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의 마을

메카라라 AU 디센노벤 전제

나나계 by 휘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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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페스토라고 한다. 내 귀여움은 유명해서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알고 있다. 나로 말하자면 주인인 디센이 지어준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고, 다른 별명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말은 꽤나 어려워서 그게 나를 부르는 것인지 가끔은 분별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예를 들자면…

“오, 디센 씨네 고양이잖어.”

“정말이네. 페스토 군, 배가 고파서 들어오셨나요?”

이렇게, 주인네 고양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렇게 화내지는 않지만, 잘 잊어버려서 이렇게 부르는 사람 하고는 달리 꿋꿋하게 만날 때마다 그런 식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모자 쓴 안경쟁이는 매번 그렇게 부른다. ‘고양이’, ‘디센의 고양이’ 등등. 주인과는 언뜻 친해 보이는데 무슨 사이인지 잘 모르겠지만.

배가 고파서 들어왔냐고 묻는 것은 이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배가 부르면 가끔 산책을 하고는 하는데, 이 사람은 매번 이렇게 묻고서는 먹을 것을 가져다 준다. 처음에는 엄청 빨간 것을 내놓아서 도망쳤는데 옆에 있던 운송업자에게 한 소리를 들었는지 그 다음부터는 하얗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 준다. 아이 참, 진짜 배부른데. 야옹야옹 소리를 들으며 식당 바닥을 구르니 “헤헤.” 웃으며 나를 쓰다듬더니 주방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러면 나는 고롱대며 운송업자의 손길을 받는 것이다. 주인은 이런 나를 보게 되면 살찐다며 밖으로 데려가버리지만, 단언컨데 주인 보다는 내가 훨씬 산책을 자주 할 것이다. 주인은 노벤이 만들어주는 맛있는 밥을 먹고도 도통 움직이질 않으니까. 잘생기긴 했지만, 정말로 살찌지 않는 걸까? 책상과 의자 위에 앉아서 매번 풀떼기만 보고 있는데. 주인은 그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배를 까뒤집는 고행을 하고 있으면 하얀 식기에 포슬포슬한 말랑한 것이 담겨 나온다. 노란색의 달콤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다. 주인은 노란 것보다는 하얀 것을 더 좋아해서 집에서는 도통 먹을 기회가 없다. 생으로 먹기에는 너무 딱딱해 사람이 따뜻하게 만들어줘야만 한다. 새끼마냥 품고 있어도 그렇게 부드러워지지는 않아서, 뜨거운 물에 넣는 공정이 필요한 듯싶다.

“역시 고구마를 좋아하네요. 디센 씨는 단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시는데. 노벤 씨를 닮은 걸까요?”

“그쪽은 가리는 거 많으니까. 메이어, 아무튼 나 이제 갈 테니까. 나 없는 사이에 고양이한테 빨간 거 주면 안돼!”

“알아요. 고양이는 그걸 먹으면 아프다고 하니까. 이렇게 맛있는데 어째서일까….”

자리에서 일어선 것을 보니 운송업자가 이제 떠날 모양이다. 나는 부드럽게 으깨진 달콤한 것을 먹으며 운송업자를 올려다보았다. 잘 가, 하고 고양이어로 말하니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좋은 녀석이다. 맛있는 것을 준 식당 주인에게 포상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을 기회를 주었다. 한참을 먹고 있으니 나와 거리를 잘 두는 안경쟁이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상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먹기에 영 불편해서 그릇에 있던 것을 전부 핥아 입 안에 넣고는 가게 밖으로 빠져나왔다.

“앗, 가버렸다….”

“미안하네. 로봇 돌이 아닌 것들은 영 불편해서.”

“사이가 안 좋으신 건가요?”

“그렇게 물으면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가게 안에서 무슨 말을 하든 별로 관심은 없다. 볼 가득히 빵빵하게 담긴 달콤한 것을 목 너머로 삼키지 않기 위해서는 갖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집에 돌아오면 역시나 마당의 그늘진 구석에서 휴치가 잠들어 있다. 바닥에 놓기라도 했다가는 휴치의 혀가 상하기라도 할까 떨어진 이파리 중에서 제일 싱싱한 것을 끌고 와서는 입에 있던 것을 뱉어내었다. 침 뚝뚝 떨어지는 이상한 모습 보이면 어떡하지 싶었는데 잠들어 있어서 다행이다. 휴치의 앞에 간식을 두고서는 내 얼굴을 단장했다.

