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드림

슬램덩크 드림으로 심심하고 뜨뜻미지근한 연애 중인 줄 아는 드림주와 드림주 생각보다 훨씬 불타오르고 있는 드림캐가 보고 싶다 B

이정환

정환이 형이랑 정환이 형네 드림주는 회사 복사기조차 다 안다는 사내 커플... 이지만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인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둘은 같은 회사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는데, 어쩌다 마주쳐도 소 닭 보듯 데면데면해서 연애는커녕 일말의 접점도 없어 보이겠지.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사내 메신저를 통해 퍼지기 시작한 목격담 때문에 온 회사가 발칵 뒤집어지는 게 보고 싶다.

헐!!! 영업부 내 동기가 그러는데 어젯밤에 카페에서 이정환 팀장님이랑 ○○○ 주임님 봤다던데? 아니, 회식 그런 거 아니고 둘만 있었다던데? 팀장님이 주임님 입에 묻은 크림도 닦아 주더라던데?

결국 회식을 가장한 청문회에서 모든 것을 실토하게 되는데 (네? 둘이 벌써 사귄 지 n년이나 되셨다구요? 저희는 연애 중이신 줄도 몰랐는데요...?) 딱히 숨기려던 건 아닌데... 하고 난처하다는 듯이 웃는 정환이 형 때문에 기껏 불태운 전의가 푸스스 사그라드는 사원들이겠지. 아니잖아요! 완전 감쪽같이 속이셨잖아요! ㅠㅠ 하고 따지려다가도 그 옆에 돌부처마냥 덤덤하게 앉아 있는 드림주 보고 남은 전의마저 완전히 꺾여 버릴 것이다.

나중에 어느 정도 끝나 가는 분위기가 될 때쯤에 눈치 봐서 적당히 일어나는 두 사람인데, 택시 기다리면서 드림주가 정환이 형 가슴에 콩 하고 이마를 기대는 거... 남들이 보면 뭐야, 몸통 박치기야?;; 할 테지만 정환이 형은 이제는 드림주 눈빛만 봐도 척하면 착일 듯. 유난히 사람 많은 데 힘들어하는 드림주가 아이고... 힘들었다... 하고 나름 투정 부리는 중인 걸 알아서 고생했다고 부둥부둥해 주는 정환이 형이 보고 싶다.

차라리 잘 됐다, 그렇지? 갑자기 청첩장부터 돌리면 다들 놀랐을 테니까.

드림주 순간 그런가...? 싶었지만 며칠 후면 나올 청첩장 떠올리며 고개 끄덕이겠지. 처음에 사내에 소문 쫙 퍼진 거 알게 되고 나서 이제 어떡하면 좋냐고 얼굴 하얗게 질린 드림주한테 언젠가 한번은 거쳐야 할 일이라고 침착하게 다독여 줬던 것도 정환이 형이었고... 이제 결혼 앞두고 몇 달만이라도 마음 놓고 연애하는 티 좀 내 볼 수 있겠다고 웃으며 품 안에 있는 드림주 더 꼭 끌어안는 정환이 형이 보고 싶다. 그리고 담배 피우러 나왔다가 공교롭게 그 모습을 목격하게 된 모브 사원에게 씨익 웃어 보이겠지.

연애하는 걸 들킨 게 과연 실수일지는 정환이 형만 알 것이다.

정우성

우성이랑 우성이네 드림주는 미국에서 유학하다가 만난 사이였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그 지역에 몇 없는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가까워졌다가 우성이가 적극적으로 대시해서 연인 사이로 발전했겠지.

우성이 처음에는 자기도 남자라고 무게 잡고 멋있는 모습만 보이고 싶어 했는데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라고 새지 않을 리 없음. 소위 말하는 썸을 탈 때부터 마음 한구석에 합리적인 의심을 품고 있던 드림주... 연애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 많고 눈물은 더 많은 우성이 본 성격 알아차리고 탄식했어야 옳다.

오늘 경기 완전 날아다녔는데, 보러 와 주지도 않구... 뽀뽀도 안 해 주구...

