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살인마의 코빌사

뒤늦은 여름특집

ㅇㄴㅂ

#첫째날


쾅!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짝이 뜯어지지 않았으면 다행이라고 생각 될 만큼의 굉음이었지만 소파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은 태연하게 현관을 돌아볼 뿐이었다. 거세게 열어젖혀진 문은 벽에 한 번 부딪히고 슬슬슬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런 문을 보지도 않은 채 발로 차 다시 닫은 이는 누가보아도 수상하고 위험해보이는 남자였다. 그래, 코니 말이다.

코니는 제 등에 매어있던 큰 배낭을 바닥에 내려둔다. 어쩌면 ‘던져둔다’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척봐도 묵직해보이는 배낭은 그 위용에 걸맞게 꿍 소리와 함께 바닥에 안착했다.

사비나는 그 모양을 보고 ‘미친 고릴라 새끼’라는 평을 남겼고, 빌은 그런 사비나의 볼을 쭉 늘릴 수 밖에 없었다.


“수고했네. 어디 다친 곳은 없나?”


“있겠냐? 내가 물자 구해왔으니까 태평한 니들이 정리해라.”


그리 말한 코니는 3인용 소파에 풀썩 눕는다. 빌은 허허 웃으며 쉬라고 덧붙였고, 사비나는 누가봐도 귀찮은 행색으로 슬그머니 와 배낭을 열었다. 통조림, 통조림, 통조림과 통조림이 꽉 차있는 배낭. 통조림 말고 다른 것도 먹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는다. 전기도 끊긴 이 마당에 그런걸 가리면 도태되는 법이니. 그 절망 속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그 빌어먹을 개 사료 통조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무거운건 내가 옮길테니 사비나 자네는 하나씩 정리만 해주게.”


친절한 빌의 음성에 사비나는 알았노라 고개를 끄덕이고 빌이 옮겨주는 통조림을 선반에 차곡차곡 넣었다. 야채 통조림은 야채 통조림끼리, 수프는 수프끼리… 별 일 없이 정리를 끝마쳐갈때, 빌의 의아한 음성이 들려온다.


“코니, 이것도 자네가 챙겨온건가?”


배낭 안에서 빌이 무언가를 꺼낸다. 다홍색 단발머리가 부스스하게 올라와있고 검은 눈동자와 삼각형 코가 귀여운 느낌을 주는 귀여운 인형. 녹스 사태 이후 치이고 밟히기라도 했는지 조금 꾀죄죄 했지만 원형이 귀여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풉, 푸하하! 이런 취향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안고 잘 친구가 필요했냐? 진즉 말하면 내가 이 한 몸 불살라 구해다 줬을텐데!”


의문의 물건이 궁금해 기웃거리던 사비나가 그 정체를 확인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그 작은 소란 덕분에 코니의 머리 위로 핏대가 선다. 안락한 소파에서 내려온 코니가 쿵쿵대며 다가와 사비나를 던졌지만 사비나는 굴하지 않았다. 

저 미친 방독면이 무려 ‘귀여운 인형’을 가지고 왔는데 이때 놀리지 않으면 언제 놀린단 말인가? 사비나는 이제 완전히 엎어져 울 기세였다.


“아오!!!! 내놔봐! 뭔데 저새끼가 저 지랄이야?!”


그 반응에 더 열이 뻗친 코니가 괴성을 지르며 빌의 손에 있던 인형을 확 뺏는다. 


“자네가 가져온게 아니었나? 가방의 맨 밑에 있었는데.”


코니가 인형을 제 눈높이에 맞춰 가만히 노려본다. 인형은 당연하게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뭐야? 이 등신같은 인형은.”


코니의 짧은 한줄평이었다. 빌은 더더욱 의아해 고개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저 반응은 정말 모르는 일을 대하는 자세로 보였기에. 뭐, 당연한 일 아닌가? 저 인형은 정말 처음 보는 물건이었고, 그렇기에 챙길 수도 없었으니.


“물자를 담을 때 같이 섞였을지도 모르네. 인형 주인이 찾지 않길 바라야지…”


“별… 인형 주인이고 제작자고 이미 처물려서 돌아다닐 거라는 생각은 안하냐?”


“약간의 희망일세. 이런 상황일수록 그런 생각을 하는건 중요하지 않나.”


