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5

잊혀진 ■■■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차별의 눈길을 받아왔다. 그리다니아는 숲 부족 엘레젠이 점령하다시피 살고 있다. 같은 종족이어도 그들은 차별한다. 황혼 부족 엘레젠을 벌레보듯 쳐다보며 깔보고 업신여겼다. 머리가 어느정도 자라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종족이 다른 부모가 아이를 낳게 되면 대체로 그 아이의 종족은 모계 쪽을 따라간다고 한다. 하지만 드물게 부계 쪽을 따라간다고 하는데, 운이 나쁘게도 이 경우는 내가 해당되었다. 친모는 숲 부족이었으나 친부는 황혼 부족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자랐다. 첫째가 숲 부족이니 둘째도 당연히 숲 부족일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 듯 했다. 물론 나에게도 웃어주긴 했지만 그것은 정말로 자식을 사랑해서 짓는 미소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니까. 진작에 알고 있었다. 사랑은 온전히 형에게만 주어진 특혜였다는 걸.

그래서 나는 항상 목이 말랐다. 하지만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다. 요구해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 사랑이었으니까.

그래서 점점 형이, 가족이 미워졌다. 이런 나를 도와주려고 노력했던 형이 가소로웠다. 그에게 동정 받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 불씨 하나로 가족을 태웠다. 재가 되어버린 그들을 봐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통쾌했다.

일찍 홀로서기를 시작한 나는 늘 가식적인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이용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면 호의적으로 구는 것이 당연했으며, 마주볼 가치조차 없는 사람에겐 쌀쌀맞게 대했다. 그리다니아에 사는 황혼 부족이라면 아마 입이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고한 척 하는 숲 부족에게 트집 잡힐 순 없으니 교양있게 돌려말하는 처세술을 배웠다.

지금은 울다하에 위치한 연금술사 길드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에 독특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잊고 지냈던 과거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나는 그 사람과 생각이 전혀 달라 말다툼이 잦은 편이었다. 심하면 멱살까지 잡힐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끝까지 물리적인 해를 가하지 않았다. 정도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나에게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주곤 했다. 쉬엄쉬엄 일하라면서.

그래서 의구심을 가졌다. 나는 그에게 모진 말만 했는데, 대체 무엇 때문에 나에게 잘해주는 걸까? 왜 이유없는 호의를 보여주는 걸까? 그 사람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나는 잊혀진 것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마음 속에 애써 묻어두려 해도 자꾸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진심이 느껴졌다. 수십 년동안 느낀 갈증이 단 한 방울의 애정에 격렬히 반응했다.

아, 잊혀진 사랑.

그리고 잊혀진 ■■■.

헛된 희망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것들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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