휴치는 노벤이 데려온 엄청난 미묘다. 다른 고양이들은 내가 어릴 적에 ‘잡아먹을 것이 없는 곳에서는 인간이 없으면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이 도시를 떠났다. 무리에서 떨어져 죽을 뻔한 나를 주인이 주워 주었으니 살 수 있었던 거지만, 인간이 없는 도시라는 건 무슨 뜻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기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어쨌든 그렇게 되어 도시에는 나 이외에 고양이가 없었는데, 노벤이 멀리 나가서 데려온 것인지는 몰라도 휴치는 꼬리가 자연스레 말릴 정도로 예쁘다. 목덜미를 가볍게 몇 번 핥으면 보석 같은 푸른 눈동자가 빛을 받아 반짝이기 시작한다. 주인하고 같은 색인데 내 생각에는 휴치의 눈이 더 예쁜 것 같다. 노벤도 분명 예뻐서 데려온 것이 틀림없다.

「좋은 아침, 휴치!」

「…안녕.」

휴치는 말이 그렇게 많지 않다. 「안녕」이라거나 「잘 자」 「배고파」 「졸려」 「좋아」 「싫어」 「응」 「아니」 정도의 말이 아니면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목소리도 이렇게 예쁜데, 조금 더 말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얼굴값을 하느라 저렇게 도도한 거겠지. 그런 점도 마음에 든다. 귀찮음이 많아 같이 산책을 나가주지 않는 점은 별로지만, 이렇게 자신이 가져온 것을 나눠줄 수 있으니 괜찮다. 이파리를 톡톡 두드리면 침범벅이 된 말랑하고 포슬한 것을 먹어주기 시작한다. 먹는 모습도 예뻐, 휴치!

“…어라. 어디 다녀온 거야?”

주인이 하품을 하면서 집 밖으로 나왔다. 분명히 아침에는 자고 있는 것을 봤으니 방금 일어난 것이렷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노벤은 아직 잠을 자고 있는 모양인지 집 주변에 떠들썩하지 않았다. 고양이가 직접 사료포대를 뒤지게 하다니 두 사람도 무언가를 기르기에는 영 아니다. 두 사람이 식물과 가짜 곤충에 들이고 있는 관심의 절반을 내게 쏟아도 모자랄 지경인데! 휴치가 없었으면 정말 외로울 뻔했다. 야옹, 하고 울고서는 묵묵히 밥보다 먼저 간식을 먹는 휴치의 목덜미에 머리를 부비적댔다.

“오늘도 사이 좋네.”

「노벤은?」

“자던 것 같은데….”

말이 통할 리 없지만 가끔은 말이 통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노벤은 순 엉터리로 대답하지만. 아직 식사중인 휴치를 낼름 핥고서는 주인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배를 내놓고 대자로 뻗어서 잠들어 있는 노벤을 보고 폴짝 뛰어 침대 위로 올라갔다. 배 위에서 한 번 점프하고, 얼굴 옆에 가서 열심히 입술을 핥았다. 고양이도 그렇지만, 인간도 입 안에 이물이 들어오면 불편함을 느끼는 모양이니까.

“우음….”

“안 일어나는데.”

안 일어나다 못해 내 입을 먹으려고 하는 노벤 탓에 옆으로 떨어졌다. 이어 주인이 노벤의 옷을 붙잡고 입술을 핥기 시작했다. 노벤이 눈을 번쩍 떴다. 고양이 기분 상하게 왜 내가 입을 핥을 때는 안 깨고 주인이 핥을 때만 깨는지 모르겠다. 고양이 차별이야? 앞발로 노벤의 얼굴을 때렸다.

"…아파아…."

"페스토가 화났잖아. 안 일어난다고."

"…좋은 아침이에요. 디센 씨, 페스토…."