이 늙은이가 드디어 미쳤구나 생각하는 코니의 손에서 인형을 빼낸 빌은 인형에 붙은 먼지나 자국들을 털어주었다. 이제 다 웃은건지 옆구리를 붙잡고 다가온 사비나가 눈물을 훔친다. 또 던져질까봐 빌의 뒤로 가 인형을 구경한다. 역시 코니가 챙겨왔다고 하기엔 너무 귀여운 인형이었다.


“큭… 하… 진정하자. 진짜 웃겼다. 근데 먼지는 왜 털어줘요? 어차피 버릴거 아니에요?”


“우연이라고 해도 어쨌든 우리 집에 온 손님이지 않나. 그렇게 해진 것도 아니니 장식해둬도 좋을 것 같아서 말이네.”


“오…”


빌이(늙은이가) 또 희한한 짓을 하네(또 지랄하네)... 사비나도 코니도 빌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그럴싸한 말을 내어놓지 못했다.-코니는 이해했어도 그럴싸한 말을 하지 않았겠지만- 천쪼가리에 눈코입 달아 솜 넣은게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저러는건지. 코니는 흥미가 식었다며 다시 소파로 다이빙했고, 사비나는 빌을 가만히 보다가 행주에 물을 묻혀 빌에게 건넸다. 화사하게 웃는 빌을 보자니 어디선가 빛이 나는 듯 해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사비나의 밤


그날 밤. 사비나는 부스스 일어나 아직 덜 뜨인 눈을 비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보면 아직 아침은 아닐텐데. 정확한 시간을 보기위해 침대맡을 더듬어 안경을 찾는다. 안경, 안경… 허공을 유영하던 손 끝에 무언가 걸린다. 

헌데 이건… 안경이라기엔 너무 푹신하고 컸다. 아직 잠이 덜 깨어 흐릿한데다가 안경마저 없어 사비나의 시야에는 왠 주홍색 덩어리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게 뭔지는 안경을 찾은 뒤 생각하도록 하자. 몇 번 더 침대맡을 더듬어 안경을 찾아낸 사비나가 말끔한 시야를 되찾는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니 시간은 3시 18분. 아직 한참은 더 잘 수 있겠네. 길게 하품한 사비나가 다시 푹신한 침대로 몸을 맡기는데, 시야의 구석에 무언가가 보인다.


“음? 이게 왜 여기있지?”


아까 봤던 인형은 여전히 깜찍한 얼굴로 사비나를 마주한다. 장식해둔다더니. 제가 자는 사이에 빌이 가져다 두었구나 생각한 사비나는 피식 웃음을 흘린다. 이미 클만큼 큰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빌은 종종 사비나를 어린아이 취급을 하곤 했다.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제 앞을 든든하게 막아주고, 대화를 하자면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거나 좋은걸 발견하면 가장 먼저 제게 주는… 뭐 그런것들 말이다.

해서 사비나는 이것 역시 그것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 다시 침대맡에 인형을 앉혔다. 인형이나 장난감은 유치한데다가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비나지만, 빌의 정성을 무시할 정도의 신념까지는 아니었기에. 그렇게 사비나는 베개에 머리를 대고 얼마 가지 않아 긴 잠에 빠져들었다.


#둘째날


빌과 코니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자의라기보단 타의에 가까운 기상. 새벽 5시 경, 아직 해조차 온전히 뜨지 못한 시각에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비명의 근원지와 가장 가까운 방을 쓰던 코니는 벌떡 일어나다가 2층 침대의 프레임에 머리를 제대로 박았지만 욕 한 번 시원하게 갈겨주곤 도끼를 들었다.

방을 나서보니 이미 사비나의 방 문은 열려있었다. 그 노인네가 먼저 도착했으면 강도든 좀비새끼든 뼈도 못 추렸을테니 바짝 힘이 들어갔던 손에 힘을 뺀다.


“나쁜 꿈을 꾼 것 뿐이야. 괜찮네, 괜찮아.”


빌이 사비나의 손을 꽉 잡은 채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준다. 달달 떨리는 몸이나 사색이 된 사비나의 얼굴은 누가봐도 ‘나 악몽꿨어요’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문가에 기댄 코니는 못마땅하다는 기색으로 혀를 찬다.


