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초라한,
고백도, 프러포즈도.
꽤 오래 고민했던 것 같다. 같이 살면서도, 함께 잠들고 함께 일어나면서 아침을 먹고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그렇게 늘 계속될 것만 같은 일상을 보내면서도, 영원을 약속하는 것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이 삶의 동반자가 되자고 아주 오래 전 부터 약속했으면서 어떤 사회적 계약으로 얽매이는 것을 그가 원할지, 혹은 그저 이름 없는 관계를 원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나는 언제나 그를 원했고, 그가 나를 원한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그것에 꽤 자신없어했다. 확실히 낭만이 뭔지 어릴 적 배운 적은 없다.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더 로맨틱한 말들을 준비했었던 것 같은데, 막상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물었을 때 내 머릿속이 하얗게 날아가 그 전에 마련해둔 말들은 전부 날아간 것처럼, 나는 사랑의 표현이든 달콤한 말든이든 간에 너무나, 너무나 서툴렀다! 어떤 것은 표현하는 것 조차도 두렵고, 그저 내가 삐끗 잘못했다가는 날아가버릴 작은 새 마냥, 나는 이 관계를 정말로 조심스럽고 또 아주 섬세하게만 다뤄왔다. 실망시키는 것 보다는 소심하게 삐쭉대는 게 낫다는 결론이었으므로, 언제나…
그러나 내 고백이 엉망진창으로 터져나온 엉터리였을 때 부터 알아봤어야 하는거지만, 나는…
어느날 맑은 산토리니의 여름날이었다. 햇살은 눈부셨고, 에스체트는 문득 ‘이보다 더 나은 날은 없을 것 같다’ 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들이 계속될까? 약간의 불안과 함께 (늘 있는 일이다) 하루가 시작됐다. 그 어느 날 보다도 더 완벽한 날이었다. 이 날 보다 더 아름다운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날이었다. 산토리니는 늘 아름다웠지만, 에스체트는 왜인지 오늘따라 더 아름다워보이는 섬을 둘러봤다.
인심 좋은 야채가게 사장님이 주신 잘 익은 토마토로 오늘은 라따뚜이를 해볼까. 소스를 잔뜩 끓여서…
“그러고보니, 같이 사는 사람이랑은 결혼한거죠?”
“네?”
“아, 아직 아니우? 요즘 젊은 이들은 참… , 에구, 실례, 그럼 무슨 사이요?”
그 야채가게 사장님 앞에서 네, 그냥 사귀는 사이입니다, 하고 나온 에스체트는 떨떠름했다. 무슨 사이냐고? 사귀는 사이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동반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도 아마도… 아마도? 나는 아직도 확신이 없구나. 그럼 누구에 대한 확신이 없는 걸까. 퀴빌라에 대한, 아니면…
그를 믿지 못하는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조심스러운걸까?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갔다. 토마토를 썰어서 냄비에 넣다가 손을 베이기 직전까지 말이다.
“에스, 괜찮아? 조심해. 손 다칠 뻔 했잖아. 손 이리 줘 봐.”
그 순간이었을까. 그와 결혼해야겠다고, 오랜 생각을 굳힌게?
떨떠름한 표정에 퀴빌라는 걱정하는 듯 보였고, 에스체트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횡설수설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오늘 이 토마토를 사러 갔을때 말이야. 야채가게 사장님이 그러더라. 너랑 내 사이 말이야.”
“응,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퀴빌라. 나, 있지, 오랫동안 생각했어. 그러니까… 혼자 생각해서 미안해. 나만 확신하고, 나만 앞서가는 거 같아서… 어쩌면 네가 이런 걸 원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법적인 뭐… 복잡한 이야기같은 거 있잖아… , 그런데, 나… 너, 너를… 아니, 너와… 결혼하고 싶어. 네 남편이 되고 싶어. …그러니까…
말이 둑 터져나오듯 터져나왔고… 아, 망했다. 대체 라따뚜이를 하다가 프러포즈를 하는게 뭐지? 적어도 반지와 근사한 시간들을 보내다가, …제기랄, 젠장, 망할 멍청이…
그리고 그제서야 눈을 마주한다. 아마도 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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