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벤데타

동툥

춥고 어둡고 사람이라곤 없는 곳에 홀로 남겨졌던 조난자들이 잊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찾아낸 구조견들의 눈동자라고 했다. 숨이 붙어 있는 것을 찾아냈다는 희열이 담긴 눈빛. 자신이 살려낸 이가 구해지는 내내 손등을 핥으며 곁을 맴돌던 따뜻한 생명체의 눈알을.

 

몰래 훔친 신문의 귀퉁이에 낭만 가득한 사설로 실려 있던 이야기였다. 동네 도서관 구석에 몸을 구겨 넣고 두근대는 가슴을 붙잡은 채 그걸 몰래 곱씹듯이 읽었던 이동혁은, 그로부터 몇 주 후 폭파된 도서관 건물 잔해 틈에 갇혀 살려 달라고 외치다 목소리가 안 나올 지경이 되고 나서야 어떤 사실을 깨닫는다. 모든 조난자가 다 살아남는 것은 아니지. 세상에는 오지가 많고, 겁 없는 사람도 너무나 많다.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곳에 발을 들이는 자들. 그러다 헛디뎌 거대한 자연의 손아귀에 굴복하는 자들. 개중 운 좋은 사람만이 발견되는 거였어. 그럼 애초 이따위 세상에서 겁 없이 뭐라도 알아 보겠다고 까분 나는 이대로 죽고 말겠구나. 그렇게 생각한 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시야가 트인다. 빛이 든다. 누군가가 고개를 내민다.

 

어쩌면 그게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몸을 구기고 웅크려 있던 좁은 틈으로 들어오던 긴 철근. 그걸 지렛대 삼아 잔해를 들어내고, 울다 지친 제 얼굴을 가만 내려다보던 이태용을 기억한다. 말라죽어 가는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게도 노랑 초록 분홍색이 해맑게 섞인 낡은 나염 티셔츠, 스스로 염색했는지 얼룩이 남은 갈색 머리칼, 사람이 아닌 것처럼 잘생긴 얼굴과 잔상처럼 남아 있는 눈빛. 이동혁은 처음 봤을 때부터 이태용의 눈동자를 사랑했다. 번들번들 빛나는 안광을 가진, 사람의 것이 아닌 것처럼 아주 커다랗고 검은 눈동자를.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태용이 멋대로 이동혁을 살렸으니까. 멋대로 살려 놓고 귀하게 다루었으니까. 내가 살려내었으니 내가 책임져야겠다 결론내리고 그대로 가족 삼았으니까.

 

그러니까 이태용은 이동혁의 사랑을 책임져야 한다.

 

 

 

 

벤데타

: 꺼지지 않는 불

 

 

 

꿈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머리는 느리게 맑아진다. 심호흡을 두어 번 길게 한 동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잔상처럼 맑고 새까맣게 빛나는 눈망울이 시야에 두어 번 들어찼다가 사라진다. 커다랗고 살벌하게 생겼으면서 누구보다 예쁘게 웃어 주던 눈. 등 뒤로 들이치던 햇살과, 그럼에도 선명하던 구조자의 미소. 아직까지 선연하게 뇌리에 남은 장면과 거기 유일한 피사체로 자리했던, 아주 많이, 보고 싶은.

 

문득 자각하자마자 동혁이 세차게 고개를 내저어 생각을 떨쳐 냈다. 그러고 나자 비로소 머릿속을 부유하던 것들이 아래로 가라앉은 듯 고요하다. 밤새 두통에 시달리다 겨우 잠든 탓에 머리가 멍하다. 이유를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 불쾌해진 기분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입술을 살짝 벌리자 덜 진정된 호흡이 파르르 떨리며 빠져나온다. 고개를 돌리자 자른 지 오래된 검은 머리칼이 이마 옆으로 쏟아져 내렸다. 다음 이동 땐 꼭 유진 누나한테 부탁해야지. 너무 길어 시야를 가리면 조준할 때 불편하니까. 하릴없이 그런 생각을 하며, 동혁이 손을 들어올려 이마 위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그 손을 그대로 뻗어 무드등 스위치를 당겨 끈 동혁이 잠시 고르게 숨을 내쉬다가 침대 밖으로 다리를 끄집어냈다. 발바닥이 땅에 닿자 시린 기운이 뼛속을 찌르는 기분이 들어, 눈을 한 번 꾹 끔벅인 동혁이 몸을 살짝 떨었다.

 

고개를 돌리려는데 눈가가 따갑다. 살짝 인상을 찌푸린 동혁이 그대로 일어났다. 찬 바닥의 한기가 발바닥을 찔러 척추까지 소름이 돋았다. 띵해 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걸었다. 짚이는 바가 있었다.

 

“아.”

 

힘도 좋지……. 거울을 쳐다보며 멍하니 중얼거린 동혁이 광대와 눈가 사이에 조그맣게 난 쓸린 상처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김도영한테 싸대기를 후려 맞은 건 열여섯 살 이후로 처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맞을 짓을 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더럽게 아팠다. 한숨을 한 번 푹 내쉬고 세면대 위에 달린 수도꼭지를 돌리자 몇 번의 듣기 싫은 마찰음 끝에 찬물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이 수도를 여기에 끌어 대려고 전투를 세 번을 했었지. 사람이 백 명이 죽어나갔고. 의미 없는 회상과 함께 동혁이 그대로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 두 번, 세 번 반복할수록 정신이 점점 또렷해진다. 손끝에 힘을 줘 얼굴 구석구석을 닦아낸다. 눈두덩이며 이마를 박박 문지르면 지난밤 내내 머릿속을 괴롭히던 잔상들이 전부 지워져 나갈 것만 같았다.

