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뮤지컬

북극에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골방 by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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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돌아갈 수 없겠지.

묵묵히 설원을 걷던 괴물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서더니 핏덩이가 끈적하게 엉겨 고약한 냄새가 나는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나아가기를 멈추자 바람이 선명하다. 코트 깃을 세워 뺨을 가렸다.

“…….”

내 얘기 듣고 있어?

“어차피 나는 며칠 뒤에 죽을 거야.”

질문에 알맞은 대답은 아니었으나, 그들은 서로 몰이해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없는 처지였다.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서로’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괴물은 귀를 찢어서라도 틀어막고 싶은 마음과 대답을 기다리는 관성 사이에 서 있었다. 별 도리없이 뭉툭하게 부러진 손톱으로 소매를 쥐어뜯기만 했다.

복수를 멈출 생각은 없어?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전과는 다른 종류의 정적이 흘렀다. 어설픈 심장이 통증을 일으키며 저절로 호흡이 가빠졌다. 복수를 멈추어야 할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 게 분명했다. 괴물은 팔을 휘저으며 입김을 걷어내었다.

“창조주와의 기억은 내 것이 아냐. 목이 졸리는 그 순간, 거기부터가 나야.”

산산조각을 기워 만든 몸뚱이는 북극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아주 느린 속도로 나아갔다. 괴물은 막연히 그곳을 그리워했다. 가본 적 없는 곳이었지만, 인간이 꿈을 꾸고 희망을 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육신과 정신을 가진 존재가 인간처럼 행동하는 게 놀라운 일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무렵에야 그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래.

“거기 언제까지 있을 거냐.”

괴물은 반사적으로 물었다. 꽤 오래전부터 품어온 질문이었다.

사실 나도 죽었으면 좋겠어.

문장 앞에 짧은 웃음소리가 붙어있던 것도 같다. 기껏 나를 어둠에서 끌어 올려놓고 자기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던 창조주의 발악과 달리 그 자신에게 향하는 비웃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쏘아붙이는 방법만이 고유했다. 내 머리의 주인은 그렇게 대꾸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나 그놈이나 똑같군.”

나 역시 끝까지 살기를 바라지? 네가 받은 고통만큼.

“너의 꿈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지켜봐야지. 난 불행하기에 잔인한 것뿐이다.”

당연히 그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생명을 창조하여 무기로 삼겠다는 발상. 그 발상의 근원이 ‘앙리 뒤프레’ 아니었던가? 실험을 계속하지 않았다면, 시체를 구하지 않았다면, 대신 자수하지 않았다면, 단두대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괴물’이 태어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괴물은 잔뜩 비웃어주고 싶은 마음에 입 주변을 자꾸만 일그러뜨렸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이해해.”

아. 찰나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괴물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봄을 닮은 색깔의 오로라가 커튼처럼 드리웠다.

북극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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