꾸물거리면서 노벤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우리 잠 많은 휴치도 일어나서 밥을 먹는데. 신경 쓰여서 슬쩍 밖으로 나가보니 다 먹고 자고 있다. 밥은 먹었으니까 괜찮아. 관대하게 넘기고서 입가를 핥아주었다. 휴치는 예쁘고 잘생긴 게 일이지만 노벤은 따로 할 일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튼 휴치도 항상 잠만 자고 있으니까 걱정이다.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야옹야옹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세상에서 제일 건강하고 예뻐 보이지만. 휴치는 몸이 약해서 가끔 노벤에게 건강검진을 받는다. 방 안에 들어가서 뭘 하는 건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양이들은 뜯어보면 저렇게 생겼구나 싶다. 휴치는 내가 자신의 뱃속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겠지? 나는 보여준 적 없으니까 좀 부끄럽다.

"금방 밥 차릴 게요…."

"천천히 해. 페스토는? 휴치가 아까 뭐 먹고 있던데."

「나는 먹었어.」

"안 먹나봐. 생선 포대에 구멍 뚫렸나?"

이런 시간까지 밥도 안 주고 기다리게 한 주인의 잘못 아닌가. 오늘 먹었던 말린 청어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슬슬 털이 빠지는 시기인지 자꾸 몸이 간지러웠다. 몸 이곳저곳을 핥아서 털뭉치를 뱉고 나면 주인이 그걸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린다. 내 예술작품을. 좋은 냄새가 나는 주방으로 향하면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야옹. 옆에서 치근덕대니 노벤이 작은 고깃덩이 하나를 물려주었다. 글쎄, 배 고픈 거 아니래도!

“디센 씨가 메이어한테 콜린 수프 레시피를 물어봤나봐. 오늘은 마음 다잡고 만들어 보려고.”

「노벤의 수프도 맛있어.」

“배고파? 뭐 먹은 거 아니었어?”

이렇게 도통 알아듣질 못한다니까. 주인이랑은 영 딴판이다. 나는 새초롬해져서는 주방을 빠져나왔다. 물론 고깃덩이를 물고서. 휴치의 잠자리에 가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여기는 어쩐지 기분이 좋으니까 말이지. 이상하게도 휴치에게서는 주인과 노벤만큼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주인은 매일 풀을 잡고 있으니까 그런 냄새가 얼핏 나고, 철을 만지는 노벤은 쇠 냄새가 배어있지만. 휴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인지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동족이면서 나와는 퍽 다르다. 내가 먼저 같이 있었는데도 마치 나를 빼고 셋이 가족인 것 같다. 그런 섭섭함도 잠시, 나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것이 휴치의 냄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포근해서 좋아. 고기까지 다 먹고 배가 불러 누워 있으면 따끈한 혀가 나를 핥아온다. 기분이 좋아…. 주인과 노벤, 휴치와 함께 고기 동산에서 뛰어노는 꿈을 꿨다. 주인은 어째서인지 굶었지만.


“테라 씨, 너무 빨리 걷지 마세요. 아까처럼 넘어진다고요.”

“아, 죄송해요! 저기 귀여운 고양이가 있어서….”

“아아, 디센 씨네 고양이군요.”

거리에서 굴러다니고 있으니 수상한 인간과 마주쳤다. 한 명은 자신을 자주 만지고는 하는 사서인데, 한 명은 도통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경계하며 사서의 뒤로 슬그머니 숨자 빨간 머리의 인간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이 녀석 어쩐지 탐정이랑 닮았는걸. 성격은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지만.

“그, 그렇게 숨으면 마치 제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페스토, 얼른 이쪽으로….”

“그 애 페스토라고 하는 군요! 디센 씨는 식물도 키우고 동물도 키우시는구나.”

“별로 제가 이 애 이름을 외우고 있는 건 아니고….”

