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차
징그럽고 아름다운
세상은 싫은 것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따금 아름답고도 사랑스러운 것들이 존재해서 온전히 미워할 수도 없다. 아름다운 것으로만 눈 돌리고 싶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눈을 감는다. 모든 걸 외면하고 나를 지탱하기 위하여.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들이 아름답다. 깎으면 깎는 대로 살아가는 숲이 아름답고 본능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이 아름답다. 사람은 사전적 의미로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로 풀이된다. 다른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고 보고 있어서 그렇게 정의한 것 같은데, 사실 다른 동물들도 크게 다르게 보이진 않는다.
인간들에게 각기 다른 사고방식이 존재하듯 동물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의 얘기를 모아보자면, 그들도 분명 생각을 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고양이는 자기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 살아가고 그 루틴이 어긋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또한 마음에 드는 것들은 자신의 루틴에 포함시킨다.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은 다들 알 것이다. 여러 번 산책을 다니다 보면 목줄만 꺼내도 산책 가려는 걸 알고 반응한다. 그들은 어떤 행동에 대해 무엇이 연결되는지 이해하고 있다. 이 점이 그들도 생각을 한다는 증거로 생각된다.
또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소통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언어다. 인간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언어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인간이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면 나중에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고양이는 움직이는 물체를 갖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야생에서는 쥐를 가지고 놀기도 한다. 이때의 쥐는 고양이에게 물체로서 작용했다는 것이 개인 의견이다. 그리고 무리 짓는 동물들이 무수히 많은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애초에 독립적인 개체라면 모를까, 무리 지어 산다면 그들 사이에도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사회가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
이 세상을 유지하고 지키는 것들이 아름답다. 인간의 역사에서 무수한 악행이 존재했지만 누군가는 그걸 막았고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지금도 자연을 훼손하는 것들이 있지만 이 훼손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누군가가 있고, 훼손으로 상처 입은 어떤 존재를 보듬어주는 누군가가 있다. 세상이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던 건 그러한 선의와 다정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선의를 안다. 그것은 애정에서 우러러 나온다. 누군가의 애정으로 살아남는다면 그 애정이 나오게 된 세계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무조건적인 당연함은 없다. 누군가는 악의가 당연한 세상에서 살고 누군가는 선의가 당연한 세상에서 산다. 그 밖에 다양한 세상이 존재한다. 모두 각자의 당연함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당연한 것이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다. 나를 둘러싼 당연함 중에 옳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 당연함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강인함을 가질 것이다. 세상을 유지하고 지키며 아름답게 유지하고 싶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 것들이 징그럽다. 이기적인 것이 자연스럽지만 그렇다고 같이 살아가는 세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한 사람을 둘러싼 모든 관계가 같이 존재하고 있는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선행을 떠벌리는 사람보다 악행을 떠벌리는 사람이 더 많아서 악인들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한때 거기에 속았지만 이제는 속지 않으려고 한다. 내 옆에는 평범하게 선량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세상엔 아름다운 것들과 징그러운 것들이 있어 마음만 같아서는 전자만 보고 살고 싶다. 그러지 못하는 건 징그러운 것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망가뜨리기 때문이고, 징그러운 것들을 바로잡는 행위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한때 무수한 악의에 질려 인류가 멸망하길 바랐지만, 인류는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살아 있어야 하고 나는 그들에게도 다정함이 있음을 믿고 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덧없이 믿고 있다. 내가 준 선의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세상을 지켜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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