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지 않았음에도
강시 당보
썰 기반 이어지는 이야기
“저도 데려가요.”
미친 놈. 지 몸 상태는 알고 하는 소린가?
“형님 없으면 심심하단 말입니다. 정 가실 거면 말동무라도 붙여주시던가.”
당보는 굳은 입을 움찔거리며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을 가린 천이 사라져 형님의 위치는 알고 있지만 여전히 사슬로 묶여 있어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래도 안 데려가신 적은 없었는데. 다리야 곧 붙여주실 거고, 손은 어색하겠지만 비도를 못 날릴 정도는 아니니 상관 없지 않은가. 아 그치만 목은 매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땐 정말 아팠단 말이야.
청명은 혼자 중얼거리는 당보를 아무 말 없이 내려보았다. 잘린 부위에서는 자꾸만 살점이 떨어지고 벌어진 입을 통해 끔찍한 시취가 흘러나와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각도 못 버티지 못할 광경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제대로 구분하는 거라고는 적색과 녹색 뿐인 저 강시를 당보라고 여겨도 될까? 시체를 부상자들과 둘 수 없어 창고에 넣어두었건만, 지나가는 무인들을 죽일 듯이 노려봐 눈을 가렸고 자꾸만 문을 긁어 형님, 형님 하고 불러대 온 몸을 묶은 것이 벌써 한 시진 전이었다. 부상을 치료하고 있던 청명이 달려와 당보야 하고 불러봐도 알아보지 못하니, 천우맹 내에서도 죽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화산이라도, 차라리 당가라도 알아보았다면. 나는 몰랐어도 좋으니 네 후손들을 기억했다면..
“형니임. 당보가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터는 더 잘 막아볼게요. 아직 몸으로 막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잘 할 수 있습니다. 저번에도 잘 했고, 이번에도 잘 했잖아요.”
“네 몸이나 어떻게 해라.”
당보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고개를 내려 제 몸을 살폈다. 양 팔과 오른 다리가 없고, 배가 뚫렸었는지 자꾸만 살덩이가 흘러나왔다. 정돈되지 못한 머리카락은 오물이 묻어 끈적거렸고, 달랑거리는 부적 몇 장은 잔뜩 헤져 곧 떨어질 듯 나풀거리니 평상시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멀쩡한데요? 어차피 팔다리야 붙여주실 거고, 물에 한번 담갔다 빼면 오물도 씻겨나가니 문제 없죠.”
“누가 붙이는데.”
“에? 형님이죠.”
“…내가?”
당혹스러운듯한 목소리에 당보는 방금의 말을 차근차근 곱씹었다. 사람에 따라 멀쩡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보다 더 심한 부상에서도 저는 형님을 따라다녔었다. 전투가 끝나면 개처럼 목에 끈을 매고 질질 끌려 복귀한 적도 많았고, 냄새가 난다고 강에 몸을 처박은 채 묶어둔 적도 많지 않는가. 가끔은 다정하시기도 했지만 전투에서 크게 패하면 어김없이 제 몸을 갈라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즐거워 하신 것을 기억하고, 목을 매달았을 때 버둥거리는 꼴을 보고 생선이 파닥거리는 것 같다며 기운을 잃고 늘어질 때까지 구경하던 것을 알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도 다음날이면 새로운 팔다리가 생겨있고, 몸의 구멍들은 부적으로 채워져 다시 새것처럼 움직이니 당보로서는 당연히 이번에도 그래 주실 거라 생각한 것이다.
“너 지금 팔도 없고, 다리도 없어. 사술을 쓸 줄 아는 놈도, 부적을 쓸 시간도 없다고.”
“그럼 방패막이로 쓰면 되죠. 목만 붙어 있으면 상관없다는 거 아시면서 그러시네.”
청명은 상처에 가 있던 시선을 당보의 목으로 옮겼다. 급소 중 하나인 가슴은 부적으로 메꿔두고, 목은 꽁꽁 싸매두어 떨어진걸 붙여놨구나 하는 생각은 했지 약점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그때 목을 잘랐더라면, 당보가 알아보는 것이 늦어 제 칼날이 목에 배어들어 갔다면. 당보는 정말 죽는 것이었나.
“가만히 있어라.”
가까이 다가가자 훅 끼치는 썩은 내에도 청명은 당보의 목을 두른 붕대를 풀어내는데 집중했다. 혹시라도 부러트릴까 살살 붕대를 풀어내고 덕지덕지 붙은 부적을 떼어, 손도 긁힌 것도 아닌 묶인 자국만 가득한 목을 마주했다. 그 흔적을 살살 누르면 움찔 떨며 얼굴을 굳히니 네 약점이구나 싶어서. 차라리 여기서 널 놔주는 게 모두에게 좋은 길이지 않을까 하고. 검도 아니고, 손으로 네 목을 움켜쥐어 그 안에서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살덩이와 막혀가는 네 호흡을 느끼고. 끝내 꺾여 버린 네 생을 이번에야말로 보내주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턱을 타고 흐르는 검은 물이 끝내 청명의 손을 적시니. 보지 않아도 물의 주인은 한 명뿐이라 청명은 쥐고 있던 손을 떼 그 눈가를 살살 문질러 주었다.
