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natio ad bestias

짐승들에게 정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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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길어져 링크로 옮겼습니다. 과몰입……주의……바랍니다…….

*BGM 음량 줄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목욕을 다 마치고 나와서는 몸을 닦을 생각은 않고 뭍으로 나왔다.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몸 위에 우의처럼 생긴 모포만 덮는다. 큰 바위 위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줄기와 그 너머를 그저 바라본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던 건지.

그러고보니 날개도 다시 자랐던 것 같은데. 신성총을 꺼내어 대강 잡기만 하고 날개를 살폈다. .... 처음엔 이런 색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까진 따로 날개를 살펴볼 일이 없었다보니 알지 못했다. 마치, 꼭.... 악마들 피라도 뒤집어쓴 마냥 검붉고... 지저분하게 얼룩져선. 저주라도 받게 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경우가 원래도 있는 걸까? 멍하니 날개를 바라보다가 끄트머리의 깃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슬슬 손으로 쓸어보다가 몇개를 붙잡고 뽑아본다. 머리카락이 뽑히는 것처럼 얼얼했다. 통각이 있다더니 진짜였나. 머릿 속에 무언가 걸린 것처럼. 덜컥하고 떠오르려는 기억에 반사적으로 쥐고 있던 총을 던졌다.

"...헉... 허억.... 아, 아아, 아니야."

놀라 한참을 헐떡인 끝에 작게 중얼거렸다. 그건 분명히 악마였었다. 아니, 짐승의 모습을 한... 마귀였어. 자기 최면을 걸듯 머리를 문지르며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고개를 돌리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오르골을 발견했다. 저런게 아직도 남아있었나. 몸을 일으켜 그것을 주웠다. 손잡이를 돌려 작동시킨다. 고장나진 않은 모양이었다. 가운데에 작은 발레리나 모형이 튀어나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약간의 먹먹함과 함께 오르골의 멜로디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있다가 문득, 익숙한 멜로디라는 것을 깨달았다.

리오라가 식탁에 앉아서 흥얼거리던 그 멜로디다. 한참 식사 준비가 한참일 때마다 손을 먼저 씻고 식탁 앞에 와 서성거리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저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기만 했지. 그러면 식탁 의자 위로 올라와 길이가 맞지 않아 공중에 뜬 발을 흔들거리며 오르골을 돌렸고.... 그래서, 그냥. 어느 날은 시끄럽다며 압수해간 적이 있었다. 그냥 장난이었는데. 눈물까지 그렁그렁해서 돌려달라고 쫓아오는 게 귀여워서... 결국 돌려주지 못했다. 그게 집 어딘가에 있을텐데.... 그걸 가져오면, 리오라가 곁으로 돌아올까. 어쩌면 영영. 돌아와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 그럴리가... 없어."

그 아이라면 분명히, 돌아와줄 거다. 착한 아이니까. 그래. 전처럼 집을 단장하고,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주면... 분명히. 그렇지. 그렇잖아? 그 아이가 없으면. 이런 세상따위 존재할 이유가 없다. 리오라, 나의 빛. 나의 사랑스러운 아기새야. 네 진짜 아빠가 되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했다. 학부모 참관 수업에 나이 든 양부모 대신 갈 때에도. 늘 삼촌이어야 했던 내게 한 번도 토달거리지 않은 네가 늘, 미안했다. 미안해, 미안하구나. 늘.... 차오르는 슬픔을 삼키려 생채기 가득한 허벅지를 퍽퍽 때려댔다. 심장이 찢어질 듯이 아파온다. 차라리 내가 그렇게 되었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죄 많은 나 대신 왜 네가. 어째서 당신들이.... 정작 죽어야할 것들은... 그 자식들은 버젓이 살아있는데 말이야. 더는 숨길 수도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그저 망연히 떨어트린다. 애도하지 못하고,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죽음에 대한 반감이 더 많은 것을 무너트린다.

"...하, 하하. 흐. 흐흐... 흐흐흑.... 크, 크하학!"

조용히 눈물 흘리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이내 광소가 터져나온다. 물기 어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처음부터... 그랬어야 됐던 거였다. 학대하는 양부모를 만났을 때부터. 그때부터 체념하지 않고 모조리 부숴버렸어야 됐던건데. 내가 바라는 건 무엇도 허락하지 않는 이딴 세상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떨리는 손끝이 뺨을 긁으며 아래로 내려온다.

"...복수? 네가? 마귀 들린 자를 볼 때마다 초조해지기나 하는 내가 어떻게. 누구에게 할 거란 말인가? 이미 내 가족들을 죽인 악마 자식은 죽었어. 설령 리오라가 돌아온다고 해도, 그 애는... 전처럼 돌아오지 못해. 왜 모르는 척하는 거야? 그 애는.... 분명.... 죽었는데, 내 눈 앞에서. 시체를.... 시체를, 태웠던가? 묻었나? .... 도망... 도망갔을 거다. 악마가, 그 집엔... 악마만 있었으니까.... 헷갈리게... 헷갈리게 하지마! 등신같은 새끼...."

금방이라도 숨 넘어갈 듯 빠르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이어진다. 목이라도 졸린 것처럼 새된 목소리로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다시 끅끅거리며 엎드려 앓는 소리를 내길 반복했다. 입을 틀어막은 채 짐승처럼 울부짖다가도, 누가 들을 새라 숨을 죽였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했다.

커다란 녀석을 처치했다고는 하지만... 그러면, 그렇다면 뭐가 달라졌나? 당장 내 현실은 고독함 그대로임을. 차디찬 공기가 일깨워준다. 뭔가가 끝난 게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 보급품으로 받았던 쿠크리의 날을 왼쪽 손등에 대고 커다랗게 네 번 선을 긋는다. LL. 갈라진 피부에서 핏방울이 맺히며 뒤늦게 붉게 새겨진 철자가 보인다.

".... 착각하지마, 핼시언 로웰. 네가 할 건 리오라를 찾고, 악마들을 죽인다.... 그거 뿐이다."

이건 복수 같은 게 아니다. 죽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사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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