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물

[커미션][짓큐사니] Summer Fever

[오마카세 타입] 김제스님이 신청하신 글커미션

written by. @saniwa_jeyeon CM

 

 

 

 

 

 

 

 

 

Summer Fever

 

 

 

 

 

 

 

 

 

 

 

 

 

장마가 지나가고 난 다음의 공기는 무겁고 눅눅했다.

그뿐이었다면 다행이었을 것을, 장마 기간 내내 비구름에 가려져 있던 분을 풀 듯이 태양이 작열했다.

 

7월의 중순, 불시에 커다란 알림음과 함께 찾아온 재난문자는 폭염주의보를 알린다.

 

무더위의 한가운데, 카호와 짓큐는 한가롭게 집에서 에어콘의 냉기에 기대어 주중에 쌓인 여독을 풀고 있었다. 거기에 입에 가리가리군을 하나씩 물고 있으니, 극락이 따로 없었다.

 

"이거 새로 나온 맛이라던데 짓큐씨는 어때요?"

 

"음...익숙한 맛인걸."

 

"치약맛이라고 말해도 돼요. 아무래도 민트초코는 짓큐씨 취향이 아닌가 보다."

 

"카호씨는 좋아해?"

"좋아한다기보단, 있으면 먹는 정도? 어어, 짓큐씨 빨리 먹어요. 흐른다!"

 

아무리 에어컨이 냉기를 뿜고 있어도, 냉동실 밖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은 잠깐 멍때리고 있는 사이에 녹아버리기 마련이다. 카호가 짓큐를 재촉한 보람도 없이, 녹은 가리가리군은 그것을 들고 있던 짓큐의 손으로 흘러 내린다.

 

카호는 얼른 그것을 해결하려고 근처에 있던 티슈를 두어 장 뽑아, 황급히 짓큐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카호는 이상하리만치 짓큐의 눈동자가 가깝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우연처럼, 찰나의 순간에, 스쳐 지나간 감촉이 생생했다.

 

"짓큐씨, 더 녹기 전에 닦아요.“

 

"응, 고마워."

 

"똑같이 꺼냈는데 왜 짓큐씨 가리가리군이 더 빨리 녹는 거 같지?"

 

"내가 체온이 카호씨보다 높은 걸까?"

 

두 사람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태연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정말이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처럼.

 

"카호씨도 다 먹었어? 이리 줘. 내가 버리고 올게."

 

"그럼 부탁 좀 할게요."

 

그러고 보니, 첫 키스가 아직이다.

 

키스조차 아직이니, 성적인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다른 행위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카호와 짓큐 사이에 스킵십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한없이 친밀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그런 느낌'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서로의 손이 닿아도 둘 다 느긋하고 태연해서, 연인 사이의 긴장이나 설렘보다는, 친구의 손을 잡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는 굳이 의식하지 않았지만, 하고 싶냐 하고 싶지않느냐를 묻는다면, 카호로서는 하고 싶다, 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더 가까이, 닿아있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니까.

 

하게 되면 좋겠지.

 

언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런 생각이 카호의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

 

 

 

"저 무더위 속으로 걸어가고 싶지 않아요..."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지. 출근은 해야 하는 걸."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면, 집을 나설 준비가 끝난다. 오늘도 즐겁지 않은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가면 어떤 일이 또 얼마나 쌓여 있으려나, 언제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시에, 카호는 평소와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키스를 한다면, 보통은 출근할 때일까? 하지만 같은 직장인걸. 드라마에서 출근할 때 입맞춤을 하는 커플은 보통 직장이 다르기 마련이라, 카호와 짓큐의 경우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아니야. 작게 고개를 내저으며 카호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 카호의 등에, 짓큐의 눈길이 조금 오래 따라붙었다.

 

 

 

 

*

 

 

 

"드디어 집이네요..."

 

"응, 오늘도 고생했어. 카호씨."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귀가한 카호는, 먼저 성큼성큼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가 거실 불을 켜는 짓큐의 뒷모습을 보며 아침에 했던 생각을 이어간다.

 

그렇다면 퇴근하고?

 

현관문에서 하는 건, 조금 무드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짓큐씨는 이미 거실에 가버렸는걸.

 

"카호씨, 오늘 열대야라는데 에어컨 온도 평소보다 더 낮추는 게 좋을까?“

 

 

"그래도 평소대로면 될 것 같은데...행여나 둘 다 감기에 걸리면 곤란해요."

 

"그럼 평소대로 할게."

 

지금도 아니야. 하품을 하며 카호는 신발을 벗었다.

 

현관등이 꺼졌다.

 

 

 

 

 

 

 

 

 

 

 

 

 

 

 

 

 

 

 

*

 

 

 

카호는 계속 언제가 최적의 타이밍일까 고민했다.

 

같이 요리하면서? 드라마나 영화에 가끔 나오지. 꼭 분홍색 귀여운 앞치마를 두르고, 뒤에서 끌어안기도 하고, 그러다가 키스도 하고.

 

카호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칼도 쓰고 불도 쓰는데 아무래도 요리하는 중에는 좀 위험하다.

 

그럼 잠들기 전에? 굿나잇 키스?

