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영혼 따위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신수묵시록 세계관 - 신수재림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 22:7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현내면 신화리에는 고목에 얽힌 신앙이 있었다. 수천 년을 살아낸 ‘신수神樹’가 종말의 때에 인류를 죽음에서 건져낼 것이라는 믿음은 종교가 대개 그러하듯 마을 주민들을 하나로 묶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죽어버린 듯 보이는 나무일지라도 종말이 도래하면 반드시 꽃을 피우리라는 예언은 지역의 쇠락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마을을 지키는 동력이 되었다.
신화리 주민들의 기약 없는 기다림과 맹목적인 순종은 신의 사자使者를 통해 보답받았다. 1923년 10월, 신음하는 땅에 검은 성경책을 들고 나타난 여자는 자신을 예언자라 칭했다. 종말이 다가왔으니 대비하라. 이듬해 봄 신수는 반드시 꽃을 피우리라. 이방인을 동굴로 내쫓았던 이들이 여자 앞에 무릎 꿇은 것은 정확히 여섯 번의 보름달이 저문 봄이었다.
이미 생을 다하여 더는 자랄 수 없을 것 같던 나무에 새순이 돋았고, 여름의 절정에는 붉은 과실까지 무르익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신화리에는 수십 일 동안 붉은 비가 내렸다. 기이한 장마를 견디지 못한 산의 절반이 무너져 내렸고, 출입은 철저히 금지되었다. 전례 없는 기근 탓에 줄초상이 오래 이어졌다. 오직 신의 선택을 받은 이들만이 재앙을 피했다. 하늘을 가릴 만큼 자란 나무가 제 신도들의 집을 지켰다. 믿는 자들은 나무 아래에 모여 밤낮 없이 기도를 올렸다. 자비로운 하나님이시여, 부디 저희를 용서하소서. 환난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매서운 겨울바람이 신화리를 덮친 뒤에야 오랜 장마는 끝을 맺었다. 신앙을 버린 자들은 모두 멸절했다. 오직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한 자만이 목숨을 부지했다. 멸망이 지나간 땅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참된 예언자’의 뜻을 감히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다.
심판자이자 창조주인 신의 재림을 믿으며 신수神樹를 모시는, 신수재림교神樹再臨敎
주께서 우리 형제들을 통하여 믿음 없는 자의 끝을 보이셨으니 우리는 심판의 날을 준비해야 한다.
심판의 날에 우리 주께서 이 신수를 통하여 가장 먼저 이 땅에 오실 것이다.
3대 초령: 윤지화(1955.8.15, 女, 슬하 1남 1녀)
강원도 화천군 신화리 산 1 화천신화성당 · 신수재림수도회
1920년대 중반 강원도 화천군에서 발원한 종교로, 1대 초령招靈 수안 계씨와 그의 제자들이 주축이 되어 체계화했습니다.
차기 초령은 현 초령이 신의 예언에 따라 주교 중 1인을 지명하는 형태로 선정하는 것이 원칙이나, 2대 초령은 1대 초령의 여동생이었으며 현 초령은 1대 초령의 딸로 사실상 세습 체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신도 통계는 존재하지 않으나, 국내에는 약 8만 명 내외의 신도가 존재할 것으로 추측되며 외국에도 예배당을 두고 있습니다.
일반인에게는 신수재림교라는 명칭보다 신율그룹, 신율문화재단, 신율장학재단 등의 이름이 익숙합니다.
신율그룹은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유통업을 주력으로 하는 대한민국 재계 서열 20위권의 그룹입니다.
신도 중 적잖은 이들이 정·재계 인사로 이루어져 있어 신도 수에 비해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 큽니다.
신율학원은 신율예술고등학교 외 신율중학교(서울 종로구 소재 공립중학교, 1996년 개교), 신율초등학교(강원도 화천군 소재, 1980년 개교), 새소리유치원(강원도 화천군 소재, 1992년 개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외경이 포함된 성경과 1대 초령의 예언 및 유훈을 정리한 신수묵시록을 경전으로 사용합니다.
