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의 시작

둘이서 수사 AU

엔란 by 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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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사무실 내부는 조용했다. 란은 의자에 푹 파묻히듯이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창문에서 책상까지 길게 햇빛이 이어진다. 한가로운 오후였다. 탐정이라는 일은 생각보다 그렇게 자주 의뢰가 들어오는 편은 아니었다. 란이 워낙 홍보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만 의뢰하러 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란이 딱히 일을 가린 적은 없으나 거의 모든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해온 탐정이라는 지위가 의뢰의 문턱을 높인 것도 있었다. 어쨌든 굳이 설명하자면, 산죠 란은 오늘 일이 없었고 딱 그만큼 한가했다.

휴일이라고 해서 그가 무언가 적극적으로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그의 본업은 작가이고, 탐정 일이 그가 유일하게 능동적으로 행하는 취미생활이었다.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종종 상식을 뛰어넘는 재미있는 사건들을 만나는 건 재미있었지만 그 외엔 칙칙한 회색빛이라고 대답할 것이었다. 정돈된 픽션의 세계에 살고 있는 그에게 부자연스러움을 알아차리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고, 그 균열들을 따라가 전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지나치게 쉬웠다. 쉽기만 한 일에 대체 어떤 재미를 느낄 수 있겠는가. 새로움에서 느끼는 재미가 고작이었다.

세상에는 범죄가 너무나도 많았고, 란은 그 중 대부분의 진상을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려운 사건들을 맡아온 이유도 고작 그정도. 봉사활동하는 정도의 감각이었다. 그러니 또 다시 활동적으로 다른 취미생활을 찾기엔, 그는 이미 자신의 기력을 충분히 쓰고 있었다.

ㅡ똑똑,

그러나 한가함을 강조하면 꼭 일이 생긴다고 하던가. 한창 잠이 들락말락하던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란은 잠시 모른척하고 이대로 낮잠이나 잘까, 라고 생각하다가 두어번 더 노크소리가 이어지면 한숨을 내쉬고 몸을 일으켰다. 의뢰인이었다. 두서없이 늘어놓는 사건의 개요를 용케 알아들은 란은 바로 자신의 외투를 걸쳤다. 현장을 살펴볼 요량이었다.

현장에 가까이 오면,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하긴 범죄 현장은 으레 다 이런식으로 소란스럽기는 했다. 웅성거리는 구경꾼들,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현장을 지휘하는 경찰들... 아무도 모를 불평을 늘어놓으며 느긋한 걸음으로 걷고 있노라면, 갑작스럽게 큰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란의 품으로 뛰어들듯이 넘어진다. 란은 무심코 그 사람을 잡아주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면 제일 먼저 반짝거리는 금색 눈동자가 보였다. 그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과, 곧게 뻗은 코나 살짝 벌어진 입술 같은 것들이. 조금 앳된 인상의 청년이었는데, 란이 붙잡으면 그는 그것을 뿌리치려 했다. 이거 놔요! 그렇게 외치는 목소리는 조곤조곤한 톤이 조금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 도망치다니!"

뒤따라온 거친 인상의 형사가 달려온 청년을 붙잡으려고 했다. 란은 무의식 중에 그 손에서 제 품안의 이를 보호했다. 붙잡히지 않도록 숨겨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들의 표정과 형사의 표정과, 그리고 잠시 마주했던 그의 표정을 보고는 대강 상황을 파악했다. 그를 제외한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특히나 형사가 그랬다.

"괜찮아... 도망가지 않아도 돼..."

란은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제 품으로 그를 숨기듯이 감싼 채로 형사에게 웃어보였다.

"현장을 좀 볼까요..."

형사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탐정이라는 녀석이 유력한 용의자-라고 그는 생각했다.-를 감싸고 돌더니 현장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서 다들 이유를 모르게 그의 말을 들었다. 유력한 용의자는 도망치려 들었으면서, 어느새 탐정의 뒤에 딱 붙어서 같이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란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대충 보기만 해도 이 플롯은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여기서 용의자가 도망쳐버리면 딱 B급 싸구려 추리소설이 되어버리는 길이었다. 엉망인 플롯의 싸구려 소설이냐, 쉽게 해결된 사건이냐. 둘 중 고르라면 단연코 후자였다.

"저, 저기..."

"응?"

이엔은 조심스럽게 란을 불렀다. 탐정이라는 그는 이엔을 붙잡는 듯 하더니, 곧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어주었다. 그 순간 바로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다정한 시선으로 사건을 해결해주겠다고 단언한 그에게 이끌려 이대로 남아버렸다. 종종 형사가 그를 향해 날카로운 눈초리를 보내기는 했지만, 어쩐지 괜찮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가, 감사해요..."

"별 거 아닌데... 아. 여기 다쳤네..."

도망치는 과정에서 몸싸움하다가 상처였다. 란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내더니 제법 꼼꼼한 손길로 이엔의 상처 위에 묶어주었다. 이엔은 그 손수건에 그려진 병아리모양 자수에 이 상황도 잊고 작게 웃고 말았다. 멋있는 탐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리고 결론만 말하자면, 란은 그 사건을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했다. 순식간에 진짜 범인을 찾아내고, 형사는 이엔을 거칠게 다룬 것을 사과하기 까지 했다. 그 뒤로 끝일거라고 생각했던 인연은, 이엔이 조심스럽게 사무실에 찾아오면서 다시 이어졌다. 진상을 찾아내는 데엔 천재적이지만 그 외엔 제멋대로 살고 있던 란에게 꼼꼼하고 성실한 새로운 조수가 생긴 것이었다.

란은 이리 저리 뻗친 머리를 하고 방을 나왔다. 부엌 쪽으로 향하면, 이엔이 벌써 앞치마를 매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작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사실 이길 생각 자체가 없었다.- 란은 그런 이엔을 뒤에서 꼭 끌어안아버리고 만다. 이엔의 귓가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그대로 보였다.

"탐정님?! 요리 중에 이러시면 위험하시거든요?!"

"싫어?"

"시, 싫은 게 아니라... 앉아서 기다리세요..."

란은 순순히 안은 팔을 풀고 식탁에 앉아서 요리하는 이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은 뭐야? 오믈렛이에요. 난 이엔이 만든 오믈렛 좋더라... 사소한 대화를 주고 받는 사이 부엌 안이 훈훈해졌다. 란은 문득 두 사람의 첫 만남을 떠올려본다. 이렇게까지 소중해질줄은.... 몰랐나? 어쩌면 자신은 제 품으로 뛰어든 이엔의 금색 눈동자를 보는 순간부터 무언가를 직감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찌되었든 그는 명탐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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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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