 

아니, 짓큐씨 아무것도 모를 텐데, 잠자리에서라는 상황이 좀 과하다. 너무 한 번에 진도를 확 빼면 당황할지도 몰라......내가 천천히, 잘 해야 하는데, 역시 상황보다는 이론적으로 공부를 좀 더 하고 시도를 하는 게 짓큐씨를 위해서도 낫지 않을까?

 

 

그런 카호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득 시선이 마주치면 짓큐는 미소지을 뿐이다. 그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짓큐씨는 생각도 안 하는데 나 혼자 왜 이리 앞서 나가고 있는 건가, 싶어져서 카호도 웃고 마는 것이었다.

 

좀 더 분위기가 좋을 때, 짓큐씨가 놀라지 않도록 차근차근.

 

너무 서두르지 말자.

 

 

 

 

 

 

 

 

 

 

 

 

 

 

 

 

 

 

 

*

 

 

 

하지만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기회는 생각지도 않았을 때 불현듯 찾아오는 법이다.

 

"짓큐씨, 잠깐 눈 감아볼래요?“

 

"뭔가 묻었어?"

 

"속눈썹이......"

 

조용히 눈을 감고 기다리는 짓큐의 얼굴과, 살포시 내려 깐 고운 속눈썹을 보고 있자니, 내내 카호의 머릿 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이 다시금 몸집을 키웠다.

 

카호는 생각했다. 그러고 싶나?

 

카호가 대답했다. 응, 그러고 싶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회가 왔으니까. 눈 딱 감고 한 번 부딪혀보자.

 

지금이구나, 싶어서 카호로서는 드물게도, 조바심에 힘입어 냅다 짓큐의 얼굴을 향해 돌진했다.

 

입술과 입술이 부딪혔다. 그보다는 이와 이가 부딪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비릿한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기세가 너무 좋았던 탓인지, 굉장히 세게 부딪힌 나머지 입가가 아팠다. 아마 짓큐도 마찬가지이리라.

 

입술을 뗀 카호는 어느새 눈을 뜬 짓큐와 시선을 마주했다. 동그랗게 커진 보랏빛 눈동자가 굉장히 귀여웠다. 아주 잠깐 버퍼링이 걸린 듯 멍하니 있다가 상황을 파악한 짓큐가 어, 저기 카호씨...하고 카호를 불렀다.

 

"아니, 그게, 그냥..."

 

횡설수설 정신없이 변명을 하는 카호의 뺨에 짓큐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두 사람은 동시에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좋아해요."

 

짓큐가 세상에서 가장 안온하게 느끼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속삭였다.

 

"나도 좋아해, 카호씨."

 

짓큐가 화사하게 웃었다.

 

그 웃음을 보자, 카호는 지금까지 고민했던 게 아무래도 좋아졌다.

 

"짓큐씨."

 

카호의 부름에 응, 하고 대답한 짓큐와 시선이 맞닿았다. 보라빛 눈동자를 가득 채우는 제 얼굴을 보며 웃던 것을 멈춘 카호가 입을 열었다.

 

"입 맞춰도 될까요?"

 

짓큐는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입 맞춰줄래?"

 

카호가 양손으로 짓큐의 뺨을 잡았다. 천천히, 한 치의 조급함도 없이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지고, 이윽고 입술이 꼭 맞닿았다.

 

그것은 분명, 단순한 입맞춤이었다.

 

오래도록 기다렸다는 듯이, 짓큐가 카호의 입술을 아주 천천히, 느릿하게 집어삼키기 전까지는.

 

커다란 손이 카호의 허리와 뒷목을 감싸 안아 부드럽게 잡아당기면, 카호의 몸은 자연스럽게 짓큐에게로 기울었다. 몸이 딱 달라붙었다. 카호는 눈을 감고 짓큐의 목에 팔을 감았다. 서로의 혀가 겹쳐졌다. 크고 뜨거운 혀가 입안 전부를 장악하듯 훑었다. 짓큐의 혀가 살살 카호의 치열을 건드리자, 짓큐의 목에 감은 카호의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주고 받는 숨이 너무나 뜨거워 데일 것만 같았다. 타액이 뒤섞이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카호의 짓큐, 짓큐의 카호.

 

오롯이 두 사람 뿐이었다.

 

숨이 찬 카호가 눈을 뜨고 겨우 입술을 떼었을 때, 그 모습을 꿀이 떨어질 듯한 눈으로 보던 짓큐가 카호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조금 아쉬운 기색으로, 카호의 오른손을 잡아당기고는 손바닥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곤 예쁘게 눈을 휘며 웃었다.

 

 

아마도 굉장히 서투른 키스였겠지만, 두 사람에게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주 잠깐의 침묵 후에, 붉게 상기된 얼굴의 카호가 짓큐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했다.

 

"한 번 더 할래요?"

 

물론, 카호의 짓큐가 그 말에 고개를 내젓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누군가 첫 키스는 어떤 느낌이었냐고 카호에게 묻는다면, 카호는 그리 대답할 것이다.

 

그녀의 첫 키스는, 비릿한 쇠의 맛이 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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