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탐차] 단편 - 만나기 전의 둘(?) - 1
차검과 배변호사 단편의 프리퀄이긴 한데,
살짝 설정이 바뀐 점은 그냥 대충 그러려니 해주세욬ㅋㅋㅋ
그땐 프리퀄 같은걸 쓸줄은 몰랐지..
아 글쎄 내가 얼마 안남은 이 황금연휴에 고작 이런 곰팡내 나는 지하 술집에나 끌려와야 겠느냐 짜증내던 현은, 어쨌거나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들어가보자 달래는 이가 밀어놓은 문을 어깨로 기대며 안을 향했다. 어서오란 환영의 인사 대신 나즈막히 웅웅대는 소음 속엔, 오래된 시간에 섞인 목재와 알콜향이 흘렀다.
노란색 조명이 바테이블을 따라 취향껏 주문한 술을 앞에 두고 앉은 사람들 머리 위로 동그랗게 흔들렸다. 뒤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양주 컬렉션의 종류와 가짓수는, 그 앞에 서서 묵묵히 쉐이커를 흔드는 바텐더의 절도있고 부드러운 동작이 의미하는 바를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꽤 하는데.
- 봐. 괜찮지? 차검도 맘에 들어 할거라니까
- 술은 우리집에도 많거든
- 아이- 풍류를 아는 차검이 왜이러실까.
- 풍류는 지랄. 그래서, 너 혼자 2세 이름까지 지었다던 여잔. 여기있어? 오늘같은 날 이런데 와있는 불쌍한 인생이면 뭐 알아볼만 하다만.
- 말조심해라 너. 그 귀엽고 아리따우신 분 존함은,
- 안궁금하고. 있냐고 여기
암만 분위기부터 컬렉션까지 그럴듯하게 맘에 들었대도 여기 오래 있을 생각은 딱히 없었다. 그러는 쟤도 내가 여기 오래 있길 바래서 데리고 온건 아니겠지. 현과 그의 지랄맞은 성격탓에 하나 달랑 남은 동기 동재는 꽤 알아주는 콤비였다. 여자 취향이 꽤나 그럴싸한 카사노바 동재와, 남녀를 불문하고 이쁘면 일단 꼬셔보는 현. 둘 다 외모는 꽤나 수려한 편에 속했으나 그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 경쟁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겹치는 시장의 플레이어 둘에게 극적타협을 끌어냈다. 아 진짜 이쁜데. 난 별로래. 너라면 먹힐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식의 대국적 결의.
헉 야 있다있어. 오셨어..! 뭐 언제봤다고 존칭까지 써가며, 쩌-어기 혼자 계시다는 분을 손짓하는 동재의 시선을 쫓았다.
야. 존나 이쁘잖아...?
- 나 이제 여기도 그만 와야되려나봐요.
한숨 섞인 투정을 뱉으며 턱을 괸 반대편 손으로 동글동글한 양송이와 올리브를 번갈아가며 포크로 쿡쿡 뒤적인 타미는, 쫓아드려요? 웃으며 비어있는 물잔을 채우는 바텐더에게 고갤 흔들어보였다. 나만 손님인가 뭐.
그냥 주기 같은게 아닐까. 타미는 생각했다. 사내새끼들 그 가운데 달린거에 숙주가 되가지고는 단순하고 멍청하게 구는데 짜증을 견딜 수 없는 사이클. 그러는 주제에 거들먹 거리면서 헛소리나 해대는 말주변에 필요이상으로 과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시기. 말하자면 지금은 아주 질리다 못해, 어쩌면 이대로 영원히 수절을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티비 속에 작대기 같은게 왔다리 갔다리 하는거나 먼 발치에서 응원하는 이모팬이 되는 쪽으로 미래를 그리는 쪽에 가까웠다.
심지어 이동네에 XY 염색체들이라곤, 하나같이 자기의 그 비대한 에고가 가득 담긴 명함을 들이밀며 되도 않는 수작질을 부리고는 했다. 나는 니 반대편에서 너와 니 영혼까지 부숴버리는 쪽에 희열을 느끼는 변호산데. 말도 섞고 싶지 않아 소속된 로펌의 로고가 박힌 명함을 껴둔 휴대폰 케이스를 뒤집어보이면, 곱게 떠나는 쪽은 그나마 양반에 속했다. 뭐 브랜드 아파트 이름을 들먹이면서, 날 때부터 귀족임을 어필하는 등신들에겐 참을 수 없는 살의를 느끼곤 했으니.