​190도 훌쩍 넘는 문짝남(특: 아직도 크는 중)이 입술 삐죽이면서 투덜거리는 거 나만 보고 싶냐. 드림주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패턴에 그래그래~ 하며 할 일 하는데, 그런 드림주 뒤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기 얼마나 서운한지 알아 달라고 시위하는 우성이 졸귀겠다. 결국 투정에 못이긴 드림주가 파트타임 때문에 도저히 시간을 뺄 수 없었다고, 미안하다고, 다음 경기는 꼭 보러 가겠다고 가슬가슬한 정수리에 쪽쪽 입술 내리는 걸로 겨우 진정되겠지. 그럼 드림주 허리에 매달리다시피 붙어 있던 정우성 거기 말고 입술에도... 하고 얼굴 들이밀 듯.

이렇게 세상 도도하고 듬직하게 생겨서는 한시도 가만있지를 못하는 우성이 덕분에 두 사람 일상은 치댐 → 환장 → 집적거림 → 체념과 수용 → 다시 치댐의 무한 반복이겠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연애가 아니라 무슨 어린애들끼리 투닥투닥 장난치는 거 같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정작 드림주는 우성이와의 관계를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 어쩌지. 그냥 이역만리 타국에서 만난 같은 나라 사람이라서 생긴 애착이겠거니, 진지한 연애 감정은 아니겠거니 생각해서 적당히 받아 주는 중이면 어떡하냐고.

거기다 본인은 여기서 하는 공부가 끝나면 다시 돌아갈 예정인데 이제 조금씩 팀에서 자리 잡고 있는 중인 우성이는 그게 아닐 게 뻔하고... 은근히 외로움 타고 잠시도 혼자 있는 거 못 견디는 우성이 성격상 자기가 떠나고 나면 얼마든지 대체할 다른 사람을 찾을 거라고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해 버리면 좋겠다. 결국 졸업과 동시에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하고 한국/일본으로 돌아가 버렸으면.

드림주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강한 애착만큼이나 우성이의 집념 또한 어마무시하다는 거였겠지.

...... ○○-

분명 한창 리그가 진행 중일 시기에, 한 번도 주소를 알려 준 적 없는 집 앞에서 여기 있으면 안 될 이를 마주친 드림주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듯. 깊이 눌러쓰고 있던 볼 캡을 벗자 드러난 두 눈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가 벌겋게 짓물러 있는데, 그럼에도 눈빛만은 더없이 또렷하고 형형하게 빛나고 있겠지. 마치 코트 위에서 공을 쫓을 때처럼. 놓칠 생각이라곤 조금도 없어 보이는 단단한 표정을 보고 드림주 그 언젠가처럼 탄식했으면 좋겠다.

권준호

준호네 드림주는 대학병원 근처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 중인데, 그러다 그 병원에 근무하는 준호랑 만나게 된 거였으면 좋겠다. 매일 다 죽어 가는 얼굴로 와서 투샷 때린 아아만 주문하는 단골손님을 눈여겨보고 있던 드림주 그러다 속 버리세요... 라고 자기도 모르게 훈수 뒀다가 아차 했을 듯. 그런데 뜻밖에도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진 준호가 그럼 커피 말고 다른 것 좀 추천해 주겠냐고 드림주 잔소리를 받아 주는 바람에 대화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함. 그렇게 투샷 아아 손님이 생과일주스 손님이 되고 머지않아 남자친구가 됐겠지.

아무튼 여기 드림주는 이래도 허허 저래도 허허인 준호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지랄 맞기로 소문난 지도 교수의 갈굼에도, 별난 환자나 보호자의 그 어떤 진상 짓에도 화를 내는 법이 없는 준호 얼굴을 잡고 그래서 그 말을 듣고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고? 준호야, 너 바보야...? 하고 진지하게 물어본 적도 있었겠지. 정작 준호는 그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나 30분만 있다가 다시 들어가 봐야 되는데 무릎베개해 주면 안 돼? 하고 드림주 허리 끌어안고 머리나 부비고 있겠지만.

