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Losing Angels 01
HJ
*하얀♡지아 첫만남 날조 소설 (5편 안에 완결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얀이의 보호자들이 비중을 꽤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나있는 것을 숨길 줄 모르던 청소년 하얀이(대략 16세 즈음) LA에 방문한 지아와 만납니다!
*하얀이가 확실하게 지아임이 특정되지 않는 상대를 짝사랑하는 묘사가 포함되기 때문에 메인스트림은 아니라는 점을 밝힙니다!
*그러나 이미 하얀지아가 만나고 나서의 시점으로 시작되며, 이번 편에서는 지아가 안나옵니다… (애매한 언급은 나옴)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었다. 그가 갈구하는 것은 압박감과 고통이었다.
승리나 성취감 따위는 그 부산물의 이하였다. 혹 예시의 반대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마찬가지로 취급하여 개의치 않았다. 아이는 자신에게 명백히 해로운 상황이 닥쳐와도 그 몸을 아낌없이 던졌다. 그리고 아이의 보호자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를 두고 볼 수 없었다.
하얀이 상담실로 들어가자, 그의 치료를 위해서 함께 동행한 에밀리와 헨젤, 마크는 조용히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그들은 보호자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층계로 내려가, 카페테리아에 자리를 잡았다. 곧 주문한 음료가 나왔지만, 그들 중 누구도 먼저 커피잔을 들지 않았다. 그들을 위해 음료를 서빙한 카페테리아 직원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일행을 보며, 남몰래 생각했다.
'이번에도 입도 대지 않은 잔을 버리거나, 테이크 아웃잔을 되돌려주겠군.'
아이들의 치료를 위해서 내원한 어른은 열 중에 여덟이 저런 식이다. 자책을 하든, 남에게 책임을 지우든, 음료를 즐길 여유는 없는 것이다.
테이블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특히 헨젤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제 내후년이면 마흔이 될 그는 이들 중 가장 연상자였지만, 감성적으로는 가장 미숙하고 솔직하지 못한 남자였다.
그동안 줄곧 하얀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부정하던 헨젤은 일주일 전, 상처 투성이로 돌아온 하얀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서야 외면하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비록 그 과정이 야만스러웠을지라도 말이다.
소독약으로 지워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피냄새와 악취, 붕대 없이 바로 드러난 흉한 멍들과 처음으로 마주한 헨젤은 분노와 슬픔 속에서 폭발했다. 예상보다 더 충격적인 상태에 헨젤이 무너져서 추태를 부리는 동안, 하얀은 그를 고요히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건강해 보이지 못할 상황이었다. 때마침 집에 돌아온 에밀리와 마크가 그들을 분리하지 않았더라면. 만일 그들의 조치가 조금이라도 늦어더라면. 이웃 중의 누군가가 아동복지국에 신고하였을지도 모를 아찔한 사고였던 것이다.
자기 연민적이고 신경질적인 성향이 심한 헨젤은 부모를 잃은 아이보다 그 자신이 더 힘들다고, 또 하얀의 슬픔이 자신을 좀먹는다고 믿었다. 다른 이들도 헨젤의 인식이 분명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관계의 폭이 좁은 그에게 니콜슨 부부가 소중한 존재였음을 짐작하기 때문에 함구했다. 그렇게 문제를 부정하고 왜곡해왔던 것에 일조했다. 그것이 일주일 전, 헨젤이 결국 현실을 직면하자 곪다 못해 터져버린 것이다.
에밀리와 마크는 심하게 다친 아이를 붙잡고 울분을토하고 오열하던 그를 하얀과 분리하고, 끝내 오늘까지 아이와 마주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하얀과 분리되고 한참을 앓아 누웠다던 헨젤은, 지금 에밀리 쪽의 팔걸이에 의지해서 따듯한 찻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마크는 드물게 약해져 있는 헨젤의 모습에 조금의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그가 직접 목격한 끔찍한 사고와 하얀을 생각하자면, 도저히 먼저 다가가서 위로해 줄 아량이 생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헨젤을 포함한 셋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헨젤이 하얀을 위해서 새로운 노력을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 또한 남들이 보기에는 나태하기 짝이 없는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에밀리와 마크로서는 근거가 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믿음이 무색하게도, 사실 예민하기 그지 없는 헨젤이 자신의 추태를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제로 헨젤은 가장 여린살을 들킨 듯, 불안에 떨면서 자책에 시달렸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하얀을 위해 -그에게 사과하기 위해- 상담이 진행되는 건물을 따로 찾아오겠다 밝혔고, 이미 자신의 치료를 위한 상담을 시작한 상태였다. 물론 오늘 바로 아이를 보고, 사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담은 없었다. 그것은 팔을 안으로 굽혀서 생각해봐도 너무 희망에 의지한 기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헨젤은 에밀리와 마크의 모든 설명과 지시에 승복하듯 수긍했다. 수동적으로 고개를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어떠한 질문이나 주장을 하지 않았다. 지금의 그는 이 자리와 자기 자신을 버티는 것도 힘들어보였다. 마크는 연장자의 약한 모습에 다시금 마음이 쓰였지만, 지금은 하얀에 대한 상의가 먼저였다.
"상담의가 우리와도 개별 면담을 진행하겠지만, 대략적인 진단 밖의 내용은 기대하지마."
"원칙대로요?"
마크는 이 잘난 병원 원장이 댁 친구라서 여기까지 온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담아 대꾸했다.
"그렇지."
