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지현은 회사에서 무지한 사람들 때문에 무지 개떡같은 날을 보내고 퇴근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길에서 건물 사이로 길게 늘어져 있는 흐릿하지만 색은 알아볼 수 있는 무지개를 보았다. 흐릿하지만 예뻤다. 문득 오래전에 무지개를 같이 보았던 고등학교 시절의 누군가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가 마음에 담았던 사람은 키가 크고 환한 미소가 예쁜 사람이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어딘가 익숙한 사람이 핸드폰 화면에 들어왔다.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오래전에 그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함지현, 여기서 뭐해? 오랜만이야."

그는 도망치고 싶었다.

"나 기억 안나? 나 편세원인데."

세원이 그에게 말했다.

"나 이쪽에서 일하는데. 최근에 지나가다 널 봐서 말 걸고 싶었는데. 너는 앞만 보고 가더라."

세원은 계속 얘기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때 연락 안했어? 편지 안봤어?"

그는 고등학교 졸업식때 세원에게서 편지를 받았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편지를 읽지 않았고 그렇다고 버리고 싶지도 않아서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가방에서 그 편지를 꺼냈다.

"이걸 왜 아직도 갖고 있어?"

놀란 세원이 물었다.

"이걸 읽으면 너랑 친구도 못할까봐."

그가 힘겹게 말했다.

"바보 아냐?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할 거면서. 됐어, 다시 줘. 말로 하게."

세원은 그의 손에서 편지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함지현, 내가 십년 넘게 너를 잊지 못했는데 이제 겨우 만났네. 너도 나 싫지 않으면 여기서 같이 사진 찍자."

그는 말없이 세원을 바라보았다.

"싫으면 그냥 오늘 나 못 본 걸로 하고."

세원이 말했다. 그는 그제서야 미소를 짓더니 무지개를 배경으로 그와 사진을 찍었다. 세원은 그의 핸드폰에 번호를 저장하더니 말했다.

"오늘 꼭 전화해,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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