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

02.

S by 렘
3
0
0

오. 안녕해요. 거기는 어때요?

여긴 좀 망했어요. 좀이 아니라 많이? 아무튼, 음, 산 사람이 별로 없어요. 나 때문은 아니에요. 나는 최선 다했어요. [죽겠답시고 블랙홀로 뛰어드는 사람 뒷덜미 붙잡으면서 인생 설교하는 것도 한두 번이죠. 그거 은근히 빨리 질린다니까요.]

오늘 날짜가……. 2043년 7월 14일이에요. 딱 일주일 지났어요. 음, 그러니까 강원도에 고립된 지 일주일 정도 지났다는 뜻이에요. 눈은 오지 않아요. 정말 다행이에요! 나는 캘리포니아 출신이라 추운 거 싫어하거든요.

아차, [내가 말 안 했던가요?] 나는 B예요!

 *

 첫인상은 뭐 저런 애가 다 있지, 싶었다. 절대 긍정적이라고 말할 순 없고, 그렇다고 아예 부정적으로 보기에는 좀 애매한. 긍정과 부정 딱 가운데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했다지. 첫인상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결론적으론 별난 애라고 생각했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이름은 A. 대한민국이 배출한 여섯 번째 S급 에스퍼이자 불세출의 천재. 열아홉이란 나이에 강안도인지 강운도인지 하는 지역을 통째로 구했단다. 솔직히 말하겠다. B은 새로운 S급이 올라온단 소식을 듣고 추호도 관심이 없었다. 아니, 그야 그렇잖아. 새로운 전력이 보강된다면 그냥 그래요? 좋네요, 하고 말지. 같은 S급끼리도 분명한 차이는 존재하고, 그 사실에 목매는 누군가라면 호승심부터 불태웠을 것이다. 하지만 B은 싸움광 같은 부류는 아니니 별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A을 처음 만난 건 환영회 파티에서다. 그럴싸하게 꾸민 홀에서 에스퍼와 가이드들이 저들끼리 모여 수군수군, 숙덕숙덕. 그날 B은 답답한 연미복을 안 입겠다고 매니저와 입씨름하다가 지각했다. 성화에 못 이겨서 와이셔츠에 넥타이 하나 매기로 합의 봤는데, 그 꼴로 헐레벌떡 들어가니 막 새로운 S급 에스퍼에 대한 소개가 끝났더랬지. 뒤늦게 들어온 B만 눈을 끔뻑끔뻑 뜨다가 남들 따라 박수나 좀 쳤다. 그리고 관심은 거기서 끝. 그야, 모르는 S급 에스퍼와 산처럼 쌓인 초콜릿 중 하나를 고르라면 물을 것도 없이 후자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첫인상이랄 게 없었다. 당연하다. 얼굴도 보질 못했으니까. 당시의 B이 봤던 건 단상을 내려가는 검은 뒤통수뿐이었다. 게다가 파티 내내 초콜릿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다가 매니저한테 쓴소리 듣는 B과는 달리 파티의 주인공은 바빴다. 아주 바빴다. 이리 뛰었다가 저리 뛰었다가. 얼굴 대신 자기 부르는 곳 있으면 헐레벌떡 달려가는 뒤통수만 잔뜩 봤다.

제대로 된 첫인상을 갖게 된 계기는, 그치, 아무래도 그거지. 2039년 5월 3일에 일어난 서울 대규모 습격 사건. 중상급 크리쳐들이 떼를 이뤄서 치는 바람에 한동안 말이 많았다. 지금껏 크리쳐들은 이성이 없다고들 했는데, 실은 지성이 존재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참고로 B은 그들도 기본적인 사고가 존재한다는 편이다. 사실 이건 한 번이라도 싸워 보면 안다. 정신없이 싸우다가 보면 어느 순간 자기 능력으로 대응하기 까다로운 녀석과 맞붙고 있거든.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2039년 5월 3일의 B은 훈련 도중 급작스럽게 불려 나갔다. 그리고 목격한 건 상급 크리쳐들이 우글우글 떼를 짓고 서울을 점거하다시피 한 장면. 같이 불려갔던 동료 중 하나는 뭐 하느라 이렇게 늦게 불렀냐고 벌컥 화를 냈더랬지. B은 간략하게 브리핑 듣고 곧장 쌈판으로 진입한지라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A이 도착한 건 그로부터 정확히 십삼 분 뒤랬다.