  

 

Faith

 

어떤 군주든 오래되면 썩어빠지기 시작하는 것은 인류의 본능이라고 했다. 단일정부 십오 년차에 접어든 국가는 그 증거라도 될 것처럼 빠른 속도로 부패하기 시작했다. 비리, 범죄, 포섭과 매수, 살인. 나라 꼴이 되살릴 수 없을 정도로 나락으로 치닫자 국민들은 정부에게 화살을 돌렸지만, 가장 심하게 썩은 뿌리가 줄기와 잎들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리가 없다. 곧바로 언론이 통제되고 검열되기 시작했다. 책과 인터넷은 금지된다. 자유는 억압되고 군인들은 길거리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을 면밀히 의심한다. 신新군부정치의 시작.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되고, 과학과 기술이 발전했다 떠들어 대던 21세기도 딱히 예외는 아니었다.

 

살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데 모여 어김없이 들고일어난다. 시작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비인간적인 정부에게 경고하듯 생겨난 어떤 움직임이었을 뿐이다. 피켓 들고 현수막 들고 몸에 민주주의 써 붙이고 노래 부르며 길거리를 걷는, 그러다 정부의 손길이 닿아 폐허가 된 곳을 만나면 건물을 복구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저항하려 했던 자들. 열일곱 살 이태용은 그들 중 한 명이었고 더 나아가 그들을 이끄는 리더였다. 갈 곳을 정하고 아지트를 마련하고 자금을 조달했다. 그들은 태용의 지휘 아래 대자보를 만들어 학교나 공공기관 건물 외벽에 몰래 붙이고 정부군의 눈을 피해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하며 몸집을 불렸다. 그러다 정부의 뜻에 따르지 않았다거나, 반동분자가 숨어 있었다거나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정부군에 의해 폭파된 동네를 만나면 곧바로 거기 뛰어들었다. 아이들을 구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했다.

 

- 안녕.

 

동혁은 그러다 주워진 아이였다. 고아원과 도서관이 폭파된 동네. 두 곳 중 먼저 폭파된 도서관에 있었던 탓에 주민들과 고아원 아이들이 대피할 동안 나오지 못하고 내내 갇혀 있던 열두 살 동혁은 태용의 손에 구조됐다. 안녕, 하고 멋쩍게 건넨 인사에 어린 송아지 같은 눈망울을 끔벅거리다가 순식간에 으아앙 하고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던 어린애. 위험천만한 건물 잔해 속에서 눈물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태용의 품에 안겨 나온 동혁은 다친 데를 치료받은 뒤에 고아원 아이들 사이로 돌려보내지는 대신 그대로 곁에 남게 됐다. 이태용이 울먹울먹 소매를 잡고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 오는 어린애를 단호하게 떼낼 만큼 모진 사람이 못 되었던 탓이다.

 

- 형이랑 있을래?

 

그래, 그럼 형이랑 살자. 형이랑 다니자. 형이 지켜줄게 동혁이. 작은 손을 큰 손으로 단단하게 감싸 쥐고 일어서던 몸. 동혁은 제 팔을 지탱하던 든든한 압력을 기억했다. 지켜준댔던 약속을 기억했다. 그게 꼭 지켜질 것이라고 믿던 날들도 하나 빠짐없이 전부.

 

- 너는 진짜 또라이 새끼냐?

- 아 왜, 살아 돌아왔음 된 거지 뭐. 김도영 네가 거기 있던 사람들 얼굴을 봤었어야 해.

- 제발 좀. 몸 좀 아껴 써, 이 인간아. 동혁이 남겨 놓고 죽을 거야 형?

- 아이, 안 죽는다니까. 나 죽으면 울 동혁이 누가 거둬 먹여.

 

야, 말 나온 김에 얘기해 보자. 나 어떻게 되면 네가 쟤 데리고 살래? 조카 키운다 생각하고? 싱글싱글 웃는 이태용의 얼굴을 밀어내며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던 김도영. 개소리 말고 죽을 생각도 하지 마. 동혁은 신경 쓰지 않는 척 조용히 시리얼을 퍼먹었으나 속으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태용은 이상한 인간이었다. 돈 되지 않는 일, 위험천만해서 곧 잡혀 죽을 것만 같은 일들을 사서 했다. 몰래 신문을 찍어내고 그걸 또 이곳저곳에 가져다 뿌리거나 하는 일들은 기본이었다. 교화 전단을 나눠 주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똑같은 디자인으로 찍어낸 규탄 홍보물을 나눠 주다가 정부군이 들이닥쳐 아수라장이 될 때쯤 교묘히 그곳을 빠져나오거나, 정부 쪽 사람인 척 단합대회 따위에 참여해서 마이크를 잡고는 독재정부 타도를 우렁차게 삼창한 뒤에 바이크를 타고 도망쳐 오는 미친 짓도 종종 벌였다. 동혁은 아지트 구석탱이에 조그만 몸을 말고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채, 도망치다 접질렸다는 발목에 붕대를 칭칭 감아묶으며 형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는 태용을 가만 바라보고 있곤 했다. 즐거워 보이는 눈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이상했다. 양아치 날라리처럼 생겨 먹었는데 애는 참 순해. 식사를 담당하는 윤혜 이모의 가감없는 평가가 꼭 들어맞는 사람이다. 순하고 싹싹하고 애교 있고 그러면서 또 엄청 어른인 척 한다. 눈길이 멀고 곧다. 무언가를 말하듯이 다른 이들을 쳐다볼 줄 안다. 형은 대체 어쩌다 형이 되었을까. 나이 꼴랑 열일곱 먹은 어린애였던 주제에 어쩌다 저런 눈빛을 갖게 되었을까. 그러니까, 이태용은 왜.

 

 

Belief

 

- 형은 왜 이 짓을 해요.