어휴, 얘를 어쩜 좋아... 드림주 못 이기는 척 본인 무릎 베고 누운 준호 머리 쓸어 주는데 속으로는 이렇게 유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노심초사하고 있을 듯. 물론 이건 순전히 전지적 드림주 시점의 견해일 것임. 드림주는 농최날에 철 좀 들어라...! 하고 차갑게 일갈했던 준호의 과거를 모르니까... 병원 내에서 맨날 웃고 다니고 말도 사근사근하게 하는데 왠지 모르게 무서운 단호박 인간으로 통하는 권 선생님의 평판 같은 것도 모르니까... 그런데 이렇게 생전 화라고는 낼 줄 모르던 준호가 딱 한 번 폭발한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장님, 큰일 났어요! 빨리 좀 오세요, 빨리요!

하루는 볼일이 있어서 잠시 알바생에게만 가게를 맡겼는데, 자리 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전화가 온 거. 다급한 목소리에 허둥지둥 돌아와 보니 가게가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겠지. 그리고 그 난리통 가운데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던 알바생이 눈치 보면서 경찰서로 가 보셔야 될 것 같다고, 그 아저씨가 또 왔었다고 하는 순간 드림주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서에는 준호랑 낯익은 손님이 나란히 앉아 있고... 준호 옆의 그 남자는 그전부터 몇 번이나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도 끈질기게 치근덕거리던 사람이었겠지. 한동안 안 나타나길래 잘됐다 하고 잊고 지냈었는데 기어이 오늘 처음 준호랑 마주쳤던 모양이었음. 남자가 평소 내뱉던 희롱성 짙은 발언의 수위를 생각하면 사태가 주먹다짐으로 번진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을 듯. 다만 먼저 주먹을 날린 게 그 권준호라는 게 의외였지만.

둘 다 얼굴이 엉망인데 그래도 예전에 운동을 했었다는 준호의 말이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었는지 상대 쪽 얼굴이 더 심각한 상태고 그렇겠지. 이래저래 일이 마무리가 된 후에 가게로 돌아와 알바생 돌려보내고 깨진 유리잔이며 집기들을 정리하는데 그동안 준호는 자기는 아무 잘못 없다는 듯이 입 꾹 다물고 있는 거. 일부러 눈도 안 마주치던 드림주가 청소 끝나고 나서야 앉혀서 상처를 치료해 주려는데, 그제야 얼굴 여기저기에 찢기고 멍든 상처가 눈에 들어오겠지. 결국 속상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나무라는 투로 말이 나왔을 듯.

준호야, 평소엔 안 그러더니 오늘은 왜 그랬어... 그런 사람은 상대해 줄 필요도 없어. 알잖아. 봐, 얼굴이 이게 뭐야. 난 그런 사람 때문에 너 다치는 거 싫단 말이야.

...... 나도 싫은데. 그런 사람이 너 괴롭히고 함부로 떠들어 대는 거.

그것이... 얼굴이랑 목소리는 분명히 우리 준호가 맞는데... 아직도 분이 덜 풀려서 거친 숨을 겨우 갈무리하는 표정이랑 불퉁하게 내뱉는 말투 때문에 본인 눈과 귀를 의심하는 드림주겠지. 처음에는 이 사람이 과연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던(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지적 드림주 시점) 그 준호가 맞나 싶어 얼떨떨한 거. 그렇지만 곧 천하의 권준호가 이렇게까지 화가 난 게 다름 아니라 본인 때문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뻥 터져 버릴 것만 같았을 것이다.

결국에는 웃음 섞인 한숨 한 번 토해 내고 울긋불긋 꽃 핀 준호 입술에 쪽 하고 입 맞추는 드림주가 보고 싶다. 알겠으니까 화내지 말라는 드림주 말에 너한테 화난 거 아니라고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준호도.

남훈

훈이랑 훈이네 드림주는 부모님들끼리 친분이 있어서 갓난아기 때부터 친구 사이였으면 좋겠다. 너무 어릴 때부터 친형제처럼 붙어 다닌 탓에 입덕 부정기도 거하게 겪었겠지. 내가? 쟤를? 왜? 하고. 근데 쟤 옆에 다른 애가 있는 건 그렇게 꼴 보기가 싫고... 결국 둘 다 n년 정도 방황하다가 겨우 자기 마음 인정하고 사귀게 됐는데 여러모로 다른 커플과는 다른 비범한 한 쌍이었으면 좋겠다.