십삼 분 동안 B이 없앤 크리쳐는 모두 합쳐 사백일흔여섯 마리.

십삼 분 후 도착한 A이 삼 분 동안 물린 크리쳐는 모두 합쳐 육백쉰일곱 마리.

공격하던 크리쳐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어기적어기적 돌아가는 장면은, 그래, 말하자면 장관이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던 피아노 선율이 퍽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죽기 살기로 싸워대던 에스퍼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고, 그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사령관이 있는 캠프를 보고, 그 가운데에서 툭 튀어나와 손 뻗은 A을 본 건 모두 찰나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깨달았을 것이다. 저놈 짓이라고. 서울을 쳤던 크리쳐들을 전부 물리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저놈이 한 짓이라고. 귓가에 희미하게 맴도는 이 먹먹한 선율은 저놈이 연주하고 있을 거라고.

B도 이제는 안다. A은 그날 있는 대로 무리했다. 가이드가 몇 초라도 늦었더라면 꼴딱 숨이 넘어갔을 것이다. 사실 당시에도 대충 예상하긴 했다. 눈과 코와 입과 귀와 아무튼 몸에 뚫린 구멍이라면 어디에서든 피가 줄줄 흐르는데, 그걸 보고 무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B이 본 건 피 흘리는 가련한 에스퍼라던지 손짓 한 번에 서울을 친 상급 크리쳐를 되돌려보내는 괴물 같은 것이 아니다.

B은 그냥 A의 눈을 봤다. 생경한 보랏빛으로 타오르는. 핏발이 잔뜩 선,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앞을 쏘아보길 그만두지 않는 눈. 바들바들 떨리던 손끝을 지나 마지막 크리쳐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장면을 눈에 담는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A은 비틀거리다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첫인상은 그때 느꼈던 것 같다. 뭐 저런 애가 다 있지.

아니, 그렇잖아. 에스퍼로 각성해서 정부에게 이제부터 당신은 정부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세뇌당하듯 듣는대도 보통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지. 진짜로 한 몸 바쳐서 일하는 사람이 어디 흔하다고. 본인들이 인정하진 않겠으나 B은 이곳에 속하는 에스퍼의 팔 할 정도가 코앞에 닥친 죽음 앞에선 정부고 뭐고 홀랑 도망칠 것이라 자신할 수 있었다. B도 그랬다. 딱히 도망친다는 말을 쓰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정부를 위해 살다가 정부를 위해 죽을 맘은 없다. 그냥 뜨신 밥 주고 누울 곳 주고 능력도 웬만큼 자유롭게 쓸 수 있고, 단점보단 장점이 많으니까 입 닥치고 있는 거지.

그런데 쟨 아니다. 보자마자 알았다. 같은 S급 에스퍼인 B은 A이 방금 얼마나 죽음에 가까웠는지 기민하게 알아챘다. 비유해보자면 스틱스강에서 수영하다가 카론이 오기 직전 우연찮게 낚싯바늘에 걸려 낚여 올라진 느낌이랄까. 낚싯바늘에 안 걸렸다면, 그러니까 근처에 S급 가이드가 대기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A은 죽었다. 이백 퍼센트로 죽었다. 그리고 사람과 나라를 위한 숭고한 죽음이니 뭐니 떠받들어졌을 것이다. 한 두 달 동안? 그리곤 잊혔겠지. 다들 그러니까.

그런데 쟤는 왜 저렇게까지 힘을 썼을까. B은 그날 가이드에게 안겨서 숨만 간신히 내쉬는 A을 보며 생각했더랬다. S급이라고 불릴 만하다. 능력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범주는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파견 온 에스퍼들은 전부 B급 이상이다. 무엇보다 S급인 B이 있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피에 젖어 감긴 눈꺼풀을 보며 속으로 물었다. 왜 그랬어? 물론 대답은 오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을 보니 얘 진짜 죽었나 싶기도 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그날 매니저가 저기서 싸우는 에스퍼는 전부 C급이라고 거짓말했단다. 그걸 철석같이 믿고 무리했다는 것이다. 매니저에게 이유를 물으니 측정상 능력의 총량이 나오지 않아서, 그걸 알기 위해 내린 부득이한 결정이었댔다. B은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생각했다. 퍼킹 거버멘트. 퍼킹 코리아. 퍼킹 매니저.