 

열다섯쯤 먹었을 때였나. 늦은 밤, 몰래 정부군 부대장의 사가 담벼락에다 새빨간 스프레이로 민주 자유 평화 따위 낙서를 하다가 발각되어 숨이 턱까지 차도록 골목길을 뛰어 도망친 날. 달리다 넘어져 무릎이 까진 저를 아지트 소파에 앉혀 놓고 그 앞에 앉아 소독약을 살살 발라 주던 태용의 머리꼭지에 대고 동혁은 대뜸 물었었다. 형은 왜 이 짓을 해요. 못내 속상한 듯 묵묵히 연고를 면봉에 묻히다 그 말에 고개를 살짝 들어 동혁을 쳐다본 태용이 눈을 끔벅였다. 위로 치켜뜬 커다란 눈망울이 순하고 맑다. 그 시선을 마주하고 있자니 어쩐지 골이 나서, 동혁은 손을 뻗어 태용의 두건을 턱 아래로 아무렇게나 죽 잡아내렸다. 그때에 갓 스물이었던 태용은 흠없이 말끔한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고 있다가, 잘생긴 얼굴이 드러나자마자 입꼬리를 쭉 끌어당겨 웃었다. 그게 심통난 어린애를 대하는 보육자로서의 미소임을 눈치챈 동혁이 입술을 물었다.

 

왜 하냐니. 잘 먹고 잘 살려구 하지. 너 같은 애기들 제대로 살으라고, 좋은 세상 오라고 이런 거 하는 거지이. 특유의 끝이 긴 말투. 동혁은 그게 이태용의 눈에 자신이 애새끼로 보인다는 증거라고 여겼다. 얼러지는 어린애가 된 기분은 꽤나 묘했고 불쾌했다. 일례로, 태용은 아지트와 거리가 꽤 되는 읍내에는 위험해서 절대 못 나가게 했었다. 중간중간 숨어 있는 정부군이 많다고. 죽지는 않을 테지만, 자긴 이미 얼굴이 모두 알려져 있기 때문에 발각되면 무조건 잡힌다고. 끌려가게 되면 너까지 데려갈 거라고. 태용은 살가운 스킨십이 없는 편이었지만, 떼쓰는 동혁을 달랠 땐 늘 젖살 덜 빠진 뺨을 조심조심 만져주며 시선을 마주하고는 했다. 너 까딱 잘못해서 잡혀가면 팔다리 못쓰게 된다니까. 유순한 말투로 필터링 없이 무서운 말을 하던 이태용. 애기 땐 쫄아서 꼬리를 내렸으나, 머리가 어느 정도 굵은 동혁은 냅다 형의 허리를 끌어안고 매달리며 죽지만 않으면 괜찮잖아요 잉잉거렸었다. 데려가, 나도 데려가. 왜 맨날 형들만 가요. 이제 나도 클 만큼 컸다는 어깃장이 동혁의 주된 무기였으나, 실상을 까고 보면 사실 이태용에게 어린애 취급 받는 게 싫었던 것뿐이었다.

 

-

 

동혁의 열일곱 살 생일 전날, 처음으로 태용의 허락이 떨어졌다. 읍내 잠깐 나갈 건데 같이 가자. 형들 뒤에 꼭 붙어서 따라와야 해. 어디 딴길로 새면 안 돼. 동혁은 그저 신나서 그러마고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칙칙한 검은색이나 국방색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형들 사이에서 혼자 새하얀 두건을 단단히 머리 뒤로 둘러 묶고 아지트를 나섰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길을 강아지마냥 신나게 이리저리 뛰었다. 태용은 재잘재잘 떠드는 동혁에게 좋지, 많이 바뀌었지, 낮에 나오니까 어때, 하고 한두 마디 툭툭 맞춰주며 주변을 살폈다. 오늘은 아예 코빼기도 안 보이네. 나지막한 태용의 말에 도영이 산 너머로 연합 농성 진압하러 간대, 하고 가볍게 대꾸했다. 그분들 잘 도망치셔야 하는데. 요즘 심상치 않아서, 이대로면 정말로 누군가 피를 볼지도 모르는데. 생각을 곱씹느라 살풋 표정이 어두워졌던 태용이 저 멀리서 형! 하고 부르는 높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눈만 봐도 잔뜩 신난 동혁이 저만치 앞에서 방방거린다.

 

- 발 조심. 밑에 빠진다.

- 알겠어요! 형 형, 우리 잡화점에 가요? 얼마나 더 가야 해요?

- 십 분은 더 걸어야 해. 인쇄소부터 들르고.

- 에이. 알았어요!

 

도영이 피식 웃으며 태용을 돌아봤다. 쟤 왜 저렇게 신났어? 나랑 약속한 게 있거든. 태용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꾸하며 고개를 숙여 두건을 고쳐 맸다. 아, 이거 진짜 오늘따라 왜 자꾸 흘러내리지. 괜히 불안하게….

 

말끝을 흐린 태용이 그대로 멈추었다. 불길한 정적. 멈춘 발소리. 땅을 점점 크게 울려 오는 진동. 저만치 앞쪽에서 가늘게 형……, 하고 부르는 동혁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렸다. 태용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뜩해졌던 시선이 천천히 돌아오면서 보이는 건.

 

- 이동혁 이리 와.

- 혀, 엉……,

- 얼른!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군용 트럭. 선전 문구가 애국가와 함께 기계적으로 울려 퍼지는 스피커. 그리고 차창 밖으로 빠져나온, 여태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긴 저격총. 제일 앞서 걷던 동혁이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곧장 넘어질 듯이 뒤로 뛴다. 그대로 태용의 품에 달려든 동혁이 공포에 찬 눈으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훑었다. 김도영과 이태용이 동시에 욕설을 읊조리며 뒤돌았다. 태용은 동혁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고, 동혁은 그 압력이 두려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형들은 늘 장난치고 도망가는 동네 어린애들처럼 굴었잖아.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우리는 절대 죽지 않을 거란 듯이 굴었잖아요. 왜 그래. 왜 갑자기 그래요. 전력을 다해서 뛰는 이들의 뒤로 차 소리가 무섭게 돌진하듯 점차 가까워진다. 한참을 걸어왔던 길의 양옆에는 몸을 숨기며 달아날 수 있는 골목이 없었다. 태용은 동혁의 손목을 힘주어 끌어다가 제 앞으로 밀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발 하나는 빠른 동혁은 넘어질 듯하다가도 금세 중심을 잡아 있는 힘껏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기특해. 내 새끼. 군용 차량 여러 대가 내는 소음과 시끄러운 발자국 소리를 뚫고, 태용이 앞서 뛰는 동혁에게 소리 질러 물었다.