“쯧, 가지가지한다. 저번에도 지랄하더니 이젠 온 동네 좀비들 다 끌어모르려고 작정을 했냐?”


“코니!”


“뭐 틀린 말 했어? 옆동네까지 안 들렸으면 다행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코니는 흥미가 식었다는 듯 층계참을 내려갔다. 자기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지 않나. 한낱 꿈일진대 그게 뭐라고. 말라비틀어진 수수깡이 멘탈까지 말라비틀어져있으니 거슬리는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코니가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보던 빌은 낮게 한숨을 내쉬는가 하더니 다시금 방긋 웃으며 사비나를 바라본다. 안심하라는 듯 주름진 따뜻한 손이 이곳 저곳 터있는 손을 한참동안이나 주무른다. 핏기가 싹 가셔 차가운 손에 따뜻한 온기가 곂쳐지니 눈물이 나올 뻔 했으나 그가 누구인가. 사비나는 잘 참아내었다.


“차 한 잔이라도 내어주지. 그럼 더 진정이 될게야.”


“어, 아, 아니에요. 많이 괜찮아졌는데…”


“따뜻한 차를 마시면 더 괜찮아질걸세. 잠시만 기다리게나.”


두어번 사비나를 토닥인 빌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고요해진 방 안, 홀로 남아있자니 악몽의 잔재가 저를 쫓아오는 것 같아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뒤에 있는 인형을 힐끗 보고, 온기가 남아있는 손을 꽉 쥔다. 

악몽이라면 도가 틀정도로 많이 꾸고 경험했는데, 어째서인지 이번에 꾼 악몽은 끔찍하게도 생생했다. 목이 늘어날대로 늘어난 엄마와 아빠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들이 직접 제 목을 잡아 뜯는 감각이 도저히 꿈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었다. 차마 더 생각하기 싫어 두 눈을 꾹 감는데, 뒤에서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인형이다.

사비나가 엎어진 인형을 잡아듦과 동시에 빌이 찻잔이 올라간 쟁반을 들고 방으로 들어선다.


“허허, 그 인형이 마음에 드나?”


“딱히… 그래도 싫은건 아니에요.”


사비나가 눈을 피하며 웅얼거리고, 빌은 활짝 웃는다. 사비나는 꼭 부끄럽거나 무언가가 좋을 때 저런 반응을 종종 했기에. 빌이 흐뭇한 얼굴로 찻잔을 건네고, 사비나는 인형을 내려놓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적당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향을 형상화한다면 아마 주름진 손의 모양일테지. 그런 실없는 생각이나 하며 차를 한 입 머금는다. 맛있었다.


“거실에 장식해 놓은게 사라져 코니가 버린 줄 알았더만. 애꿎은 코니를 닥달할 뻔 했어.”


“...? 빌이 여기에 둔게 아니에요?”


“내가? 멋대로 남의 방에 들어가는건 실례잖나. 사비나 자네가 챙긴 것이 아닌가?”


“아아뇨…? 새벽에 깼는데 침대맡에 있었어요.”


빌과 사비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닥뜨린다. 


“... 모히칸 자식이 장난친걸까요?”


“코니가? 으음…”


빌이 수염을 매만지며 생각하지만 해답이 시원하게 나오지는 않았다. 사고 스케일이 크면 컸지 이렇게 사사로운 장난은 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사비나는 왠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에 서서히 식어가는 차를 홀짝였다. 그동안 기민한 직감으로 살아남은 사비나는 그 경고를 무시하지 말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코니의 밤

새벽 2시 48분. 잘만 자던 코니가 돌연 잠에서 깬다. 똑똑똑, 선명한 노크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오니 무시하고 잘래야 잘 수가 있어야지. 신경질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난 코니가 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이딴 장난을 할 사람을 하나밖에 없지. 아까 낮에 몇마디 좀 했다고 이렇게 지랄하는 것 같은데, 늙은이도 없으니 저 새끼를 상대하는건 누워서 수프마시기다.

기껏 소리 듣고 온 좀비새끼들을 처 죽여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오늘, 바로 지금이야말로 그동안의 설움을 풀 때였다.

습관적으로 쿵쿵대며 걸음을 크게 옮기는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발 밑에서 들려온다. 문 아래의 틈새로 집어넣은 것 같은 작은 쪽지.