그러는 와중에 타미가 찾아낸 이 아늑하고 작은 아지트는 아무래도 이 법조단지 반경을 아슬하게 걸쳐 있어서인지, 혹은 바깥에서 보기에는 허름하고 없어보이는 외관 덕택인지. 내세울거라곤 집안과 직업뿐인 등신들의 끝없는 헛소리보단, 보석금은 할부론 안되는지. 구금된 동안 견인된 차는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뭐 그런 고민들이 더 잦았다. 이쪽은 참신하기라도 하지. 운좋게 호갱님이라도 구하면 더 좋고.
그러던게, 어디서 말쑥한 쓰리피스 정장을 갖춰입고 앞머리 한오라기 삐쳐나올거 없이 넘긴 느끼한 애가, 이곳을 찾을 때마다 시야에 얼쩡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타이핀에 커프스까지. 과하다 못해 이정도면 설정 오류로 생긴 버그가 아닐까 싶은 정도로 법전 냄새 폴폴 풍기는 샌님이 자꾸만 이쪽을 흘끗댈 때부터 타미는 내심 글렀다 싶었다. 여기도 이제 끝났구나. 저런것들은 하나가 오면 꼭 줄줄이 알사탕으로 비슷한 부류를 끌어들이곤 했다. 와글와글 모여서 자기들의 별 같잖고 지 고추같이 쬐끄만 공을 사정없이 외쳐대면서 건배를 부르짖는 그런 부류. 그러면서 흘끔흘끔 개기름 낀 이마에 핏줄까지 서가지고 시뻘건 눈가를 찢어가며, 그 배경에 혹하는 여자애 하나 옆구리에 끼고 갈 생각만 하는 좆같은 애들.
- 안녕하십니까
- 아뇨
- ....네?
- 안녕 못해요.
- 아....타미씨 안녕 못하시군요. 네. 그럼 제가 그 안녕을 도모하실 수 있도록 한 잔 사도-
-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요?
- 그 휴대폰...명함에.
하-핫. 웃으면서 비실비실 눈가를 만지작댄 이가 타미의 옆 바테이블에 팔꿈치를 기대었다. 아님 더 분위기 좋은덴 어떠신지. 간드러지게 살랑대는 말투도 뭣 같은데, 검지 첫마디로 보란듯 벤츠로고가 박힌 차키를 흔들어보이는건 그 상투적인 몸짓만큼이나 들숨과 날숨에도 일상적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내 차는 마세라틴데 이 병신새끼가.
- 됐구요. 명함 보셨음 아실만큼 아실텐데. 가시던길 가시고, 음주 후에 운전하실 생각이면, 보신 명함 한장 꺼내드리구요.
- 아~ 걱정! 감사드립니다 타미씨. 굳이 그렇게 번호 주실거 없이-
은근슬쩍 꿋꿋하게 테이블 정면을 향하고 있던 타미의 어깨와 등 사이 어디쯤에 손을 기대고 느물거리는 시점, 선을 넘은 그 시점에, 누르던 짜증의 폭발로 발끈. 자릴 박찼던 타미는 튀어든 물방울에 눈을 깜박였다.
- 가라잖아. 말 못알아들어? 가던 길 가라고.
타미의 왼쪽 어깨쪽, 그러니까 이 샌님이 오른쪽에서 왈왈대는데 곤두선 신경 덕분에 전혀 의식하지 못하던 쪽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인영이 비워진 물잔을 바닥에 툭툭 털어냈다. 뭘 꼬나봐. 대갈빡에 이것도 꼽아줘야 갈래? 이 정도 거친 입담은 그럭저럭 흔한 편에 속하는 곳일진 몰라도, 그 외엔 모든 것이 카테고리 불명에 속하는 이를 응시했다. 건달이라기엔 꽤나 단정한 옷차림도, 옆에서 느물대던 남자와 비견해도 밀리지 않게 훤칠한 키도, 화장기 없는 맨얼굴 같은데 입술만 새빨간 것도. 뭣보다.....여잔데?
- 저기...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제가 알아서-
- 넌 뭔데, 레이디랑 대화중인거 안 보여? 싸가지 없는 새끼. 난 여자라고 안 봐주거든?
뭐라고 이 미친놈이..? 당황한 타미가 말릴새도 없이 옆에 비딱하게 서있는 여자의 멱살을 그러잡았던 막돼먹은 설정오류남은 다음순간 바닥을 굴렀다. 그것도 말도 안되게 소란스럽게. 반바퀴 쯤을 날아서. 우당탕- 의자들 사이로 처박히며.
- 더할래? 더할거면 밖으로 나가고.
여전히 짝다리를 짚고 팔짱을 낀 현의 뒤에서 안절부절 아니 저기, 두 분 이러실게 아니라. 당황한 타미에겐 보이지 않을 방향에서 현은 두 손가락을 가슴팍 앞쪽으로 모아, 아이고- 과장되게 신음하며 찡긋 윙크를 날리는 동재에게 오케이 신호를 보냈다. 땡큐- 어 간다. ㅇㅇ 담주에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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