 

- 동혁아, 들려?

- 으으, 흐으윽….

- 이동혁 들리냐고!

- 들려, 요, 들려……,

 

눈물 그쳐! 울면 더 못 뛰어. 버럭 소리를 지른 태용이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허억 하고 몰아쉬며 흘끗 뒤를 돌아봤다. 가장 가까이 다가온 트럭의 차창 밖으로 제복을 입은 정부군 하나가 몸을 뺀다. 길게 뻗은 총을 장전하고 어깨에 걸친다. 태용이 도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앞서 뛰는 동혁이 어깨까지 들먹이면서 엉엉 울고 있는 게 보였다. 이를 악물고 소리친다.

 

- 울지 마! 형이, 뭐랬어, 지켜준다고.

 

 

그랬지.

 

마지막 마디가 콱 목구멍 안으로 먹혀들어간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도, 찢어지는 듯도 한 소리가 귀를 멍멍하게 울린다. 사방을 뒤흔드는 충격에 앞으로 넘어진 동혁이 모래바람으로 뿌연 시야 속에서 콜록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형. 태용이 형. 울음에 젖은 부름이 허공에서 흩어진다. 뒤로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이는 것은.

 

붉음의 바다. 채워지는 웅덩이와 널브러진 몸. 동혁이 엉금엉금 기어 태용에게 다가갔다. 형. 형. 태용이 형. 겁에 질려 얼어붙은 목소리가 가 닿자 태용이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제 두건을 잡아내렸다. 뭐해, 안 가고. 무섭도록 침착한 목소리가 동혁의 얼굴을 때린다. 등을 뚫고 들어온 총탄이 몸통을 관통했다. 배에서 물줄기 흐르듯 쏟아져 나오는 피. 동혁이 홀린 듯이 태용의 손에서 두건을 낚아챘다. 그걸 피가 번진 배에 대고 꾹 눌렀다. 윽, 하고 아픈 신음을 흘린 태용이 곧이어 실없이 웃는다.

 

- 지혈이, 되겠니, 이 바보야.

 

당장 가. 빨리 가. 형 진짜 화내기 전에. 표정을 굳힌 태용이 기를 쓰고 상체를 일으켜 동혁의 어깨를 밀쳐냈다. 넋이 나간 채로 상처를 누르는 데만 집중하던 동혁은 밀려나도 또다시 기어온다. 피 흐르는 배 위에 천을 대고 누르며 태용의 팔을 제 어깻죽지에 올리려 애를 쓴다. 아. 같이 가자고. 날 데려가려고 이러는 거구나, 지금. 태용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 빨리 안 가?

- 같이 가. 응, 같이 가요. 형 다리에 힘 주고,

- 미친 새끼야!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진심으로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 동시에 부축하려 뻗었던 손이 거칠게 내쳐져 동혁이 주저앉은 채로 눈만 끔벅였다. 정부군은 저 멀리 멈춰 서 있고, 이태용은 씨근거리며 상체만 겨우 일으켜 동혁을 똑바로 노려본다. 늘 맑던 눈에 불길 같은 분노가 번져 있다. 당장 가. 뛰란 말이야. 나 데리고 가려다 나머지 다 죽일 일 있어? 서슬 퍼렇게 소리 지르던 태용이 말을 멈춘다. 목구멍으로 울컥울컥 핏물이 올라오는 걸 거칠게 기침해서 뱉어낸다. 동혁은 그제서야 발작하듯 거세게 울음을 터뜨렸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요, 형 나랑 가, 제발 같이 가. 제발 제발요…. 이렇게는 못 가요 어떻게 형을 두고 가요. 엉엉 우는 동혁을 앞에 두고 태용이 이를 악물었다. 한 음절 한 음절 끊어 씹어뱉었다.

 

- 그럼, 여기서 나랑, 죽을래?

- 죽을래. 나도 죽을래, 형, 혀엉, 나 그냥 여기 있을래 형이랑 있을래…….

 

태용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동혁아,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다정하게 속삭인 말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동혁에게 가 닿지 못했다. 정신 놓고 제 몸을 더듬어 온기를 찾는 동혁을 내려다보던 태용이 가만히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순간, 공기를 찢어내듯 악지르는 소리가 울린다. 오른쪽 팔뚝을 감싸쥔 동혁이 바닥을 굴렀다. 불에 덴 듯한 아픔에 이마를 바닥에 짓누르며 신음한다. 까무잡잡하고 마디 선명한 어린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피가 번져 나온다.

 

- 이 정도도 못 버티면서.

- 아, 아아아… 아윽,

- 죽긴 뭘 죽어 이동혁.

 

정신 차리고 가.

호신용 단도를 쥔 태용의 손이 덜덜 떨렸다. 저만치서 결국 김도영이 길을 거슬러 뛰어온다. 피 흐르는 팔뚝을 붙들고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울고 있는 동혁을 다급히 일으키려 애쓴다. 동혁아 가자. 이동혁 정신 차려, 제발 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 지르며 팔뚝을 잡아끌었다. 그 힘에도 동혁은 죽어라 버텼다. 멀쩡한 왼손으로 태용의 티셔츠 자락을 붙들고 기어이 놓지 않았다. 같이 가. 같이 죽어. 형, 제발, 제발요. 두서없이 터져나오는 공포와 서러움에 질린 목소리. 태용이 이를 악물며 칼을 든 손을 다시금 높이 들어올렸다.

 

- 악!

- 가. 김도영, 얼른, 애 데리고 뛰어….

