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장기 프로젝트 데이(기념일) 장기 합작 : 01월 14일 다이어리 데이
이태영 드림
새해가 밝아오면서 연도가 바뀜을 알리는 다이어리. 2학년이 된 태영은 아버지께서 친구들과 나누어 쓰라고 준 다이어리 한 상자를 받았다. 이걸 왜 주나 했지만. 일단 나눠주라 했으니 같은 반, 옆 반에 아는 친구들에게 주고 농구부원의 것을 빼고 남은 건 하나. 자신이 써도 되겠지만 분명 3일 정도만 쓰고 말 것이 분명했다. 다시 한번 쓸 사람 있는지 물어봐도 한 권이면 충분하다거나 안 쓴다 하고 선물로 줘도 될 텐데…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일단 옷 주머니에 넣었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주머니 속에 있던 다이어리가 신경이 쓰여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없어 괜히 주머니 속에 있던 다이어리만 만졌다. 다이어리만 신경을 쓰느라 제대로 듣지 못한 수업은 곧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서 끝나게 된다. 친구들 손에 이끌려 식당에 도착해 나눠주는 걸 포기하고 음식을 식판에 다 받은 후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앉았다. 옆자리에 여학생 무리와 대화하던 친구가 무언가를 들었는지 다급히 태영을 가리킨다.
“이태영 너 다이어리 남은 거 있다 그랬지?”
“어. 하나 있어.”
“얘 알지? 같은 중학교 나온...”
“어? 어. 아… 다이어리 필요해?”
그렇게 남은 한 권을 주고 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때의 일은 솔직히 말해서 농구를 하면서 까먹었다. 가끔 지나가다가 마지막 다이어리의 주인이 된 그와 인사만 주고받는 게 다였고. 중학생 때 같은 학교였을 뿐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었을 때. 새 학기가 시작된 3월. 태영은 그 학생으로부터 자신이 준 다이어리를 받게 된다. 잘 썼다면서. 이 소식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친구들로부터 소문이 퍼지게 되고 그 친구의 친구. 그러다 같은 농구부원에게 전달된다.
“고백받았다면서?”
변형이 된 채로.
“고백? 그냥 작년에 줬던 다이어리를 받았을 뿐인데.”
“보통은 자기가 쓴 다이어리를 준 사람한테 안주니까. 그런 소문이 퍼졌나 보네.”
단체로 스트레칭을 하던 중 태영은 농구부원과의 대화를 곱씹었다. 내용이 쓰인 다이어리를 받는 것은 확실히 처음이었고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그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태영 본인 역시 일기를 남에게 보여주는 건 초등학생 때 의무적으로 일기를 쓰는 것 외엔 없었던 것 같고… 교환 일기면 모를까. 그것도 친한 친구들끼리 하는 거 아닌가. 친한 친구 사이도 아니고.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역시 돌려주는 게 맞았다. 태영은 다음 날 새로운 다이어리와 함께 받았던 다이어리도 돌려줬다. 돌려받은 본인은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태영의 말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뒤 새로운 다이어리를 거절했다. 그러면서 차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뭐가 그리 빠르고 안 좋게 흘러갔는지 가끔 얼굴 보면 인사하던 사이도 점점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려고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함은 작년과 같이 농구를 하게 되면서 잊혀 갔다. 그렇게 농구부원과 친구들과 즐거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 인사와 함께 친구와 대화하던 태영은 1월 14일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약속의 날이 되고 약속 장소인 카페 안을 둘러보던 태영은 저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을 보았다. 사실 친구와 셋이서 만나는 줄 알고 나왔는데 단둘이서 만나니 어색했다. 그냥 나가는 건 실례겠지…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 세상 어색한 인사가 이어진다. 고백하고 차인 것도 아닌데 서로를 피해 다닌 지 몇 개월. 각자 공부하고 농구하면서 잊히기도 했을 어색해져 버린 사이에 둘이서 각자 시킨 음료만 마시다 상대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태영아 축하해.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했다고 들었어.”
“고마워. 너도 축하해.”