사서는 알게 모르게 내 귀여움을 선망하고 있으면서 사람들의 앞에서는 이렇게 빼고는 한다. 그런 사서와 같이 다니는 거라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빨간 머리 앞에 얼굴을 내보였다. 쪼그려서 내 머리를 쓰다듬기에 「거기… 아니, 더 오른쪽…」 하고 요청을 했다. 못 알아들으니 당연히 같은 곳만 두어 번 쓰다듬다 말았지만. 그나저나 마을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다니 별일이다. 나는 인간 아이에게 흥미가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도통 짝을 맺지도 않고 아이를 낳지도 않는다. 그나마 가끔 주인과 노벤이 교미하는 것을 보고는 하지만 둘 다 수컷이라 그런지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휴치와 같이 귀여워해줄 자신 있는데. 아이는 없고 다 큰 인간들만 들어오는 도시라니 좀 이상하지 않나. 내가 귀여우니 괜찮지만! 와중에 나도 휴치도 수컷이라서, 내가 열심히 핥아줘도 휴치는 비교적 조용하다. 휴치도 역시 암고양이를 좋아하는 걸까…? 조금 슬프다. 갑자기 서러워져 야옹야옹 우니까 빨간 머리가 내 마음을 아는지 더 쓰다듬어주었다. 좋은 녀석.

착한 사람을 소개시켜준 보답으로 사서에게 부비적대는 필살 애교를 날린 후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에서는 하루 일과를 마친 주인과 노벤이 침대 위에서 데굴거리고 있었다. 휴치는 늦은 식사를 하는 모양인지 곡물 알갱이를 주워 먹고 있었다. 저런 것 가지고 배가 차나 싶다. 역시 휴치는 이슬만 먹고 사는 걸까?

「오늘 밖에 나가서 빨간 머리 애를 봤어. 셋 다 알아? 사서랑 같이 걸어 다니고 있었는데!」

“내 생각에는 페스토가 나나 노벤보다 더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아.”

“저랑 디센 씨는 보통 작업실에 있으니까… 다른 로봇 돌들을 만나면 다들 페스토 얘기만 해요. 오늘은 어디에 있었다고.”

“우연이네, 나도야. 설마 우리보다 인기 있는 걸까?”

“휴치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단 말이죠. 그렇게 설정해두지 않았는데. 정비를 해도 잘 안 움직여요.”

“놔둬. 돌아다니기 싫은가 보지.”

“그런 걸까….”

그렇대도. 확실히 휴치가 밖을 돌아다니는 걸 별로 본 기억이 없다. 나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서나 항상 우편을 옮겨주느라 바쁜 배달부를 제외하면 설마하니 휴치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예쁜 고양이를 모른 채로 살아가다니 인생을 손해보고 있는 거다. 내 묘생은 덕분에 쾌적해졌지만. 나만 휴치를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져 옆에 가서 그릉대니 나를 쓱 보더니 내 몸을 핥아주었다. 꺄, 상냥해! 고맙지만 식사에 집중하라고 밥그릇을 밀어주었다. 휴치의 이런 돌발 행동은 자주 없으니 심장 속에 방금 전의 감촉을 새겨 두기로 했다. 침대 위로 올라가 두 사람의 사이에 폭 끼어들었다. 노벤이 침대 옆 협탁에서 천을 집어 내 앞발 뒷발을 닦기 시작했다.

“흙발로 이불 위에 올라오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 발 씻는 곳도 놔뒀는데.”

맞다. 그런 게 있었지. 너무 안 써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집에 들어올 때는 털고 들어오니까 괜찮은 편인데. 고양이에게 물을 가져다 대는 것이야말로 죄악임을 모르다니. 그런 거 모른다는 척 노벤에게 얌전히 발을 맡겼다. 어렸을 때는 고양이가 사람의 얼굴을 할퀸 적이 있다고 하는 무용담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고는 했는데, 이쯤이면 나는 얌전한 편이다. 잘못을 무마하기 위해 노벤의 입가를 핥았다. 털이 묻어 있었던 모양인지 퉤퉤 뱉어서 주인이 떼주었지만.

“페스토랑 간접키스.”