 

동혁의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태용이 있는 힘껏 찢어낸 티셔츠 자락이 피 안 통할 정도로 꽉 쥔 손가락 사이에 남았다. 형. 태용이 형. 절규하는 동혁을 억지로 일으킨 도영이 그대로 달렸다.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는 동혁을 들듯이 부축해 태용에게서 멀어진다. 멀어진다. 처절한 울음소리만 고스란히 남아 이태용이 누운 자리에 소용돌이친다. 동혁을 따라가다 멈춘 태용의 한 마디가 길 한복판에 스러진다. 죽지 마. 죽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 마.

 

 

아무렇게나 찢어진, 익숙한 색감의 천.

 

 

정부군의 총격으로 인한 대장 이태용의 죽음으로 인해 평화시위는 끝났다. 피를 처음 본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동료를 잃은 청년들의 악지르는 소리로 거리가 가득 찼던 날이었다. 배가 총탄에 꿰뚫려 걷지 못하는 이태용을 그 자리에 남겨 두고 도망쳐 와야 했던 이들은, 그날 밤 모여 울지도 못하고 숨을 몰아쉬며 자각했다. 우리는 빈손의 민중들이라는 것을. 무기력한 자들이며, 아무 힘도 없는 자들이며, 죽이면 끝나는 목숨들이라는 것을.

 

신정부군의 기세가 정부군 세력을 제압해 나가기 시작한 지는 반 년 정도가 됐다. 칠 년 전에 시작된 전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늦다. 본래 비무장 세력이었던 만큼 군사력을 갖추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탓이다. 대장은 언젠간 바뀌는 게 있을 거라고 했지. 죽은 대장은 우리가 이렇게 외치다 보면 누군가 들어 줄 거라고 했어. 그들은 더 이상 외치지 않았다. 대신 죽지도 않았다. 밟아도 꺼지지 않는 불씨. 나는 우리의 이름을 성화라고 지을 것이다. 처음으로 모든 이들의 손에 무기가 들렸던 날, 가장 앞에 서 있던 김도영은 이글이글 끓는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었다. 그때 이동혁은 무엇을 했었지. 눈만 남기고 얼굴을 가린 노랑 초록 분홍색의 익숙한 천 속에서, 조용하고 낮게 퍼지는 뜨거운 제 숨을 느끼며. 제 몸처럼 다뤄 반질해진 총신을 손에 박힌 굳은살로 어루만지며. 김도영의 뒤에 서서 앞에 도열한 분노한 민중을 내려다보며.

 

이태용은 이걸 보면 뭐라고 말할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Victory

 

- 마지막 전투가 될 거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조용히 나누던 말들. 되찾은 자유의 크기만큼 붉게 칠하자고 약속했던 무채색의 지도 위로 피 같은 색깔이 거의 다 번졌던 밤. 이미 대부분의 정부군은 죽거나 우리에게 투항했으니, 마지막이 될 오늘은 아무도 죽지 않을 거야. 이제 진정한 자유가 오게 될 거야. 이제는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되겠지. 새로운 정부를 세우자. 썩어빠진 것들을 전부 뒤집어 갈아엎자. 긴 싸움에 지친 이들은 그렇게 서로 손을 맞잡으며 다짐하고 승리를 미리 자축하며 진을 쳤다. 동혁은 덩달아 두근대는 가슴을 꾹 눌러내리며 침착하게 장총과 권총들을 손봤고, 바리케이드에 철제 자재를 옮겨 덧대는 걸 도왔다. 그러는 동안 내내 칠 년 전을 생각했다. 제 얼굴에 둘렀던 흰 두건을 다급히 끌러, 피가 철철 흐르는 오른쪽 팔뚝에 감아 묶는 형들의 손길을 받으며 엉엉 울었던 기억. 얼룩덜룩하게 나염된 찢긴 옷자락을 물에 담가 박박 문지르며 선연한 핏자국을 지우던 밤. 그걸 처음으로 얼굴 위에 두르고 총을 쥐던 감각. 동혁아, 우린 죽지 않기 위해 싸우는 거야. 그러니까 누구도 죽어서는 안 돼. 우리는 죽어서는 안 돼. 귀에 맴도는 다정한 목소리가 여태 죽인 자들의 악지르는 소리 위에 선명히 오버랩됐다.

 

- 형이 틀렸어요. 우리가 옳았고.

 

우리는 살기 위해 죽일 거예요. 동혁은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리며 이를 악물고 탄창에 총알을 채웠다. 죽으면 안 된다면서 먼저 죽어버린 이의 말은 더 이상 들을 필요 없다. 보고 싶어할 필요도 없다. 형이 원했던 세상이 곧 올 거예요. 장장 몇 달을 이어 오던 길고 지루한 전투 끝에 정부군의 턱끝까지 추격에 성공했던 날. 터 오는 동과 함께 정부군의 마지막 전선을 마주한 신정부군이 마침내 무기를 들어, 불합리를 죽이고 자유를 쟁취하려던 순간이었다.

 

- ……,

 

산발적으로 고함과 욕설이 터져 나온다. 동시에 신정부군들의 시선이 두서 없이 위쪽을 향한다. 동혁은 옥상 안쪽 난간에 설치한 저격 소총을 만지작대며 건조한 눈동자로 사태를 관망했다. 인이어를 타고 당황스러움에 가득 찬 김도영의 욕설이 들렸다. 그 한가운데에서, 이동혁은 이상하리만치 침착했다. 사고회로가 멈췄나. 어쩐지 정부군이 지나치게 순순히 수도권 전 지역을 내주더라니.

 

칠 년 전에 죽은 줄만 알았던 이태용이 아주 말끔한 몰골로 정부군 측에서 나타났다. 그자신이 혐오해 마지않던 제복 차림이다. 동혁아, 군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니. 열이면 열 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어. 복색이 같다는 건 굴복했단 소리지. 최악이야. 난 죽으면 죽었지 꺾이진 않을 거야. 다정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가 머리를 둥둥 울리는 걸 느끼며 이동혁은 장총의 총신에서 가만히 소음기를 분리했다. 원거리 저격팀이 몸을 숨긴 저층건물 옥상은 바람이 심했다.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휘날리며 시야를 가렸다.

