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
2022.03.15
" 데려가 줘. "
이런 핏빛 미소를 보고 아름답다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중 자신은 꼭 포함될 것이었지만 그 수가 많진 않기를 무심코 바랐다. 자칫 불길한 미소를 나름의 시선으로 포용하며 마주 웃는다. 붉은 입술, 그보다 붉은 미소, 그리고 미스티를 바라본다. 우연히 주어진 두 번째 삶, 어떤 목적도 의미도 없다 생각하니 자유롭다. 무얼해도 틀린 연주가 되지 않는단 의미니. 목을 조르는 넥타이 매듭을 살짝 풀고선 코트를 벗어 미스티의 어깨로 걸친다. 그리곤 양손을 잡아 일으킨다.
“그럼 우선은 더블린부터.”
현관을 시작해 안으로 걷는다. 냉기가 올라오지 않는 나무 바닥을 걷다보면 베이지색의 카펫이 깔린 거실이 나온다. 한 쪽엔 피울 일 없는 벽난로, 맞은 편으론 바쁘게 사람이 거니는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통창. 그곳엔 채도낮은 머스타드색의 커텐이 가릴 것 없이 활짝 열려있다. 창과 창 사이 벽으론 분야를 막론한 책이 자신만의 규칙을 갖춰 자리하고 있으며 하얀 천장, 온통 나무가구, 한가운데로 자리한 하프시코드에 한구석으로 놓인 나무 진열대로 한 눈에 오래된 것을 알 수 있는 양주병이 즐비해있는 것을 보면 언젠가 독주를 즐긴다했던 말이 그리 허황된 거짓은 아니었음을 알게한다. 이 전시관엔 그가 살아온 삶과 태어난 삶이 적절히 어우러져있다.
“몇몇 가구는 이 집을 살 때 그대로 둬달라 부탁했던 것들이라 엄밀히 따지자면 제 물건은 아닙니다. 가구를 처음부터 고르는 일도 여간 시간이 드는 일이 아니더군요.”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그리 넓지 않은 거실을 걸었다. 이미 뚜껑이 열린 하프시코드에 앉아 자리를 잡으면, 다가오라며 눈짓한다. 그리곤 까맣고 하얀 건반을 눌러 경쾌한 현 소리를 낸다. 쾌활한 동시에 고즈넉한 소리. 그리곤 양손으로 가볍게 귀에 익은 멜로디를 연주한다. 이미 수차례 연주했던 것처럼 막힘없는 선율로 말없이 연주하는 모습은 자유롭기 그지없고, 어떤 한 지평에 달한 사람의 홀가분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느릿한 멜로디는 그 음의 발은 땅에 닿아있었고, 곧 공중으로 흩어 사라졌지만 그 파장이 거실에 은은히 남았다. 느릿하던 멜로디가 한 아리아가 끝나자 곧장 경쾌한 달음박질로 바뀐다. 무언갈 찾아 내달리는 사람처럼.
“골든베르크 변주곡은 본디 수면용으로 작곡된 곡입니다. 그럼에도 아리아 이후의 변주가 쾌활한 것은 불면을 겪는 주문자가 잠자리에 조금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누울 수 있게 해달라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잠자리가 불안했겠죠, 오늘도 잠에 들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탓에요.”
경쾌한 연주에 맞춰 차창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듯이 밝아진다. 황금빛의 아침햇살, 하루의 시작을 연상시키는 행복감이다. 양 손은 상하단이 연결된 하부의 건반을 가볍게 노크하고, 현은 그것에 응하듯 새가 지저귀는 발랄한 음색을 낸다. 자연스러운 미소로 말한다.
"사실 첫 아리아엔 가사가 붙어있습니다."
‘나는 오래도록 너로부터 멀어져있었다. 돌아오라, 다시 내게 돌아오라.’ 잇속으로 굴리며 읊었다. 마치 과거, 모든 것을 잊은 자들과 달리 모든 것을 기억한 제임스가 누군가를 부르듯이. 돌아오라 부르는 이유는 그리웠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대화하고 싶었기 때문에. 짧은 해설을 얹으며 한 곡씩 연주한다. 85분에 달하는 본곡을 전부 연주할 수는 없으니까, 그 중 애정하는 몇 곡을 추려 연주했다. 토카타, 지그, 푸게와 13번째 변주곡.
"85분 동안 3곡씩 묶여 한 음씩 증가하는 카논 형식으로 진행된 변주곡은 결국 처음의 아리아로 돌아갑니다. ‘다시 내게 돌아오라’. 반복해 간청하듯이요."
마지막 곡을 연주한다. 수학적으로 철저히 계산 아래 작곡된 곡은 결국 큰 힘을 들여 연주할 필요가 없는 처음의 아리아로 돌아온다. 힘을 빼고 그저 느끼는대로 연주하면 된다. 이미 서른 곡의 연주를 통해 하루를 충만히 살았다. 그 길을 착실히 따르면 마지막 곡의 특유한 감정은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것이니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며, 제임스는 건반을 내려보며 말했다. 바흐는 악보에 수학 공식을 적은 절처한 이성주의자다. 그럼에도 자유로운 자다. 술을 즐기고, 음악을 즐기고, 작곡에는 철저한 이성을 다한다.
"어쩌면 잘 짜여진 곡을 따라, 저는 이곳으로 온 걸지도 모릅니다."
철저한 우연으로 만들어진 불운을 따라 걸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다다르니 이제껏 따라온 길 덕에 더이상 심혈을 기울일 필요까진 없었다. 그 이야기를 끝맺을 필요는 있겠지만, 강박적인 책임감에 스스로를 검열할 이유는 없다. 마지막이란 본디 마음이 가는대로, 그 길을 걸은 자가 가장 완벽한 결말을 알고 있다. 말을 마치며 거실 한 켠에 자리한 백색의 캔버스를 본다.
벽에 걸린 캔버스.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그리고 미스티를 본다.
"연주회를 열어볼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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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茶
가장 흔한 머리카락 색이 검은색 다음으로 갈색이라던데. 그럼 이건 흔한 감정인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없으면서, 그렇게 막 말하면 안 되는 건데. 하지만 이 흐릿하고 넓게 퍼져가는 느낌을 뭐라고 써야 좋단 말인가. 위에서는 흐릿하다고 했지만 그저 두루뭉술할 뿐 이것이 결코 의미 없는 뜻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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