再生

이자요이 아야오미 :: C. @situv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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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이 끝난 교정은 누군가의 눈물 자국처럼 짭짤한 공기를 남기고 있었다. 수많은 이별과 작별이 오늘 이곳에서 있었기에, 그 씁쓸함이 공기에 남은 것일지도 몰랐다. 이자요이 역시 몇 시간 전까지는 이 공간에서 이제 교정을 완전히 떠나게 되는 선배들을 배웅하고, 훌쩍이는 동기나 후배를 옅은 미소를 띠며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교정에 남은 것은 자신뿐이었고, 그것이 몹시나, 쓸쓸하다고 느껴졌다. 제 발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오직 제 발소리만이 울렸다. 발을 맞춰 걸어 줄 사람도, 어긋난 발소리로 제 옆을 지나가는 사람도 지금은 없었다.

그때, 무대 위에서는 어떠했던가? 모두가 같이 발을 맞춰 무대 위를 우아하게 걷고, 화려하게 뛰고, 제 모든 것을 내뱉듯이 노래하고, 눈앞의 반짝임을 향해 자신을 내보였다. 그건 좋았죠, 단순하고 짧은 감상이 제 안에 떠올라, 이자요이는 입매를 올렸다. 반짝거리는 것을 얼마든 볼 수 있었던 기나긴, 그러나 한순간으로 지나간 날이었다. 그리고 그 막이 내린 지금, 이자요이에게 남은 것은 묘한 회한이었다.

 

고개를 들어 창문의 바깥을 바라본다.

눈 바로 앞에 뻗어 나온 가지를 보며,

이자요이 아야오미는 생각한다.

 

3월의 새순이 돋는 매화나무를 올려다보며, 이자요이는 눈이 부시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연두색 싹이 올라온 나무 너머로 보이는 햇살이 눈부셔서는 아니었다. 햇살보다는 오히려 그 햇살을 받아 빛나는 연두색의 싹이 눈부셨다. 매화는 봄이면 피어났다. 그리고 꽃이 떨어지면 싹을 내보이며 자신들의 시작을 알렸다. 제집의 정원은 그와 반대였다. 겨울이면 동백나무는 동백꽃을 피우고는, 그것이 채 지기도 전에 그것을 떨구었다. 소리도 없이 떨어져 쌓이는 붉은 꽃은 겨울의 끝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자신은 자라왔다. 그러므로 자신의 발치에 떨어지는 것도 매화의 꽃잎이 아닌, 그 붉은 꽃 덩어리였다.

 

창문에서 고개를 돌리고 다시 복도를 걷는다.

제 발치에 울리는 것은 제 발소리뿐이다.

이자요이 아야오미는 그러므로 생각한다.

 

새싹에서 피어나는 초록을 보며, 동백에서 타오르는 붉음을 떠올리고, 곧 모든 것이 타오른 뒤의 회색 재를 생각했다. 불타오르고 남은 것은 늘 재였다. 자신은 늘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당장의 반짝임, 불타오르는 것들을 사랑한 나머지, 그것들이 어떤 파국을 맞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니, 알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계속하여 자신은 자신의 생각에 갇혀 있던 것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 피아노 콩쿨에서 본 그 표정을 잊지 못하고, 계속하여 그 무대 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무대에서 내려오니 그곳에는 재가 되어 버린 불꽃과, 재조차 되지 못하고 꺼져버린 불꽃들만이 황망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였다. 그것들이 자그마한 바람에도 회한이, 후회가 되어 자신을 덮쳤다. 그러니 무대의 마지막 막을 내리기 위해서 자신은 지금 여기에 있었다.

 

서류는 짧고 명료하다.

서류를 받은 선생님도 다시 한번 입을 열려다가,

자신의 앞에서 웃는 이자요이 아야오미를 보고 입을 닫는다.

 

제 손에 있던 서류를 타인의 손에 넘기고, 이자요이는 교무실을 나왔다. 미리 준비된 절차를 마치고, 정말 마지막 서명을 받기 위한 서류였기에 그 이상의 절차는 없었다. 자퇴서, 라는 글자를 마지막으로 보고 자신은 웃었다. 그 단어가 어딘가 웃겨 보였다. 이런 것 하나로 자신은 여기를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연명을 위해 질질 끌어온 무대가 아닌, 하나의 무대에 제대로 된 막을 내리고 난 뒤 갈 수 있는 곳, 새로운 불꽃, 어쩌면 자신의 안에서는 처음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를 불꽃을 찾으러……. 어쩌면 누군가는 그것을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었고, 누군가는 그것을 배신이라고 할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연기가 아니예요.

아니, 그것도 연기가 아니었어요, 단 한 번도.

당신이 소중했으니까요.

 

그런 말이 입가에 맴돌아서 이자요이는 제 입을 가볍게 가렸다. 그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들어줄 상대는 지금 눈앞에 없었다. 대신, 이자요이는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네, 아버님. 마무리하였으니 이제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이에요. 네, 공항에서 뵐게요. 짧은 통화는 금방 끝났다. 다시, 복도를 홀로 지나가며 발소리를 울렸다. 이 소리도 마지막으로 듣는 것이라 생각하면 조금 아쉬운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자요이는 괜찮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시간을 들여서 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쩌면, 정말 오만하게도 자신이 꺼트린 불꽃을, 재를 조금은 보상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다시 교정으로 나와 정문까지 짧은 거리를 다시 걸어 나가면, 머리 위에서 저녁노을을 실은 바람이 아직 어린 새순을 쓰다듬었다. 그래, 싹은 다시 피어오른다. 재는 다시 불을 피울 수 없지만, 재에서는 다시 새싹이 날 수 있다. 그것을 약간의 위안으로 삼는다면 자신은 역시나 이기적이고 오만한 것일까. 그렇지만 그것을 바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이자요이는 자신을 기다리는 차의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뒤를 돌아 학교를 바라보았다.

 

잘 있어요.

즐거웠어요.

 

이자요이 아야오미는 제게만 들릴 목소리만 그렇게 인사한다.

막이 내린다. 새로운 재생을 기다리듯이.

C. @situvien

4주간의 러닝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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