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내리는 저택

IF. 학교괴담

1차 HL 자캐 CP 주현여루

건조한 공기가 실내를 바싹 태웠다. 시계 초침이 째깍거리며 돌아갔다. 교실에 혼자 남은 인영이 흠칫, 몸을 떨었다. 권여루는 지금 교실에 우두커니 혼자서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에는 달이 맺혔고 별이 빛을 흘리는 시각. 떨어진 별빛은 지상에 안착하지 않고 지평선 너머 어딘가로 사라지길 반복했다.

밤하늘이 제게로 떨어지는 걸 지켜보던 소녀는 초조한 듯 입가를 앙다물었다 풀었다. 왜인지 목이 바싹 말랐다. 교실 안이 겨울처럼 싸늘했다. 지금은 여름인데.

어느새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소연이가 언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방과 후, 모두가 귀가한 늦은 저녁. 경비실 수위 아저씨가 순찰 중에 교실에 혼자 남은 여학생을 보고는 왜 아직도 집에 안 갔느냐 말을 걸었는데. 여학생이 다리가 없어서 못 간다며 달려들어 기절해버렸다는 그런 괴담.

혼자 남은 자신을 보니 그런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지만 나는 다리가 있는데. 내 의지로 집에 돌아갈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은 귀신이 아닌 사람이다. 수위 아저씨한테 달려들지도 않는다. 권여루가 ‘평범한 학교생활’에 필사적인 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유소연일 것이다.

째깍째깍─

시계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목이 너무 타는 바람에 칼칼하고 통증마저 느껴졌다. 침을 억지로 삼켜보았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어디선가 분필이 칠판을 두드리는 환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나밖에 없는데. 낮에 들었던 소리를 뇌가 기억하고 반추하는 것일까. 여루는 기다리는 이가 빨리 오기를 바랐다.

“언제 오지.”

한숨을 내쉬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때였다.

 

드르륵─

예고 없이 교실 미닫이문이 열렸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어깨를 크게 움찔하고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소음이 난 곳에 향했다. 사위가 어두운 탓에 누구인지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았다.

“...누구야?”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분명 누군가 교실 문을 열고 그 앞에 서 있었는데 반응이 없었다. 긴장으로 목이 계속 탔다. 이제는 피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코끝에서 쇠 비린내가 미약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여루는 다시 물었다.

“누구야. 주현이야...?”

“...”

불린 게 제 이름인 마냥 인영이 몸을 움직여 천천히 여루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이상하게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다리가 묶인 것마냥 움직일 수가 없어 도망갈 수도 없었다. 아니, 도망...? 그런데 내가 왜 도망을 가야 하지. 저건 채주현 맞잖아? ...맞잖아.

시계 초침 소리가 폐를 찔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이 통증으로 욱신거렸다. 세 걸음을 남기고 그림자가 멈춰 섰다. 딱 세 걸음. 그 거리였다. 그런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달빛을 역광으로 맞고 있어서 그런가. 여루는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드르륵. 쇠로 된 의자 다리가 나무 바닥에 끌려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달라진 시야에 사위가 어둠 속으로 침수했다. 눈을 감았다.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다시 눈을 천천히 뜨고 이미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가 앞을 더듬었다. 그림자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주현아.”

“응.”

“아깐 왜 대답 안 했어. ...놀랐잖아.”

“미안.”

어두운 홍채를 품은 눈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눈웃음을 그린다. 내가 아는 소년이었다. 채주현이 맞았다. 안심한 여루는 한숨을 폭 내쉬고 그에게 괜히 웃으며 다가갔다.

“너 학생회 들어갔다며. 그래서 이 시간까지 남은 거야?”

“응. 선도부.”

“근데 선도부가 지금까지 남을 필요가 있나...?”

그렇게 따지자면 자신 또한 이 시간까지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지만, 여루는 그에게로 의문을 넘겼다. 주현은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었다.

“이제 갈래? 같이 가자. 나 어차피 이제 집에 가려고 했거든.”

“여루야.”

“응?”

“교실에 혼자 남은 여자애 괴담, 알고 있어?”

“...”

다리가 없어서 집에 돌아가지 못한 여학생.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녀를 보지도 않았다.

아니, 볼 수가 없었다. 그 여학생은 다른 세계에 속한 존재였으니까.

여루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웃으며 대답했다. 입가가 파르르 경련하는 것도 모른 채.

“알지. 근데 그게 왜?”

“여자애가 나타나기 전에는 항상 시계 소리가 크게 들린대.”

째깍, 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귀신이 근처에 있는 거래.”

째깍─

“귀신이 입으로 초침 소리를 내는 거거든.”

째깍. 뚝.

시계 소리가 멈췄다. 여루는 창가 벽 위에 높게 매달린 시계를 돌아봤다. 오전 2시 정각. 시계가 멈춰 있었다.

“시계가...”

“멈췄네.”

주현이 여루에게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낮게 읊조렸다.

“여기엔 귀신이 없나 봐.”

“......”

누군가 키득거리는 비웃음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누구지? 이 교실에 우리 말고도 누가 더 있나? 온몸에 오싹하게 소름이 돋았다. 귀신이 없다고 했는데,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한 건, 교실의 시계가 멈췄는데도 초침 소리가 나고 있었다...

“주, 주현아.”

“응.”

“빨리 가자.”

“집에 갈까?”

“으응.”

밤의 학교는 꽤 무섭네. 여루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처럼 가볍게 말을 던졌다. 겁을 먹지 않았다는 티를 온몸으로 내고 있었다. 주현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잔잔하게 웃고는 손을 잡아 이끌었다. 맞잡은 손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가자. ‘우리 집’으로.”

달이 졌다. 구름에 가려진 달빛이 교실 안을 어둠으로 깊게 채우기 시작했다. 빛이 없기에 그림자 또한 없었다. 낮 동안 반사된 소리들이 조금씩 교실 내부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분필을 탁탁 두드리는 소리, 아이들의 한숨 소리, 에어컨의 백색 소음,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 샤프를 바닥에 떨어트리는 소리.

교실 안은 여전히 텅 비어있었다. 그 가운데 누군가 중얼거렸다.

“언제 오지...”

집에 가지 못하는 여학생이 한숨처럼 그 한마디를 흘렸다. 그림자가 없는 존재가 누군가가 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째깍째깍. 입에서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벽에 걸린 시계는 여전히 멈춘 상태였다. 곧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여학생은 책상 위에 엎드렸다. 의자 아래쪽은 짙은 어둠으로 자욱했다.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달은 다시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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