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이드리스가 8살 생일을 맞이하기 한 달 전인 1938년을 배경으로 한 드림 서사 글입니다. 드관 캐릭터를 빌려주신 유엘 님과 카렌 님께 감사드립니다.
멜로우(Mellow) 저택의 아침은 여느 때보다 분주했다.
영문도 모른 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이드리스는 비몽사몽한 얼굴로 어머니의 애정이 어린 빗질을 받으며 4월의 캘린더를 펼쳤다. 1부터 30까지 나열된 숫자 칸들 중 별 모양으로 강조되어 있는 한 부분을 유심히 바라보던 이드리스는 고개를 돌려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오늘이 무슨 날이던가요? 제 여덟 번째 생일은 다음 달이잖아요."
그 말을 들은 멜로우 부인은 딸의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빗던 손을 멈추고는 살포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고는 이드리스와 눈을 맞추며 상냥하게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이리드(Irid). 오늘은 교류회에 가서 너의 약혼자를 만나게 될 거란다."
"약혼자요?"
"그래, 너와 혼약하게 될 블랙 군 말이야."
"맞다! 잊고 있었어요..."
잊고 있었다니, 할머님께서 들으시면 뒤집어지시겠는걸. 멜로우 부인은 후후 웃더니 다시 빗을 똑바로 잡고 사랑스러운 딸의 머리를 땋기 시작했다.
"장신구 색은 어떻게 하겠니?"
"연분홍이랑 은색이요!"
이드리스의 눈동자는 약간의 분홍빛을 띠는 밀색이었기 때문에 탁월한 선택이었다. 은색도 섞여 있어 살구보다 연하지만 산뜻한 색상. 무엇보다 반곱슬의 백밀발과 잘 어우러져 귀여운 들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너무 예쁘다. 처음 보는 남자에게 넘기기에는 너무 아까운걸."
"히히, 엄마도 참."
이드리스는 어머니의 칭찬에 어린아이다운 순수한 미소를 띠다가도 걱정거리라도 있는 듯한, 어딘가 어두워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멜로우 부인은 이드리스의 극단적인 표정 변화에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 ··· 리스 언니는 정말 같이 못 가요?"
이드리스의 친언니 아이리스 멜로우는 블랙 가문 막내아들의 약혼자 후보들 중 한 명이었으나, 몇 년 전 원인을 알 수 없는 지병을 앓게 되어 약혼은 자연스레 물거품이 되었다. 앞으로의 생사 가능성조차도 알 수 없는 이를 블랙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치유사로부터 앞으로 반년 동안 약을 꾸준히 먹고 안정을 취한다면 완벽히 치료 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이 들려온 참이었지만, 블랙의 약혼자가 될 기회는 이드리스에게 돌아간 지 오래였다. 이러한 어른들의 속사정을 열한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말했다가는 상처만 입히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쭉 비밀로 하고 있었지만.
"네 언니는 아직 몸이 아프잖니."
"그렇지만 언니도 또래 친구를 만난다면 분명 좋아할 텐데."
"리스는 앞으로 반년만 있으면 엄마랑 이리드처럼 강해질 거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푹 쉬어야지."
"네에···. 그러면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만 하고 올게요."
"나 여기 있어, 이리드."
어디에선가 뿅 나타난 어린 소녀는 부드러운 백발에 푸른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목구비는 그녀의 여동생 이드리스와 똑 닮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둘이 자매라는 것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 듯하다. 한창 병을 앓았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는 얼굴로 씩씩하게 동생을 배웅할 수 있게 되어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니!"
아이리스는 제 동생이 쪼르르 달려오자 살포시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이제 슬슬 나가야 할 시간이라며 등을 살며시 밀어주었다.
"어서 다녀와, 이리드. 난 아버지와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한참을 망설이던 이드리스는 아이리스가 자신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자 그제야 곧 돌아올게. 라며 인사를 한 후 어머니와 함께 방문을 나섰다.