A이 정신 차렸다는 소식을 들은 건 2039년 5월 12일이었다. 그때 B은 의무실에서 가이드에게 조물조물 손 마사지 받고 있었다. 어저께 나간 임무에서 좀 흥분했더니 폭주 수치가 높아졌다느니 뭐라느니. 아직 완벽한 제어 아래 있다고 주장해도 듣질 않으니 그냥 받는 수밖에. 그렇게 동태눈깔 뜨고 앉아 있는데 누군가 다급히 들어오더라. 그러면서 숙덕댔지. A 에스퍼 깨어났습니다. 하릴없이 차트나 훑고 컴퓨터 딸깍거리던 힐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그래서 B도 덩달아 뛰었다. 궁금한 것 반, 심심한 것 반. 곁에서 힐러가 식겁하며 저리 꺼지라는 말을 곱게 돌려 전하는 것도 가볍게 무시했다. 한두 번 모르는 체하니 나중엔 포기하더라.

“아무튼, 방금 깨서 예민하실지도 모르니 자극하시면 안 됩니다. 같은 S급인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에스퍼들끼리 의도치 않아도 서로 자극하게 된다는 사실 정돈 아시죠?”

그럼 나 들여보내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묻고 싶은 것을 꼭꼭 씹어 삼키며 웃었다. “Okay. 알겠어요! 나 조용히 있는 거 잘해요.”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하니 질린 눈으로 보더라. 하긴, S급 에스퍼가 같이 가겠답시고 우기는데 그걸 일개 힐러가 어떻게 막아.

병실 문이 열렸다. 힐러는 고개부터 들이밀더니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다. 안에선 잠긴 목소리가 괜찮습니다, 했다. B은 입을 꾹 다물고 종종걸음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엔 A이 있었다.

빛을 받으니 오묘한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눈, 정리하지 않아 덥수룩한 머리, 아무튼 이목구비 자체는 준수한데 인상이 사납다. 볼에 콕 찍힌 점이 눈길을 끌었다. 꼭 하얀 우주에 생긴 블랙홀 같아서. 흐음,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데 시선이 맞닿았다. 사나운 눈매가 쏘아보듯 바라보자 아차 싶었던 건 사실이다. 화났나 싶어 인사부터 하려는데 그쪽이 냅다 고개를 처박았지.

“처음 뵙겠습니다! A입니다. 제가 지금 일어날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이리 인사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못 일어나겠어요, A 씨?”

“아, 예. 몸에 힘이 잘 안 들어갑니다.”

“일단 나 좀 볼래요? 감각부터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합시다. 우선 빛 반응부터 볼 테니까…….”

딸깍. 딸깍. 힐러가 휴대용 불펜을 딸깍댄다. 일정한 리듬이 울린다. 그에 맞춰 눈을 끔뻑였다. 오, 뭔가 생각이랑은 좀 다른걸. 성격이 얼굴 따라갈 줄 알았는데 정반대였구나.

그래서 힐러가 서류 작업하는 동안 곁자리에 앉았다. 의자를 끌고 와서 앉으니 A이 똑바로 바라봤다.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는 유달리 희었다.

“나 B이에요.”

“압니다. B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 A입니다.”

“나 알아요?”

“모르는 게 이상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A이 줄줄이 읊었다. 지금까지 B의 경력을. 열세 살 때 S급으로 각성해 미국 지부에서 활약하다가 열일곱 때 돌연 한국으로 이적. 크리쳐들의 공격으로부터 구한 사람들은 셀 수가 없음. 능력은 블랙홀. 올해 열아홉 끝자락. B은 A이 말하는 자신의 약력을 대강 흘려듣다가 물었다.

“근데 왜 그랬어요?”

“예?”

“나 있는 거 알았으면 그럴 필요 없잖아요. 힘 막 쓴 덕분에 A 오늘로 열 일째 입원해 있는데.”

“헉, 제가 열흘이나 잤습니까?”

그게 문제냐? 그게 문제야? 눈썹만 쓱 올리는데 A이 음, 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뭔가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그러더니 말하는 것이다.

