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
채이진
의미 없는 하루. 조금은 특별한 날인가.
이진은 나서서 이런 기념일을 챙기는 편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속에서 이것저것 배우다보니 익힌 습관 같은 거랄까. 그리 큰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챙겨서 나쁠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챙기지 않을 이유가 딱히 없으니 챙기게 된, 그런 거랄까.
발렌타인데이 하루 전, 2월 13일. 이진은 근처 디저트 가게에서 초콜릿을 몇 개인가 구입했다.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챙겨야 하나, 라는 짧은 고민을 했지만 부족한 것보단 넉넉한 게 좋겠지, 하는 생각으로 고민을 마쳤다. 이진의 고민은 애매한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주가 아니었다. 그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이 차지하는 게 훨씬 컸다.
' 한결이나 신효, 에녹 몫도 필요할까? 내가 아니어도 걔네한테 줄 사람은 많을 텐데. '
시큰둥한 얼굴로 이진은 생각했다. 말해서 뭐하겠는가. 그들이 많은 초콜릿 중 일부가 이진에게 넘어올 정도면 말 다한거지.
' 그치만 유진 몫은 챙기고 싶고... 그렇다고 유진 몫은 챙기면서 다른 애들 몫은 안 챙기기도 그렇고... '
진열장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이진은 결국 네 명 분의 초콜릿을 구입한다. 먹을지 안 먹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일단 주는 것으로 이진의 일은 끝나는 것이니 이후의 일은 그들 각자에게 맡기기로 했다.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당일.
이진은 아침에 만난 한결이에게 초콜릿을 하나 건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신효를 만나 또 하나 건네고, 5층에 있을 유진을 찾아가서 또 하나 건넨다. 어두워진 뒤에 들어오는 에녹에게 마지막으로 초콜릿을 건넴으로써 이진의 할 일은 끝이 난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오면, 어째 이진이 준 것보다 많은 초콜릿이 돌아온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떤가. 주고 받는 데에 의미가 있는 행동이니, 이진이 초콜릿을 건네고, 또 상대에게 받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본다.
' 한동안 단 거 걱정은 없겠네. '
이진은 수북하게 쌓인 초콜릿을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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