 

근데 있지. 너는 살아야 돼. (왜요?) 넌 애기잖아. 형아만큼 크기 전에는 죽으면 안 돼. 농담처럼 웃으며 하던 말.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저에게 눈을 부릅뜨던 어느 날. 칼을 휘둘러 옷자락을 찢던 그날의 기억. 죽지 마. 죽지 마. 동혁아 죽지 마라.

 

즉결처분하라는 분노에 찬 김도영의 명령을 싹 씹은 이동혁은 인이어를 당겨 뺐다. 바닥에 던져 밟아 부수고 장전한다. 조준경에 눈을 들이대고 끝까지 렌즈를 당겼다. 그대로 이태용 팔다리에 한 방씩 총탄을 갈겼다. 겉옷 끝자락을 겨눠 쏘면 몸을 꿰뚫지 않고 피부에 스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도 이태용이 가르쳐 준 거였다. 쓰러져 못 움직이게 만들어 놓고는 곧장 등을 벽에 기대고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등 뒤로 총알이 비오듯 쏟아졌다. 하얀 두건 위로 보이는 당혹스런 팀원들의 눈알을 마주하며, 동혁은 가만히 오른팔을 감싸쥐었다. 아직까지 화끈거리는 상처가 있는 자리였다.

 

 

형 눈을 보고 있으면 무언가를 선포당하는 것만 같아요.

 

 

-

 

“꺼.”

 

김도영이 회의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대로 책상 위의 담뱃갑을 챙겨 몸을 돌려 나간다. 쾅 닫히는 문에 원래도 냉했던 회의실 안의 분위기가 한 번 더 쩍 얼어붙었다. 어두운 실내에 대형 모니터에서 나오는 빛만이 파르라니 일렁인다. 대장의 서슬에 기가 눌린 몇은 말없이 책상 위 브리핑 자료에 시선을 박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이는 망설이다 동혁에게 몸을 기울였다. 끌까요? 속삭이는 물음에,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던 동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은 여전히 화면 속에서 재생되는 동영상에 고정된 채다. 회의장 한 면을 다 채울 만큼 큰 모니터 속에서는 어제의 전투가 그대로 재생되고 있었다.

 

“…….”

 

화면 속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새까만 머리의 청년. 픽셀 단위로 깨지는 저화질 속에서도 커다란 눈과 우뚝한 콧대만은 잘 보이는 부정할 수도 없게 익숙한 얼굴. 이십 초짜리 짧은 동영상이 반복재생되는 가운데, 동혁은 같은 장면이 몇 번이고 지나갈 때까지 하나의 순간만 기다렸다. 장면이 끝나기 직전에 총탄이 스쳐, 군복을 입은 오른쪽 팔뚝에서 팍 터지는 피. 순식간에 화면이 흔들리고 동영상이 종료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가 보호구도 없이 정부군의 작전차량에서 느리게 내리는 장면으로. 표정이 없어서 더 로봇 같은 말끔하고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며 멍하니 기다리고 있으면 또다시 오른쪽 팔뚝에서 피가 터지고. 다시 터지고.

 

“이해찬.”

“…….”

“정신 차리고 나와.”

 

언제 돌아왔는지, 김도영의 날선 목소리가 뒤통수에 그대로 날아와 꽂혔다. 자리에서 기계처럼 일어난 동혁이 몸을 돌려 도영에게로 걸어갔다. 습관처럼 허리춤으로 향한 손끝에 만져지는 매끄러운 총신의 촉감이 선연했다.

 

배신이다. 이건 배신이다. 신정부군의 기지가 발칵 뒤집힌 건 이태용의 출현 직후였다. 죽은 이가 살아 돌아온 것도 모자라 정부군이 되었다. 제복을 보아하니 수뇌부다. 이태용은 군용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정자세로 줄줄 읊었다. 정부군에 투항하고 반동을 멈추라는 연설을 높낮이 없이 늘어놓았다. 그 꼴을 눈앞에서 봐야 했던 김도영은 아주 조금 남아 있던 일말의 여유까지 모두 없어진 사람처럼 보였다. 늘 냉철하던 리더가 차갑게 식은 얼굴로 누군가의 즉결처분을 명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원거리 저격팀이 도영의 말에 불복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팀장 이동혁은 무려 소음기를 빼고 총을 발사해 저격팀의 위치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엄청난 미친 짓을 저질렀다. 덕분에 애당초 계획대로였다면 신정부군의 피해가 10% 이하였을 전투에서 30% 이상의 출혈을 봤다.

 

 

- !

 

- 네가 무슨 낯짝으로 여길 기어들어와.

 

숨이 붙어 있는 이태용을 결국 전장에서 질질 끌어 데리고 온 이동혁이 기지에 들어서자마자 김도영은 곧장 성큼성큼 다가갔다. 망설임 없이 그대로 따귀를 날렸다. 한 대 거하게 후려 맞은 이동혁은 고개가 돌아간 채로 말이 없었다. 얼굴 옆으로 풀려 흘러내리는 두건을 잡아내리며 묵묵히 듣고만 있다. 그 넋 나간 옆얼굴이 김도영을 더욱 열 받게 만들었다. 네가 오늘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이해찬? 분노로 물든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그 자식 살려 놓은 것도 모자라서 여긴 왜 가져와 그걸. 시체 처리하고 싶어하는 버릇은 못 고쳤니? 네가 제정신이야 지금! 싸늘하고 거칠게 몰아세우는 질책. 그 끝에, 결국 도영이 목소리 끝을 볼품없이 떨며 말을 맺었다. 죽일 거면 제대로 죽이든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동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죽이려고 쏜 거 아닌데.