라고 하면서 주인이 노벤의 입술을 핥았다. 변명거리도 없는 건가, 이 파렴치한. 싸늘한 시선으로 침대에서 폴짝 내려왔다. 식사를 마친 휴치의 털에 청어알이 하나 둘 씩 붙어 있었다. 털을 골라주면서 혀로 핥아 냠냠 해치웠다. 당연하게도 입가에도 잔뜩 붙어 있어서 핥았다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뒤로 물러섰다. 나… 방금 휴치의 입을 핥았어. 혹시나 화낼까봐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휴치가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어, 어떡하지. 주인. 노벤? 입술 그만 먹고 여기 좀 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자 눈을 꼭 감았다. 입가에 축축하고 까끌한 감촉이 느껴졌다. …헤? 휴치가 내 입가를 핥고 있었다. …주인! 노벤! 나 완전 계탔어!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휴치가 보이지 않았다. 휴치의 잠자리에서 데굴데굴해보고 문 앞에서 야옹거리기도 했지만 도통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밖으로 나갔나? 근처 산책까지는 없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원래 혼자 잘 나가는 것도 아니었어서 좀 걱정이 된다. 휴치의 침구를 팡팡 내리치며 노벤을 보고 울었지만 노벤 역시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 어디 간 거지….

“안녕하세요! 디센 씨께 우편물입니다.”

“아, 마틴이다. 어서 와! 누가 보낸 거야?”

“파블라 씨가요. 노벤 씨가 열어보셔도 상관 없다고 들었어요.”

“그래? 별일이네. …아, 응응. 책은 금방 가져다 드린다고 전해줘. 디센 씨 오면 물어봐야지….”

“페스토는 무슨 일인가요? 이렇게 울고.”

“아─… 휴치가 안 보여서 말이지. 아마 잠깐 산책 나간 거라고 생각하는데….”

“휴치라면 하얀 고양이 얘기죠? 아까 광장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자주 나오지 않으니까 기억하고 있어요.”

고마워, 인간! 냥! 하고 대답한 후에 밖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광장이면 그 넓은 거기지. 주인의 집과는 조금 떨어져 있으니까 열심히 달려야 한다. 아침에 먹은 고기가 소화될 만큼 열심히 뛰었다. 광장으로 다가갈수록 기분 나쁜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정말 여기가 맞는 건가…? 인간 마냥 이마의 땀을 닦고 있으니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이미 다른 곳으로 간 게 아닐까. 휴치는 자주 돌아다니지 않아서 길도 잘 모를 텐데, 저녁까지 있다가 추워지면 어떡하지. 배고플지도 모르는데. 떨리는 맘으로 앞발을 내딛었다. 예상한 대로 매일 이상한 노래만 하는 노란 머리의 연주가의 등이 보였다. 이 녀석! 휴치를 어떻게 한 거야! 싶은 기분으로 멀리서 조금씩 다가가니 이게 웬걸, 조막만하게 보이는 휴치는 가만히 연주가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휴치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몰려와 연주가를 향한 경계도 조금 누그러졌다. 그나저나 휴치는 뭐가 좋다고 저런 기분 나쁜 노래를 듣고 있는 걸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던데.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면서 여기까지 와서는. 나오고 싶었으면 나랑 같이 나와줬으면 안 됐던 걸까. 애웅, 시무룩하게 울자 한 고양이와 한 사람이 나를 눈치챘다. …관심 끌려고 한 건 아닌데. 멈춘 노래 탓에 머쓱하게 휴치의 곁으로 다가갔다. 걱정 했단 말이야. 내가 이렇게 말해도 휴치는 아마 알아듣지 못할 거다.

“두 마리의 고양이가 관객이라니,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군요.”

휴치가 좋아하는 노래라면 옆에서 듣고 싶었다. 음악가의 노래를 멈추게 한 것은 미안했지만 나도 고의가 아니었고. 옆에서 똬리를 트니 휴치가 나를 위로하듯 몸을 핥아주었다. 처음부터 외롭지 않게 해주었으면 되잖아. 그래도 싫지는 않아 찔끔 나올 뻔한 눈물을 삼켰다. 음악가가 다시 자세를 잡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곡이었지만, 아까와는 정반대인 밝고 산뜻한 음색이었다.


요 며칠 간은 다들 바빴다. 노벤은 쓰러진 탐정을 간호하기 위해 집에 거의 붙어 있지도 못했다. 주인은 그런 노벤 때문에 심심해하기도 했고, 자신에게 남은 일을 마저 끝내려는 듯 평소보다 훨씬 부지런하게 일했다. 나는 괜히 불안해졌다. 문병 선물로 노란 꽃을 가져가는 주인에게 가지 말라고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지만, 주인은 내 옆에 한 송이 메리와 휴치를 놓아두고는 집을 떠났다. 나는 그게 못내 속상해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울기만 했다. 다들 바쁜 것에 비해 거리는 너무 조용하다. 마치 끝을 준비하는 것 같다. 휴치는 그 날 이후로 내 맘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태평하게만 지냈다. 공을 굴리면서 노는 것도 아무도 없으면 심심하다.

