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뮤지컬

반역

뮤지컬 곤 투모로우

골방 by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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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댓돌 위에 걸터앉아 기가 찬 광경을 응망하였다. 직전까지 소리 지르며 몸부림치던 내관 유재현이 차가운 돌바닥에 축 늘어진 채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뿐인가. 곳곳에서 매캐한 연기와 뜨거운 김이 뒤섞였다. 궁인들은 입과 코를 틀어막은 채 사방으로 달음박질쳤다. 고인 웅덩이에서 피어오르는 비린내가 지독하다.

그보다 더 지독한 것은 한 식경 째 미동도 없이 꿇어앉은 김옥균이었다. 그의 하얗고 얇은 손가락에서 핏방울이 느리게 추락했다. 손아귀의 권자에도 필시 붉은 것이 배어들었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김옥균이, 이 참극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임금을 진노하게 했다.

임금의 발치에 앉은 김옥균은 눈을 굴리며 보이지 않게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한시가 급했다. 언제 군사가 물려올지 모른다. 청의 십분지 일도 안 되는 군사도 이 이상 버티기는 어렵다. 진작 움직였어야 할 다케조에의 군대도 잠잠하다. 이리 지체되어서는 계획이 틀어질 것이 분명했다.

저 멀리 회랑을 돌아드는 발소리가 들리자, 김옥균은 갈급하게 고개를 들어 임금을 보았다. 찰나 제 주군의 용안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를 마주하였다. 뺨의 하얗고 얇은 피부가 경련했다. 빛까지 잡아먹히는 깊은 물 속에서부터 손이 튀어나와 발목을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내내 말이 없던 임금은 뒤늦게 여상한 표정을 꾸며내며 교지를 받아 들었다. 옥균의 손에 흥건한 핏물이 그의 손으로 옮겨갔다.

“내 사람을, 죽이지 말라 하였다.”

목덜미가 저리다. 김옥균은 시선을 바닥에 처박고 흔들리는 눈동자를 애써 숨겼다. 내관이 물러가기도 전에 옥새 찍힌 교지가 발치로 떨어졌다. 배례拜禮는 삼갔으나, 목화의 신코가 겨우 보일 때까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임금은 느리고 무거운 걸음을 옮겨 사당으로 향했다. 장지문 닫히는 소리가 귓가에 요란했다.

김옥균은 접히다 만 권자를 집어 들고 몸을 일으켰다. 젖은 모래알과 피가 뒤엉겨 무릎이 엉망이다. 그 누구도 나서서 다가오지 않았다. 문턱 너머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던 서재필만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설령 정변이 성공하여 이완을 주살한다 해도, 그 옆에는 반드시 내 목이 걸리겠구나. 불 꺼진 창 너머를 응시하던 김옥균의 목울대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의 손아귀에서 왕명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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