는 파도마냥, 너는 그렇게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제 호기심은 점점 쌓여가서 너에 대한 부스럼만 가득 남게 되었다.

손 끝에 스친 부드러움 뿐만 아니라 그 부드러웠던 머리카락을 한가득 제 손에 쥐어보고 싶었다. 뽀얗던 그 피부를 더듬고, 제 피부와 맞닿아 보고 싶었다. 인간은 따뜻하다고 했다. 그 인간 또한 따뜻했을까. 그 눈을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 눈에, 그 머리카락 만큼이나 어여쁜 달이 떠있을까. 너는, 누구였을까.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이 물거품 마냥  저 위로 부유하다 결국은 사라지는 것 처럼 결국 사라져만 갔다. 그런데 참 웃기지, 어째서 그럴 수록 점점 그 인간이 더 선명히 기억에 새겨지는 걸까. 잠깐 본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만큼 온 생각이 너로 차올랐다.

그렇게, 몇날며칠이 어영부영 흐르고. 해수면을 유유히 떠다니며 하늘을 구경하다 어느순간, 뒷목을 타고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떠야한다는 강렬한 느낌이 제 전신을 지배했고, 빠르게 물 밑으로 헤엄쳤다. 하지만... 너무 늦었던 것일까.

목을 강하게 옥죄는 덫이 느껴졌다. 거센 물거품이 일었고, 결국 불친절한 공기를 한껏 맞으며 제 몸은 선박 위로 끌려나올 수 밖에 없었다. 저를 끌어올린 인간들은 하나같이 욕망 가득한 얼굴로서 나를 물건보듯이 내려다봤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모욕감과 수치스러움, 억울함과 비참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상품마냥 제 몸은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수조에서 수조로 옮겨지며 반항을 하면 할수록 수조는 그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제 몸에는 이것저것 화려한 장신구가 걸쳐졌다. 저의 자랑인 황금빛 꼬리에 하늘하늘한 프릴이 둘러지고 목에는 목줄마냥 목에 딱 붙는 목걸이가 걸쳐졌다. 작은 상의로 가슴만을 겨우 가릴 수 있었고 헤엄치기 힘들 정도로 나풀거리는 반투명한 천을 제 몸에 걸쳤다. 온 몸이 장식마냥 빛났고, 저 자신은 눈요기거리가 되었다.

저를 사가려는 사람은 많았고, 나는 그저 제 한 몸 지키기 위해 발악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점점 더 저를 옥죄는 사슬같은 장신구들과 몸을 움직이는 것 조차 힘든 크기의 수조였다.

" - 오늘의 최상급의 상품이죠! 저희 상단 최고의 상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육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저 깊은 해저에 사는 아름다운 반인반수! 통칭, 인어 되겠습니다! "

그렇게, 나는 상품이 된 채 무대위로 올랐다. 하나같이 다 화려한 가면을 쓰고서 저를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저를 보는 저 욕망 가득한 눈들을 보라. 이 얼마나 더럽고 추접한가. 무대위에 오른 순간부터 쭉 환호성과 함께 기분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20만 골드! "

" 30만! "

" 50만!... "

경매가 열린 순간부터 나의 몸값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고 있고, 너나 할 것 없이 팻말을 들며 목청 터져라 돈을 외쳐댄다.

점점 난 지쳐갔고, 모든 것이 지겨웠다. 사람을 피해 도망다니며 하늘과 해수면을 구경하고 결국 이렇게 잡혀 수조 안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해 버린 이 모든 일련의 시간들이 너무나도 환멸이 났다. 저를 바라보는 저 더러운 눈들에, 제 몸을 욕심내어보자 하는 저 더러운 손들에, 저를 사고자 혈안이 된 저 치들에 나는 결국, 체념해버린 것이다.

다시는 하늘을 보지 못하겠지, 다신 오만가지 색으로 반짝이는 해수면을 보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단 하나만. 단 하나만을 추억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때 그 저녁의 그 하나만을...

" 천만 골드요! "

가장 높은 값이 나온 듯, 시끄럽게 돈을 높여가던 인간들은 어느순간 조용해졌고, 사회자는 낙찰여부를 묻고 있었다. 낙찰자가 될, 내 몸을 사갈 인간의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욕망이 그득 들어차있었다. 아, 정말 끝이겠구나. 이 모든 광경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카운트다운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모든 소음이 뚝 멎으며, 한 목소리가 이 공간을 파고들었다.

" 5천만 골드. "

앞선 단위들을 생각하더라도 꽤나 굉장한 액수가 나왔다. 잔잔하면서 또렷한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서 팻말을 들고있는 인간을 찾았다. 관객석의 가운데에, 이 무대가 제일 잘 보일 법한 자리. 즉, 나도 굉장히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은 인간은 은은히 웃고 있었다.

검은색의 단순한 가면 밑에서, 별처럼 반짝 빛나는 눈은. 언젠가 본 적 있던 에메랄드 빛 바다같은 색이었다.

" 5... 5천만 골드! 5천만 골드에서 더 없으십니까!!! "

사회자의 흥분한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귀에 들려왔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너만이 보였다. 검은 색의 정장을 입고 있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눈에 띄는 너는, 나와 마찬가지로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세상에 둘만 있는 느낌. 그래 이 느낌은...

" 낙찰! 낙찰되셨습니다!!! "

그때 그 노을이 지던 해변가 암초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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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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