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판14 창천 감상을 겸한 글
오르슈팡을 회고하며
Fiat lux et lux erat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온 세상에 있었다.
어젯밤 나는 한 기사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하루종일 나의 반지를 어루만졌다.
도시로 가는 마차에서 넉살 좋은 상인은 내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여행하느냐고. 그때 나는 뭔가 대답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 이제 나는 그때 그에게 어떤 대답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지만 잊어버렸다.
사람들은 나를 모험가라 부른다. 나의 모험은 어떤 이야기인가.
아이메리크는 만찬에 나를 초대해, 나의 모험에 대해 물었다. 나는 그에게 해줄 이야기가 아주 많았다. 저택의 어둠을 밝히던 촛불이 어둑어둑해질때까지 나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많은 모험이 있었던가. 나는 검은 장막 숲을 헤짚었고, 라노시아의 물살을 가르는 배에 올랐으며, 다날란의 먼 사막을 걸으며 쏟아지는 달빛에 눈을 감았다. 초코보 등에 올라 끝없이 이어진 평원을 달리면 어둠이 땅을 뒤덮고 7재해가 남긴 에테르의 상흔이 눈이 시릴 정도의 빛을 발한다. 사스타샤 동굴에 들어갔을때를 기억한다. 처음 야만신 앞에 섰을때를 기억한다. 니므의 폐허, 암다포르의 유적, 울다하의 고대 수로의 지저분한 냄새, 눈보라 속에서 처음 올려다본 이슈다르드의 뾰족한 첨탑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끝없이 말을 늘어놓으며 내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천천히 잔을 준비하는 집사에게 신경이 쏠려있었다. 아이메리크는 수사적으로 그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물었고, 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내가 말을 멈춘것이 목이 타기때문이라 생각했는지 집사가 조심스레 와인을 골라 내게 건넨다. 잔을 물리고 아이메리크의 잔에 와인이 담기는 것을 보며 나는 내가 기억하는 수많은 모험들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울다하의 왕도 내게 많은 것을 물었었다. 나나모 여왕 앞에서 나는 조금 더 솔직하게 즐거웠던, 두려웠던, 그리고 행복했던 수많은 추억들을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때도 분명 즐거웠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사람은 어째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야만 하는가.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샬레이안의 현자들조차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음을 거슬렀다는 아씨엔에게조차 소멸의 시간은 찾아온다. 그렇다면 죽음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도록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나는 믿었다.
저녁별 만에서 나는 하루 종일 시신을 나른 적이 있다. 마부는 내게 빨리 하라고 재촉하며 짜증을 냈었지. 지난번 모래의 집을 나오기 전 내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던 작은 라라펠이 그날따라 무거워 나는 로로리토의 석상을 지나며 진땀을 빼야 했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나이트였고, 주술사였고, 라라펠이고, 휴런이며, 미코테였고, 엘레젠이고, 루가딘이었다. 나는 민필리아를 만나기 위해 수없이 모래의 집을 드나들며 그들의 이름을 묻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모래의 집에서는 그 후로도 오랜시간동안 피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위리앙제를 만나기 위해 모래의 집으로 갈때면 나는 저녁별 만 바다 깊숙이 사는 상어처럼 예민하게 피냄새를 맡곤 한다. 나는 그래서 그 곳에 굳이 남겠다고 하는 위리앙제가 피냄새에 둔감한 남자라고 생각하며 종종 그가 이곳에 남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곤 했다. 묻지 않았던 것을 난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수많은 모험 동안 누구에게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강인한 의지는 강력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모두 이 시대의 횃불을 밝히고자하는 이유와 소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고 죽어간 새벽의 혈맹원들 역시 모두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리다니아에도, 울다하에도, 림사에도, 아말쟈에게도, 실프에게도, 이크살에게도, 코볼드에게도, 사하긴에게도, 시드에게도, 가이우스에게도 심지어 일베르드에게도 이유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이유는 있다.
그렇다면 어쩌면, 누구의 이유도 묻지 않고 그 모든 의지의 소용돌이를 보기만 했던 나야말로 에오르제아에서 가장 이유가 결핍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이델린의 거대하고 타오르는 에테르 앞에 마주 설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야만신이 타인의 소망과 이유로 탄생한 신이라면, 내 자신의 소망과 이유 없이 타인의 궤적을 쫓아가는 나 역시 야만신과 다를 바가 없는게 아닌가 하고. 울다하에서 쫓겨 이슈가르드 앞에 설때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원망하려면 얼마든지 원망할 수 있었겠지.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울다하인들의 야유도, 정치적 이유로 연회장에서 자리를 피한 지도자들도, 새벽을 배신한 크리스탈 브레이브의 단원들 조차도 증오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내가 새로 배운 감정이라 부를만 하다.
나는 정말 최근에서야 용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는 아이메리크의 얼굴에 드리워진 토르당의 그림자를 본다. 포르탕의 근심많은 가주의 눈빛에서 오르슈팡의 잔재를 발견한다. 거리를 걷는 수많은 엘레젠들, 이슈가르드의 성채 구석구석, 용머리 전진기지의 모든 곳에서 나는 추억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들어 내가 손 안에 아직도 용의 눈을 쥐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눈을 뽑히면 눈을 뽑고, 이를 뽑히면 이를 뽑고, 피를 흘리면 그만큼 피를 흘리게 하고 목숨을 빼앗으면 목숨으로 갚는 응보의 원칙은 얼마나 간단하며 의미없고 허망한가. 피의 잔이 흘러 넘친다 해도 드라바니아 곳곳에 흩어진 옛 유적의 잔해들을 볼때마다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부정한 삼탑에 날개를 쉬어갈때면 옛 시대가 떠올랐을 것이다. 짧은 생을 사는 자들의 아들의 아들, 딸의 딸, 손녀의 손자, 손자의 손녀에게 남은 내가 아는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할때마다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했겠지. 왜 라타토스크여야했지?
위리앙제가 진정으로 강인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절감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나는 이슈가르드를 거닐때마다 올려다보이는 거대한 교황청의 건물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기사단에 방문을 하면서도 되도록 빠르게 몸을 돌린다. 나는 포르탕 저택을 조심스럽게 피해 걸으며 점점 바닥으로, 바닥으로 내려갔다. 안개로 자욱한 하층의 널빤지 건물들 사이사이를 지나다닐때야 비로소 나는 천천히 숨쉴 수 있었다.
사람들은 때로 말한다. 모험가는 약자들을 위해 싸워주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내가 정말 약자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인지, 세계를 구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내가 여태껏 지켜온 사람들이 약자가 맞기는 하던가?
그리고, 나는 그 깊고 어두운 안개 속에서 누군가의 비명을 들었다.
감상인데 빛전시점 감정의 흐름 대충 끼적인거라... 암튼 난 플레이하면서 이런 느낌이었음 과몰입오타쿠 ㅈㅅ 딱히 커플링은 아닌데 내가 오르슈팡 생각보다 만이 좋아했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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