“B 씨의 능력과 등급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B 씨의 능력은 동료가 주위에 산재해 있을 때 그 위력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피해가 커지고 있었고, B 씨가 전력을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제가 나서서 빨리 정리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과소……가 뭐예요?”

“예?”

“A 어려운 말 너무 많이 써요. 산재는 또 뭐예요?”

“예?”

하여간 그날은 단어 의미 파악하다가 쫓겨났다.

 A은 이틀 뒤에 복귀했다.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늦어서 죄송하다고 외치는 A을 보며 B은 깨달았다. 아, 병실에서 만났을 때 저렇게 인사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한 거구나. 그래서 그냥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돌아온 A에겐 곧장 꼬투리가 붙었다. 이른바 크리쳐들의 왕. 크리쳐들의 우두머리. 손짓 하나만으로 그들을 물리고 부르는, 저항할 수 없는 크리쳐들의 황제. 뭐 그런 것들. 물론 앞에서 떠들어댈 사람은 없었다. B은 그 별명들을 듣고 대충 이유를 캐봤다. 그리고 아마 지성이 없다던 크리쳐들이 동시 공격을 감행한 점, 지금껏 조용하던 A의 등장과 시기가 엇비슷한 점, 마지막으로 S급에 대한 사람들의 질투와 시기가 대충 뒤섞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A에게 전할까 하다가 관뒀다. 눈치도 없는 것 같던데 이런 건 모르는 게 상책이니까.

와중에 B과 A의 관계는 어떻게 진전되고 있느냐 하면, 글쎄. 일단 말은 놨다. 사실 S급 중 A의 또래는 B밖에 없었고 붙어 다니는 시간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놓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좀 삐걱거리다가 어느 순간부턴 바보야, 네가 더 바보야, 하는 사이가 됐다. 나쁘진 않았다. B도 마침 심심하던 차였으니까.

B은 A과 파트너를 맺었다. 가이드와는 별개로 둘의 능력 시너지를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B이 능력을 완전히 개방하려면 주위에 사람이 없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B의 능력을 활용하는 데에 있어 지금껏 일련의 절차가 있었다. 첫째, 에스퍼가 나서서 크리쳐들을 공터로 유인한다. 둘째, 정부 요원들이 나서서 그동안 근방 사람들을 전부 대피시킨다. 셋째, B이 능력을 쓴다. 한 마디로 성가셨다. 능력 대비 효율이 꽝이었다. B의 제어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 가능해서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냥 껍데기뿐인 S급이 될 뻔했으니까.

그런데 A이 나타난 것이다. 크리쳐들을 조종할 수 있는 A이! A이 있다면 앞의 두 단계를 간단히 건너뛸 수 있다. 그냥 A이 나서서 사람 없는 곳으로 가시오, 하면 되니까. 그럼 B은 그냥 능력을 쓰면 되는 거다. S급 둘이니 화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B은 A과 파트너가 됐다. 후회하지 않는다.

둘이 파트너를 맺고 처음 나간 임무에서, 그들은 크리쳐 일백스물네 마리를 삼 분만에 처리했다. 그리고 씩씩대며 복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A이 나더러 바보랬어요. B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바보가 맞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 짧은 새를 못 기다려서……. 아니야! 그때 쓰는 것도 문제는 없어! 아니야!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이다가 허겁지겁 나온 소장에게 사이좋게 혼났다. 일 처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빨리 왔냐는 질문에 B은 그냥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삼켰어요. Easy-peasy. 사건의 경위를 얻어들은 소장은 뒷목 잡고 쓰러졌다. 저 애새끼들을 어떡해. 유언 아닌 유언은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다.

B과 A은 대개 그랬다. 별것 아닌 일로 투닥거리면서도 결국엔 붙어 다녔다. 너희는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는 말에 B은 그냥 알아서 생각하게 내버려 뒀다. B과 A이 붙어 다니기 시작한 지 시간이 좀 지났을 무렵 B은 깨달았다. 어떤 관계는 정의되지 않는 편이 나은 법이다. 정의되기에 B과 A이 나누는 관계나 감정은 너무 광막하다. 우주도 우주라고 불리기 시작하며 끝이 정해진 거나 다름없는데. 정의된 관계는 죽은 관계뿐이다. B은 A과의 관계에서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너희는 대체 무슨 관계냐는 질문은 전부 대답하지 않았다.