훈아~ 자기야앙~?

뭐꼬, 징그럽구로. (정색) 시킬 거 있으면 그냥 말해라.

아, 이 귀신같은 놈. ㅡㅡ 오늘 바지락 팍팍 넣어서 칼국수 좀 해 도. 찬 바람 부니까 뜨끈한 국물이 땡기네.

남들이 보면 커플이 아니고 원수지간 아니냐고 할 정도로 표현도 거칠고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두 사람이 보고 싶다. 물론 두 사람이라고 남들처럼 낯간지러운 애칭을 쓰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겠지. 나름 연애의 단꿈에 젖어 있던 초반(서로 내숭 떨다가 지쳐서 일주일 만에 포기)에는 몇 번 시도도 해 봤을 듯. 하지만 막상 서로를 보고 자기니 여보니 하려니 차마 입술이 안 떨어져서... 결국 드림주가 훈이를 자기라고 부를 때는 딱 두 가지 경우인데, 바로 놀려 먹으려고 드릉드릉할 때나 부탁할 게 있을 때뿐이었으면 좋겠다. 훈이는 상상만으로도 현기증 난다고 아예 시도조차 안 하겠지.

...... 그라면 대신에 자고 가든가.

대신에 가끔가다 행동으로 훅 치고 들어오는 편이어서 드림주는 가끔씩 가슴이 철렁했으면 좋겠다. 미쳤나! 도랐나 봐, 진짜! 못 들을 말이라도 들었다는 듯이 질색하면서 멀어지는 드림주나 왜! 내가 뭐 잡아먹나! 무슨 상상하는데! 하고 왁왁거리는 훈이나 얼굴 시뻘게진 게 보고 싶다. 부끄러운 데 면역 없어서 괴로워하는 친구 같은 커플 너무 좋으니까...

그래도 결국에는 훈이 옆에 누워서 말똥말똥한 눈으로 천장만 보고 있는, 은근히 말 잘 듣는 드림주... 너무 먹었더니 속이 부대껴서 잠 안 올 것 같다고 투덜거리더니 5분도 안 돼서 드르렁드르렁 잠든 드림주 꼭 끌어안고 그제야 훈이도 흐뭇하게 웃겠지. 사실 그냥 서로가 서로의 옆에 있는 게 당연한 일이라서 이런 심심하고 뜨뜻미지근한 연애에 별 불만이 없는 두 사람이 보고 싶다.

훈이 가는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 동준이 니가 봐도 내한테 너무 관심이 없다 아이가? 아니이, 내 아직도 무슨 몰래카메라라도 당하는 기분이라니까? 악! 남훈 인마, 설마 내 좋다 했던 거 대포 깐 건...?!

덤으로 높은 확률로 드림주의 상담 상대(라고 쓰고 친구네 커플 염병 천병 일화 들어 주기 담당이라고 읽음)로 활용되는 영고 동준이도 보고 싶다. 당장 오늘 낮에만 해도 드림주에게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보이는 동기한테 남의 마누라한테 무슨 일이냐고 소유권 주장 오지게 했던 훈이를 바로 옆에서 목격했던 동준이... 어쩐지 입맛이 써서 스무디만 쪽쪽 빨아들이며 중얼거리겠지. 이것들은 왜 맨날 쌍으로 난리고. 옘병... 아주 천생연분이다, 천생연분이야.

서태웅

태웅이랑 태웅이네 드림주는 커플보다는 척하면 착인 콤비 같을 것이다. 남들이 보면 너네 하루에 다섯 마디는 하냐고 신기해할 정도인데 굳이 말로 안 해도 상대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뭘 하려고 하는지, 뭐가 필요한지 다 아는 그런 사이인 거.