‘들여보내줘’


“이게 진짜 미쳤나…”


얼마나 할 짓이 없으면 이러고 노는지 측은지심까지 들 수준이었다. 쪽지를 구겨 아무렇게나 던져놓으니 한 번 더 노크소리가 들린다.


“이씨발… 시끄러어어어어!!!!!! 잠 좀 자자 이 십새… …?”


벌컥 문을 열어 냅다 역정을 내는데 코니의 앞에는 그 무엇도 없었다.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두리번거렸지만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방금까지 노크소리를 들었는데. 수수깡이라기엔 그 방문이 굳게 닫혀있었고, 경첩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늙은이는 이딴 장난을 칠 놈도 아니고. 뭐가 문에 부딪혔나? 아니면 내가 미쳤거나. 위아래까지 살펴보는 코니의 시야에 무언가가 포착된다. 어제인지 그제인지 주워온? 인형. 인형은 방 문 앞에서 얌전히 앉아있었다.


“하….”


코니가 인형을 집어들고 있는 힘껏 사비나의 방 문에 던져버린다. 퍽 소리가 난 인형은 문에 튕겨져 바닥을 구른다. 씩씩대며 방문을 쾅 닫은 코니는 아침에 만나면 진짜 수수깡을 부러뜨릴 거라며 침대에 다시 누웠다. 

코니는 그대로 가위에 눌렸다.


#셋째날


평화로운 아침. 이젠 익숙한 백색소음처럼 사비나와 코니가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빌은 오늘치 통조림을 골라내며 싸우는 소리를 듣는다.


“나 아니라니까!!! 이상한 꿈꾸고 나한테 지랄이야 미친놈이!”


“너 아니면 저 늙은이가 했겠냐? 왜? 차라리 그 등신같은 인형이 했다그러지, 이 시발아!”


“안 그래도 저 인형 존나 이상하거든?! 갑자기 내 침대맡에 있질 않나, 이번엔 니 방 앞에 앉아있질 않나!”


“하이고 그러냐? 왜? 아주 귀신들렸다고 하지? 성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니새끼를 벌한다, 이새끼야!”


코니가 달려들어 사비나를 던진다. 사비나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고, 그제야 빌은 후다닥 달려와 코니를 꿍 때렸다.

식사 준비가 다 된 테이블엔 머리에 혹을 단 놈이 하나, 허리를 부여잡고 끙끙대는 놈이 하나, 그 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놈이 하나 있었다.


“서로 사과하게.”


“내가 왜!!! 저 새끼가 먼저 시비걸었다니까!!”


“제가 왜요?!! 저 진짜 안 했어요! 빌도 그 인형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둘이 동시에 테이블을 쾅 치고 일어나 동시에 입을 연다. 쿵짝이 잘 맞는 그들을 보니 뒷골이 당기는 것 같아 낮은 침음을 흘린다. 


“아오!!! 몰라, 시발!! 안 먹어!!!”


코니가 테이블을 뒤집으려고 했지만, 바닥과 용접된지 오래 된 테이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온갖 욕설을 내뱉은 씩씩거리며 코니가 밖으로 나가고, 사비나는 입 하나 줄었으니 잘됐다며 식사를 시작했다. 빌은 아내와 딸이 그리워 울뻔했다.

그날 저녁. 빌은 싸움의 원인인 인형을 들고 옆 단지의 쓰레기통에 인형을 넣어두고 돌아왔다. 인형이 오고나서 이상한 현상이 시작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사비나와 코니의 말을 신뢰하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사비나는 인형을 손도 대기 싫어했고, 코니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으니 제가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이걸로 아이들이 싸우지 않길 바라며 집으로 돌아갔다.


#빌의 밤


끼익, 철컥. 문소리가 들린 것은 막 새벽 2시가 되었던 때. 코니가 언제 들어올지 몰라 장금장치를 풀어놓았기에 부러 불편한 의자에서 선잠을 자고 있던 빌이 낡은 경첩 소리에 잠에서 깬다.


“코니! 드디어…”


빌이 밝아진 안색으로 방에서 나서는데, 분명 문은 열려있지만 코니가 보이지 않았다. 코니는 언제나 쿵쿵 소리를 내며 걷기에 소리를 듣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문이 덜 닫혀서 바람에 열린걸까? 짧게 생각한 빌이 현관을 닫으려는데 무언가 발에 걸린다.