2039년 8월 18일, 파트너 맺은 지 두 달째 되던 어느 날 B은 그냥 물었다. A, 소문 도는 거 알아? 서류를 팔랑팔랑 넘기던 A이 물었다. 무슨 소문? B은 자세히 설명하려다가 대충 얼버무렸다. A이 크리쳐 대마왕이래. 그러자 A은 말이 없었다.

물은 이유를 설명하라면 B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B은 때때로 충동적으로 행동했고, 그 기저엔 매서운 감각에 기반한 결론이 있었으나 그걸 언어로 치환하는 일은 번거롭고 어려웠다. 그래서 B은 일련의 과정을 대충 충동성으로 대신하고 다녔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A에 대한 소문은 당사자가 반응하지 않자 그 몸집을 무섭게 부풀렸다. 이제 A은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크리쳐를 불러낸 마왕 비슷한 존재가 됐다. 웬만한 사람들은 소문을 알았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들은 A을 꺼렸다. 바보 같은 일이었다.

A의 능력 마에스트로는 그런 게 아닌데. B은 A 걔 애가 좀 이상하지 않냐며 숙덕이던 사람들의 기억을 괜히 회상했다. 크리쳐들을 조종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야? 아무리 단계가 높은 놈이어도 A 손짓 한 번이면 몸 옹송그리고 사리던데. A이 진짜 이 망할 사태의 원인 아니냐구. 그런 능력이라니 진짜 이상하잖아. B은 A을 열심히 씹어대는 소리를 듣다가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저들은 A이 능력을 사용할 때 들리는 선율을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으니 저런 말을 할 것이다. 구설수들이 겹치고 쌓이다 보니 A의 능력에 대한 화제를 좀 가볍게 여기게 된 면이 있었다.

B은 서류를 넘기다가 얼어붙은 A을 빤히 바라봤다. 그늘진 속눈썹이 천천히 팔랑인다. 눈꺼풀이 눈동자를 덮었다가 드러내길 반복한다. B은 A이 답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걸 믿었냐고 투덜거리다가 바보라고 일갈하고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A은 그러지 않았다.

나한테 누나가 있었거든.

느리게 떨어진 입에서 흘러나온 첫 마디를 듣자마자 알았다. 제대로 실수했다. 누나라는 가족을 칭하는 데에 과거형을 사용했다는 점도, 서류에서 눈을 뗀 A이 창밖을 바라봤다는 점도, A이 항상 대화할 땐 상대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라고 잔소리했다는 점도. 전부 머릿속에 맴돌다가 펑 터진다.

누나도 에스퍼였는데, 등급은 낮았어. C급이었나 D급이었나, 기억은 안 나. 능력이 감응이었어. 그래서 누나는 항상 공감을 잘했어.

싫으면 말 안 해도 돼, A.

싫은 것 같아?

A이 되물었다. B은 눈을 깜빡였다.

누나는 알았어. 내 말 한마디, 고개 끄덕임, 눈 깜빡임 한 번 정도로도.

A은 또 말이 없었다. B은 저도 모르게 입을 가렸다가 비린 피 맛을 봤다. 그제야 제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입술을 내버려 두기 시작하자 이번엔 손이었다. 손 거스러미를 한창 괴롭히는데 A이 말했다. 또.

누나가 제일 먼저 알았어. 크리쳐들 오고 있다는 거.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까, 느껴졌대. 똘똘 뭉친 뭔가가 있었대. 근데 그게 꼭 인간 같지가 않더래.

그래서?

그래서고 뭐고, 그냥 전부 대피했지. 그렇게 해피 엔딩이면 좋았겠지만.

때는 바람이 적당한 저녁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그림자만 길게 졌다. B이 보는 A의 뒤통수는 새카맸다. 자그마한 머리통 위로 볕뉘가 흐늘흐늘 흔들렸다. 그게 싫었다.

크리쳐가 습격했을 때 누나가 날 살렸어. 그러면서 나더러 우리 A이 슬퍼하지 말랬어. 실은 자기가 더 무서웠을 건데.

…….

누나 숨이 끊기는 순간 알았어. 누나 죽었다는 거. 누나가 했던 말이 뭐였는지도 다 알겠더라고. 똘똘 뭉친 뭔가, 그런데 꼭 인간 같지가 않은.

그래서?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다 없어지더라.