교류회장에 들어서자 이드리스 또래의 아이들이 제법 보였다. 이드리스는 아이리스와 사촌들을 제외하면 그녀 나이대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주위를 탐색하였다. 친구 열 명은 만들고 돌아가겠어. 이드리스는 굳은 다짐을 했지만 멜로우 부인에게는 바짝 긴장된 모습으로 보인 듯했다.
"긴장되니, 이리드?"
"아뇨! 즐거워 보이는 걸요."
멜로우 부인은 이드리스가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자 혹여 불안하기도 한 건가 걱정되는 마음에 물어보았지만 정작 그녀의 딸은 마냥 해맑은 듯 활짝 웃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총총 걸어갔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사교성이 좋은 건지. 이드리스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자 웃음을 띠우며 그녀의 손을 이끌었다.
"블랙 가문에서 오신 분들은 저곳에 계시는구나."
이드리스는 블랙... 이라고 작게 읊조리며 얌전히 어머니께 손을 맡겼다. 저 멀리 부부로 보이는 어른 둘과 남매로 보이는 아이들이 보였다. 저곳에 내 약혼자도 있겠지? 마음이 붕 뜨는 느낌이 들어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으나, 조부모님께서 예의를 갖추라고 신신당부하셨던 것이 생각나 발걸음을 평소보다 늦추며 최대한 우아하게 보이도록 차분히 걸어갔다.
아직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가 우아함을 흉내 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멜로우 부인은 웃음을 참기 위해 입꼬리에 힘을 주려고 애써야 했지만.
그녀는 발랄하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천방지축 아가씨였으나, 집안 어른들께 배운 예의범절이 몸에 익었는지 실전에서는 능숙하게 임할 수 있었다. 부모님보다 엄격해 보이는 블랙 부부가 눈앞에 보이자 긴장했지만, 곧바로 그녀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공손하게 꾸벅 인사했다.
블랙 부부도 방금 전보다 누그러진 눈빛으로 이드리스의 인사를 받아 주고는 옹기종기 서 있던 아이들에게 눈짓하며 무언가의 신호를 보냈다. 모두 밤하늘과 흑단 같은 머리카락과 귀족 태가 묻어나오는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기에 그들이 남매라는 것은 이드리스 같은 어린 아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듯했다.
"장녀 발부르가 블랙이란다. 잘 부탁해."
"넌 멜로우였던가? 나는 알파드 블랙이야."
··· 다들 미남 미녀구나. 어린 아이는 미인을 좋아한다더니, 이드리스는 멍하니 그들의 얼굴에 집중하느라 아직 이름을 모르는 인물이 남아있다는 것을 잊을 뻔했다. 가장 끝 쪽에 서있던 그는 세 남매 중에서 가장 어려 보였으며, 얼핏 보면 이드리스와 동갑인 것 같았다. 이왕이면 친구였으면 좋겠다···. 이드리스는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드리스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든 말든 눈도 깜빡하지 않고 있다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자로 잰 듯한 각도로 손을 내밀었다.
"시그너스 블랙이다. 알다시피 얼마 전에 너와 약혼하게 되었고. 동갑이니까 편하게 말 해도 괜찮아. ··· 앞으로 잘 부탁한다."
시그너스라고 이름을 밝힌 소년은 앞서 소개받은 알파드와는 달리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이드리스는 약혼자와 만나게 된 것이 마냥 반가운 지 주눅 드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상대 쪽이 악수를 청해준 게 고맙고 기쁜 듯 해맑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저는 이드리스 아이린 멜로우예요. 잘 부탁해, 약혼자. 시그너스라고 불러도 되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한 후, 마찬가지로 손을 뻗어 시그너스의 악수를 받아주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눈을 마주했다.
밤하늘에 수 놓여 있는 별을 연상케 하는 은회색 눈은 무척 아름다웠다. '블랙' 이라는 가문의 이름과 대조되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드리스가 지금까지 , 그리고 앞으로 평생 마주하게 될 수많은 눈동자들 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일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
시그너스는 이드리스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제 눈만 뚫어져라 쳐다보자 멋쩍어하며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언제 놓을 생각이지? 라고 묻고 싶은 듯 눈썹을 미세하게 올리며 약혼자에게 눈짓했다. 멍하니 있던 이드리스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시그너스의 손을 놓아주었다.