“페스토─ 휴치─.”

「노벤!」

“요즘 너무 못 들어와서 미안해. 많이 바빴거든.”

“나까지 내팽개치고 말이지.”

“디센 씨도 참. 어쩔 수 없었잖아요? 시엘로가 쓰러졌으니까. 그래도 무사히 깨어나서 다행이에요.”

주인과 노벤이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게 기쁘면서도 두 사람이 다시 떠날까봐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애교를 부렸다. 답지않게 휴치도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의 손에 부비적댔다. 두 사람은 퍽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불안한 생각만 들었다. 어디 가면 안 되는데. 나랑 휴치랑 같이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데. 야옹거리는 울음에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부드럽기만 했다.

”마지막까지 보살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나는 괜찮아. 주인이 주워 줬을 때보다 훨씬 컸단 말이야. 식당에 숨어있는 쥐도 잡을 수 있고, 마을 외곽에 있는 호수에서 물고기도 잡아먹을 수 있어. 휴치가 좋아하는 풀들도 어디서 자라나는지 알아.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주인이 동백 화분에서 꽃 한 송이를 꺾어 나와 휴치 앞에 두었다. 풀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내가 받은 꽃은 이걸로 두 개 째다. 나는 애써 울지 않으려고 피어난 꽃에 코 끝을 묻었다. 꽃인데도 휴치처럼 아무 향기도 나지 않았다. 노벤이 나를 들어 꼭 끌어안았다.

“페스토, 코 끝에 카멜리아 술 묻었다! 검은 카멜리아네─.”

두 사람이 가장 공을 들였던 풀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나는 그 말이 정말 기뻤다.

“휴치랑 사이 좋게 지내야 해? 혼자 있으면 외로우니까.”

혼자 있는 게 아니라도 떠나가는 건 언제나 외롭다. 부모와 떨어졌을 때, 무리에서 멀어졌을 때. 그리고 지금. 주인과 노벤은 어떤 것보다 나와 오래 있었다. 두 사람이 우리의 콧잔등에 입을 맞췄다. 나는 이 동백이 영원히 스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러워했고 우리는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은 동백 화분을 들고 손을 잡고 어딘가로 떠났다. 인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지자 나는 휴치를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괜찮아.」

이건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내 눈물이 털에 떨어져서 기분 나쁠 텐데도, 휴치는 나를 꼭 안고 쓰다듬어주었다. 뺨을 핥고, 눈가를 핥고. 위로하려는 건지 휴치도 나를 흉내내서 꽃에 코를 묻어 가까이 다가왔다. 평소의 휴치처럼 아무 향기도 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끝에 묻은 애틋함을 느낄 수 있었다.


메카라라의 사전지식이 없으신 분들께 : 메카라라의 유키모모, 그러니까 디센노벤은 실제로 두마리 고양이(휴치와 페스토)를 키우고 있습니다. 본편에서는 언급된 적이 없고 북클릿에서만 나온 걸로 기억해요. 페스토는 검은 고양이로 과거past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살아있어서 그런건지) 휴치는 하얀 고양이로 미래future라는 뜻입니다. 아마 휴치는 노벤이 만든 로봇돌이라 그런것같지만... 로봇돌에게 미래라고 이름붙여놓고 멋대로 로봇돌을 잠재워버리는 메카라라 스토리의 의도는 정말 뭐였을까요? 그건 모르겠지만 남겨진 페스토가 불쌍해서... 검은머리 짐승에게 약해서 휴치를 남겨주었습니다. 원래는 페스토가 혼자 남아서 거리를 떠나는 엔딩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노벤이 그렇게 잔인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거라(그리고 노벤도 자기가 잠들어야 하는거 모르는데 자장가로 잠드는 회로를 구현할 리가 없으니...) 그냥 남겨주었습니다... 고영버전 유키모모 휴치페스(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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