- 그럼 뭔데.

- 이거.

 

그냥 형도 한 번 당해보라고 쐈어. 얼마나 아픈지. 그리고 팔이고 다리고 그냥 스쳤어. 나도 그날 안 찔리고 베이기만 했거든. 동혁이 어딘가 맛 간 눈을 하고 오른쪽 팔뚝에 묶인 하얀 천을 한 손으로 풀어냈다. 까만 피부 위에 선명히 남은 흉터가 보였다. 도영이 입을 다물었다.

 

- 가끔 그런 상처가 죽는 것보다 아프다고.

- ……,

- 그거 알려주고 싶어서 쐈어 형.

 

커 버린 동혁은 울지 않는다. 김도영은 뜨거워지는 눈가를 어쩌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이동혁의 곧은 시선을 더는 마주할 자신이 없다. 스물두엇이 된 동혁의 건조하고 맑은 눈알이 어쩐지 이태용의 눈과 닮아 있어서 그랬다.

 

-

 

 

“삼 미리 괜찮니.”

“네.”

 

동혁의 도톰한 입술 새에 담배가 물렸다. 도영의 라이터에서 일어난 불꽃이 동혁이 문 담배 끝을 지졌다. 익숙하게 볼이 홀쭉해지도록 빨아들인 동혁이 손가락 새에 장초를 끼워 내리며 허공으로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머리 아프다며. 겉담 해. 걱정 섞인 타박에 동혁이 웃지도 않고 대꾸했다. 형이 이태용이에요? 별 걸 다 잔소리하게. 도영이 말을 얹으려다 한숨과 함께 삼키며 제 담배에도 불을 붙였다. 동혁이 내뿜는 연기가 도영의 얼굴로 날아와 부서졌다. 가만히 동혁의 얼굴을 바라보던 도영이 손을 뻗었다. 눈가에 조그맣게 난 쓸린 상처와 터진 입술을 한 번씩 매만진다. 미안해하는 손길이다.

 

“아파?”

“아니.”

“……,”

“어젠 멋대로 굴어서 죄송합니다.”

 

안 아파. 진짜루. 느낌도 없어요. 동혁이 느적느적 말을 이으며 다시 한 번 깊게 빨아들였다. 도영은, 지금 네가 안 아프다는 게 후려맞은 얼굴이니 터진 입술이니 아니면 칠 년씩이나 앓으면서 썩을 대로 썩어들어간 속이니 하고 묻고 싶은 걸 꾹 참고 담배나 빨았다. 한참을 말없이 빨고 뱉고 삼키고를 반복하다가 필터에서부터 일 센티 정도를 남길 만큼 담배가 짧아졌을 무렵, 도영이 입을 열었다.

 

“보러 가.”

“……, 제가 죽여 버리면 어떡하게요.”

“안 그럴 거 알아.”

 

이번엔 동혁이 고개를 돌려 도영을 바라봤다. 도영이 코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해찬아. 칠 년이다. 그동안 우리가 저 땅을 전부 자유하게 만들었어. 바다 끝에서부터 여기 땅끝까지 모든 곳들을 돌보고 가꿨어. 우린 새 세상을 가질 자격이 있어.

 

“근데 우리는 여전히 이태용 얼굴 보기 부끄럽잖아.”

 

도영이 고개를 돌려 동혁을 마주봤다. 동혁은 대답 없이 담배를 테라스 난간에다 지져 껐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동혁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해찬아.”

“네.”

“……, 아니야.”

 

도영은 말끝을 스스로 잘라내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 안다. 동혁이 고개를 숙였다. 앞머리칼이 눈을 가리며 앞으로 쏟아져 내렸다. 머리가 무거웠다. 금방이라도 이대로 고인 생각들이 쏟아져 내려 텅텅 비워졌으면 싶었다. 두어 번 눈을 깜박이자 희뜩했던 시야가 천천히 돌아와 윤곽이 잡힌다. 조심할게요. 담담히 내뱉은 동혁이 몸을 돌려 걸었다. 테라스를 나와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밟으면서 동혁은 저도 모르게 양손의 손톱을 전부 이로 물어뜯었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뛰어댔다.

 

문 앞을 지키던 이들이 각 잡아 올려붙이는 경례를 대충 받아준 동혁이 손을 뻗어 손잡이를 쥔다. 사방에서 제 뒤통수로 꽂혀 들어오는 시선들을 느낀다. 티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손이 벌벌 떨려 결국 입술을 콰득 씹었다. 곧장 입안에 비릿하게 피 맛이 번지는데도 아픈 줄 모르겠다. 이 문을 열면. 그 안에는 이태용이. 내 세상이던 사람이.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이 천천히 손잡이를 쥔다. 천천히 눌러내린다. 찰칵 하는 목재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동혁은 그 문을 힘주어 밀어내면서, 이대로 여기 깔려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Vendetta

 

태용은 동혁의 가무잡잡한 볼을 두 손가락으로 한 번 콕 찌른다. 으으응! 애교 섞인 짜증이 톡 튀어나오자 그 손을 그대로 뻗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옴쭉대는 입술을 두드린다. 말끔한 손끝에서 정갈하게 삼각형으로 접혀 동혁의 눈 아래를 천천히 감싸는 천. 동혁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제 형의 손끝에 코끝을 묻는다. 익숙한 향. 뱃속을 매시근히 채우는 안정감. 그만하고 고개 들라는 듯 새끼손가락 끝이 살짝 턱밑을 건드리고, 동혁은 냅다 머리를 휙 들어 뒤통수를 태용의 배에 기댔다. 매듭을 못 묶겠어. 살짝만. 태용은 다 큰 어린애를 어르고 달래 머리를 떼어낸 후 뜨끈한 뒷목과 뒤통수의 경계에 두건을 매듭짓는다. 하얀 바탕에 조잡한 문양이 띄엄띄엄 그려진 천으로 얼굴을 가린 동혁이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고개를 젖혀 태용을 올려다본다. 거꾸로 올려다본 얼굴에도 역시 하얀 두건이 달라붙어 있다. 코와 입이 가려진 위에 드러난 눈 두 개가 우는 것처럼 아래로 휘어졌다. 태용은 웃고 있었다.

