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언약식

그리하여, 공범

노을빛 세계에서 너와 노래를… | 나카토미노 카마타리 드림

2024년 7월 11일 목요일

D+500


자신이 떠올랐다는 이유로 구매한 간식 몇 가지를 책상 위에 늘어놓고는 하나씩 먼저 맛보는 초월을 카마타리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를 위해 모든 간식을 반으로 나누는 것은 물론 카마타리의 역할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몫이 나뉘면 초월은 망설임 없이 제 것을 집어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음식이 만들어진 과정을 되짚어 분석하듯이 신중하게 살피고 카마타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받아들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했건만 초월은 카마타리의 세계를 본인의 것이나 다름없다는 듯이 굴었다. 익숙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섬세한 배려는 어쩌면 그 또한 이러한 세계를 살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 아닌 망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자신보다 타인이 우선인 사람을 상대로. 감히. 카마타리는 저도 모르게 책상 아래서 주먹을 쥐었다.

저 역시도 암살당할 수 있다는 불안은 현실과 맞닿은, 그림자와 같은 것이었다. 불만은 있을 수 없었고 경계를 늦춰서도 안 되었다. 죽지 않았기에 이어가는 생은 무채색에 가까웠고 가능하다고 여겨진 변주는 죽음뿐이라고 카마타리는 홀로 수긍했다. 초월이 그의 삶 속으로 걸어들어오기 전까지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초월은 카마타리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다른 모든 것을 차지하고도 초월에게는 상처를 낫게 하는 힘이 있었으므로. 자신을 대신하여 독을 감별해 주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카마타리는 막연히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되면 될수록 카마타리는 더 큰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후히토의 귀띔에 의하면 초월의 능력은 단순한 회복이 아닌 타인의 상처를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었다. 카마타리는 책상 아래서 힘이 잔뜩 들어가 뻣뻣해진 손을 억지로 풀어내었다.

“초월.”


카마타리의 부름에 초월은 토막 난 간식을 내려놓았다. 손수건으로 입과 손을 닦고 차로 입안을 씻는다. 다소곳하게 두 손을 자신의 무릎 위에 얹고 조용히 그저 평온한 모습으로 카마타리를 바라보았다. 카마타리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사선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말하고 싶지 않은 문장이 목에 걸려 숨을 죄어오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카마타리의 다음을 기다리는 초월의 태도에서는 흔들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며 입까지 꾹 다물어버린 카마타리였으나 초월에게 더는 저항하지 못했다. 아래로 떨어졌던 눈동자가 다시금 초월을 향하자 보일 듯 말 듯한 부드러운 미소가 그를 다독인다. 누가 무엇을 행하더라도 다정하게 포용해 주리라.

“너는, 어떡할 거냐.”

필사적으로 덤덤한 체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많은 것이 잘려 나간다.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갈색의 두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으나 초월을 두고 도망가지는 않았다. 눈을 한 번 느리게 깜박인 초월은 뒤늦게 답하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리라. 옅은 숨을 비로소 작게 내쉬려는 찰나 초월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때는 어떡할 거지? 카마타리의 반사적인 물음에 초월의 시선이 책상 위의 다과로 향했다. 그를 따라 풍성하게 내리깔린 속눈썹 사이로 투명한 눈동자가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희미하면서도 분명한 미소는 날카로운 칼날에 비친 빛처럼 스쳐 지나갔다. 괜찮아요. 차분한 음성은 카마타리를 달래주려는 것처럼 다정하다. 다시는 혼자 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초월은 카마타리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카마타리 씨.”

“…너는 항상 괜찮군.”

“저는 회복력이 좋거든요.”

뜻밖의 말에 카마타리가 멈칫했다. 카마타리의 불안을 종식해 주려는 것인지 답지 않게 현실적인 이유였다. 그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성질을 지녔음이 틀림없었으나 카마타리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다음에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하지 말아 달라고 빌고 싶었다. 그 모든 모습을 시야에 담으면서도 초월은 무엇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처럼 여전히 흔들림 없이, 그저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설령 즉사하더라도 저는 돌아올 거예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죽어도 죽을 수 없는 몸이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마타리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서 그 반동으로 책상 위의 차가 쏟아졌다. 당연하게 과자 상자를 들고 차를 닦으려는 초월의 손을 카마타리가 낚아채듯 붙잡았다. 초월이 카마타리를 올려다보았으나 카마타리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지나치게 올곧은 시선에 심장이 꿰뚫려 발치로 떨어진다. 이윽고, 주인에게 짓밟힌 심장은 넝마가 되어 꿰뚫린 구멍으로부터 흘러넘친 피에 천천히 익사했다. 텅 비어버린 가슴은 짙은 죽음으로 채워진다. 그 모든 것이 저의 업이었다.

“그냥 상황이 그런 거예요.”

초월은 무엇도 하지 않고 그저 난처하다는 듯이 눈썹 끝을 떨어뜨려 웃었다. 그렇게 초월이 필사적으로 상황을 무마시키려고 했음에도 카마타리는 여전히 입을 열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고 본인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초월의 손을 꽉 붙잡은 채로 그를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흘러넘친 차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초월은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카마타리를 끌어안았다.

“미안해요. 이렇게 충격받을 줄은 몰랐어요.”

비로소 카마타리는 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충격받은 것이었구나. 잘게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초월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초월의 품에서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생명을 인지한다. 그렇게 안심이 되다가도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가까이 느껴지는 맥박을 가만히 세어보던 카마타리는 초월의 어깨를 붙잡은 채로 살짝 떨어져 초월의 안색을 살폈다.

“저는 괜찮아요.”

“……그래.”

그 괜찮다는 말에 신뢰가 떨어진 것이 방금이었지만 카마타리는 순순히 긍정을 표하고 초월을 놓아주었다. 초월은 그런 카마타리의 두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아 생명을 불어넣는 것처럼 손가락 끝에 입을 맞추었다. 자신을 살리는 희망이 되고 싶다고 했었던가. 저를 향해 당겨지는 입꼬리만큼 양쪽으로 깊게 파이는 보조개에 카마타리는 여전히 복잡한 마음을 일단 덮어두기로 했다.

“과자 안 드실래요? 맛있어요.”

“차를 다시 내어오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