말수는 없는데 은근 납득충인 것까지 비슷해서 어, 우리 요새 분위기 이상하네... 아, 손잡고 포옹했으니까 이제 사귀는 거구나... 하고 사귀자는 말 없이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을 듯. 그렇게 두 사람 사이는 소소하고 잔잔하게만 흘러가는데, 태웅이 미국 유학을 기점으로 그게 좀 삐걱거리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태웅이 농구하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져서 자연스레 드림주는 뒷전이 되겠지. 태웅이한테 농구가 어떤 의미인지, 또 지금이 태웅이한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잘 아는 드림주니까 처음에는 허전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어도 꾹 참았을 듯.

그런데 그렇게 연락은 점점 뜸해지고, 가끔씩 하는 전화 통화도 말주변 없는 태웅이 때문에 침묵이 흐를 때가 많고, 얼굴은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게 되고... 제 아무리 무던한 드림주라도 지쳐 갈 수밖에 없겠지. 사실 내색은 하지 않았었지만 태웅이가 미국에 가게 될 것 같다고 얘기했던 시점부터 정해진 수순이긴 했음. 가면 언제 돌아오는지 드림주는 끝끝내 묻지 못했었거든. 오래오래 안 돌아오는 게 태웅이한테는 더 좋은 일인 걸 알면서도 막상 그런 대답을 들으면 본인이 견디질 못할 것 같아서.

이제 그만하는 게 맞겠지. 문득 시작했을 때처럼 끝내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 결국에는 남들이 만나는 사람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서야 단단히 마음먹는 드림주일 듯. 그래, 이렇게 서서히 멀어지다 헤어지는 거지... 태웅이를 위해서도 내가 물러서는 게 맞아...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마음의 준비까지 했으면 좋겠다.

만약에 태웅이가 그런 쪽으로 약간의 센스라도 있었다면, 하다못해 눈치라도 빠른 성격이었다면 드림주의 이런 변화를 알아차렸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 그렇게 야속한 시간은 흐르고 태웅이가 오랜만에 한국/일본으로 돌아온 날, 평소 데이트할 때처럼 같이 시간을 보낸 후에 헤어지자고 말하는 드림주가 보고 싶다.

드림주는 늘 그랬던 것처럼 태웅이도 당연히 자기랑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태웅이한테 그간 같이 사용하거나 선물로 받았던 물건들, 예를 들자면 1주년 기념으로 같이 맞췄던 커플 펜던트 같은 것들을 돌려주면서도 덤덤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인 거.

나는, 싫어...

어쩐지 태웅이 표정이 이상하다 싶더라니 그 한마디도 겨우 내뱉고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울고 있었으면. 사실 태웅이가 오늘 계속 주머니 속에 꽂고 있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반지 모양 문신이 새겨져 있었을 듯. 그리고 드림주에게는 문신 대신 직접 끼워 줄 생각이었던 반지도 케이스째 들어 있었겠지.

농구를 해야 하니까 드림주랑 커플링 같은 건 꿈도 못 꿨었는데 미국에서 같이 뛰는 팀 동료가 연인과 커플로 새긴 문신을 보고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깨달은 태웅이... 몇 달을 고민하고 고민해서 드림주한테 줄 반지를 고르고, 본인은 입국 전날에 똑같은 모양으로 문신을 새기고 온 거였겠지.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드림주는 이제 다 놓아 버리고 떠나겠다는데.

미안해.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혼자서만 고민, 하게 해서... 이젠 완전히 마음이 변했어? 내가 너무 늦었어...?

그렇게 묻는 걸 끝으로 태웅이는 조용히 눈물만 쏟으면서도 드림주 팔을 꼭 붙잡고 놔주질 않겠지. 뿌리치고 가려면 갈 수도 있었겠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 서태웅이 눈물이라니, 드림주에겐 마치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이었으니까.

그리고 당장 다음 날부터 자기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이제 다시는 외롭게 하지 않을 테니까 자기랑 결혼하고 같이 미국 가자고 맹렬하게 대시하는 태웅이 말리느라 진땀을 빼는 드림주가 보고 싶다. 누구보다 태웅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드림주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건, 언뜻 무감하고 고요해 보이는 얼굴 아래 감춰진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 그리고 농구든 사랑이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만 하는 집착에 가까운 집념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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