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는 제가 할 것 같습니다만?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

독후감 by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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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수요일 저녁이다. 수요일 저녁은 사르트르¹의 오후 3시와 같다. 무언가를 하기엔 너무 늦거나 이른 요일이다. 아주 특이한 요일이다. 미뤘던 일들이 나를 압박한다. 나는 <<구토>>²에 대한 독후감을 마무리하기 위해 근처 카페로 향했다. 바쁜 군중 가운데에서 나의 축 처진 몸으로 걸었다. 튀어나온 보도블럭에 걸려 발을 헛딛은 여자, 육수를 흘리며 미간을 모은 채 버스를 향해 뛰는 남자, 양산을 핀 채 여유롭게 걷는 브루주아 노년 남자가 보였다. 양산을 쥔 손은 무수한 주름으로 가득하며 힘줄이 울긋불긋하게 올라와 있다. 그는 꽉 쥔 주먹을 한 번 풀었다 다시 잡는다. 그가 우산 손잡이를 잡은 것은 젊은이들의 그것과 다르다. 모양은 같을지 몰라도 먼가 다르다. 나는 이를 정의할 수 없다. 갑자기 속에서 메스꺼움이 느껴졌다. 노년의 남자가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메스꺼움은 가시지 않고 머문다. 카페의 불빛이 보인다. 미지근한 철제 손잡이를 밀기 위해 손을 뻗었는데, 순간 견딜 수 없는 역함이 나를 덮쳤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잡이로부터 멀어졌다. 저게 나를 만지려고 했다. 나는 작게 개자식이라는 단어를 읊조리며 보호막이 있는 발로 문을 열고 겨우 카페로 입장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 밀크티와 조각 케이크를 하나 시키고 자리에 착석했다. 카페에 앉은 사람들이 소음을 내며 떠든다. 나는 거짓말쟁이에 고독자다. 난 사실 음료를 받고 나서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¹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무신론적 실존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²사르트르의 소설.

많이 간략화했지만 구토는 대충 이런 식의 소설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앙트완 로캉탱의 찐따력과 세세한 표현, 그리고 작가의 존재감이 뒤섞여 독자가 구토하고 싶어지는 이 소설은 사르트르가 본인의 사상을 매콤지게 무쳐준 개.쩌.소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소설 <구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르트르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스크랩을 좀 해왔는데요? 좀 지루해도 읽어주셔야 합니다.🙏🙏

근데 사실 저도 지루해서 다 외우진 못했어염ㅎㅎ 작가 인생에 대해 정리를 좀 해두긴 했는데 알아볼 수가 없어서 그냥 굵직(꺆//)한 정보들만 알려드리겠습니다.

Existence precedes essence.

“실존은 본질을 앞선다”라는 뜻입니다. 사르트르가 강연을 하며 최초로 제기한 개념으로 실존의 구조를 인식하고 해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실존이 뭐냐,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사르트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로 모든 것은 실존하며 고유의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예외적으로 정해진 본질이 없더라도 스스로 존재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 사상을 가지고 쪼끔 유명해집니다. 하지만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사르트르는 지역특산물(표현의 한계)처럼 취급될 정도의 명성을 원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그는 두 번째 소설을 출간하며 꿈을 이루게 되는데요, 그게 바로 <구토>입니다. <구토>에는 생각함으로써 존재함, 무상성, 우연성, 형이상학, 휴머니즘, 시간성 등 여러 개념들이 사용되기에 실존주의에 대한 이해 하나만으로는 완전한 파악이 힘듭니다. 하지만? 읽다보면 대충 이거구나 하고 감이 옵니다. 슉팟찰싹이제 책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소설은 일기 형식이기에 찐따로캉탱의 관찰과 관점으로만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찐따녀석이 일기를 쓰게 된 이유 덕분에 과한 주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만 보는 내내 살남마려웠습니다. 정조도 안 지키는 자식이 사랑스러운 안니쨩을 탐내려 하다니……. 안니쨩이 누군지 궁금하시면 이따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찐따로캉탱이 일기를 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수시로 기록함으로써 순간순간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범위와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인지 왜곡이 일어나 실제 과거와 착각을 헷갈리게 되겠죠? 이 왜곡을 방지하고자 그는 400페이지짜리 당일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 기회를 한 번 놓치는 바람에 이틀 전 구토를 유발하는 돌멩이를 만진 것에 대해 평생 당일일기를 쓰지 못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당일일기 쓰시는 분들 조심하시길ㄷㄷ…….

로캉탱은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다가 흥미를 잃고 현재 프랑스의 작은 도시 부빌시(부벼?부빌?시?)에 머물며 를르봉이라는 프랑스 혁명 초기 인물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입니다. 그는 한량처럼 이곳저곳 기웃대며 자신의 시선에 닿는 것들을 키모오타쿠마냥 관찰합니다.

“내 시선은 이 이마 위를, 이 볼들 위를 천천히 지루해하면서 내려오는데, 도중에 그 어떤 단단한 것을 만나지 못하고 모래 늪 속에 빠져버린다. (중략) 내가 어렸을 때 비주아 숙모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네가 거울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거기서 원숭이를 보게 될 거야.“ 난 그보다도 더 오랫동안 거울을 들여다보았음에 틀림없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원숭이보다도 훨씬 못한 것, 식물 세계의 언저리에, 폴립의 단계에 위치한 것이다. 이것은 살아 있다.”

일기의 대부분은 이렇게 그가 마주한 대상을 관찰하고 그에 대해 사유하는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체적인 플롯이 거대하진 않지만 400페이지가 넘어가는 이유입니다. 이런 그와 교류다운 교류를 하는 것은 사회주의자인 독학자와 옛 연인 안니, 두 명 뿐입니다. 하지만 6년 만에 파리에서 재회한 안니는 미남자와 함께 런던으로 떠나고, 다시 돌아간 부빌 시에서의 독학자(특: 우아한 엉덩이와 여자같은 속눈썹을 가짐, 로캉탱을 귀찮게 함)도 남자아이를 성추행하다 다른 사람에게 처맞고 사라집니다. 그렇게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은 로캉탱(??:ㅋㅋ아 내가 먼저 떠나려고 했다고ㅋㅋ)은 짐을 챙기고 평소와 같은 형상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하며 파리행 열차에 오르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해설을……. 해설을 해야되는데요……. 시간이 없네요ㅎㅎ. (이제 그냥 존니 당당함,) 제목에 대해서만 짧게 얘기하고 끝내겠습니다 하하. 주인공이 소설 내에서 가장 자주 느꼈던 ‘구토감’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본질과 사물에 대한 그의 인식의 차이에 의해 일어납니다. 더 자세히 설명하려면 여분의 존재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되는데 시간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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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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