풀썩 소리를 내며 뒤로 나뒹구는 ‘무언가’는 분명히 저녁에 버리고 온 인형이었다. 잘못보고 있는걸까. 허리를 숙여 인형을 잡아 확인하지만, 빌은 제대로 보고있는 것이 맞았다.


“이게 어떻게… 코니?”


코니가 장난치는걸까 싶어 현관 밖으로 나가 주위를 살폈지만 개미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는 밤의 거리는 오싹함만 줄 뿐, 빌의 의혹을 해결해주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꿀꺽 소리가 나도록 침을 삼키며 인형을 꽉 쥔다. 인형이 압축대며 바스락소리를 낸다. 

… 바스락?

빌이 인형을 다시 확인하자 인형의 옷 안으로 새하얀 종이가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비나, 빌, 코니. 우리 친구잖아. 같이 놀자.’


이게 장난이라면 너무나도 질 나쁜 장난이다. 빌은 미간을 찌푸리곤 쪽지를 다시 인형의 옷 안으로 밀어넣었다. 귀신의 소행인지 사람의 소행인지 모르겠지만 이런건 함부로 버리면 더 큰일난다는 이야기를 딸에게서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머리가 복잡해진 빌이 제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클여뜨린다. 몇가닥 내려온 앞머리가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넷째날


빌은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코니는 동이 틀 무렵 집으로 돌아왔고, 할 말이 있다며 자고있는 사비나를 깨워 거실로 불러모았다.


“그러니까 인형이 스스로 움직였다고요? … 문까지 열고?”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네. 코니를 기다리다가 내 직접 확인했어.”


“그럼 왜 이러고있어? 이런건 태우는게 직빵이야.”


코니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어 인형을 낚아챈다. 그와 동시에 사비나가 기겁을 하며 코니의 뒤통수를 짝 소리나게 갈긴다.


“야, 야! 그런거 함부로 그렇게 하면 안돼!! 귀신들린 물건 태웠다가 개망하는 이야기같은거 못봤냐?”


“못봤다 이 새끼야! 좀비로도 귀찮아 죽겠는데 시발 귀신까지 상대해야해? 차라리 나가 죽고말지. 그리고 이 새끼가 감히 내 잠을 깨웠는데. 내가 이걸 가만 둬야하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의 사비나가 코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린다.


“빌! 빌이 말려봐요. 저거 교회같은데에 그냥 두고 오는게 낫지 않아요??”


“교회같은 소리하네. 예수인지 나발인지. 신같은게 있었으면 세상이 이지경이 됐겠냐?”


“으음… 코니 말이 맞네. 현재로써는 목사도, 신부도 찾을 수 없지 않나. 차라리 태워버리는게 낫다고 생각해.”


사비나가 둘을 번갈아보며 끙끙대다가 큰 한숨을 내쉰다. 소름돋게 저들의 이름까지 친히 써내리는 귀신인데 그렇게 간단하게 되냐고.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사비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사비나가 고민하는 사이에 이미 코니는 인형에 불을 붙여버렸지만.

밖으로 나온 코니는 활활 타오르는 인형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천이 타오르고, 내부에 있는 솜이 녹아내린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정도로 타고 기어코 잿가루가 되는 것까지 확인한 코니는 그 재마저 지긋이 밟아 땅에 비빈다.


“쯧. 이제 됐지? 잿가루가 해봤자 잿가루지. 이제 난리치지마라.”


“하다못해 멀리 나가서 태우던가… 이씨…”


코니는 그자리에서 담배를 빼어 물었고, 한마디 중얼거린 사비나는 슬금슬금 집 안으로 들어가 베개와 이불을 들고 빌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 옆에 이불을 깔아두고선 외친다.


“빌! 오늘 잠 못잤죠?? 지금이라도 주무세요! 얼른!!!”


협박인지 부탁인지. 간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심란한 낯을 하고 있던 빌이 허허 웃는다. 이전에도 뭐때문에 코니 방에서 잔다고 옥신각신 했다더니, 겁이 이리 많아서 어떡하나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섰다. 빌이 침대에 앉는 것까지 확인한 사비나는 제 이불속으로 쏙 들어간다. 악몽은 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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