어색하다. 태영은 둘만의 정적에 아직 식지도 않은 음료를 벌컥 들이켜다 사레가 들려 연심 기침을 해댄다. 앞에서 내민 휴지에 고개만 끄덕이고 휴지로 입을 막는다. 태영의 행동에 상대는 본인의 손만 연신 주물렀다. 무슨 말을 이어서 하고 싶은 걸까. 태영 역시 흘깃 상대의 손만 쳐다본다. 저렇게 세게 주무르면 안 아픈가. 잠깐 다른 생각도 했다. 막상 말이 없으니 주변 소리에 집중이 된다. 이러면 상대에게 실례인데.
“미안. 나 때문에 그런 소문도 나고. 그걸 사과하고 싶어서 오늘 보자고 했어.”
“아. 아아! 그때 그거? 사과 안 해도 돼. 누가 잘못을 한 게 아니잖아.”
갑자기 말을 해 급하게 답을 이었다. 그때부터였지. 나름대로 인사도 주고받고 했었는데. 태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옆에 있던 통유리창 쪽으로 옮겼다. 빗방울이 창에 부딪혀 창을 타고 흘러내리거나 밖으로 튄다. 그런 유리창에서 조금만 시선을 옮기니 카페 안을 비춘다. 상대가 저를 보고 있는 것이 보여 무언가 잘못한 듯 고개를 상대 쪽으로 돌렸다. 이번엔 상대가 고개를 숙였다 들어 자신과 마주했다. 웃었다. 웃었는데 웃는 것 같지 않았다. 태영은 그렇게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게 다야. 그만 가볼게. 태영아, 그때 정말 미안했어.”
갑작스러운 대화 전개에 태영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때, 맞은편에선 빠르게 제 가방을 챙기더니 카페 밖으로 나갔다. 대답을 하기도 전 급히 뛰어나간 상대를 따라가려다 행동을 멈췄다. 정말 급한 일이 있어 가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어색해하는 걸 봤던 걸까. 사과 때문에 만나자고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친구에게 연락처를 물어보려 메신저로 연락을 한 후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짐을 챙겨 가자고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 놓여있던 종이가방. 태영은 종이가방의 주인을 바로 떠올렸다. 중요한 물건이면 어떡하지. 친구의 답을 기다리는 동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비도 오는데 추운데 밖에서 기다리기도 뭐 했고 본인이 마시던 음료도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어느 정도 식은 음료를 다시 마시면서 종이가방 안을 확인했다. 다이어리 두 권. 한 권은 전에 자신이 줬던 것과 같았고 다른 한 권은 처음 보는 디자인이었다. 그걸 보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자신이 쓴 다이어리를 주면서 무언가 말하려 했던 모습을. 그땐 그랬지만… 태영은 저도 모르게 다이어리를 꺼내 들었다. 익숙한 다이어리를. 본인이 받았던 그 다이어리를 태영은 펼쳤다. 아무 페이지나. 자세하게 읽지 않고 바로 몇 페이지를 넘겼다. 작성한 그날 하루가 적힌 이야기부터. 한 사람을 향한 하고 싶은 말이나 짧은 편지 한 줄. 태영은 제 이름이 쓰인 다이어리를 덮었다. 더는 봐선 안될 것 같았다. 머리는 그랬지만 몸은 다이어리를 도로 넣고 새로운 다이어리 또한 펼쳐보았다. 죄책감. 후회. 사과로 시작한 내용은 어느새 저를 향한 이야기로 쏟아졌다. 농구 경기를 보러 온 것 또한 다이어리에 적혀있었다. 다이어리를 덮으니 아깐 보지 못했던 제 이름이 적힌 편지 봉투가 있었다. 봐도 될까. 고민하던 태영은 펼쳐보았다.
편지를 읽은 후 태영은 제 친구에게서 온 메신저 내용을 확인한 후 바로 답을 보냈다. 만나자고. 장소를 정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제 짐과 종이가방을 챙기고 트레이에 빈 잔을 올려 카운터에 둔 후 바로 밖으로 나갔다. 내리는 비에 우산을 썼지만 빠르게 걷는 탓에 우산은 쓰나 마나였지만 종이가방은 젖지 않게 품 안에 넣었다. 멀리서 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친구에게 좀더 빠르게 다가갔다. 뛴 탓에 숨이 차올랐지만 태영은 숨을 겨우 뱉어내면서 말한다.
“두고 간 물건이 있어서 내가 직접 전해주고 싶어서 그런데 혹시 어디 사는지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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