에밀리는 마크의 어조에 전혀 응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녀는 시비나 비아냥 따위에 응해주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크도 그녀가 씨근덕거리길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나고 답답한지 들켰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조금 더 짜증났을 뿐이었다. 그간 권위적이고 예민하게 굴던 헨젤의 태도가 순종적이고 헌신적으로 변한 것처럼, 그 역시 평소의 도전적이고 여유로운 모습을 잃은 것 같았다. 지금 마크는 확실히 제 안에서 술렁거리는 불안을 주체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몇 해 전, 하얀이 사고를 치고 다니기 시작하자 헨젤은 문제에서 눈을 돌렸고 에밀리는 그저 조용하고 면밀한 관찰을 시작했다. 하지만 소싯적 놀아봤다 자신하던 마크는 하얀의 주먹다짐을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로 받아들였다. 마크는 그를 작은 친구로 삼아 짐으로 데려가 운동을 시키고 복싱의 기본을 가르쳐주었다. 본격적인 일탈에 보탬을 준 자신을 떠올릴 때마다, 마크는 자신의 멍청함과 안일함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크는 헨젤의 히스테릭함이 자신에게까지 불편한 영향을 끼치고난 후에야, 그가 하얀의 아픔을 부정하려 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 역시 헨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 역시 금방 깨달았다. 아이의 아픔을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했던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를 곱게 포장하자면 은사를 잃은 아픔을 다시 들추고 싶지 않은 것이 될 터였다.
그러나 마크는 알고있었다. 상황을 얼마나, 어디까지, 이해하는 지도 모를 어린아이를 위해 다시금 탄성에 젖기 귀찮다는. 그런 천박한 이유가 자신 안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음을.
하얀은 그토록 어렸다. 상황에 이해를 바랄 수도 없는 나이에 부모를 잃은 것이다.
그 어리던 아이가 이제는 조금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하얀은 자신의 고통을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표출하고 있다.
만일 자신이 일찍부터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어쩌면 저런 방식을 선택한 아이를 달래내거나, 그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었을 것을. 마크는 입이 쓰다는 것을 느끼며, 마른 침을 애써 삼켰다.
에밀리가 헨젤을 돌보던 동안 마크는 이런저런 자책감을 안고, 하얀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를 찾아갔다. 최근 거리를 해메이다 돌아오는 것이 일이라던 아이는 멍과 부푼 상처로 인해 혈색이 나빴다. 그러나 눈빛만은 기이하게 형형하였다.
이는 마크가 오는 길에 상상하였던 ‘상처를 받은 아이‘ 와는 확실히 결을 달리하였기 때문에 그를 당황시켰다. 잔뜩 주눅 든 모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오싹해지는 눈빛이었다. 침대에 다가선 마크가 쉬히 말문을 열지 못하자, 하얀이 그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반성하고 있어요."
"어떤 것을 말하는 거니?"
단호한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크는 여전히 자신이 그의 말을 이해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눈 앞의 아이는 자신이 아는 하얀같지 않았다. 마크는 여지껏 그가 이런 시린 눈빛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좋지 못한 방법을 고른 것을요."
하얀이 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마크는 무엇을 위해-, 어떤 방법을- 고른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지만, 하얀은 이번에도 그보다 빨리 입을 열었다.
"헨젤 삼촌이 화내셨던 건 전혀 신경쓰지 않아요. 집에 돌아가면 혼날지도 모른다고 하던 걸요."
그리고 마크는 하얀의 말에 자신이 안도함을 느꼈다. 은연 중에는 헨젤이 용서받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두리뭉실한 표현에 어색함과 이상함을 느낀 그는 재차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그렇게 말해줬다는 거니?"
"경찰과 911에 신고했던 사람이요."
"오, 그래. 그러고보니… 어느 고마운 분이 신고해 주셨다고 했지."
"하지만 삼촌들이 사례할 일은 없을 거예요."
하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설명했다. 그러나 방어적인 자세로 고쳐 앉은 그는, 세워둔 무릎에 팔짱을 두르더니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 사람, 이미 출국했을지도 모르거든요.", "그래도 언젠가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마크가 아무 생각없이 던진 말에 하얀은 정곡을 찔린 것처럼 불편한 기색을 내었다. 결국 그는 무릎에 올려두었던 팔짱을 풀더니 팔에 턱을 괴었다. 분해할 때나 가끔 보았던 아이의 습관이었다.
"만약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그쪽도 제가 마음에 들 거에요."
확신을 담아 맹세하는 듯한 하얀은 드물게 말이 많아진 상태였다. 고양된 것처럼도 보였다. 마크는 즐거워 보이는 아이를 두고 더 할 말을 잃었다. 하얀의 기분이 좋다면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정확한 답에서 계속 빗겨 나가는 대꾸에도 일단은 만족하기로 했다. 미이라처럼 전신에 붕대를 감고있는 하얀의 눈은 여전히 서늘하게 빛을 발하며 그의 심장 언저리를 건드리며 불안을 찔러댔지만, 열에 취한 하얀은 첫사랑을 시작해서 들뜬 것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즐거워 보였다. 그 덕에 어느 정도의 시름을 내려 놓을 수 있게 된 마크는 자세한 내막을 캐내는 것은 뒤로하고, 일단 푹 쉬고 보자는 인사를 아이에게 남기고 일어섰다.
그렇게 에밀리와 헨젤이 있을 방으로 향하던 마크는 문득 자신에게 쏟아질 것처럼 내리 비치는 달빛을 느끼고 창을 바라보았다. 그는 하늘에 크게 뜬 보름달을 보며, 하얀이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사람과 무사히 얼굴을 마주하길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마크는 자신의 어린 소년이 다시금 기쁨을 느끼고 하늘을 나는 것 같은 행복에 환한 미소지을 수 있기를, 저 어린 것이 다시금 세상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누군가가 하얀을 찾아와주길 간절히 바랐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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