그게 그렇게 간단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B은 캐묻지 않았다.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크리쳐들이 느끼는 감각이 손끝에서부터 몸 구석구석 전해져. 누나도 이랬는지 궁금해. 능력을 쓸 때마다 인간 A이 흐려지는 기분이야. 원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에 휩쓸리면 안 되는 건데. 그리고 무엇보다…….

A이 입을 다물었다.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꼭 훌쩍대는 울음처럼 들렸다. B은 책상에 늘어져 눈만 올려 떴다. A의 얼굴이 보고 싶다. 이쪽을 봐달라고 말하진 않았다. 옆얼굴이어도 충분했다. 원래 옆얼굴은 거짓말 못 한댔으니까.

까치놀이 굴곡진 얼굴에 맺혔다. 반쯤 보이는 옆얼굴은 스민 노을에 마치 눈물 고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누나 죽이고 얻은 능력 같아. 그런데 그걸 쓸 때마다 크리쳐가 된 것 같아. 최악이야.

A의 중얼거림은 희미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뻣뻣한 고개를 창밖에 고정하던 A은 이내 느리게 고개를 돌려 서류를 내려다봤다. 다시 종이가 팔랑팔랑 넘어간다. 멈췄던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은 감각이다. B은 그제야 알았다. A이 그토록 사람을 살리는 데에 헌신적인 이유. A 자체가 선한 사람인 것도 있지만 행동의 원동력이 되는 건 기저에 깔린 분명한 죄책감이다.

위로하는 데에는 별 자신이 없다. 살면서 열성적으로 누군가를 위로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A이 제 몸을 깎아가면서까지 사람을 살리는 데에 사용하는 원동력이 실은 몹시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말해봐야 A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사람은 한 구석쯤은 미쳐 있어야 제정신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B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B은 피가 몽글몽글 배어 나오는 엄지손가락을 보다가 그냥 나직이 웅얼거렸다.

블랙홀 안에 빨려 들어간 사람 많아.

응.

그게 슬퍼.

응.

A도 슬퍼?

응.

그럼 됐어. 아직은 사람이야.

아직은.

응. 아직은.

 사람이 망하는 거 한순간이란 건 B도 알았다. 그런데 한순간이라는 게 이렇게 찰나일 줄은 몰랐다는 게 허점이라면 허점이었다.

딱 하루였다. 딱 하루 동안 B은 쉬었다. 한 일 년쯤 개같이 일하고 딱 하루, 빈둥빈둥 놀았다. 넷플릭스 보고 팝콘 뜯고 초코바 먹고 했다. A은 오랜만에 휴가를 나갔다. 조부모님도 뵙고 겸사겸사 딸기도 한가득 따오겠다고 했다. 천천히 와. 천천히. 손을 대충 휘저으며 배웅했다.

하루가 지났다. A은 복귀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난리가 났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B은 딱 하루의 휴가가 정말 꿀 같았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B을 부른 상부는 그를 앉혀놓고 A의 행방을, 그의 최근 행태를, B과 A의 관계 따위를 취조하듯 물었다. B은 차근차근 대답했다. 어딨는지 몰라요. A 멀쩡했어요. 그러다가 무슨 관계냐는 질문에 한참 고민하다가 대답하는 것이다. 파트너요. Partner. Part-ner. 한 부분을 나눠 가지는 사람. 관계가 마침내 정의됐다. 그리고 까무룩 죽었다. 죽어버린 관계의 사체를 앞에 두고 B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A이 사라졌다. 이튿날이 지나도 복귀하지 않았다. 사흘, 나흘, 닷새, 엿새가 흘렀다. 복귀하지 않았다. 일주일, 이주일을 지나 한 달이 흘렀다. 복귀하지 않았다. B만 덩그러니 남았다. 언론은 S급 에스퍼의 실종이니 뭐니 자극적인 기사를 뽑아냈다. B은 그것들을 대충 훑다가 퍼킹 매스컴 하며 껐다. 텅 빈 침대에 드러누워 있다가 칭얼거렸다. 천천히 오라고 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천천히 오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A은 수배지에 얼굴을 올렸다. 법적으로 정부에 소속된 에스퍼가 무단으로 이탈하는 건 중범죄랬다. 졸지에 세상을 구할 S급 에스퍼에서 범죄자가 됐다. 발견 즉시 구속, 반항이 심하면 사살이란다. 사람들은 또 숙덕거렸다. 크리쳐 대마왕 맞다니까 그러네. 이번에도 시기가 겹친 탓이다. 서울을 기웃대던 크리쳐들이 자취를 감췄다.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웠다. B은 사내 식당에서 밥을 퍼먹다가 살면서 처음으로 체했다.