"미안, 네 눈동자가 너무 예뻐서."
"···?"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약혼자의 뻔뻔스러움에 시그너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블랙 가문의 일원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밝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에 대한 칭찬은 귀가 닳도록 들어왔고, 동시에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일 정도로 빠져들어온 상대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고맙다."
시그너스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경직된 표정으로 짧게 대꾸했다. 당혹스러웠던 건 사실이었지만 칭찬은 칭찬이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는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예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한다는 것도.
"네 눈동자도 그래."
"예쁘다고?"
"···그래."
살포시 웃으며 예쁘게 눈꼬리를 접는 이드리스를 보니 시그너스는 제가 한 말이 빈말이 아니라 사실이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옅은 살굿빛의 눈동자는 천진난만했고 감정이 풍부했으며,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왔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누군가는 '사랑스럽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문득 들었다.
한차례 정적이 흘렀다. 알파드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또 다른 검은색 머리 소녀를 불러세우고는 가까이 와보라는 듯 손짓했다. 이드리스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소녀는 이드리스와 시그너스보다 키가 컸으며, 알파드의 또래로 보였다.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드리스는 그녀를 또다른 블랙으로 잠시 착각할 뻔했지만, 소녀의 눈동자는 검붉은 장미 또는 사과의 색을 띠우고 있었다. 수려한 얼굴과 흰 피부까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조부모님 몰래 들려주신 머글 동화 「백설 공주」의 주인공과 똑 닮은 것 같아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차가워 보이는 눈빛에 혹여 자신이 너무 빤히 바라봤나 싶어 작게 죄송해요. 라고 작게 중얼거리고 조심스럽게 올려다보았다. 다행히도 소녀의 표정은 알파드에게 불러세워졌을 때보다는 확연히 풀려 있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말렴."
귓가에 들려오는 친절한 어조에 이드리스는 한순간에 긴장이 풀리고 말았다.
"··· 책에 나오는 공주 같아서 예뻐요."
아, 이놈의 입. 어른들께 '하고 싶은 말만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시그너스에 이어서 처음 보는 상대에게 이상한 말을 해 버렸다.
"고맙구나."
역시 다정한 사람이었구나, 싶은 마음에 이드리스는 맑게 웃어 보였다. 이참에 자기소개까지 해 보자는 근거없는 용기마저 가슴속에서 튀어나왔다.
"저는 이드리스 멜로우예요."
"나는 스칼렛. 레이시 스칼렛이야."
"나랑 약혼한 사이지."
중간에 알파드에 끼어들었음에도 레이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잘 부탁드려요, 레이시!"
"그래. 잘 부탁한다. 그래도 여기서 보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거야."
이드리스는 궁금해하면서도 실례가 될까 일부러 묻지는 않았다. 다만 아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는지 레이시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언젠가 호그와트에서 볼 수 있을 거란다. 나도 아직 입학하지 않았지만. "
"아직 멀었네요···. 저는 다음 달에 아홉 살이 되거든요."
레이시는 이드리스의 축 처진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 그렇다면 대신 종종 편지를 보낼게. 그래도 괜찮겠니?"
"그럼요!"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지금은 볼일이 있거든."
"네, 또 뵈어요!"
레이시는 그제야 활짝 웃는 이드리스에게 작게 인사를 하고 저벅저벅 걸어갔다. 이드리스는 제 또래 아이들과 만나게 되어 기쁜 듯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흔치 않은 기회니까 돌아다니면서 얼굴들 많이 익혀 둬. 너와 같이 입학하게 될 애들도 꽤 있을 걸?"
알파드가 잔뜩 들떠있는 이드리스에게 긔띰하자 시그너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작게 까딱였다. 발부르가가 다녀오렴, 이라고 읊조리자 이드리스는 아쉬운 듯 고심하다가 교류회장에 들어와서 한 결심 - 친구는 최소 열 명 만들기- 을 떠올리고는 그들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럼, 또 만나요. 시그너스도."
