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팁 전력

넘기지 못할 마지막 페이지

뜰팁 전력 '책' | 밤을 보는 눈

"동희야, 아직도 안 자고 있었어?"

"아빠, 잠이 안 와..."

"그래? 그럼 아빠가 책 읽어줄까? 어제 어디까지 읽었지..."

한참 책을 읽어주는데, 어깨에 잠든 동희가 기대는 것이 느껴졌다. 책을 끝까지 듣고 싶어서 잠이 오는 걸 참고 있었나보다. 그런 동희의 순수함이 귀여워, 나는 아이가 깨지 않을 정도로만 조용히 웃었다. 동희를 침대에 눕히고, 동희가 좋아하는 책갈피를 동화책에 끼워 넣고, 다시 동희 얼굴을 바라보았다. 편안한 표정으로 기분 좋게 자는 동희의 이마를 가볍게 쓸어주었다. 자는 것을 확인한 나는, 자는 동희 옆에 쪼그려 앉아 동희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동희야, 아빠가 많이 미안해."

시간은 벌써 새벽이다. 이 나이의 아이들이라면 벌써 몇시간 전에 자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동희는 이 늦은 시간까지 졸리지 않다며, 억지로 잠을 참고 있었다. 회사가 늦게 끝나서 부랴부랴 집에 왔을 땐, 동희가 꾸벅꾸벅 졸며, 한 손에 동화책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동희를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혼자 두지 않아도 됐을 텐데. 늦게까지 기다리는 동희에게 왜 이제까지 기다리고 있었냐고 물었을 때, 동희는 그저 책의 뒷 내용이 궁금했을 뿐이라며 웃었다. 그것이 실은 책의 뒷 내용은 상관없이 그저 아빠인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늦게까지 일하고 온 내가 그나마 덜 피곤해할 일인 책 읽기를 골랐다는 것을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되었다. 아빠가 되어서 아이가 참게나 만들고, 나는 정말 네게 많이 부족한 아빠구나.

"우리 동희, 정말 많이 고맙다."

못난 아빠 아래서 이렇게 바르게 커 줘서, 이런 나에게 사랑스러운 아들로 와줘서 고마워. 그렇게 아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속삭였다. 이런 말을 하는 걸 아는 건지, 아니면 그냥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동희는 배시시 웃었다. 그런 아이가 사랑스러워 덩달아 나도 미소 지었다.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종종 아이가 미래에 어떻게 자랄지 상상으로 그려내곤 했다.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던지, 결혼식 장에서 정장을 입고 있을 너라던지. 함께할 미래를 생각하면 행복하고, 그 미래 속의 네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동희와 함께 할 미래가 아주 넓고 많을 것이라는 것에 한 치 의심도 하지 않고, 나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한 번 더 보고 방을 나왔다.


아이의 미래는 더 이상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내 눈앞에서, 아이는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못 하고 발만 동동 굴리다가, 그렇게 내 세상의 전부를 잃었다.

불씨가 사그라지듯, 아이는 그렇게 조용히 떠났다.


회사 일은 오늘도 늦게 끝났다. 혹여나 네가 너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나는 옷도 정리하지 못하고 부랴부랴 아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동희야 미안, 아빠가 늦었...."

문장의 마지막 말은,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평소보다 조용한 방. 꺼져있는 불빛. 그리고 온기 하나 없이 비어있는 침대. 그 차갑고 어두운 정적을 바라보고, 이해가 가지 않아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현실을 받아들일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힘없이 웃었다.

아, 맞다.

벌써 몇 번째더라. 동희가 그렇게 허망하게 가 버린 지 며칠이나 지났는데. 하얀 국화로 둘러싸인 네 사진을 보고 울다 혼절한 게 벌써 열흘도 더 되었는데. 아직도 나는 회사가 끝나면 동희 방으로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비어있는 침대를 보고 그제야 변할 리 없는 차가운 현실을 깨닫는다.

아이의 침대로 걸어갔다. 짐을 정리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아직도 네가 책을 읽어달라며 방긋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한데, 사실 숨바꼭질처럼 네가 옷장에서 나와 모든 게 거짓이었다고 말해줄 것 같은데. 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일상이고 내 세상의 전부였는데. 이렇게 쉬이 가버릴 리가 없었는데.

"...이건..."

침대 위에는,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읽어준 동화책이 있었다. 책갈피는 책의 중간에 꽂혀 있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주지도 못한 책이었다. 내일 다 읽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마지막 이야기는 들려주지 못했다. 너는 잡지 못할 새가 되어 결국 날아가 버렸다. 아니, 아니다. 날아가 버린 게 아니라, 내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너를 잡지 못한 것이다. 

"아직... 10살 밖에 안됐는데...."

책갈피가 꽂혀 있는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함께 읽겠다고 약속했는데 차마 나 혼자 넘길 수가 없었다. 너는 그 시간 속에서 더 이상 흐르지 못하는데, 너를 두고 나 혼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 교복을 입은 너를 상상하며, 너와 함께할 미래를 그렸었는데. 이젠 정말,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다.

그 날은, 아니 그 날도, 동이 틀 때까지 뜬눈으로 동희의 방에서 밤을 지새웠다. 책갈피가 꽂혀 있는 그 페이지에 몇 날이나 눈물이 떨어져 종이가 울어버렸다. 

여기에 네가 있는데, 여기에 네가 있었는데.

아빠라고 불리며 품에 안기는 우리 아들이, 우리 동희가 여기 있었는데.

아직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주지 못했는데.

아직 사랑한다고,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다 말해주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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