일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후 A의 본가로 가봤다. 조부모님이 계셨다. 우린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되풀이하다가, B이라는 이름을 듣고 반색하셨다. 우리 토깽이가 얘기 참 많이 했는데.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리신 말에는 아무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A이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제 누나 그렇게 보내고 나서. 사실 누구 잘못이랄 건 아닌데 말이야.

맞아요.

그래도 우리 A이가 그짝 얘기할 때는 얼굴이 좀 밝았어.

진짜요?

진짜고 말고. 거짓말을 우에 하나. 그래서 좀 안심했는데.

으음.

불효자여.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어. 사춘기를 조용히 지나서 그런가, 애가 속을 으마으마하게 썩혀. 이 불효막심한 놈이 또 어딜 갔는지 모르겠어.

맞아요. 완전 맞아요.

어디 있든 몸 성히 있었음 좋겠는데. 우리 토깽이가 어디로, 어디로 갔을꼬.

B은 A이의 조부모님께서 직접 배웅해주셨다. 성대한 작별과 함께 강원도를 벗어났다. 허리를 구십 도로 접어서 인사하는데 문득 A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자신이. 복귀가 늦어서 죄송하다며 허리를 빠릿빠릿 숙이던 모습이 떠올라서 괜히 심통이 났다. 만일 돌아온 A이 허리 구십 도로 숙이면서 미안하다고 하면, 이번에야말로 자꾸 늦으면 안 된다고 으름장이나 놔줘야지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창을 봤다. 창문에 비친 얼굴이 울상이었다.

우리 토깽이가 어디로, 어디로 갔을꼬. 조부모님의 말을 곱씹어봤다. 진짜 어디 갔는지 모를 노릇이다. 강원도 어드매에 있을까. 산골에 처박혔으려나. 죄책감이 좀 덜어져서 그래? 누나가 준 능력으로 자기 몸 깎아 먹는 짓이 비이성적이란 걸 마침내 깨달은 거야? 강원도와 서울은 멀었다. 올라탄 고속버스로도 몇 시간 걸릴 것이다. 꾸벅꾸벅 졸다가 어느 순간 의식이 끊겼다. 눈을 번쩍 뜬 건 기민한 감각이 무언가 이상함을 잡아챈 탓이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천장에 들러붙고 땅에서 기어 나오고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저것은 분명 크리쳐다. B은 그것들을 노려보다가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났다. 지척에 다가온 크리쳐 한 마리를 붙잡았다. 커다란 물건을 작은 청소기가 흡입하듯 쭈우욱 빨려든다. 그러다가 사라졌다. 크리쳐가 왜 아닌 대낮에 나타났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들에게 있어 상식을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래서 B은 버스 안 사람들에게 여기에 가만히 있으라고 외치고 버스 밖으로 나섰다.

바깥이 개판이다. 사람과 자동차와 비명과 크리쳐가 한 데 뒤섞였다. 여기서 능력을 썼다간 크리쳐만큼이나 사람을 죽일 판이다. B의 능력인 블랙홀은 공간을 통째로 빨아들인다. 사람이니 크리쳐니 자동차니, 그런 것 일일이 구분하며 빨아들일 것과 빨아들이지 않을 것 나눌 수 없다. 하나씩 잡으러 다니자니 너무 성가시고 수가 많았다. B은 혀를 차며 일단 능력을 풀었다. 원래 크리쳐들은 강한 놈을 선호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 민간인이 다칠 일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이후론 그냥 그랬다. 개처럼 싸웠다. 이놈의 윗대가리들은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지원이 오지를 않았다. 쉰여섯 번째 대가리를 날리고 숨을 고르는데 익숙한 선율이 들렸다. 아는 노래였다. 그런데 조금 다른. 물속에 잠긴 듯 잠잠한 바이올린 소리다. B은 이 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한 것만 들어봤으나 선율의 주인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크리쳐들이, 또다시, 멈춰 선다. 누군가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얼어붙었다가 서서히 되돌아간다. 시청 중이던 영상을 되감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B은 끊이지 않고 귓가에 진득하게 눌어붙는 선율을 느끼다가 가볍게 몸을 튕겨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지면이 멀어졌다.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보였다. 어슷한 산등성이 어귀에 서서 손을 내뻗은 A.