약혼자와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해본 게 마음에 걸린 듯 미련있는 얼굴로 마지막으로 한 번 뒤돌아보더니 다시 사뿐사뿐 걸어갔다.
"··· 시그너스. 네 약혼자, 생각보다 재밌는 애네."
"그러게 말이야."
재밌다기보다는 특이하다는 게 맞는 표현 같지만. 생각보다 발랄했던 약혼자와의 첫만남을 뒤로하고, 시그너스는 짧은 감상평을 남겼다. 뒤돌아 걸어가는 이드리스가 들을까 봐 굳이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
짧고 굵었던 블랙 남매와의 교류를 끝마친 후, 이드리스는 다음 만남을 기대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다.
"죄ㅅ - ."
"- 괜찮니?"
"네에···. 저, 그쪽은 괜찮으세요?"
"으응, 괜찮아. 여기에는 사람이 많아서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하렴."
··· 누구지 이 친절한 사람은? 이드리스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여기는 왜 이렇게 미인이 많지? 흑발 미인들과 얼굴을 튼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따스한 백금발 벽안의 미인이었다. 하루만에 이렇게 많은 미인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 이드리스는 속으로 감탄하며 눈앞에 있는 소녀의 잔잔한 호수 같은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소녀는 이드리스의 열정적인 시선에 어리둥절했다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멜리사 칼렌이야."
"저는 이드리스 멜로우예요. 방금 전은 실례했습니다."
"후후, 그렇게 사과할 필요 없어. 보다시피 멀쩡한 걸."
놀람과 죄책감으로 얼굴이 굳어 있던 표정이 풀리자 멜리사는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이 분도 다정하셔.
"호그와트에는 아직 입학하지 않았나 보구나?"
"네...! 다음 달에 여덟 살이 돼요."
"나도 아직 입학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호그와트에서 만날 일이 오겠네."
"네! 잘 부탁드려요, 미래의 선배님."
처음으로 입에 담아보는 '선배'라는 호칭이 조금 낯설었지만 설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드리스는 낯도 가리지 않고 해맑게 웃으며 잠시동안 멜리사와 호그와트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또래 아이들과 교류하는 것을 예전부터 고대하고는 있었으나, 이렇게 즐거울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이드리스는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며 멜로우 부인이 데리러 오기 전까지도 많은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정신없이 떠들었다. 입학하기도 전부터 좋은 선배들, 친구들을 만났는데 입학한 이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될까?
곁에 아이리스가 없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으나, 집에 돌아가면 오늘 겪은 모든 일들을 얘기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리스도 곧 건강해질 테니 그녀도 이드리스처럼 멋진 만남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기쁜 소식도 함께 말이다.
***
이드리스는 멜로우 저택에 돌아가자마자 곧장 아이리스에게 달려가 수다를 떨었다. 할머님의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제 방으로 가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취침할 준비를 하려고 했으나,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을 열자 멜로우 부인이 그녀에게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누군가 네게 편지를 보낸 것 같구나. 읽어보렴."
멜로우 부인은 제 딸에게 잘 자라는 듯 이마에 애정 어린 입맞춤을 해주고는 방문을 나섰다.
이드리스는 멜로우 가문 사람이 아닌 외부인 -이라고 쓰고 친구라고 읽는다- 에게 편지를 받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여다보았다. 붉은색이 포인트인 고풍스러운 편지 봉투의 뒷면에는 Laicy Scarlet 이라는 이름이 수려한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레이시구나. 친절하기도 하시지. 편지를 보내겠다고 약속해 주신 건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소식이 올 줄은 예상하지 못 했기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동시에 기쁜 것도 사실이었기에 입꼬리가 양옆으로 예쁜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이런 다정함에는 몇 배로 보답해 드려야지. 시간이 남으면 다른 분들께도 편지 한 통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서랍 속에서 편지지 한 뭉텅이와 대량의 잉크를 꺼냈다.
그날 밤 멜로우 저택은 깃펜이 사각사각 열심히 움직이는 소리와 설렘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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