신수재림교의 기본 교리 및 문화는 천주교 혹은 성공회와 유사하며, 예배당의 이름은 ‘성당’으로 칭합니다. 주요 포교 대상 또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인 탓에 신도의 대부분은 본인을 카톨릭 신자로 소개합니다.
보편적인 기독교 신앙과 대비되는 부분은 ① 신의 예언자이자 신수에게 선택받았다 일컬어지는 초령招靈의 존재 ② 심판의 날 창조주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수에 현현할 것이라는 신수재림 신앙 ③ 신수의 선택을 받은 이들만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선민사상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대 초령의 유훈에 따라 예악에 재능 있는 이들을 ‘이미 구원받은 자’로 여기고, 재능 있는 예인을 발굴하여 신께 봉사토록 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창시자의 유훈은 신율장학재단이 국내 예술 영재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발원지인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신화리를 ‘성지’로 여기며, 1대 초령이 머물렀던 동굴 근처에 ‘신수재림수도회’라는 이름의 교역자 양성 기관과 화천신화성당이 존재합니다. 두 기관을 비롯하여 신화리는 교단의 허락을 받은 이들만이 출입 및 거주할 수 있습니다.
신화리 주민이 모두 교역자인 것은 아니나, 오랫동안 마을에 뿌리내리고 산 집안이 많아 초령의 유훈을 받들며 신앙심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각 지역 성당의 미사를 집전하는 교역자를 ‘신부’라고 칭하며, 이외의 교역자들은 ‘사제’로 통칭합니다. 신수재림교는 여성 신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신수재림교의 교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신수재림수도회의 교역자 양성 과정(1년 6개월)을 거쳐야 합니다.
사제 서품 후 15년 이상 지난 교역자 중 1% 내외의 인원은 주교 서품을 받습니다. 주교는 신수재림수도회와 화천신화성당을 비롯하여 신화리에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며 신수를 대면할 수 있습니다.
신부를 포함한 신수재림교 교역자들은 독신 의무가 없으며, 많은 이들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단, 교역자는 교역자와 결혼하는 것이 관례인 탓에 자녀의 종교적 자유가 제한됩니다. 교역자의 자녀는 부모의 소명을 물려받아 교역자의 길을 걷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신화리에서 태어난 교역자의 자녀는 교역자들이 공동으로 양육하며, 신화리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신화리에 거주합니다.
신화리에 거주하지 않는 교역자가 자녀의 영성 교육 및 교단 내 입지 확보를 위해 교단의 공동 양육을 요청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신수재림수도회 건물은 교역자들이 생활하고 아이들을 공동 양육하는 생활(거주) 공간과 아이들의 학습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신화리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신화리 인근에 위치한 신율초등학교를 졸업하며, 중학교 과정은 이곳에서 홈스쿨링 형태로 수학합니다.
*신율예고 입학생은 기숙사 생활을 위해 성인이 되기 전 마을을 떠납니다. 또한, 교단에서 운영하는 신율초 재학을 희망하는 경우 드물게 신화리 밖 거주가 허용되기도 합니다.
[이하 신수재림교 관련 선점 필요 설정]
A. 신화리 출신: 교역자 자녀 설정이 자유롭습니다. 교역자의 자녀가 아니어도 신화리에 거주할 수 있으며, 교역자의 자녀가 아닌 경우 신화리에 거주하더라도 공동 양육되지 않습니다.
B. 교역자 자녀: 신화리 거주 및 출입 경험이 전무하여야 합니다. 신화리에 거주하거나, 공동양육을 위해 신화리에 보내진 경우 ‘A. 신화리 출신’ 선점이 필요합니다.
C. 신수재림교 교역자로 성장: A와 B에 해당하지 않으나 루프를 거치며 한 번이라도 성장 후 교역자 과정을 수료한 경우 해당 설정의 선점이 필요합니다.
*기재 사항에 기반한 각종 사건 및 주교 미만 급 인물의 자유로운 창작을 허용하며, 기재 사항 외 추가 문의는 오픈채팅을 이용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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