“나 또 죽어요?”
“아니, 아니다. 내가 있는데 네가 왜 죽어.”
“방금, 형님이 목 누르실 때 진짜 아팠는데…”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울지마. 울지마라.”
당보는 온 몸의 물을 죄다 빼낼 것처럼 한참을 울었다. 어디서 물이 새는지 주룩 흐르는 눈물은 당보의 얼굴을 물들이고 안아주는 청명의 도복과 장포도 죄다 짙은 묵빛으로 물들였다. 죽기 싫다고, 살고 싶다고 엉엉 우는 애처로운 소리에 겁먹었던 무인들은 창고를 기웃거렸고, 청명은 감아둔 사슬까지 풀어 당보를 달래고자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나 술에 진탕 취했을 때의 이야기. 같이 낚시를 하고,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던 날들, 전쟁 중 유람에 갈까 하던 순간들과 돌아온 생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하여 널 다시 만나기 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는지를 이야기해 주면 당보는 이따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얼굴을 가린 채로 말이다. 청명은 이를 아직도 울적한가 하고 넘어 갔는데, 사실은 청명의 말 대부분이 당보에겐 처음 듣는 이야기라 대꾸할 말을 고르지 못한 것이 그 이유였다.
녹색의 머리 끈을 묶은 사람은 형님, 나는 형님을 지켜야 한다. 당보는 오직 이 명령 하나를 지키기 위해 비도를 들었다. 형님에게 다가오는 공격을 막고, 형님이 나아가는 길을 뚫으며 보조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자 제게 주어진 임무였다. 하지만 왜? 적이 누구지?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싸우는 거야? 청명의 말이 이어질 수록 당보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 할 수 없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부모는 누구인지, 어디서 무공을 익혔고,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그 무엇도 떠올릴 수 없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당보가 맞나? 당보는 근본적인 물음을 저 자신에게 던졌다. 어렴풋하지만 기억도 있고, 의식도 있다. 제 의지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아프면 아프다고 좋으면 좋다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보는 인간의 팔다리는 한번 잘리면 다시 붙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처럼 구멍을 막아두지 않으면 검은 물이 새는 경우도 없고, 그 안이 텅 비어있지도 않다는 것도. 제 몸뚱아리 마냥 이어 붙일 수 없는 것이 인간임을 너무나 잘 알았다.
투둑, 또 살덩이가 떨어져 청명의 도복을 더럽혔다. 형님은 화산파의 매화검존, 이곳은 천우맹. 시체를 되살리는 사술 따위를 형님이 알 리가 없다. 이곳의 무인들은 저를 죽이는데 뜻을 모았고, 형님에겐 시간이 없으니 저에게 남은 것도 그 정도의 시간이겠지. 저는 형님을 두고 떠날 운명인가 봅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리 되는 것을 보면 말이죠.
당보는 꾸물꾸물 몸을 움직여 청명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따뜻한 온기와 은은한 매화 향, 콩닥거리는 소리. 전부 당보에겐 주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눈물이 멎으니 밖에서 느껴지는 발소리도 느껴지고, 웅성거리는 말소리도 잡혔다. 이젠 정말 헤어질 시간이었다.
“도사 형님. 제게 시끄럽다고 하셨던 거 기억납니까?”
“내가 언제.”
“제가 형님을 다치게 했다고, 저도 똑같이 다쳐야 한다며 제 허벅지를 잘랐잖아요.”
"….“
“그래서 우니까 폭포에 매달아서 깨끗해질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 그랬죠. 저는 어떻게 해도 깨끗해질 수 없는데 말입니다."
청명이 당보의 뒤통수를 감싸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꾹 눌렀다. 모든 것을 놓고자 하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 놓고는 한 시진도 안돼서 절 풀어주셨습니다. 넌 눈물을 흘릴수록 약해지니 그만 좀 닥치라고 하시면서요.”
“… 그랬나.”
“뭘 그랬나입니까. 자기가 그런 것도 아니면서.”
쿡쿡 웃는 떨림이 맞닿은 피부를 통해 전해진다.
“나 죽으면 이번엔 잘 좀 묻어줘요. 더러우면 그냥 태워버리셔도 되니까 누가 주워가지만 못하게끔 잘 해주십쇼.”
“당가에. 너네 가문 애들 있는 곳에 잘 묻어주마.”
“좋네요. 천우맹도 좋고, 형님도 다시 봐서 좋고…”
“기억이... 다 돌아온 거냐?”
“아뇨. 여전히 당가니, 화산이니 그런 건 흐릿합니다. 사술을 걸 때 그런 기억들은 지워버린 거겠죠. 떠올려서 풀리기라도 하면 골치 아플 테니까요.”
짧은 적막이 흐르고, 문밖의 인기척이 배로 늘자 당보는 입을 열었다.
“형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좀 더 시간이 있거나 멀쩡했으면 좋았겠지만... 뭐 어쩔 수 없죠.”
“그래.. 널, 다시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저도요. 연모합니다, 형님.”
청명은 당보를 품 안에서 떼어낸 뒤, 목 가까이로 검을 가져다 두었다. 아까보단 훨씬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당보에게 마주 웃어주었고.
“연모한다.”
검을 휘둘러 하나의 생을 끊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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