 

- 오늘이 끝나면 새 두건을 사다 줄게.

- 아싸. 근데 왜요?

- 너 얼굴이 커지고 있네. 좀 있으면 안 맞겠다.

- 아 형.

- 장난이야. 생일선물.

 

좀 멋있는 걸로 새로 해야지. 내일이면 열일곱 살인데. 태용이 웃으며 둥근 머리를 부드럽게 쓴다. 짙은 갈색 머리가 마디 분명한 손가락 사이로 복슬복슬 흐트러진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은 것들 중에 내 생일을 기억해 주고 있는 사람은 형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동혁은 눈을 감고 손길에 따라 얼굴을 갖다 댔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손을 기어코 따라가 머리를 들이밀자 위에서 작게 웃음이 터졌다. 생긴 건 곰탱인데, 하는 짓은 고양이 같네. 울 동혁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말에는 이제 별 타격도 없었다. 이따 미리 읍내에 나갈 거면 같이 가요. (동혁아.) 또 안 된다고 할 거예요? 나도 이제 다 컸잖아. 형 따라 갈 수 있어요. (위험하다니까,) 위험한 짓 안 할게. 진짜 진짜루. 역시나 외운 것처럼 줄줄 흘러나오는 말. 대체 몇 번을 조르는 거야. 안 된다고 했잖아. 태용이 나무라며 두 손바닥으로 두건 아래 양 볼을 꾹 누른다. 눈을 뜬 동혁이 애원하는 눈빛으로 태용의 허벅지에 뒤통수를 부빈다. 아 형 제발 한 번만……. 저 밝을 때 밖에 나가 보고 싶단 말예요. 그 말엔 엄하던 태용의 눈빛이 조금 풀린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동혁이 눈썹을 한껏 뉘고 아예 몸을 돌려 허벅지에 볼을 기댄다. 이동혁이 사랑해 마지않는 검고 큰 눈동자. 안쓰러움을 담고 동혁을 바라보는

 

유순한 눈망울.

 

“잘 지냈어?”

 

그 눈망울이 부드럽게 휘어진다.

 

잘 지냈냐고요. 잘 지냈냐니요. 동혁이 이를 악물었다. 늘 싸구려 염색약을 치덕치덕 발라 갈색으로 물들이던 이태용의 머리칼이 밤하늘처럼 새까맣다. 둥글고 곧던 얼굴선은 날카롭고 뚜렷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사람 같지는 않았다. 이태용은 이태용이다.

 

잠을 설쳤는지 눈 아래가 퀭하다. 허옇게 내려앉은 낯빛이 창백해 안 그래도 비현실적인 외모를 인간답지 않아 보이게 만든다. 그 탓에 동혁은 더 혼란스러웠다. 눈앞의 이태용이 정말일까. 그저 육 년간 매일 밤 보던 환상 중에 하나는 아닐까. 형은 매일 나를 찾아왔는데, 이번엔 내가 형에게로 왔으니 역시 현실인 걸까. 손에 동아줄처럼 쥐고 있던 권총이 바닥으로 맥없이 추락한다. 감았다 뜬 시야에는 다시 이태용이다. 의자에 허술하게 묶여 온몸이 축 늘어진, 팔뚝과 허벅지에 피가 굳은 붕대를 친친 동여맨 채로 여전히 저를 올려다보는 이태용. 그런데.

 

제복이 너무 새거다. 너무 새 옷이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동혁이 울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태용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힘없이 오른팔이 늘어진다. 한쪽 팔목이 다른 쪽보다 더 가늘고, 거기 선명하고 창백하게 핏줄이 돋아난 이태용. 왼손 엄지손가락을 뒤덮은 초승달 모양의 흉터 자국. 어딘가 아플 때마다 자세히 알려주진 않고 저렇게 손톱을 꾹 박아넣어 참고는 했었지. 얼마나 오래 혼자 아팠던 걸까. 뚫렸던 배는 다 아문 걸까. 나쁜 새끼들. 개새끼들. 동혁은 전부 죽여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태용을 죽여 버리려 했던 이동혁까지도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근데 이 이상 더 잘못할 수가 없어서. 이태용 앞에서는 감히 그러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것조차 죄인 거니까.

 

사랑하는 이태용. 우리 형은 모두를 살리려고 죽었지. 그리고 다시 살아났고.

 

“동혁아.”

 

그 이름을 아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 형밖에 없다고.

 

동혁이 성큼성큼 다가갔다. 태용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팔목을 묶은 끈을 풀어내며 차올라 넘치려는 울음을 겨우겨우 눌러내린다. 가까이서 본 태용의 오른팔은 열대여섯 살 아이의 것 같다. 어떡해. 우리 형 어떡해. 살리려고 이렇게 살았는데 나는 죽이기나 하고. 죽으려고나 하고. 돌아온 이 앞에서 잘못을 빌 엄두조차 나지 않아, 동혁은 자국난 손목을 문지르고 끈을 풀어 던지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칠 년의 세월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울먹이는 얼굴이 열여섯 살 때와 똑같다.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손등을 매만지던 동혁이, 뒤통수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감각에 고개를 들었다.

 

 

“잘 컸네, 우리 동혁이.”

“……,”

“기특해라.”

 

용기를 내 마주친다. 커다랗고 새까만 눈망울이 여전히도 크고 순하다. 그 순간 동혁은 깨닫는다. 형은 내가 총을 들어도. 사람을 죽여도. 죽지 말라고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죽고 싶어해도. 그래도, 형은, 나를.

 

 

너를 내가 책임지겠다 약속한 이의 눈에 반가움과 기특함이 번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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