눈이 마주쳤다. A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A의 코에서 붉은 핏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B은 부드럽게 날아가 A의 곁에 안착했다. 크리쳐들은 또다시 지평선 너머로 뉘엿뉘엿 졌다. 옷소매로 A의 콧잔등을 문질렀다. 피가 옷소매에 스미며 선홍빛 흔적을 남겼다.

A이 손을 내렸다. B은 말 없는 A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칭얼거리듯 말했다.

A 바보야. 이렇게 대뜸 없어지면 어떡해. 나 외로웠어.

어쩔 수 없었어, 바보야. 돌아가면 결심이 흔들릴 것 같았단 말이야.

뭐가?

A은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곤 B을 바라봤다.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이 인중에 점점이 남았다. 열기가 채 식지 않아 보랏빛인 눈동자가 당돌하게 반짝였다.

크리쳐들을 전부 데려갈 거야. 봐둔 곳이 있어. 거기로 전부 유인하면 이제 더는 다치는 사람도, 죽는 사람도 없겠지.

안 없애?

없애려면 네가 있어야 해. 근데 그러면 안 돼.

왜?

네가 있으면 너한테 집중하게 돼서. 제어가 흔들려. 그리고…….

그리고?

괴물 되는 거랑 똑같아. 너한테 보여주기 싫어. 안 돼. 나 혼자 할 거야.

A이 단호히 말했다. B은 파고들 틈 한 점 없음을 깨달았다. A이 또 제멋대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제 몸 깎아 먹는 짓 관두느라 사라진 줄 알았는데, 이참에 그냥 갈아 마셔버리자고 결심한 모양새다. B은 눈을 가늘게 떴다가 입술을 비죽 내밀며 말했다.

이제 진짜 크리쳐 대마왕이야, A.

A은 그냥 웃었다.

 *

[어떻게 됐냐고요?]

[그걸 묻기 전에 우리는 날짜부터 따질 필요가 있죠. 내가 말했듯, 이곳은 2043년 7월 14일이에요. 하지만 당시엔 기껏해야 2040년 1월쯤이죠. 3년하고도 6개월은 어디로 증발했을까요? 왜 나는 망했다고 말했을까요? 궁금하지 않나요?]

[A의 작전은 성공적이었어요. 온 세상에 있던 크리쳐들은 사라졌죠. 진짜로 크리쳐 대마왕이 탄생한 거예요. 오, 고귀하신 황제님. 놀리니까 어찌나 질색하던지. A과 나는 2042년 12월 8일까지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그러고 보니 연락이 끊긴 지도 거의 6개월이 흘렀네요.]

[A의 작전엔 커다란 허점이 있었어요. 그건 바로 크리쳐들을 붙잡아 두는 매개가 사라진다면, 억눌렸던 전 세계의 크리쳐들이 한 곳에서 폭발해버린다는 점이었죠. A은 그걸 고려하지 못했어요. 진짜 바보라니까요. 제아무리 S급이라고 한들 결국엔 가이딩이 필요한 에스퍼인데 말이에요. 전 세계에서 끌어모은 크리쳐들을 가이딩도 없이 평생토록 붙잡아놓을 생각을 하다니, 무모한 것도 이 정도면 병이죠.]

[6개월 전에 A과 연락이 끊겼어요. 그리고 6개월 전에 크리쳐들이 전 세계로 다시 뻗어 나가기 시작했죠. 서울은 거리가 좀 있는 편이라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별 의미 없던 소모전 끝에 꿀꺽 집어 삼켜졌어요. 거긴 이제 무법지대예요. 아무도 함부로 못 가는 곳이죠.]

[내가 있는 이곳은 강원도예요. 여기도 상황 자체는 엇비슷해요. 하지만 미래가 깜깜하지는 않죠. 내가 있으니까요.]

…….

연락 끊기기 전에 A, 여기 내리는 눈이 예쁘다고 했어요.

휴가 가겠다고 하더니 안 돌아와요.

하여간 진짜 바보라니까.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